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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48화 (48/200)

기공술사 48화

“엇?!”

천애랑의 빠른 손놀림에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안긴 담소연은 놀란 눈을 했다.

“어느 방향으로 가면 오송정이 있을까?”

담소연은 당황한 상황에서 천애랑이 질문을 하자 얼떨결에 손가락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축지법을 펼쳤다.

타앗!

“꺅!”

갑작스런 움직임과 매우 강한 공기의 압력에 담소연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겨울바람이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그러나 이내 공기의 저항이 사라졌다. 천애랑이 담소연의 놀란 비명을 듣고는 내공을 몸에 둘러쳤기 때문이다.

차가운 공기의 저항에선 벗어났지만 담소연은 휙휙 지나가는 주변의 풍경에 정신이 없었다.

“저…….”

담소연을 안고 달리던 천애랑은 담소연의 부름에 고개를 살짝 내려다봤다.

“편히 말해.”

“너무 빨라서 어지러워요.”

담소연을 안고 달리던 천애랑은 담소연의 부름에 고개를 살짝 내려다봤다. 그리고 이내 신형을 멈춰 세웠다.

내공의 막으로 추운 기운을 막았다고는 하나 빠름에 대한 어지럼증을 배려하지 못했다.

천애랑은 문제해결을 위해 잠시 품에 안긴 담소연을 내려다봤다.

그 시선을 받은 담소연은 부끄러운 듯 볼이 빨개졌지만 품에서 내려올 생각은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면 되겠네. 잠시 몸에 이질감이 들어도 거부하지 마.”

담소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애랑의 말과 함께 담소연은 몸 안으로 무언가 시원한 기운이 들어옴을 느꼈다. 하지만 그저 시원할 뿐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 몰랐다.

“다 됐다. 그럼 다시 출발할까?”

“예? 예…….”

천애랑은 미소를 짓고는 다시금 몸을 날렸다.

“아!”

담소연은 그제야 천애랑이 무얼 했는지는 몰라도 그 결과를 느낄 순 있었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서 형체를 구분할 수 없었던 풍경들이 걸을 때처럼 차분하게 보였다.

겨울 산의 풍경이 장관이었다. 한동안 날씨가 좋아 태산 아래쪽은 눈이 없었으나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보이는 설경(雪景)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담소연은 긴장이 풀리는지 천애랑의 목을 가볍게 안은 채 몸에 힘을 풀었다. 그리곤 본격적으로 풍경을 구경했다.

그러다 담소연은 천애랑을 올려다봤다.

처음 만났을 때는 단발머리이더니 그사이 꽤나 길어서 뒤로 충분히 묶을 정도가 되어 있었다.

얄상하지만 곧은 턱선이 천고의 화백이 일필휘지(一筆揮之)로 선을 그은 것 같았다.

앙다문 입은 남자의 고집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높지 않지만 오똑한 코는 왠지 한 여인만 사랑해 줄 것 같았다. 게다가 너무나도 맑은 눈은 보고만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졌다.

담소연은 천애랑의 심장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일정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어찌나 아름답게 들리는지 황궁의 궁정악사가 연주를 해도 이보다는 덜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안고 연신 달리면서도 지치지 않는지 그의 호흡이 일정했다.

본인이 걸어서 올라오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릴 거리를 순식간에 올라가는 그가 대단해 보였다.

“무겁진 않나요……?”

담소연이 조심히 천애랑에게 물었다.

천애랑이 미소를 지었다.

“하나도 안 무거워. 그나저나 저기에 보이는 소나무가 아까 말한 오송정(五松亭)인가?”

담소연은 어느새 산 중턱에 있는 오송정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그녀는 천애랑의 품에서 내리고 싶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맞아요. 이제 내려주세요.”

담소연은 가볍게 땅에 내려서면서 눈앞의 오송정을 둘러봤다.

천애랑도 멋지게 펼쳐진 소나무 다섯 그루를 보았다.

“멋있네. 넓게 펼쳐진 소나무 다섯 그루.”

소나무 다섯 그루가 절묘하게 얼기설기 우산처럼 서 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게요. 진시황제가 왜 여기서 비를 피할 생각을 했는지 알 것 같아요.”

“무언가 포용해주는 느낌이네.”

산에서 자라서 평소 나무는 질리도록 봐왔지만 의미가 있어서 그런지 오송정은 색다르게 보였다.

주변 절벽 아래로 하천이 보였다. 산을 감싸듯 흐르는 물이 얼어 있었는데 그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천애랑은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며 크게 외쳤다.

“아~~~ 좋다!”

“아~~~ 좋다!”

담소연도 밝게 웃으며 따라 했다.

그 모습에 천애랑이 마주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다시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자는 뜻이었다.

이를 이해한 담소연이 수줍게 손을 내밀고 몸을 맡겼다.

천애랑은 담소연을 부드럽게 안아들었다.

“그럼 간다?”

담소연이 수줍게 끄덕였다.

천애랑이 가볍게 발돋움을 했다.

바람처럼 순식간에 둘의 모습이 오송정에서 산 정상으로 멀어져갔다.

*  *  *

“나와.”

담가의 뒷산 은밀한 곳에서 찬호가 말했다.

그러자 검은 복면을 쓴 인영 수십이 귀신처럼 나타나 한쪽 무릎을 꿇었다.

“소교주님을 뵙습니다!”

찬호는 자신 앞에 무릎 꿇은 이들을 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어떻게 찾았지?”

찬호의 차가운 물음에 검은 인영들의 몸이 살짝 떨려왔다.

멀지 않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기세가 찬호에게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검은 인영은 찬호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추묘(追猫)를 사용했습니다.”

그 말에 찬호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추적하고자 하는 사람의 확실한 냄새만 있다면 어디든 추적할 수 있는 고양이인 추묘는 마교 내에서 단 한 마리밖에 없다.

보통은 천리추종향이나 마교에서 새로이 성능을 증강시킨 만리추종향같은 것을 사용하여 전문 추적요원들이 움직이나, 찬호에게 묻은 만리추종향이 사라졌기에 마교에서 추묘를 사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추묘는 정말 시급을 요하거나 중요한 사안이 있지 않으면 사용이 불가했다. 최소 마뇌의 승인이 있었다는 의미였다.

이 사실을 아는 찬호는 무거운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복면인들을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지?”

찬호의 말 하나하나에 위엄이 서렸기에 복면인 중 가장 앞에 있던 이가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품에서 서신을 꺼내 건넸다.

찬호는 서신을 받아들었다. 서신에는 급함을 나타내는(急) 표식이 인장처럼 찍혀 있었다.

찬호는 무표정하게 서신을 펼쳐보았다. 그리 긴 글이 쓰여 있진 않았지만 찬호의 눈은 서신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교주 임시대행으로 임명한다? 그러니 당장 교로 돌아와라?”

찬호가 서신에서 눈을 떼며 가장 앞에 있는 복면인을 쳐다봤다. 복면인은 찬호의 시선을 느끼며 더욱 머리를 숙였다.

“예. 교주님께서 이번에야말로 하늘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겠다며 천마동에 드셨습니다.”

“아버지가?”

“예. 그리하여 현재 마뇌님이 전체적 업무를 담당하고 계십니다.”

찬호가 탐탁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그래왔으니.”

“소교주님께서 해야 할 일이 많으시다며 당장 돌아오라고 마뇌님이 신신당부 했습니다.”

“돌아가라.”

찬호의 단호한 말에 복면인이 얼굴을 들었다.

찬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마교 내에서, 특히나 고위직 상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것은 죽어도 할 말이 없는 행위였다.

“건방지군.”

스스스스.

찬호의 몸에서 세상을 집어 삼킬만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어두우나 매우 패도적인 기운이 복면인을 옥죄어 갔다.

그동안 신분을 속이며 기운을 갈무리하는 것에 온 신경을 썼기에 내공 사용에 많은 제약이 있던 그였다.

특히나 천애랑의 무공 수준이 워낙 고강하여 아무리 극마에 들었다고 한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마기를 들킬 위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거리낄 것 없이 제약을 해제하니 상상도 못 할 농도의 마기가 쏘아져 나왔다.

“크윽.”

“으윽.”

가장 앞에 있던 복면인뿐만 아니라 다른 복면인들도 고통스러워하며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끄으으.”

찬호는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나 여전히 한쪽 무릎만 꿇고 있는 복면인들을 보며 더욱 기운을 끌어 올렸다.

두드득!

“끄아악!”

가장 앞에 있던 복면인의 팔이 부러지면서 자연스럽게 앞으로 쓰러져 부복하는 자세가 됐다.

그러자 뒤에 있던 다른 복면인들이 황급히 바닥에 부복했다.

“으윽…… 소교주시여. 용서를.”

찬호는 고통에 찬 이들을 무심하게 쳐다보고는 기운을 거뒀다.

“허억!”

“허억. 허억.”

복면인들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라.”

찬호의 짧은 말에 복면인들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교주의 명이 지극한 것은 알지만 이렇게 소득 없이 돌아간다면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기에 두려움이 커졌다.

“소교주님… 교주님의 명도 있었습니다만…….”

복면인의 임무 수행을 향한 집념은 찬호의 싸늘한 눈에 막혔다.

“더 이상 날 귀찮게 하지 말고 돌아가라. 때가 되면 알아서 갈 것이니.”

찬호의 말에 복면인들은 죽을상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찬호의 가장 앞에 있던 복면인은 두 팔이 부러졌기에 다른 복면인들이 부축하였다.

복면인들은 찬호를 향해 깊게 몸을 숙이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찬호는 그들의 사라진 방향을 짜증 가득한 표정으로 지켜보고는 몸을 돌렸다.

*  *  *

산 정상에 오른 천애랑과 담소연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곧이어 담소연은 얼굴이 빨개져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우왕좌왕 했다. 천애랑 또한 마찬가지였다.

눈앞에서 백호가 격한 동물적 사랑의 행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내 기운에 응답하지 않은 건가……?”

아니, 집중하느라 불렀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 큰 산에서 어떻게 찾았는지 암컷 세 마리 사이에서 부지런히 종족번식을 하고 있는 백호였다.

담소연은 도저히 민망해서 못 보겠는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힐끗 힐끗 쳐다봤다.

천애랑이 정신없는 백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힘차게 뒤통수를 쳤다.

따악---!

태산 정상에서 세상의 개명(開明)을 알리는 듯한 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허엉!

백호는 갑작스런 고통에 소리치며 감히 자신의 성스러운(?) 업무를 방해하는 이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딱!

다시 한 번 경쾌한 소리와 함께 백호의 머리에 혹이 생겼다.

백호는 감히 인간 따위에게 맞았다는 것에 치욕을 느끼며 날카로운 발톱을 크게 휘둘렀다.

크헝!

“꺄악!”

백호의 발길질을 보며 담소연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이에 천애랑이 깊은 인상을 쓰며 몸을 움직였다.

콰앙!

천애랑은 백호의 발길질을 한 손으로 가볍게 막았다.

백호는 거목도 부러뜨릴 자신의 발길질을 한낱 인간 따위가 한 손으로 막아내자 깜짝 놀랐다.

하루 종일 성스로운(?) 업무를 하느라 충혈된 눈의 시야가 천천히 돌아오면서 인간의 모습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백호는 죽은 줄 알았던 옛 은인이자 주인(?)임을 깨닫고는 다급히 발을 내렸다.

그래도 옛정이 있는데 새로이 태산의 영물이 된 자신이 너그럽게 용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은 더 이상 부상당해 약한 모습을 보이던 백묘가 아니라 태산의 영기를 흠뻑 받아들여 전보다 강해진 산군 중의 왕 백호였다.

하지만 그런 백호의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선 맞아라.”

천애랑이 주먹에 기를 실어 휘둘렀다.

퍽!

퍼어억!

퍼퍼퍽!

연이은 천애랑의 주먹질에 백호는 속절없이 맞으며 고통스런 비명을 질렀다.

끄어엉!

백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호랑이가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그러지, 그 때문에 저리 화낼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어찌 된 게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강해져 돌아온 은인이었다.

그때도 매우 강한 인간이었는데 지금은 무지막지했다.

자신처럼 영기만 계속 흡수한다면 선계에서 바로 산신령으로 데려갈 것 같았다.

깨갱!

백호가 결국 꼬리를 말고 배를 까뒤집었다.

그제야 천애랑은 주먹질을 멈추고는 백호를 지긋이 쳐다봤다. 우선 울음소리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멈춘 것도 있었다.

“호야. 아직도 내가 기억이 안 나니?”

백호는 배를 뒤집은 채로 꼬리를 흔들었다.

불가항력의 격차와 고통 때문이 아닌 옛 은인에 대한 반가움의 행동이라고 합리화를 했다. 물론 실제로도 반가웠기에 기꺼이 꼬리를 흔들 수 있었다.

그런데 구석에 물러나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세 마누라들을 보니 아차 싶은 마음과 함께 마음이 울적해졌다. 멋있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는데. 자존심 다 구긴 백호였다.

으허헝!

백호가 구슬피 울었다.

“백호야, 이제 알아보는구나? 반가워서 우는가 보네.”

천애랑의 속없는 소리에 백호의 마음속에 억울함의 폭우가 몰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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