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53화
천애랑은 거침없이 내공을 소모하며 달린 덕분에 빠르게 병영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가 도착해 바라본 병영의 모습은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막사 곳곳에서 불길이 솟아오르고 있었고 병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상당수의 병사들은 이미 죽어 있었다.
‘마인들?’
상황을 파악하던 천애랑의 기감에 생각보다 많은 수의 마기가 산발적으로 느껴졌다.
그때 막사들 넘어 병영의 끝자락에서 무언가 익숙한 기운과 상상도 못할 마기의 폭풍이 느껴졌다.
천애랑은 불길한 느낌에 즉시 그곳으로 향했다.
가면서 만나는 마인들은 탄지공을 날려서 최대한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었다. 공격을 피한 마인들까진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았다.
‘뭐지? 이 불안감은….’
천애랑은 서둘러서 거대한 마기가 느껴진 곳으로 달렸다.
“꺄악!”
여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비명이 들린 장소와 강대한 마기를 느낀 장소가 일치하기에 지체 없이 향했다.
목표로 했던 장소에 도착하니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짚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주변은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고, 특히나 좋지 않은 연기가 가득했다.
천애랑은 내기를 이용해 손에 공기를 한가득 모아 밀집시켰다. 순간적으로 천애랑의 주변에 산소가 부족해졌다.
천애랑은 모은 공기를 연기를 향해 큰 손짓으로 날려 보냈다.
부---웅---
밀집된 공기에 연기가 빨려가듯 모이면서 산 쪽으로 멀리 날아갔다.
연기가 사라지자 천애랑은 바닥에 쓰러지는 사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걸아!”
천애랑은 한달음에 달려서 쓰러진 송소걸을 살폈다. 엎드려진 몸을 돌려서 안았다.
송소걸의 몸에서 내공이 계속 새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공이 다하니 진기까지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천애랑은 다급히 송소걸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내공을 불어넣었다.
단전에 바로 내공을 주입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중단전과 상단전에서 진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특히나 상단전이 크게 손상을 입는다면 백치가 되거나 죽을 수도 있었기에 다급했다.
“소걸아! 어찌 된 것이야! 어찌 여기서……?!”
천애랑은 다급히 송소걸을 안고서 찬호를 찾으러 갔다.
그곳에 담대혁과 함께 있을 테니 신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의라면 어떠한 해답이라도 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천애랑은 이동하면서 쉬지 않고 송소걸의 몸에 내기를 불어 넣었다.
송소걸의 풀어진 머리와 얇은 갑주 위로 솟은 가슴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송소걸이 무사하기만을 바랬다.
주원장의 막사로 향하는 천애랑 앞에 많은 숫자의 마인들이 있었다.
마인들의 너머로 모두가 함께 술을 마시던 주원장의 큰 막사가 보였다.
천애랑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마인들의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직접적인 타격이 필요하지 않았다. 막대한 내공을 아끼지 않고 발끝으로 발출하는 것만으로도 마인들은 천애랑의 앞을 막을 수가 없었다.
파각! 파각!
천애랑의 보이지도 않는 발길질에 마인들은 속절없이 머리가 터져서 즉사했다.
재빠르게 마인들을 지나친 천애랑은 급히 외쳤다.
“찬호!”
찬호는 술에 취해서 깜빡 잠이 들었었다. 오랜만에 정말 마음 놓고 마시는 술이었다.
예전에는 언제 있을지 모르는 암살에 대비해 최대한 피해야 하는 게 술이었다. 마시더라도 기분만 내거나 이겨낼 수 있을 정도로만 손댔었다.
그런데 오늘은 뜻이 잘 맞는 이들과 함께하니 너무나도 즐겁게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맨날 자기와 투닥거리는 송소걸 조차 예뻐 보이는 자리였다.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호탕한 주원장은 자리를 즐겁게 만들어줬다.
아직도 깨지 않는 술기운에 찬호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면서 눈에 힘을 주었다. 탁자에 머리를 처박고 코를 골고 있는 주원장이 보였다.
막사 구석을 보니 담대혁이 대자로 뻗어서 잘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송소걸이 보이지 않았다.
고 노와 천애랑이야 자신들이 시끄럽게 술을 마실 때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술을 마시던 송소걸이 보이지 않자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찬호는 계집답지 않게 남자들과 잘 어울리는 송소걸이 생각났다.
찬호가 피식 웃었다.
기운을 숨기는데 특화된 무공을 익힌 찬호는 송소걸을 처음 본 순간부터 송소걸이 여자인 것을 알았다.
정말 절묘한 역용술이었다. 자신이 아니라면 송소걸의 역용술을 알아차릴 사람은 천하에도 쉽게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여자에 대한 모든 감정이 사라졌던 자신에게 허물없이 다가오는 송소걸은 특별했다.
물론 제 딴에는 남자의 연기를 한 것이었지만 기본적인 그 성격이 어디 가진 않았다.
특히나 오늘처럼 술을 많이 마신 날에는 한 번씩 여성스러움이 드러났었다.
당연히 주원장은 전혀 눈치를 못 챘으나 송소걸을 오래 지켜본 자신은 그런 작은 변화를 눈치챌 수 있었다.
너무나 행복한 나날이다. 좋은 친우와 좋은 동생.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동생의 정체를 알다 보니 최근엔 이성으로써 마음이 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짓궂은 장난으로 마음을 지워버리곤 했다.
속이 울렁거린다. 몸 안에서 술이 찰랑거리는 것 같다. 무언가 밖이 시끄럽다. 무슨 일일까. 익숙한 기운도 느껴진다. 익숙한 목소리도…….
익숙한 기운? 목소리?
“찬호!”
찬호가 벌떡 일어나 막사의 문을 젖혔다.
불타는 막사들의 눈부심에 찬호가 눈을 찌푸렸다.
그때 검은 복면과 복장을 한 이들이 찬호의 앞에서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마찬호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뵙습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찬호의 머리가 울렸다.
찬호는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돌렸다. 무릎을 꿇은 마교인들 건너에서 천애랑이 보였다.
찬호는 천애랑의 모습에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손을 흔들려 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천애랑의 무표정하고 싸늘한 눈빛에 가로막혔다. 그리고 천애랑의 품에 안긴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찬호는 갑자기 머리가 띵하니 번뜩였다.
찬호는 즉시 내공으로 술기운들을 다 태워버렸다.
“위대한 천마신교의 무사들은 마찬호 소교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길을 뚫는다!”
“위대한 소교주님을 위해!”
“마찬호 소교주님 만세!”
“만세!”
무릎을 꿇고 있던 마인들이 일제히 산개하면서 병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끄아악!”
“으악!”
마인들이 많은 병사들을 죽였지만 죽이는 숫자보다 죽는 마인의 숫자가 더 많았다.
처음이야 밤중의 기습이었기에 큰 효과를 거두었지만 깨어나서 병장기를 챙긴 병사들의 방진에 마인들의 공격이 막히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실력이 보다 출중한 마인들이 치고 빠지는 전술을 선택하면서 피해를 줄이려 해야 했다.
하지만 마인들은 마치 자살을 하려는 듯 더욱 요란하고 악착같이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찬호는 술기운을 다 날려 버렸지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그리고 대놓고 소교주라고 밝히다니? 왜?’
찬호의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천애랑의 사자후가 온 병영을 휘저었기 때문이다.
“으아아아아아------!”
쿠구구구구구구구!
온 땅이 진동했다. 아니 천지가 우는 것 같았다.
찬호는 아직도 정리되지 않는 상황에 당황하면서 천애랑의 보았다.
천애랑의 몸에서부터 지금껏 보지 못한 기운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그리고 천애랑이 빨개진, 분노에 찬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찬호는 곧이어 천애랑의 품에 안긴 이를 다시 보았다.
송소걸이 머리가 다 풀어진 채 축 늘어져 있었다. 곱게 감은 눈이 마치 죽은 것처럼 보였다.
“애랑…… 소걸…….”
찬호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분노한 목소리로 주변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그만해라!”
찬호의 말에 병사들을 죽이고 죽던 마인들이 일제히 멈췄다.
“소교주님께서 부르신다!”
산개했던 모든 마인들이 다시금 찬호의 앞으로 모여 무릎을 꿇었다.
만약 지금 누군가 검을 휘두른다면 그저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처럼 보였다.
이 때문에 찬호가 마교인들에게 극진한 섬김을 받는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
찬호는 휘영청 떠있는 달을 올려다보았다.
‘항상 이런 식입니까 아버지……. 아니면 마뇌 그대의 짓입니까?’
찬호는 서늘한 표정으로 눈앞의 마교인들을 보았다.
‘다 죽일까.’
모르는 척 이들을 다 죽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으니. 아니, 오히려 다음에는 더 과격한 방법을 쓸지도 모른다.
“하아…….”
찬호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주변을 보았다.
병사들은 두렵고 분노한 눈으로 무릎 꿇은 마인들과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마음이 아픈 것은 천애랑이 송소걸을 안고 자신을 분노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천애랑이 마인들을 가로질러 뚜벅뚜벅 걸어왔다.
“찬호.”
천애랑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찬호는 인상을 쓰면서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그래, 애랑.”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할 수 있겠나?”
“…….”
찬호는 그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오묘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천애랑의 표정이 더욱 차가워졌다.
“왜 이 버.러.지 같은 자식들이 자네에게 소교주라고 하는 거지?”
“…….”
“왜 말하지 않나? 아니라고 말해야 하지 않느냐 말이야! 이 미친놈들이 단체로 약을 먹고 이러는 것이라고 말이야….”
“…….”
찬호가 천애랑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왜! 왜?! 대답하지 않느냔 말이야! 네가 마교인이 아니라고…… 소걸이를 이렇게 만든 마인의 수장이 아니라고…… 왜… 왜…… 왜…….”
천애랑의 갈라진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리고 붉어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찬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왜……, 왜! 말을 하지 못하는데! 어서 말해! 말을 하란 말이야아아아!”
천애랑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소리쳤다.
찬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다… 미안하다…….”
찬호의 말에 천애랑이 싸늘하게 노려봤다.
“그런 대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야! 우린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친우이자 형제라고! 마교에서 지금 무슨 계략을 펼치는 것이라고! 그러니 오해하지 말라고….”
천애랑의 마지막 말에 힘이 없었다.
“미안하네…….”
찬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천애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송소걸을 내려다봤다.
“소걸이는 어찌……?”
찬호가 송소걸에게 손을 뻗자 천애랑이 뒤로 물러났다.
“만지지 말게. 경고네. 자네의 그 잘난 마교에서 이렇게 만든 것이네. 계속 내기를 불어 넣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죽도록 말이야.”
“…….”
찬호는 천애랑에게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저 괴상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달을 올려다봤다.
“니미럴… 참 밝기도 하는구만.”
찬호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찬호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지 않은 채 천애랑의 눈을 직시했다. 자신의 진심이라도 부디 전하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애랑…… 정말로 미안하네. 하지만 자네와 소걸이를 만난 이후의 나의 모든 행동과 마음은 진심이었네.”
“…….”
천애랑은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 찬호를 노려봤다.
찬호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뒤로 물러났다.
“정말로 미안하네. 자네한테도. 소걸이한테도… 그리고…….”
찬호는 말을 하면서 천애랑과 송소걸을 보았다.
“정말로 고마웠네.”
그리곤 몸을 휙 돌려 마교인들에게 외쳤다.
“모두들 고개를 들어라. 우린 본교로 돌아간다!”
“존명!”
마인들이 일제히 복명하면서 찬호를 호위하듯 대열을 짰다.
그러자 병사들이 창검을 들고 찬호와 마인들의 앞을 막아섰다.
이에 찬호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을 지으면서 몸의 제약을 풀었다.
콰아아아아------!
찬호의 몸에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막대한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의 머리 위로 아수라의 형상이 떠올랐다.
“모두 물러나라!”
이제야 천애랑의 뒤를 따라온 고 노의 다급한 외침에 병사들이 황급히 찬호 앞에서 갈라지면서 길을 비켰다.
그러나 미처 피하지 못한 근처의 병사들은 엄청난 내기의 압력에 피를 토하면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 덕에 찬호의 앞에 길이 생겼다.
찬호는 뚫린 길로 터벅터벅 걷다가 뒤를 돌아봤다.
천애랑과 찬호의 눈이 마주쳤다.
천애랑의 붉은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굳게 입을 다물고 찬호를 분노 가득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
찬호는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는 송소걸을 마지막으로 보고는 몸을 완전히 돌렸다.
“가자.”
“존명!”
찬호와 마인들이 떠난 병영 안에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고 노는 이 사달을 만든 찬화와 마인들을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훨씬 큰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그러한 피해를 입고도 저들을 완벽히 막아낼 확신이 부족했다.
찬호가 마교의 소교주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무위였다.
아수라의 형상이 떠오를 정도의 강대한 마기를 보자 자신은 그 승부를 감히 점칠 수 없었다.
천애랑이 찬호를 맡아주거나 자신과 합공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싶었지만 천애랑의 모습을 보니 그러지 못했다.
특히나 천애랑의 품에 안긴 송소걸 때문이라도 천애랑이 몸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을 것이다.
멍하니 찬호가 사라진 방향만 쳐다보고 있는 천애랑을 뒤로하고 고 노는 병사들에게 지시했다.
“모두들 사상자들을 수습하고 명령을 기다려라!”
고 노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하고 나서 천애랑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지독한 슬픔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