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47화
천애랑은 깨어났던 방에서 신의라고 불리는 노인에게 진맥을 받았다. 주변에는 담소연을 비롯한 의형제들이 있었다.
“어떻습니까?”
담대혁이 신의에게 조심히 물었다.
“흠…… 이거 참.”
신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을 늦추자 송소걸이 신의를 재촉했다.
“왜요?! 우리 형님한테 무슨 문제 있습니까?!”
신의가 황당한 표정으로 송소걸을 봤다.
“고놈 참. 화통을 삶아 먹었나.”
신의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문제가 있냐고? 아니야. 도리어 반대지.”
“예?”
“내 의원생활 50년 만에 이런 회복력은 처음이야.”
신의(神醫) 진설주(晉設呪)는 진맥하던 손을 거두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형님의 갈비뼈나 내상이 괜찮다는 겁니까?”
신의는 성질 급한 송소걸을 보면서 혀를 찼다.
“아 고놈 도대체 누가 데려가려는지 성질 한번 급하네.”
“예?”
신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저 이놈의 회복력이 비정상적이야. 지금은 거의 몸이 나았다고 봐도 되네. 다만 오랜 시간 몸을 움직이지 않았으니 심(心)과 신(身)의 조화를 천천히 맞춰야 할 것이야.”
신의가 대충 손을 털며 일어났다.
“엇?! 가시는 겁니까?”
천애랑은 진료를 위해 침대에 누워있다가 신의가 일어나자 다급히 몸을 세웠다.
그러자 신의가 손을 저었다.
“괜히 부산스럽게 하지 마라. 대혁아. 이번 진료비도 가주한테 다 청구한다.”
담대혁은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물론입니다. 중요한 사람을 살려주셨는데 뭐든 못해드리겠습니까.”
신의는 담대혁을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는 괴물 보듯 천애랑을 돌아봤다.
“저놈을 보니까 나 아니었어도 스스로 회복했을 게다. 다만 시간이 꽤나 오래 걸렸겠지만. 괴물 같은 놈.”
“그 정도입니까?”
신의는 담대혁을 스쳐 지나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신의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담대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놈 아버지가 치료비라고 많이 챙겨줘서 내가 약을 몇 개 챙겨 놨다. 홍건적인가 뭐시긴가 거기 책사로 들어갔다면서?”
담대혁은 신의의 마음 씀씀이에 미소를 지었다.
“예. 감사합니다. 요긴하게 잘 쓰겠습니다.”
신의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방문을 열고 나갔다.
신의가 온전히 물러난 후에야 찬호가 입을 열었다.
“저 영감이 그렇게 신통한가?”
찬호가 벽에 기댄 채 신기한 듯 신의가 열고 간 방문을 바라봤다.
담소연이 대신 입을 열었다.
“성격이 꼬장꼬장한 분이긴 한데요. 그래도 실력은 알아줘요.”
담대혁이 담소연의 말을 이어받았다.
“맞습니다. 괜히 신의(神醫)라는 별호를 얻은 게 아니죠.”
“이름은 없이 신의로만 불리는 건가?”
의형제를 맺으면서 담대혁은 결국 막내가 되었다.
“옛 성함을 버리셨습니다. 진설주(晉設呪)라는 성함을 쓰셨다고 하더군요.”
“예에?”
신의의 이름에 송소걸이 화들짝 놀라했다.
그 모습에 천애랑이 신발을 신으며 물었다.
“왜? 유명한 사람이야?”
송소걸은 벌린 입을 다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천애랑을 쳐다봤다.
“유명…하죠. 소림사의 대환단을 만드는 사람으로 유명했었어요. 그리고 돌연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역시인가.’
천애랑은 쉽게 수긍을 했다.
좀 전의 의원이 신의라고 불린다는 점에서 나름의 짐작을 하고 있었다.
의각원의 마 할아버지와 양대 신의로 불렸다던 사람인가 싶었는데 소림사의 대환단이 나오는 걸 보니 맞는 듯했다.
찬호가 송소걸을 놀란 듯 쳐다봤다.
“대환단?”
대환단은 천하에서 손꼽히는 영약 중 하나였는데 그걸 만든 이가 방금 전의 노인이라고 하니 찬호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았다.
“예. 지금도 그렇지만 수십 년 전엔 기공가의 영약과 함께 최고로…… 아!”
일전의 대화를 통해서 천애랑의 출신이 기공가문이라는 것을 의형제들도 모두 알게 되었다.
의형제들은 담가가 아는 정보를 그간 몰랐었다고 해서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암묵적인 규칙처럼 서로의 가문이나 사문에 대해서 깊게 묻지 않게 된 의형제들이었는데, 지금은 더 깊어진 관계로 서로를 의지하기에 이런 비밀들은 자잘한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송소걸은 대환단에 대해 말을 하다가 천애랑이 기공가 출신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질문을 던졌다.
“형님. 영약 만들 줄 알아요?”
천애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론만 알아.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그래도 이론만 안다면 만들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글쎄다. 힘들 거야 아마. 기공가 최고 영약의 경우엔 필요한 재료가 엄청나서.”
송소걸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뭐 얼마나 필요한데요?”
천애랑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었다.
“대환단.”
“예?”
송소걸이 놀람에 눈을 크게 떴다.
그 모습에 천애랑이 미소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빙백단(氷白丹)”
“예에??”
송소걸의 눈이 더없이 커졌다.
“그리고 화룡단(火龍丹)”
송소걸이 참다못해 반쯤 무릎을 꿇고선 침상에 걸터앉은 천애랑과 눈높이를 마주했다. 놀란 것은 송소걸 뿐만이 아니었다.
“장난치는 거죠?”
천애랑은 신발을 툭툭 차서 발에 맞추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내가 아는 기공가의 영약은 이 세 개를 기공술을 가미해 조합하는 거야.”
“아아… 그렇다면 도대체… 도대체…….”
송소걸은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세 가지의 영약을 섞은 하나의 영약을 상상해봤다.
옆에서 담소연이 기다리지 못하고 뒷말을 이어 물어봤다.
“도대체 어떤 영약이 나오는 거죠?”
이 질문의 궁금증은 방안 모두의 공통된 마음인지라 강렬한 시선들이 천애랑에게로 모여들었다. 송소걸도 상상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천애랑의 입만 보고 있었다.
천애랑이 본인의 지식을 떠올리며 덤덤히 말했다.
“내가 배운 바로는 만병통치약이 나와.”
“…….”
“……그게 뭐죠?”
“뭔가…… 익숙한 이름이…… 시전 차력사들이 약을 파는 듯한 느낌도 들고…….”
“흠…….”
일행들의 반응에 천애랑이 치료받느라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웃었다.
“말 그대로 만병통치약이야. 어떤 독, 어떤 내상, 어떤 상처라도 이 영약 하나면 회생할 수 있어. 그리고 어느 정도 내공 증진의 효과도 있고.”
“헉! 엄청난 거잖아요?”
송소걸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천애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런데 이걸 다치기 전인 평상시에 먹으면 그 사람은 엄청난 내공과 회복력을 얻게 된다고 하더라고. 가문에서도 하나 정도밖에 없었대.”
방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천애랑을 쳐다봤다.
“응?”
천애랑은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의문의 눈동자를 했다.
눈치 없는 천애랑을 향해 담대혁이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애랑 형님. 혹시 그거 형님이 드신 거 아닙니까?”
“으, 응?”
보다 못한 송소걸이 확신하듯 대화를 이어받았다.
“아따~ 형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을 입고도 신의님이 괴물이라고 할 정도로 회복되는 것을 보면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무지막지한 내공도요. 아~ 그나저나 부럽네요. 그런 천고의 영약을 드셨다니. 나는 어디에서 영약 하나 안 떨어지나.”
송소걸이 부럽다는 듯 손을 깍지 끼어서 머리 뒤로 얹혔다.
천애랑이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이 약을 자신이 먹었다는 것에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천애랑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
‘……왜? 영약을 먹은 기억은 없는데? 이런 영약을 내가 먹었을 리가? 도대체 언제? 한 살일 때 가문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했는데? 아무리 빨라도 세 살은 넘어야 먹을 수 있는 약일 텐데?…… 아?!…… 할아버지…….’
천애랑은 가슴에 턱 하니 무언가가 얹힌 느낌을 받았다.
“그걸 안 드시고…….”
천애랑이 조용히 읊조렸다.
“예?”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송소걸이 되묻자 천애랑은 쓰라린 마음을 달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싱겁네요.”
송소걸이 피식 웃으며 답했다.
분위기를 보던 담대혁이 천애랑에게 말했다.
“이제 몸도 괜찮은 것 같으니 형님만 괜찮으면 거기에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그 노인이 있다던 부대(部隊)에 말인가?”
담대혁이 수긍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담소연이 다급히 말했다.
“잠깐만요!”
“왜 그럽니까?”
천애랑의 물음에 담소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먼저 같이 갈 데가 있어요.”
* * *
태산(泰山).
오악(五岳) 중 첫째로 알아주는 태산은 고대 제왕이 봉선의식을 행한 신성한 산이다.
산동성에서 제일 높은 산인 태산은 그 역사적 가치나 경치 면에서나 최고로 손꼽히고 있었다.
태산의 눈 쌓인 산봉우리를 보면서 담소연에게 물었다.
“저곳에 백호 그놈이 있다고?”
담대혁과 의형제가 되었고 담대혁이 천애랑에게 형이라고 부르기에 천애랑도 담소연을 편히 부르게 됐다.
“예. 고양인 줄 알았는데…… 호랑이던데요? 그걸 알았을 때 엄청 놀랐어요.”
담소연이 멋쩍은 듯 말했다.
다른 이들은 쉬겠다면서 담가에 남고 천애랑과 담소연만 태산에 왔다. 담소연의 강력한 주장도 한몫했다.
태산의 한 자락에 위치한 담가였기에 둘이 태산의 초입에 도착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었다.
“흠… 그런데 어디 있는지 알아?”
질문에 담소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요. 평소엔 여기까지만 와도 먼저 마중 나와 줬는데요.”
담소연은 차가운 산바람에 털로 된 외투를 더 꽉 여미었다.
천애랑은 눈을 감고 기운을 넓게 퍼트렸다.
백호와 공명을 하면서 얻은 영기(靈氣)가 있기에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산 전체를 감쌀 정도로 기운을 퍼트리자 산봉우리 쪽에서 백호의 기운이 감지됐다.
굳이 올라갈 필요 없이 백호를 부를 수는 없을까 하고 영기가 포함된 기운으로 백호를 건드렸다.
그러나 백호는 분명 천애랑의 기운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천애랑은 몇 번 더 건드려 보고는 눈을 떴다. 반응이 없어서 직접 찾으러 가야 할 듯했다.
“가자. 어디 있는지 찾았다.”
“예? 찾았다고요?”
담소연은 이 넓은 산을 올라가지도 않고 찾았다는 천애랑의 말에 놀랐다. 천애랑은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앞장섰다.
둘은 산책을 하듯 태산 초입을 오르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이지만 천애랑과 함께라는 사실이 좋은 담소연이 밝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태산이 오악(五岳) 중 으뜸인 건 아세요?”
천애랑은 고개를 저었다.
“역사적인 부분은 잘 몰라.”
“호호, 진시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러 태산에 올랐었다고 해요. 그 뒤로도 많은 황제들이 오르고요.”
“오… 봉선의식 말하는 거야?”
“예. 그리고 백성들은 이 산을 정말로 신성시 하거든요.”
“그래?”
“예, 이 산에 오르기만 해도 10년은 젊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10년이나?”
적절히 좋은 반응을 보여주는 천애랑 덕분에 담소연이 더욱 기분 좋게 말을 이었다.
“예, 그리고 산 중턱쯤에 오송정(五松亭)이 있어요.”
“오송정?”
“진시황제가 봉선의식을 위해 태산을 오르다가 폭풍우를 만났다고 해요. 그때 산 중턱에 있던 소나무 아래서 폭풍우를 피했다고 하네요.”
“그 대단했다던 황제도 폭풍우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나 보네.”
“호호, 뭐 그렇겠죠? 그래서 후에 그 소나무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오대부(五大夫)의 직위를 주었다고 해요.”
“이 위로 올라가면 볼 수 있을까?”
“호호, 아마도 그럴 거예요. 그런데 백호가 어디에 있어요?”
담소연이 천애랑의 시선을 따라 산 정상을 바라봤다.
“예? 설마 산 정상은 아니겠죠?”
천애랑은 그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안에 못 올라갈 것 같은데요?”
담소연이 걱정스레 말했다.
천애랑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담소연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담소연의 등과 다리를 들어 품에 안았다.
“실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