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공술사-49화 (49/200)

기공술사 49화

천애랑은 드디어 자신을 알아보는 백호를 보면서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백호와 정겹게 애정행각을 했던 다른 암컷 호랑이들을 쳐다봤다.

백호가 맞을 때 동물적 본능으로 자리를 피했던 세 호랑이들은 천애랑이 쳐다보자 흠칫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별다른 기운도 느껴지지 않던 인간이 무슨 산신이라도 되는 건지 이렇게 무지막지할까 싶었다.

천애랑은 세 호랑이들을 천천히 둘러보고는 담소연을 돌아봤다.

“혹, 가주님이 호랑이 가죽을 좋아할까?”

흠칫.

백호는 물론 세 호랑이들의 없는 땀구멍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듯했다. 괜히 혀가 촉촉해졌다.

“좋아하실걸요? 호랑이 가죽이 귀하니까요. 그보다 요새 몸이 예전 같지 않으시다는데 호랑이 고기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흠칫.

호랑이들은 무지막지한 남자보다 더 잔인한 여자를 노려봤다.

그 시선에 담소연이 움찔하자 천애랑이 호랑이들을 노려봤다. 호랑이들은 무서운 천애랑의 눈빛을 피해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옆을 보는 호랑이도 있었고 하늘을 보는 호랑이도 있었다. 한 호랑이는 본인의 발톱 때를 보고 있었다.

천애랑은 피식 웃었다.

“그래도 백호의 식구들 같은데 죽이거나.”

흠칫.

“가죽을 벗기거나.”

흠칫.

“고기를 가져간다거나.”

흠칫!

“하기에는 잔인하겠죠?”

천애랑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호랑이들이 잔뜩 몸을 낮추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럴 것 같네요.”

담소연은 애초에 천애랑이 장난치는 것을 느꼈기에 흔쾌히 대답한 거였지만 실제로 아버지에게 호랑이 가죽이나 고기를 드리면 좋아할 것 같긴 했다.

천애랑이 여전히 배를 뒤집고 누워있는 백호를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가워서 같이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잘 지내고 있을 줄은 몰랐네. 그렇지?”

천애랑은 마지막 질문의 방향을 세 호랑이들에게로 돌렸다.

천애랑의 시선을 받은 세 호랑이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태산이 영험하긴 한가 보네. 호랑이들이 사람 말을 다 알아듣네?”

“그러게요. 너무 귀여워요.”

흐음칫.

세 암컷 호랑이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살다 살다 이런 인간들은 처음이었다.

간혹 오래 산 영물 호랑이들 사이에서 산길을 넘는 인간들에게 떡 주면 살려준다고 하는 놀이가 유행했다고는 들었다.

이렇듯 자신들은 인간들보다 상위에 존재하고 고귀하며 공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배우고 자라왔다.

그런 자신들이 언제부터 귀엽다는 소리를 듣게 됐는지 통한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백호의 배를 쓰다듬던 천애랑의 손끝에서 푸른 기운이 일었다.

그 기운에 백호가 움찔거렸지만 자신의 영기와 닮은 맑은 기운이 느껴지자 가만히 있었다.

천애랑은 자신에게 있는 영기에 대자연의 기운을 듬뿍 묻혀 백호에게 선물로 주었다.

무인들처럼 축기가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백호가 보다 대자연의 기운을 잘 느끼고 건강함을 챙기는 데 도움이 되라는 응원이었다.

천애랑은 몸을 세웠다.

“호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이렇게 좋은 가정을 꾸리는 모습도 보기 좋고 말이야.”

자상한 천애랑의 말에 백호는 엎드린 자세를 취하더니 천애랑의 다리에 볼을 문질렀다.

“원래는 같이 갈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천애랑의 말에 백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몸을 바로 세웠다.

백호의 거대해진 몸집 덕분에 그 눈높이가 천애랑과 일치했다.

천애랑이 말했다.

“담가 알지?”

백호가 안다는 듯이 그르릉 거렸다.

“여기 살면서 담가를 부탁할게. 세상이 흉흉하니까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크헝!

백호가 맡겨만 두라는 듯이 크게 포효했다.

딱!

끄엉?!

천애랑에게 세게 꿀밤을 맞은 백호는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냄새나! 면전에다가 입 벌리고 뭐하자는 거냐?”

천애랑의 질타에 백호가 시무룩해하자 천애랑이 피식 웃으며 백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옆에서 보고 있던 담소연은 천애랑이 영물인 백호에게 자신의 가문을 부탁하자 너무나도 고마웠다.

천애랑은 백호에게서 뒤로 물러났다.

“백호야, 좋은 가족 꾸려라.”

“백호야~ 안녕. 귀여운 애들도 안녕~.”

담소연이 백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멀찌감치 보고 있는 세 호랑이들에게도 밝게 손을 흔들었다.

천애랑은 백호 때문에 시원섭섭해진 마음을 뒤로하고 담소연에게 손을 내밀었다. 천애랑의 내민 손을 보고 담소연이 피식 웃었다.

“이거, 습관 들겠어요.”

천애랑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담소연을 가볍게 안아들었다. 그리고 축지법으로 산길을 내려갔다.

떠나가는 두 사람의 뒤로 백호의 울음이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천애랑과 담소연이 서로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둥그런 얼굴형에 날카로운 눈빛, 굵고 거대한 몸집을 가진 이가 이동식 막사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그는 지겨운지 연신 하품을 했다.

그때 막사 문을 열고 차가운 눈매의 사내가 들어왔다.

“대장님. 그자들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부하, 화운의 보고에 주원장이 반색하며 기지개를 켰다.

“오, 드디어? 으으으!”

주원장이 일어나자 근육질의 거대한 덩치가 절로 위압감을 만들어냈다.

“어디쯤이라지?”

“곧 당도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마중을 나가자고.”

“예?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주원장의 입술이 얇게 비틀어졌다.

“큭큭, 아니야. 그동안 기다리느라고 얼마나 좀이 쑤셨는데 마중 정도야 무슨 문제겠어. 가지.”

주원장의 말에 화운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순순히 주원장의 곁으로 시립했다.

“화운, 자네도 기대되지 않아? 무려 기공가의 자손이야. 그 소문이 자자했던.”

차가운 눈매에 철저한 감정통제로 모든 것이 차갑게 느껴지는 화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딱딱한 화운의 반응에 주원장이 혀를 찼다.

“자넨, 무공실력은 좋은데 매사 심각해. 좀 웃는 것이 어때? 세상을 너무 재미없게 사는 거 아니야?”

주원장의 핀잔에 화운이 슬며시 옅은 미소를 지었다.

“재밌습니다. 대장님 옆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으니까요.”

이 정도도 웃는다고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주원장은 나름 만족하며 막사 문을 젖혔다.

“큭큭, 그래. 어디 한번 광산(光山)전투의 주인공들을 보러 가보자고. 겸사겸사 실력도 좀 보고 말이야.”

화운이 호전적인 주원장을 보며 잘게 고개를 흔들며 뒤따랐다.

*  *  *

천애랑이 진형을 둘러보며 말했다.

“생각보다 막사가 많지 않네?”

“전국 곳곳에서 황실군과의 전투가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가용 가능한 일부 병사들을 지원군으로 보내고 별동대만 남았습니다.”

담대혁이 답했다.

“그러면 주원장이라는 사람도 갔어?”

“아! 저기 오시네요.”

천애랑은 담대혁의 말에 시선을 돌렸다.

멀리서 상당한 덩치를 자랑하는 사람이 다가오고 있었다.

“반가워. 내 주원장이야.”

가까이 다가와 인사하는 주원장을 보며 찬호가 인상을 썼다.

“말이 짧군.”

찬호의 날카로운 반응에 담대혁이 당황했다.

“혀, 형님.”

척.

그때 화운이 날카로운 눈으로 사납게 찬호를 노려보며 검집에 손을 얹었다.

찬호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입가를 비틀었다.

“뭐하자는 거지?”

찬호는 근래 자신을 찾아왔던 복면인들과 서신 때문에 심기가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담대혁은 불안한 듯 쳐다봤고, 송소걸은 이게 웬 재미난 구경인가 싶은 표정이었다.

주원장이 화운을 밀치듯이 지나치며 앞으로 나섰다.

“이거, 이거…… 실망이구만.”

주원장은 턱을 치켜들며 일행들을 내려다봤다.

“생각보다 별거 없어.”

주원장은 매우 짜증이 난다는 듯이 인상을 쓰면서 계속 말을 했다.

“군사의 지인들이라기에 잔뜩 기대를 했더니 천애랑이라는 자를 제외하곤 다 쓰레기군. 어찌 이런 쓰레기들과 의형제를 맺고 다닐 생각을 하는 거지?”

주원장의 선을 넘는 언사에 찬호가 검을 뽑으려 했으나 천애랑의 말이 더 빨랐다.

“담 아우.”

건조한 천애랑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들렸다.

담대혁은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예, 형님.”

“죽여도 되나?”

천애랑은 무표정하게 주원장을 쳐다본 채로 담대혁의 대답을 기다렸다.

찬호와 송소걸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천애랑이 저 정도로 무표정한 표정을 짓는 걸 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저렇게 분노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담대혁의 등에 식은땀이 흐르며 몸이 잘게 떨려왔다.

“형님… 아무리 그래도…….”

담대혁은 난감한 듯 주원장을 쳐다봤다.

주원장의 기행을 아는 자신이기에 그가 왜 이들을 도발하는지 나름 짐작은 갔다. 하지만 지금은 주원장이 선을 넘었다는 느낌이 강했다.

천애랑이 얼마나 이들 형제들을 위하는지 모르는 주원장이 도발 소재로써 너무 가볍게 생각한 듯했다.

천애랑은 주원장을 무표정하게 쳐다봤다.

“사과해라.”

주원장은 천애랑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입꼬리가 비웃듯이 말아올려졌다.

“뭘?”

“다시 한 번 말한다. 내 형제들에게 사과해라.”

주원장은 피식 웃었다.

“도대체 뭘 사과하라는 거지?”

천애랑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대혁을 쳐다봤다.

“담 아우. 말릴 생각일랑 하지 마라.”

그리고는 바로 주원장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쪽 나무 뒤에 숨어있는 노인을 믿고 까부는 것인가? 아니면 주위에 있는 병사들을?”

파바바밧.

천애랑의 옷이 빠르게 펄럭였다.

스릉.

주원장의 옆에 있던 날카로운 눈매의 사내가 검을 뽑았다.

스릉. 스릉.

찬호와 송소걸도 덩달아 검을 뽑았다.

주원장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으며 도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파라라락!

갑자기 천애랑과 주원장 사이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나타났다.

“그만하거라.”

백발의 노인은 주원장과 천애랑을 향해 말했다.

주원장은 눈앞에 나타난 자신의 스승을 보았다.

“스승님.”

“진짜 큰일 날 것이다.”

스승의 말에 주원장은 깜짝 놀랐다.

광산(光山)전투의 주역인 천애랑과 찬호를 도발하여 진심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스승이 말린다. 그것도 주원장 본인을 위해서 말이다.

가진 무공실력이 뛰어나 항상 전투의 선봉에 서기를 좋아하는 호전적인 주원장이지만 진지한 스승의 만류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주원장이 도 손잡이에서 손을 떼며 허리를 펴자 천애랑이 비웃었다.

“뭘 멋대로 그만하자는 거지?”

백발의 노인이 천애랑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제자의 장난이 지나쳤을 뿐이네. 자네도 그만하게.”

“저자가 나의 형제들을 욕했는데 그만하라? 정당한 사과도 없이?”

백발의 노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적당히 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담대혁도 천애랑을 말렸다.

“예, 형님. 진정하시지요.”

천애랑은 담대혁을 스산하게 쳐다봤다. 너무나도 차가워 심장을 베일 것 같은 천애랑의 시선에 담대혁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담 아우.”

“예, 예…….”

“너는 형제의 맹세가 우습나?”

“예?”

담대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애랑이 재차 물었다.

“형제의 맹세가 우습냐고 물었다.”

“어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그런데 왜 형제가 수치를 당했는데 장난이라고 쉽게 넘어가자고 하는 거지?”

“…….”

담대혁은 대답을 찾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천애랑은 주원장을 향해 한걸음 내디뎠다. 간단한 한걸음이었지만 그것에 의해 발생하는 무게감이 엄청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