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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51화 (51/200)

기공술사 51화

“크하하하! 밖에 누구 없냐?!”

주원장의 고함소리에 병사 하나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가서 세숫대야 세 개만 가져와라.”

병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예?”

“잔말 말고 가!”

“옙!”

주원장의 채근에 병사가 금세 너른 세숫대야 세 개를 가져왔다.

그 순간부터 찬호, 송소걸, 주원장의 승자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많은 술병이 있었지만 세숫대야에 마시기 시작한 세 명 때문에 금방 동이 나기 시작했다.

“술은 제가 가문에 말하고 오겠습니다.”

담대혁이 황당한 웃음을 지으면서 막사 밖으로 나갔다.

천애랑은 이 셋을 보자니 방금까지 싸운 이들이 맞긴 한 건지, 술에 원수를 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천애랑은 고 노와 눈이 마주쳤다.

둘은 어떠한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뜻이 맞은 듯 조용히 일어나 막사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흘렀는지 막사 위로 달이 떠올라 있었다.

천애랑과 고 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걷기 시작했다. 꽤나 걸어 가장 외곽에 위치한 망루에 도착했다.

고 노가 경신법을 사용해 망루에 올라갔다. 천애랑도 그 뒤를 따라 가볍게 망루 위로 올라섰다.

“엇! 태 스승님을 뵙습니다.”

망루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가 고 노인을 보고는 다급히 인사를 했다.

“그래, 수고가 많네. 달빛이 너무나도 좋아 망루를 좀 이용코자 하는데 상관없겠지?”

“예?”

“뭐 솔직히 자네가 경계서는 것보다 내 기감이 더 뛰어날 테니 문제없을 것이네.”

“아! 넵! 알겠습니다.”

병사는 고 노의 말에 납득했다. 그는 고 노와 천애랑에게 인사를 하고는 망루를 내려갔다.

“병사가 고 노 보고 스승님이라고 하네요?”

천애랑의 물음에 고 노가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이들의 무공들을 조금씩 손봐주고 있기 때문이라네.”

“이 많은 병사들을요?”

천애랑이 다소 놀란 눈을 했다. 소수의 정예군을 가르치는 거라면 모르나 저런 일반 병사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던히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일 터였다.

“어디 변변한 무공 하나 배우지 못하고 창을 잡은 이들이니까. 그냥 두면 무조건 죽을 이들이네.”

홍건적의 일반 병사들은 피폐해진 황실의 정치에 견디다 못해 합류한 일반 백성들이 주를 이루었다.

평생 농기구를 제외하곤 날붙이를 잡아본 적 없는 이들이기에 고  노의 가르침은 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천애랑은 고 노가 달리 보였다.

고 노가 망루 바닥에 대충 앉았다. 천애랑도 고노를 따라 털썩 자리에 앉았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의 뒤춤에서 술병 하나씩을 꺼내었다.

“응? 자네도 챙겼는가?”

“고 노도 챙겼네요.”

고 노와 천애랑이 마주 웃었다.

“으하하하. 이것 참 마음이 통했나 보구만.”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그 셋이 하도 시끄럽게 술을 마셔서요.”

고 노는 피식 웃고는 술병째로 술을 마셨다. 그리곤 갑자기 시를 읊었다.

오락가락 꾀꼬리는

암수 서로 즐거운데

외로울사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외로움이 가득 느껴집니다.”

천애랑의 말에 고 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서 그리움이 진득하게 느껴졌다.

“유리왕께서 지으신 시라네.”

“고구려의 왕입니까?”

천애랑의 짐작에 고 노가 답했다.

“맞네.”

고 노가 쓸쓸히 달을 올려다봤다. 그 모습에 천애랑이 질문을 했다.

“그러고 보니 고 노는 고구려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맞네. 자네, 백두산에서 살았다지?”

“예.”

“백두산이 고구려의 영토였다네. 알고 있는가?”

천애랑이 고개를 갸웃했다.

“들은 적은 있습니다. 다만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렇구만.”

고 노가 쉽게 수긍하고선 술을 들이켰다.

“그런데 어찌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습니까?”

천애랑의 말을 들은 고 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말하시기 곤란하면 안 하셔도 됩니다.”

고 노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이 나이 먹어서 무슨 큰 비밀을 가지고 가겠는가.”

고 노는 말을 하면서 술을 마셨는데 금방 다 마셔버렸는지 술병을 입에 털고 있었다.

천애랑은 그런 고 노를 보면서 조용히 자신의 술병을 건넸다. 고 노가 천애랑이 건넨 술병을 보더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늙은이가 자네 술까지 뺏어 마시는구만.”

“별말씀입니다. 맘껏 마시세요. 필요하면 금방 다녀오죠 뭐.”

고 노는 고국의 영토였던 곳의 사람을 만나서 그런지 괜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알다시피 난 조의선인이네.”

“예, 고구려의 특수 무사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고 노가 의외란 눈으로 천애랑을 쳐다봤다.

“모두들 그냥 고구려의 무사들이라고만 알고 있는데, 어떻게 특수임무를 한다는 것을 아는가?”

“할아버지께서 말씀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고 노가 반색을 하며 말을 했다.

“맞네. 고구려의 특수 임무를 하는 무사들이었다네. 아! 물론 모든 조의선인이 그런 것은 아니라네.”

고 노는 술을 홀짝이고 말을 이었다.

“물론, 나는 고국이 망하는 것을 본 세대는 아니었지. 망국의 고통은 내 선조들께서 짊어지셨지.”

“중원에서 태어나신 겁니까?”

고 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선조께서는 고구려의 특수 임무를 수행했다네. 백두산 자락부터 북경까지 이어지는 비밀통로 개척 작업이었지.”

천애랑은 깜짝 놀랐다. 왠지 아는 통로 같았기 때문이다.

고 노의 말이 이어졌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나의 고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었다고 하네. 그래서 고구려는 당나라에 직접적인 큰 타격을 주어 상황을 극 반전시킬 계획을 세웠다네.”

“그게 비밀통로입니까?”

고노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 지대를 이용한 동굴부터 부분적 심해동굴 등 어떻게든 북경으로 많은 병사들을 침투하여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 것이지. 황제를 암살함으로써.”

천애랑은 고 노가 말한 동굴이 드라쿠와 싸운 후 지나간 동굴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천애랑은 눈을 빛냈다. 우연히 경험했던 동굴의 비사를 듣는 것 같아 신기했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실패했다네. 내부에 배신자가 있었던 것이지.”

“이런…….”

고 노는 자신의 말에 감정이입을 하며 경청하는 천애랑을 보고 옅게 웃었다.

“그래서 결국 고구려는 패망하고 비밀통로를 만들어 암살임무를 수행하던 조의선인들이 도망치는 상황이 발생했다네.”

“아…… 그분들 중 선조가 계시는군요?”

“맞네. 그리고 자네가 백두산의 기공가 후손이라는 것에 반가운 이유가 있다네.”

“예?”

고 노가 본인의 허리춤에 있는 검을 보았다. 천애랑도 그 시선을 따라갔다.

“우리 조의선인들 중 검에 조예가 깊은 분들끼리 연구하고 배우고 가르친 문파가 있었다네.”

“문파요?”

“백두검파라고 불렸다네. 검에 관심이 많았던 분들이었지. 고구려제일검은 항상 백두검파의 일원이었네. 대부분 문주였지.”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게 왜……?”

천애랑의 고개가 갸웃했다.

“백두검파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백두산에 위치했었다네.”

“예?”

“자네 기공가와 교류가 있었었단 말이지.”

“아…….”

천애랑은 그간 알지 못했던 정보에 놀란 눈을 했다.

고 노는 그런 천애랑을 보고는 말을 했다.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나보군.”

“예. 제가 아주 어릴 때 가문이 사라져서…….”

고 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두검파가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라네. 하지만 기공가와의 교류로 검술의 경지를 더욱 개척했다 들었네. 그 후로 백두검파가 고구려 제일문이 되었지.”

“아…….”

“그래, 이제 자네도 예상하겠지만 나의 선조께서는 백두검파의 일원이셨고, 그게 세대를 거듭하면서 무공이 많이 훼손되었다네. 증조할아버지께서 무공에 소질이 없으셨거든.”

고 노는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달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내 평생을 바쳐 최대한 백두검파의 검술을 복원하였지만 기공가와의 교류로 얻었다던 진정한 오의는 비어있는 상태라네. 오히려 궁술은 문서로 남아 온전히 전해졌기에 궁극을 이루었지만 말일세.”

천애랑은 고 노가 왜 개인적인 일들을 모두 이야기 해주었는지 알겠다.

천애랑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 노의 시선이 천애랑을 쫓았다.

천애랑은 그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보여드리지요.”

천애랑의 말에 고노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고노 자신이 한 말은 결국 천애랑에게 기공가의 오의를 보여줄 수 있느냐고, 자신의 무공에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떼쓴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무정한 무림에서 가진 것의 3할은 숨기라는 말이 있기도 하고, 파훼법이 나올 수 있기에 실전이 아닌 곳에서 비전 오의를 보이는 무림인은 없었다.

그러나 천애랑이 흔쾌히 보여주겠다고 하니 고노는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런 고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자신의 평생소원인 고국의 제일 검술의 복원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고구려 제일검술이었다던 백두검파의 진정한 오의를 경험할 수만 있다면 원이 없을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조용한 터가 없겠습니까?”

천애랑이 일어서자 고 노도 황급히 일어서며 답했다.

“근처에 호수가 있다네.”

“그럼 그리로 가지요.”

“진정 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겐가? 왜?”

고 노의 목소리가 떨렸다. 천애랑이 미소를 지었다.

“우선 저를 구해준 것과 이야기 값이라고 해두죠. 고향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해도 좋구요.”

“흠…… 무림인이 자신의 오의를 보여주는 것은 죽음을 가까이 하는 행동일 텐데.”

고 노가 믿기지 않는 사실을 확신하고 싶은 듯 말했다.

천애랑이 피식 웃었다.

“죽일 자신 있습니까?”

고 노는 천애랑의 자신만만한 눈빛을 보며 말문이 막혔다.

천애랑은 고 노의 눈을 흔들림 없이 쳐다보면서 말했다.

“압니다. 무림에서 3할의 힘을 숨기라고요?”

“그렇지…….”

고 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애랑이 강조하듯 물었다.

“그럼 천마는요?”

“응?”

고노의 고개가 모로 누었다.

“세상 사람들이 천마의 무공을 모릅니까? 제가 예상하기로는 천마의 속곳 색깔까지 연구했을 것 같은데요?”

고 노는 말문이 닫혔다.

“그렇긴 하다만…….”

“천마는 자신의 모든 것이 밝혀졌는데도 어찌 살아있을까요? 그만큼 적이 많은 인물도 드물 텐데 말이죠.”

고 노는 천애랑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는 침을 삼켰다. 실로 오만하고 패기로운 발언이었다.

하지만 고 노가 바라본 천애랑의 눈빛은 자만심이 아닌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허허.”

고 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천애랑이 씨익 입꼬리를 들어올렸다.

“예.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절대적인 무를 얻으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도 늙었군. 그리고 자네는 젊어. 부러울 따름이야.”

천애랑이 고노의 눈을 보면서 웃었다.

“천마를 죽이려면 꼼수 따위로는 안 되니까요.”

“그런 엄청난 말을 웃으면서 하는구만. 허허.”

고 노가 말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저에게 자신감이 생겼을 뿐입니다.”

“좋군. 그렇다면 내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배움을 청하겠네. 갑세.”

고 노와 천애랑의 신형이 표홀하게 망루를 벗어나 빠르게 숲으로 멀어져갔다.

*  *  *

그 시각 천애랑 일행이 있는 홍건적 병영으로 어두운 인영들이 들어왔다.

온통 흑색으로 일관된 이들의 복장은 어두움 속에 동화되어 있었다.

특히나 이들은 극도의 은신술에 특화됐기에 초절정 고수들도 쉬이 알아차리기 어려운 존재감을 보이고 있었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다만 확실하게 처리한다.”

말을 하는 이의 목소리에는 비장함이 묻어났다.

“현재 진탕 술을 마시고 있다는 첩보가 있었다. 표적이 분리되는 순간 나는 표적을 죽이러 간다. 그리고 나머지들은 계획대로 주변을 학살하라.”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지만 말하는 이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마기를 마음껏 방출해. 우리가 했다는 흔적이 확실해야 하니 확실하게 소란을 일으키도록. 우리의 목숨이 여기서 끝나더라도 철저하게 임무를 완수한다.”

마찬가지로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병영 안에 암운(暗雲)이 내려앉았다.

*  *  *

“으잉? 어딜 가는 겐가? 아직 술이 남았는데 말이야. 으흐흐.”

주원장이 한껏 취한 어투로 송소걸을 쳐다봤다.

“뒷간 좀 갑니다.”

송소걸이 휘청거리면서 손을 저었다.

담대혁은 살아있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막사 구석에 쓰러져 자고 있었다.

그리고 찬호는 이미 술에 인사불성이 되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으어… 괴물들…….”

찬호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송소걸은 휘청거리면서 막사를 나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휘영청 떠있는 달을 보았다.

“크으…… 좋은 날이다~.”

송소걸이 막사의 구석으로 걸어갔다.

“저 달이 이태백이 놀던 달이려나~.”

꽃 사이에서 술 한 병 놓고

아는 이 아무도 없이 홀로 마시다가

잔을 들어 밝은 달을 청해오고

그림자를 마주하니 세 사람이 되었네.

달은 본디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는 공연히 나만 따라하지만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

모름지기 이 봄을 즐기리.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이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는 어지러이 움직이는데

깨어 있을 때는 함께 즐기고 기뻐하지만

취한 후에는 각각 흩어지겠지.

시름없는 무정한 교류 영원히 맺어

아득한 은하수 너머에서 서로 기약하세.

달을 보며 흥에 취한 송소걸이 이태백의 시를 읊었다.

“아~ 좋다! 항상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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