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52화
송소걸은 뒷간을 찾아 아무도 없는 곳으로 휘청거리며 걸어갔다.
그때 어둠 속에서 송소걸을 지켜보던 검은 복면의 이가 눈을 빛냈다.
쉬익---!
“윽!”
달빛이 없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어둠 속에서 검은 비도가 날아갔고, 이를 맞은 송소걸이 쓰러졌다.
삐익------
복면인은 송소걸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작고 얇은 피리를 불었다.
“크악!”
“적이다!”
피리소리와 동시에 병영이 소란스러워졌다.
복면인은 곳곳에서 들리는 비명과 불길을 느끼며 송소걸에게 다가갔다. 확인사살을 하고자 함이었다.
복면인의 눈엔 의심은 없었다. 어두움 속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진 자신의 비도술을 절대 피하지 못했으리라 확신했다.
“으으…….”
그 때 쓰러졌던 송소걸이 신음을 흘리면서 일어났다.
복면인은 깜짝 놀랐다.
내공까지 실어서 보낸 자신의 비도를 맞고도 살아있다니? 분명 심장에 맞음을 보았다.
아무리 어두워도 특수한 훈련을 받은 자신에게는 낮과 다를 것 없었기에 분명했다.
송소걸이 복면인과 눈이 마주쳤다.
“씨바…… 아파라……. 누구야?!”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는 송소걸을 보면서 복면인이 당황했다.
송소걸은 고통에 인상을 쓰며 자신의 가슴께를 봤다.
송소걸의 구멍 뚫린 옷 사이로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천사용린갑(千絲龍鱗鉀)을 안 입었으면 죽을 뻔했겠는데?”
송소걸의 멀쩡함을 확인한 복면인은 지체하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복면인의 손에서 수많은 비도들이 쏘아졌다.
휘리릭!
비도는 모두 일정한 속도가 아닌 제각각의 속도로 뻗어갔다. 마치 살아있는 벌들 같았다.
“엇!”
송소걸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비도들을 피해 다급히 뒤로 몸을 날렸다.
파파파팟!
송소걸이 있던 자리에 몇 개의 비도가 강하게 꽂혔다. 그리고 복면인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땅에 박혔던 비도가 뽑혀서 다시 공격해갔다.
“이기어비?”
송소걸이 깜짝 놀라하며 허리춤의 검을 뽑기 위해 손을 가져갔다.
‘아… 검을 놓고 왔네.’
검이 없다는 사실에 잠깐 당황하는 사이, 비도 하나가 송소걸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윽.”
송소걸이 경신법을 이용하며 부지런히 비도를 피했지만 끈질기고 절묘하게 쫓아오는 비도를 완벽하게 피할 수 없었다.
급소는 어떻게든 피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몸에 상처가 늘어갔다.
“알려진 것하고는 다르군.”
복면인이 처음으로 말을 했다.
“누구십니까? 이기어비까지 사용하고 실력이 상당하십니다?”
송소걸은 복면인과 대화를 하면서 시간을 벌려고 했다.
복면인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시간을 끌면 누군가가 구해줄 것이라고 믿나? 내가 그렇게 허술했을 것 같나?”
복면인의 말에 송소걸의 표정이 굳어졌다.
단순한 암살자라고 하기에는 가진 실력이 뛰어난 자였다.
게다가 멀리서 울리는 비명소리와 어두운 밤을 밝히는 불길. 취기에 제 몸 가누기도 힘든 자신의 몸.
송소걸은 심각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어버렸다.
“아~ 소희야 뭐하는 거냐. 언제부터 이것저것 재고 살았다고.”
“뭐?”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송소걸을 보면서 복면인이 인상을 썼다.
“그 무슨 개소리냐? 이젠 죽어라!”
복면인은 빨리 송소걸을 죽이고 소교주를 찾아가려 했다.
복면인의 몸에서 마기가 넘실거렸다.
“후우~ 역시 마교였나? 하긴,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이런 짓을 할 세력이라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
송소걸은 말을 하면서 달을 올려다봤다.
“좋은 날이다. 쩝.”
갑자기 송소걸의 옷이 뜯기듯 공중으로 증발했다.
투둑. 투둑. 투두둑!
한순간에 발생한 막강한 내기에 옷들이 찢어진 것이다.
복면인은 마기를 끌어 올리다가 송소걸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송소걸의 몸에서 상상도 못 할 기운이 자라나고 있었다.
송소걸의 상의는 찢어져서 날아가고 몸에 딱 맞는 얇은 갑주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송소걸의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올랐다.
“…….”
복면인의 놀란 눈동자에 송소걸의 차가운 미소가 비추었다.
“본 모습이 얼마 만인지…… 이 역용술은 효과가 확실한 만큼 그 내공의 소모가 엄청나단 말이야.”
송소걸의 목소리가 여인처럼 얇아졌다.
복면인은 한 사람이 떠올랐다.
“천면수라와는 무슨 관계지?”
송소걸은 오랜만에 듣는 이름에 감상에 빠졌다.
“아빠야.”
복면인은 침음했다.
천면수라는 별호와는 다르게 마교인이 아니었다. 천 가지의 얼굴이라는 별호처럼 역용술의 달인이었다.
이 사람의 진정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었을 뿐더러 그 가진 내공과 무공이 어찌나 뛰어난지 잡거나 죽일 수도 없었다. 그리고 수라는 손속이 잔인하여 붙여진 별호였다.
마교에서도 천면수라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었었다. 보물이 털리는 것은 기본이고 중요한 기밀도 눈 뜨고 코 베이듯 털렸었다.
천면수라가 마교의 간부로 역용을 했기에 부하들은 억울할 따름이었다. 그만큼 역용술만큼은 희대의 천재였다.
그런데 불현듯 천면수라가 무림에서 사라졌다. 당연히 천면수라의 본 얼굴을 아는 사람이 없으니 찾을 방법도 없었다.
한 가지 의구점은 천면수라가 사라지고 하오문이 급속하게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증거가 없어 혹시나 하는 추론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목숨을 걸어야겠군.”
복면인은 말을 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이미 죽을 생각으로 왔는데 아직도 목숨을 운운하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워졌다.
소교주의 귀환을 강제하기 위해 온 자신들이었다. 중요한 작전을 실패한 죄로 죽음을 기다리던 자신들에게 내려진 마지막 명이었다.
거부 따윈 있을 수도 없었다. 그저 마도천하의 비료가 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복면인의 눈이 더욱 차갑게 변했다.
송소걸은 오랜만에 온몸 가득 넘치는 기운을 만끽했다. 그동안 역용술을 유지하느라 제한되고 소모됐던 내기 때문에 답답한 움직임 일관이었었다.
“호호호~ 좋은 날이야~.”
송소걸, 아니 송소희는 기분 좋은 듯 웃으면서 몸을 날렸다.
탓.
작은 발 구름 소리와 함께 송소희의 몸이 사라졌다.
복면인은 송소희를 보지도 않고 비도들을 사방으로 날렸다.
아까보다 더 늘어난 비도의 숫자에 온 세상이 비도로 가득한 느낌이었다.
탱탱탱!
비도를 쳐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복면인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쉭!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렸다.
“어림없다!”
송소희가 공중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면을 발로 찼다. 그리고 뒤로 몸을 회전하면서 땅에 착지했다.
복면인은 송소희가 땅에 착지하자마자 날려 보낸 돌맹이들을 보았다.
콰앙!
복면인이 마기를 극성으로 끌어올리자 돌맹이들이 가루로 변해 떨어졌다.
복면인이 땅에 떨어진 비도들을 손을 휘둘러 조종했다.
복면인은 승부수를 빠르게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막대한 내공으로도 유명한 천면수라다. 눈앞의 여인이 그의 딸이라면 오래 끌수록 좋을 것이 없었다.
송소희는 비도를 날리는 식의 똑같은 공격을 하는 복면인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이깟 비도쯤이야 자신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송소희는 가볍게 양손으로 비도들을 쳐내었다.
그런데 비도를 쳐내는 순간 눈을 화등잔만 하게 만드는 기운이 느껴졌다.
복면인이 무언가를 먹었는데 마기가 몇 곱절 증가했기 때문이다.
“잠폭단?”
복면인은 대답하지 않고 송소희에게 몸을 날렸다.
송소희는 비룡각으로 복면인을 올려 찼다.
복면인은 송소희의 발을 가볍게 손으로 눌러 막았다.
송소희는 자신의 내공 가득한 비룡각을 막는 복면인에게 놀라며 회룡각으로 돌려차기를 했다.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발차기는 복면인과 합을 맞춘 듯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연결됐다.
복면인은 가볍게 팔을 들어 송소희의 발차기를 막았다. 그냥 힘으로 막았다. 온몸이 터질 듯했는데,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송소희는 막힌 회룡각을 디딤대 삼아 몸을 더 회전시켰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복면인보다 더 위로 몸이 올라갔다.
송소희는 공중에서 빠르게 한 바퀴 회전하더니 임룡각(臨龍脚)으로 내려찍었다.
콰직!
송소희의 내려찍기를 막은 복면인의 팔뼈에 금이 갔다.
“…….”
복면인은 자신의 막대한 호신강기를 뚫는 송소희의 내공에 기가 찼다.
송소희는 기세를 잃지 않고 공중에서 한 번 더 몸을 회전시키곤 다시금 임룡각을 펼쳤다.
복면인은 그 공격을 경시하지 못하고 송소희의 발을 향해 검을 들이댔다.
아무리 내공이 고강하더라도 내기가 주입된 검에 발을 들이밀진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복면인의 생각과는 다르게 송소희는 발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내리찍었다.
까앙!
발과 검이 부딪혔는데 쇳소리가 크게 진동했다. 복면인이 자신의 검을 보자 금이 가서 깨지기 직전이었다.
‘이러니 천면수라를 쉬이 잡을 수가 없었겠지. 어린 자식일 뿐임에도 이런 무식한 내공이라니.’
복면인은 검에 더욱 내공을 밀어 넣었다.
힘으로 누르는 송소희에게 복면인도 힘으로 맞선 것이다.
금이 간 상태에서 과도한 내공이 주입되자 복면인의 검은 결국 깨져서 비산했다.
하지만 복면인이 내공을 방출하듯 의도성을 가졌기에 검 조각들이 모두 송소희에게 쏘아졌다.
송소희는 양손을 뻗었다. 그리고 기묘한 손과 팔의 움직임을 보였다.
송소희의 손에서 막대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천면수라의 절초 중 하나인 금강룡(金剛龍)이었다.
절대적 방어를 자랑하는 초식이었다. 천면수라가 한참 활동할 때엔 소림의 금강불괴와 비교해서 누가 뛰어나네 마네 하는 사람들의 논쟁이 흥했었다.
크긋! 크그그그그---!
무수히 많은 검 조각들이 송소희의 금강룡에 막혔다.
복면인은 담담한 눈으로 하나의 단약을 입안에 넣어 삼켰다.
송소희는 금강룡을 펼치며 그 모습을 보았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잠폭단을 먹고도 자신의 내공에 미치지 못하는 복면인이 무엇을 더 한다고 해서 위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복면인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송소희에게 몸을 날렸다.
비도를 날리거나 별도의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닌, 순수한 육탄돌격이었다.
그 모습을 송소희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여전히 펼치고 있는 금강룡을 향해 그대로 온다면 아무리 튼튼한 무림인의 몸이라도 성치 못할 터였다.
“크악!”
아니나 다를까 금강룡과 부딪힌 복면인이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온몸에서 마기가 넘실댔다.
그런 복면인의 몸이 갑자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송소희는 당황했다. 마치 복면인의 몸이 폭발할 것 같았다.
“어, 어?!”
퍼엉!
생각을 다듬을 새도 없이 점점 부풀던 복면인의 몸이 굉음을 내며 결국 폭발했다.
“꺄악!”
복면인의 몸이 터지면서 송소희의 금강룡이 깨졌다. 그와 함께 복면인의 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연기가 폭발과 함께 빠르게 퍼져갔다.
송소희는 다급히 숨을 참았으나 이미 크게 들이마신 연기 때문인지 온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몸이 사라져 굴러 떨어지는 복면인의 얼굴에서 비웃는 듯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송소희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연기가 가득한 자리에서 몸을 빼내었으나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몸에서 체력뿐만 아니라 내공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런저런 내기의 다룸을 해 보았으나 빠져나가는 내공을 막을 수가 없었다.
털썩.
송소희는 무릎을 꿇었다.
온몸이 떨려왔다. 충만했던 내공이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온몸에 상상을 초월하는 무기력함이 몰려왔다.
송소희는 눈물을 흘리면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허리를 펴고 있을 기력조차 없어졌다.
결국 팔에도 힘이 빠져서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송소희의 귀에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 *
천애랑은 고 노와 함께 적당한 공토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천애랑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는가?”
고 노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기운이 안 느껴지십니까?”
“어떤…?”
고 노는 기감을 확장시키는 것에 집중했다.
“어?!”
그제야 무언가를 느끼고 고 노가 깜짝 놀랐다. 이에 천애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기 맞지요?”
고 노가 당황한 표정으로 천애랑을 보았다.
“그런 것 같네만……”
고 노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천애랑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뭔가 일이 잘 못 됐습니다. 마기가 병영 쪽에서 나올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지당한 말이네.”
“서둘러 가보죠. 느낌이 좋지 않아요.”
“그럽세.”
천애랑은 즉시 축지법을 사용해서 병영으로 내달렸다. 고 노도 천애랑의 뒤를 따라서 경공술을 사용했다.
불안감이 엄습한 천애랑이 고 노를 보지 않고 말했다.
“느낌이 좋지 않아 먼저 갑니다!”
퍼엉---!
작게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천애랑의 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속도라니!’
거침없이 앞서가는 천애랑의 속도에 고 노가 깜짝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