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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50화 (50/200)

기공술사 50화

주원장을 호위하듯 주위를 지키던 병사들이 신음을 흘렸다.

“으윽…….”

“끄으윽.”

천애랑이 한걸음을 더 걸었다.

“크헉!”

“읍!”

천애랑의 정면 방향에 있던 병사들이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몸을 짓누르는 압력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천애랑의 뒤쪽에 있던 담대혁과 찬호, 송소걸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진정한 천마군림보와 비슷하지 않은가?’

찬호는 속으로 감탄했다. 천마군림보는 강력한 진각으로도 유명했지만 진정한 오의는 압도적인 힘으로 눈앞의 모든 것을 무릎 꿇려 지배하는 것에 있었다.

찬호는 천애랑을 지그시 바라봤다. 참으로 든든한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찬호에게 있어 천애랑은 항상 긍정적이고 편안한 친구였다.

천애랑과의 만남은 찬호의 일상을 바꾸게 된 큰 계기였다.

잔혹하고 외로웠던 지난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듯 천애랑과의 만남 이후엔 행복한 시간들만 가득했었다.

내공을 잃었다며 덤덤히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그간 자신이 봐오고 생각했던 어떤 사람의 틀이 깨지는 느낌도 받았었다.

물론 깨달음을 통해 천애랑이 내공을 회복하고, 그 후 보여준 무위는 놀랍긴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친구이자 의형제인 천애랑의 무위가 달라졌다고 한들 기존의 관계가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천애랑의 태도 또한 일관되었기에 더욱 그랬다. 참으로 믿을만한 친구였다.

그러한 신뢰감 때문에 자신의 치명적인 비밀마저 솔직하게 공유하고 싶은 적이 적지 않았다.

최근엔 진심으로 자신의 소속을 벗어버리고 언제나 의형제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이유는 이 행복과 평화가 깨지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본교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그간의 평화를 방해해왔다.

당장은 돌려보냈지만 자신에게 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본교의 말을 무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피를 배반할 수 없다는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의 이기심에 소중한 형제들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컸다.

찬호는 착잡한 마음을 머리를 흔들어 털어냈다. 그리고 자신들을 지키듯 앞장선 천애랑의 등을 보았다.

그때 백발의 노인이 천애랑의 앞을 가로막으며 천애랑의 기운을 저지시켰다.

“그만하시게나.”

천애랑은 무심한 눈으로 노인을 쳐다봤다.

“사과하시오.”

쩌저적!

천애랑과 노인의 사이에 무형의 기운이 엉키면서 땅이 갈라졌다.

노인은 너무나도 고강한 내공을 가진 천애랑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천애랑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천애랑이 한 걸음을 더 내딛었다.

쩌저저적---!

“흡!”

백발의 노인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화운이 노인의 옆으로 다가와서 천애랑에게 머리를 숙였다.

“그만하시오. 내 대신 사과하겠소.”

화운의 갑작스런 행동에 뒤에서 지켜보던 주원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언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갔기에 마음이 언짢았다.

그저 도발 한번 해서 대판 싸우고 술 한잔하고 친해지려고 했는데 무언가가 상당히 꼬여버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나서서 스승과 함께 사태를 진정시키려고 했는데 화운이 먼저 나서버린 것이다.

천애랑은 자신의 앞에서 담담히 고개를 숙인 자를 보았다.

“그댄 이름이 뭐지?”

화운은 고개를 들고서 천애랑을 바라봤다.

“화운(花雲)이오.”

천애랑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빛은 더욱 사나워졌다.

“죽기 싫으면 나오라. 난 주원장의 사과를 들어야겠다.”

스릉.

천애랑의 말을 들은 화운은 검을 뽑았다.

“말을 조심하시오.”

“말을 조심하라?”

쾅!

천애랑이 강하게 진각을 밟았다.

화운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미증유의 힘을 느끼며 기겁했다.

화운은 다가오는 기운을 향해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화운의 검에서 검기가 날아갔다.

화운의 검기에도 천애랑의 기운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대하게 뻗어갔다.

화운은 이 기운을 그대로 몸으로 받는다면 아무리 호신강기를 두른다 한들 막대한 내상을 입을 거라고 느꼈다.

이때 주원장이 허리 뒤춤에 메어놓은 넓은 도를 크게 뽑아내며 화운의 앞을 막았다. 이와 동시에 도를 땅에 꽂았다.

콰앙!

주원장의 도강이 천애랑의 기운과 부딪히면서 땅이 폭발하듯 거꾸로 솟아났다.

모든 이들의 시선이 천애랑과 주원장. 그리고 화운에게 가 있을 때 찬호는 노인을 보고 있었다.

살기를 머금은 것은 아니었으나 노련한 살수처럼 기회를 엿보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천애랑이 진각을 밟아 기운을 쏘아내자마자 노인의 신형이 사라졌다.

찬호는 경신법을 사용하여 천애랑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몸을 기이하게 최대한 틀었다.

끼기긱---!

찬호의 몸에서 과부화가 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정면의 상대가 봤을 때 등이 다 보일정도로 온몸의 근육을 다 뒤틀었다. 그리고 발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뒤틀림을 해방했다.

삐에에에------!

마치 효시(嚆矢)처럼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까앙!

찬호의 검과 노인의 검이 허공에서 강하게 충돌했다.

모든 무림인들은 기감이 발달한다. 특히나 경지가 높을수록 그 기감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자고 있어도 조그마한 기척에 반응한다던지 의식하고 있지 않아도 뒤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본능적으로 피한다던지 말이다.

하지만 그런 무인들도 기감이 순간적으로 무뎌지는 때가 있다. 바로 막대한 내공을 사용할 때였다.

그래서 노인은 천애랑이 진각을 밟는 순간 막대한 기의 움직임을 느꼈고 그때를 노려 몸을 날린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쾌검에 손이 아려왔다.

쾌검에 별달리 강대한 내기가 담겨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엄청난 속도는 곧 엄청난 힘이 되어 강렬하게 전달되어왔다.

“허.”

노인이 황당함에 자신의 검을 살펴봤다.

강기와 가까울 정도의 내기를 검에 둘렀음에도 검의 이가 많이 빠져 있었다.

천애랑은 주원장과의 내기 격돌 상황에서도 찬호와 노인의 충돌을 지켜봤다.

천애랑의 머릿속에 찬호의 움직임이 사진처럼 천천히 인식되어왔다.

몸을 최대한 틀어서 강력한 속도와 힘을 내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 무엇보다 검과 검이 부딪히는 순간 찬호의 검에서 내기가 번쩍이다 사라졌다.

일전에도 봤던 상승의 묘리였는데 그새 더욱 강하고 섬세해진 것 같았다.

잠시 소강상태가 된 틈에 주원장이 도를 뽑으면서 머리를 숙였다.

“미안하네. 그저 자네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어쭙잖은 도발을 했었네. 그런데 그게 너무 과했던 모양이야. 이렇게 머리 숙여 사과하겠네.”

주원장의 뒤에 있던 화운이 화들짝 놀라며 인상을 썼다.

“대장님! 어찌 머리를 숙이십니까. 차라리 제 목으로 사과를 하십시오!”

주원장이 손을 들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의 실책으로 부하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내가 참지 못해. 우리도 형제들이라는 인식으로 시작한 것 아니던가. 나 같아도 형제를 모욕한다면 참기 힘들었을 것이야.”

“으음…….”

“그리고 부하의 목으로 책임을 회피하느니 죽음을 택하겠네. 그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야.”

화운은 입을 다물었다. 주원장의 저런 면이 자신이 목숨을 바쳐 따르는 이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담대혁도 그런 주원장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자신도 저런 생각에 동해 따르게 됐었다. 하지만 군사라는 놈이 이 사태를 예방하지 못하고 그 해결책도 마련하지 못했음에 주원장과 천애랑 모두에게 죄스러웠다.

주원장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천애랑이 여전히 무표정하게 기운을 거두지 않자 주원장이 다시 머리를 숙였다.

“기공가의 형제들이여 내 그대들에게도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화운은 거대한 부대의 수장이 쉽게 머리를 숙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말릴 도리가 없었다.

그저 주원장을 따라 머리를 숙였다. 어찌 수장이 머리를 숙이는데 부하의 머리가 뻣뻣할 수 있겠는가.

주원장이 찬호와 송소걸에게도 사과를 하자 천애랑이 찬호를 쳐다봤다.

천애랑의 눈빛을 읽은 찬호는 납검을 하면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살짝 미소를 짓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너 알아서 해라’라는 뜻이었다.

천애랑은 이어서 송소걸을 쳐다봤다.

송소걸은 자신이 욕을 먹었다는 것에 천애랑이 분노해 준 것이 너무나도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광산에서 구출작전을 감행할 때도 짐작했지만 천애랑은 자신의 사람이다 싶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게 좋았다. 그래서 그냥 싱글벙글 웃었다.

두 형제의 의중을 확인하고서야 천애랑은 기운을 거뒀다.

전 방위적으로 공기를 무겁게 만들던 천애랑의 기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노인은 그러한 천애랑을 보면서 기가 찼다.

내공을 순식간에 끌어올리는 것도 상승의 경지이지만 그보다 끌어올린 내공을 해소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주화입마에 걸릴 수도 있는 부분이기에 모든 무인들은 어떻게든 내공을 끌어올렸으면 적절한 순서를 따라서 내공을 가라앉힌다.

그래서 소림사나 대부분의 무인들은 손을 펴서 들숨과 함께 명치까지 끌어올리고 날숨과 함께 단전으로 손바닥을 내린다.

이게 아니더라도 저마다의 방법을 갖는다. 그런 행위를 통해 의도적으로 내기를 갈무리 하는 것이다. 그래야 끌어올린 내공이 몸에 무리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도 주원장의 옆으로 걸어오더니 포권을 가볍게 취했다.

보통은 무림인들 간 포권으로 인사를 하긴 하지만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에게 먼저 포권을 취해 인사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도 사과를 하지. 그리고 오늘 개안(開眼)을 했네.”

천애랑은 잠시 노인을 두고 담대혁을 쳐다봤다.

담대혁은 미안함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천애랑은 담대혁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어 번 가볍게 두드렸다.

“너도 우리의 형제다. 어깨 펴라.”

형제들을 모두 챙긴 후에야 천애랑이 노인과 주원장에게 정중하게 마주 포권을 취했다.

“천애랑입니다.”

주원장은 천애랑에게서 추가적으로 무언가 분노를 했다거나 거대한 단체 수장의 머리를 숙이게 만들었으니 기분이 좋다거나 하는 감정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주원장이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이내 화통하게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하하하! 본인은 주원장일세. 내 나름의 직위와 명령에 익숙하다 보니 그런 나의 말투가 거슬리더라도 너그럽게 받아주면 좋겠네.”

천애랑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주원장의 뒤에 있던 화운은 검을 역수로 쥐고는 포권을 취했다.

“대장의 호위이자 임시 집행부장인 화운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인사에 천애랑의 의형제들 또한 인사를 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주원장 대장의 군사(軍師)이자 여기 세 분과 형제의 연을 맺은 담대혁입니다.”

“송소걸입니다.”

“찬호.”

찬호의 인사가 다소 짧았지만 화해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도중에 딴지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노인이 납검하면서 입을 열었다.

“조의선인 고 노인일세. 그냥 고노(老)라고 부르게.”

*  *  *

넓은 막사 안, 투박하게 만든 둥근 탁자 주위로 6명의 남자가 둘러앉았다.

“내가 한 잔씩 돌리겠네. 모두들 반갑네. 첫인상이 어찌 됐든 이 한잔 술에 호쾌하게 넘어가 주길 바라겠네.”

주원장이 직접 한 잔씩 술을 따라줬다.

“화운이라는 자는 어디 갔습니까?”

송소걸의 물음에 주원장이 고개를 저었다.

“함께 한 잔 하자고 했는데도 병사들 관리해야 한다면서 빠졌네. 그 놈 고집도 여간 쇠심줄이라 나도 잘 못 말린다네.”

“충직한 부하인 것 같습니다.”

천애랑은 주원장을 위해 목숨을 걸고 검을 뽑던 날카로운 눈매의 화운을 떠올렸다.

천애랑의 말에 주원장이 피식 웃었다.

“동네 친구라고 보면 되네. 어릴 적 내가 골목대장이었거든. 지금은 진짜 대장이 되었지만. 크하하!”

주원장이 큰 덩치를 들썩이며 껄껄댔다.

모두의 술잔이 가득 차자 주원장이 잔을 눈높이로 들었다. 그리고는 화끈하게 입에 털어 넣었다.

다른 이들도 주원장을 따라했다.

“크으! 내가 먹어본 술 중에 가장 독한 것 같다.”

찬호가 입가로 살짝 흐른 술을 닦으면서 인상을 썼다.

고노(高老)가 껄껄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분주라네. 이 술과 함께라면 두보도 절로 시를 읊는다고 했지.”

“찬호 형님은 저번에도 그러더니 술이 약하시네요?”

송소걸이 찬호를 놀리듯 말했다.

찬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호걸들은 다들 술을 잘 마신다고 했는데 찬호형님은 아무래도 호걸은 아닌가 봅니다.”

찬호의 눈썹이 연신 꿈틀거렸다.

찬호는 주원장의 앞에 있던 술병을 번개같이 낚아채서는 자신의 술잔에 따랐다. 그리고 송소걸의 잔에도 술을 채웠다.

찬호는 자신만만하게 송소걸을 쳐다보며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송소걸은 찬호가 자신을 도발하는 것을 보고 콧방귀를 꼈다.

어릴 적부터 덩치 큰 어른들을 술로 재패한 송소걸이다. 찬호의 행동이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송소걸은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채 입안에 술잔을 털었다.

갑자기 시작된 둘만의 경주에 천애랑은 고개를 저었다.

둘은 가끔씩 저랬다. 술만 마실 기회가 있으면 송소걸은 항상 도발하고 찬호는 항상 도발에 넘어가 술 경주가 시작된다.

술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내기 등 서로의 도발에 서로 넘어가 경쟁을 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그럴 때마다 과하다 싶으면 천애랑이 나서서 중재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찬호와 송소걸의 주량 경쟁을 바라보던 주원장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주원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찬호의 옆으로 의자를 끌고 갔다.

주원장은 의자를 던지다시피 내려놓고는 대충 앉았다.

“나도 끼지. 남자라면 술! 아니겠는가. 자네들의 패기가 나의 호승심을 자극하는구만.”

“아따~ 이 형님도 호걸이네. 어디 누가 살아남나 한 번 해봅시다. 내가 무공은 약해도 술로는 장비도 울게 만들 사람입니다.”

송소걸의 패기로운 말에 주원장이 식도가 다 보이게 웃었다.

“크하하하! 감히 내 앞에서 술을 논한단 말인가. 귀엽구만. 난 장비가 둘이어도 끄떡없다!”

찬호가 눈썹을 실룩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난 장비와 술로 비교되는 것이 수치인 사람이오. 이딴 개미 콧구멍 같은 잔가지고 되겠소?”

이들의 허세에 천애랑은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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