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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54화 (54/200)

기공술사 54화

천애랑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송소걸을 보았다.

머리를 풀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송소걸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천애랑의 옆에서 신의가 입을 열었다.

“산공독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약인 것 같네. 마기가 섞인 산공독인 것 같은데 치료약을 만들기가 매우 힘들 것 같아.”

신의가 안타까운 눈으로 천애랑을 보았다.

천애랑은 그 사건이 있었던 후로 웃은 적이 없었다.

“방법은?”

천애랑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신의는 천애랑이 하대를 하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송소걸, 그리고 떠난 찬호가 천애랑에게 얼마나 소중한 관계였는지 옆에서 지켜본 자신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법은?”

천애랑이 무심한 눈으로 신의를 재촉했다.

신의는 천애랑의 눈빛을 보면서 식은땀이 났다.

자신도 제 한 몸 지킬 나름의 무공을 익혔으나 공기 한 올 한 올을 저리게 만드는 내공은 처음이었다.

신의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을 고민했다.

“방법은?”

콰지직.

다시금 재촉하는 천애랑 중심으로 나무 바닥에 금이 갔다.

신의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천애랑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대혁이에게 들은 자네의 만병통치약. 그리고 그동안 지속적으로 몸을 보호하고 생명을 연장시켜줄 각종 영약. 그 방법뿐이라네.”

천애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말하게.”

“내가 없는 동안 송소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지?”

신의가 고개를 저었다.

“각종 영약이 모인다면 그걸로 시간을 벌 수 있겠으나 지금 당장은 자네가 불어 넣는 기운이 없으면 얼마 가지 못해 죽을 걸세.”

“신의가 가진 영약은 없나? 잠시만 내가 자리를 비울 시간을 벌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부족하네. 내가 가진 영약으로는 이 주일이나 버틸까 모르겠어.”

한쪽에 조용히 있던 주원장이 입을 열었다.

“내가 도와줄 것은 없나……?”

천애랑이 주원장을 쳐다봤다.

“크흠…….”

주원장은 천애랑의 눈을 마주보기 껄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혹시 영약 좀 있나?”

천애랑은 지금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당장 눈앞에서 황제가 깐죽댄다면 목을 비틀어서 죽이고 자신의 심기를 뒤틀리게 하는 이가 있다면 천하를 뒤져서라도 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주원장도 그런 천애랑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별말 없이 대답했다.

“아니, 없네. 아직 덜 여문 도적집단에 불과해서 말이야. 미안하군.”

천애랑이 담대혁을 쳐다봤다. 천애랑의 시선을 받은 담대혁이 공손히 대답했다.

“기본적인 영약은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 여쭤보겠습니다.”

“부탁하지.”

천애랑은 무심한 눈으로 멀뚱거리는 담대혁을 계속 쳐다봤다.

“뭐해?”

“예?”

“아버지한테 안가?”

“아! 예, 예!”

천애랑이 담대혁에게 한 말이었지만 방 안의 모든 이들이 눈치를 보면서 바삐 움직였다.

모든 이들이 눈치를 볼 만큼 현재 천애랑의 분위기는 매우 불안정하고 무서웠다.

“군사, 같이 가지.”

“흠흠, 난 약재가 뭐가 남았나 정확히 확인을 좀 해봐야겠군.”

모든 이들이 다 나가고 담소연만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천애랑을 보고 있었다.

담소연이 조심히 천애랑에게 다가가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천 오라버니…….”

담소연의 안타까운 목소리에 천애랑이 돌아봤다.

담소연은 천애랑의 무저갱 같은 눈에서 어떠한 감정도 읽을 수가 없었다.

담소연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게 어떠한 감정 때문인지 정의할 수가 없었다.

친우의 배신에 마음 아파하는 천애랑이 안쓰러운 건지, 웃음을 잃어버린 그에 대한 안타까움인지, 누군가를 위해 저리 가슴 아파하는 것에 대한 질투인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담소연은 복잡한 심정으로 그저 천애랑의 등을 쓰다듬고는 방을 나갔다.

담소연마저 나가자 방 안에는 천애랑과 송소걸만 남았다.

천애랑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눈으로 하염없이 송소걸만 바라보았다.

*  *  *

“누님!”

유소소는 집무실의 문을 급하게 열며 들어오는 동생을 보았다.

“웬 소란이냐.”

유소소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유소호가 다급히 말했다.

“마교의 소교주가 모습을 드러냈답니다.”

유소소의 미간이 좁혀졌다.

“소교주? 지금까지 소교주 이야기는 없었잖아.”

“얼마 전 공식적으로 복귀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폐관수련이라도 했나 봅니다.”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 거야? 마교 같은 단체에 소교주가 있는 것은 당연한 거 아니야?”

“그게…… 이리로 오고 있다는 것 같습니다.”

유소소의 신형이 움찔거렸다.

유소소는 보고 있던 서류를 한쪽으로 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로 가서 창문을 열었다.

은신처로 위장해 사용하는 한 상단의 작은 전각 풍경이 보였다.

“…소교주의 무공수위는?”

“그게…….”

길어지는 동생의 대답에 창밖을 보던 유소소가 돌아봤다. 유소호는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마교에서 극마에 들었다고 공표했습니다.”

유소소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굳었다.

“마교에서? 직접?”

“예…. 믿을 수 있는 내용일까요?”

“아마도… 확실할 거야.”

유소소가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유소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허풍 치는 것은 아닐까요?”

유소소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절정, 초절정 가지고는 허풍칠 순 있어도 극마 가지고는 그러지 않을 거야.”

“크흠…….”

“아마도 마교가 건재함을, 아니 더욱 강성함을 보여주면서 주변 세력에게 압박을 넣으려고 밝힌 것이겠지. 그게 숨기는 것보다 효과가 좋을 테니. 강함에 대한 절대적 자신감. 그것이 그들의 특색이니까.”

“압박이요?”

유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우리처럼 그들의 밑으로 들어오라는 회유가 들어간 집단들에게.”

유소호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떡하죠? 또 거처를 옮기기엔 시간도 돈도 부족하지 않습니까.”

유소소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옮겨야지.”

마교가 살막을 영입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사람을 보내 찾았고, 그때마다 살막의 막주인 유소소와 그 부하들은 거처를 옮기며 도망 다녔다.

도망이라는 것의 특성상 기존에 소유하던 전각 등의 부동산들을 처분하지 못하기에 도망이 거듭될수록 가진 재산이 줄어갔다.

기존 재산을 처분하지 못한 부분도 크지만 딸린 식구들의 의식주를 해결하는데 들어가는 운영비가 만만치 않았다.

지금처럼 사전에 작업해 놓은 은신처이자 수익처인 작은 상단들을 통해서 암암리 소득은 있지만 본업을 하고 있지 않은 현재로선 비용이 압도적으로 큰 상황이었다.

아마 이번에도 지금의 은신처를 분해시키고 도망친다면 재정적으로 타격이 커질 것이 자명했다.

유소소의 고민을 알고 있는 유소호가 굳은 표정으로 말을 했다.

“숫자가 적다고 하니 특급 애들 데리고 매복해볼까요?”

“아니, 개죽음일 뿐이야.”

“누님, 무려 특급입니다. 게다가 제가 함께 한다면 아무리 극마라고 한들 별수 있겠습니까. 극마는 사람 아니랍니까?”

“응, 그들은 사람이 아니야.”

유소소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

유소호는 말문이 막혔다.

살막의 막주이자 자신의 누님인 유소소가 농을 한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유소소에게 농담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이내 깨닫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 그리 확신하십니까?”

유소소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봤거든. 화경의 무위를.”

말을 하는 유소소의 표정이 차게 식었다.

*  *  *

맹주전 집무실에서 신검 백청선이 창밖의 흐린 날씨를 감상하고 있었다.

“녹영아.”

“예, 주인님.”

백청선의 부름에 녹색 암행복을 입은 무인이 그림자에서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쯧쯧, 너는 그 많은 호칭을 두고 꼭 그리 부르느냐.”

“타고나길 그리 타고난 것 같습니다.”

“쩝, 그래. 혹시 예전에 만났던 여아가 기억나느냐?”

“감히 주인님께 대들던 그 건방진 암살자 집안년 말입니까?”

“에휴……, 녹영아.”

“예.”

“왜 그리 까칠한 것이냐. 그 여아가 보고 싶은 것이냐?”

녹영이 움찔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흐음. 그러하냐?”

“예.”

녹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고 믿어주마.”

“…….”

“오늘같이 흐린 날에는 가끔 그날과 그 여아가 생각나는구나.”

“세상의 정의를 위해 지당한 행동이셨습니다. 그리고 천한 계집입니다. 뭘 그런 년을 다 기억하십니까.”

백청선이 고개를 흔들었다.

“녹영아……. 누가 들으면 내가 어디 사파나 마교의 수장인줄 알겠구나.”

백청선의 핀잔에 녹영이 급히 부복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녹영의 의지와 상관없이 백청선의 기운에 의해 몸이 일으켜졌다.

“어휴 내 전생에 무슨 죄로 이런 놈을 주워가지고는…….”

“제가 불필요하다면 목숨으로 그동안의 은혜를 갚겠습니다.”

녹영이 짧은 단검을 뽑아서 역수로 쥐었다.

“그만!”

쿠르릉!

때마침 창밖의 먹구름에서 번개가 번쩍이며 천둥이 쳤다.

천둥소리를 뚫고 백청선의 목소리가 녹영에게 꽂혔다.

“절대 그따위 소리는 하지 말거라. 만약 또 그런다면 내 너를 절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녹영이 단검을 회수하고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예……. 죄송합니다.”

“어휴. 농담이라고는 모르는 녀석 같으니.”

“죄송합니다.”

“그놈의 죄송 소리는 그만해라.”

“예, 죄송합니다.”

백청선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  *

“이 명패가 하오문의 것이라고?”

천애랑은 옥으로 다양한 문양이 각인된 손바닥 크기의 명패를 보았다.

두께와 색만 봐도 매우 비쌀 것 같은 옥에 어느 시전에서도 볼 수 없던 매우 섬세한 공예가 들어가 있었다.

“예, 형님. 산동 제남 개방 분타에서 확인한 정보입니다. 그간 본 적은 없지만 아마 매우 높은 자격을 갖는 명패일 것이라고 합니다.”

“이게 왜 소걸이의 물건에서?”

“예, 개방 분타의 추측으로는 소걸 형님이 하오문의 문주나 고위 직급의 인물과 연관이 있지 싶습니다.”

“…….”

천애랑은 평온한 얼굴을 하고 죽은 듯이 누워있는 송소걸을 보았다.

“혹시 이걸 가져가면 하오문에서 알아볼까?”

“예.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다만 워낙 점조직으로 비밀리에 움직이는 정보 집단인지라 어떻게 만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괜찮아. 만나는 방법은 내가 찾을 테니.”

“알겠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보냈어?”

담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형님이 말씀하신 곳으로 믿을 수 있는 가문의 사람을 보냈습니다. 옛 신의가 그곳에 있다고요?”

“그래. 날 치료해준 진 신의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모든 치료 가능성을 찾고 싶은 내 욕심이니 진 신의에겐 미리 잘 말해줘.”

의원들, 특히나 명의라고 불리는 이들은 다른 의원들에게 진료간섭을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천애랑이 미리 말을 꺼낸 것이었다.

이를 충분히 이해한 담대혁이 걱정하지 말라는 표정으로 답을 했다.

“그 정도는 이해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어련히 잘 하겠지만 그들은 내 사람들이니 부족함 없이 대해준다면 이도 추후에 갚도록 할게.”

천애랑의 말에 담대혁을 손을 저었다.

“그런 섭섭한 말 하지 마세요 형님. 우리가 의형제인데 형님의 사람을 제가 허투루 하겠습니까.”

천애랑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마워. 그럼 다녀올 테니 소걸이를 잘 부탁해.”

“예. 걱정 마세요. 주원장 대장도 저의 부대로의 복귀를 무기한 연장 시켜줬습니다.”

“그래. 나중에 고맙다고 전해줘. 그리고 가주님께도 고맙다고 전해주고.”

“예. 그러겠습니다만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세가의 금고를 열어서 소걸이를 위한 영약을 끌어 모아주고 계시는데 어찌 고맙지 않겠어. 내 큰 은혜를 입었다고 전해줘. 꼭 갚겠다고.”

담대혁이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천애랑의 말은 담하웅이 좋아할 대답이었다.

천애랑 같은 고수에게 큰 빚을 지운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든 집단의 수장들은 안다. 그리고 그런 고수가 갖는 말의 무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간단한 예로 일인 군단이라고도 볼 수 있는 화경의 고수가 언제든지 자신의 가문을 위해 발 벗고 도와준다고 약조했다.

그런데 어느 집단에서 시비를 걸거나 했을 때 ‘우리 가문엔 화경의 고수가 있다!’라고 한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억제력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권문세가 담가를 쉬이 건드릴 세력은 드물겠지만 담대혁이 홍건적에 비밀리 활동하게 됨으로써 언제 황실의 칼이 들이닥칠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담하웅은 이런 부분들까지 계산하여 적극적으로 천애랑을 돕기 시작한 것이었다.

천애랑을 돕는 것이 아들은 물론 가문을 지킬 수 있는 큰 보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도의적인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그저 그 와중에 가주이자 아비로서 당연한 계산법이 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천애랑은 송소걸의 얼굴을 일별하고선 굳은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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