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46화
찬호의 물음에 담하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마교라…… 내 호신용으로 무술을 익혔지만 무림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큰 관심을 두진 않았었네. 허나 마교에 대한 나의 인식이 어떠냐는 물음에는 단연코 부정적일세. 현 제국이 건국되고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마교가 죽인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내 잊지 못하네. 내 할아버지도 마교인의 손에 돌아가셨다네.”
담하웅의 말에 담대혁도 굳은 표정으로 말을 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 입장에서는 적(敵)입니다. 황실의 협력자로서 마교와 혈교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마교가 무얼 했다 안 했다를 떠나서 현재 제 소속과 적대관계에 있기에 이리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찬호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마지막으로 천애랑을 돌아봤다.
“애랑, 자네의 생각은 어찌한가?”
천애랑은 이 질문을 하는 찬호의 눈빛이 왜 잘게 떨리는지 알 수 없었다.
“마교? 흠… 그간 찬호 자네와 소걸이에게 혹여나 부담을 줄까 봐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복수하고자 하는 대상이 마교야. 내 가문과 아버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할아버지를 죽인 천마와 마교는 나의 확실한 원수라고 할 수 있지.”
천애랑의 말에 송소걸이 크게 놀랐다.
담가 부자(父子)는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천애랑이 기공가의 후손임을 알기에 그 원한관계에 대해서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찬호는 천애랑의 말에 잠시 놀랐다가 더욱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마교에 대해선 왜 묻는 겐가?”
담하웅이 궁금한 듯 질문을 했다.
찬호가 고개를 저으면서 웃었다. 그 웃음에 씁쓸함이 묻어났다.
“아닙니다. 그저 궁금했을 뿐입니다. 교양이라고 했으니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가? 좋은 응용력과 자세네.”
찬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애랑과 송소걸을 쳐다봤다.
“담 소협과 형제의 맹세를 하자.”
찬호의 강한 어조에 천애랑과 송소걸이 일제히 시선을 모았다.
“그렇게 볼 필요 없어. 서로를 위해줄 좋은 친구가 한 명이라도 더 있다면 좋은 일 아니겠어? 그런데 담 소협은 홍건적의 수괴인 주원장의 책사이기도 하니 우리와 함께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 아쉽긴 하겠군.”
‘소걸이 네 말대로 결국 세 명으로 숫자가 맞춰질지도 모를 일이고.’
찬호는 마지막 말을 속으로 삼켰다.
“수괴라는 표현보다는 수장이라고 해 주십시오.”
담대혁이 정중히 찬호에게 말했다.
찬호는 손을 저으며 사과했다.
“아! 미안하오.”
찬호의 순순한 사과에 담대혁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거 이름을 바꾸던가 해야지. 홍건적이라고 하니까 너무 도적 이미지가 강해서요.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이죠. 하하하.”
담대혁의 말에 송소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하긴 그렇겠네요. 그런데 우리 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있겠습니까? 찬호 형님 말대로 형제 한 명 더 는다고 나쁠 것 없지요. 더군다나 그간 지켜봐 온 담 소협이라면 저는 찬성이에요.”
“그래, 처음 본 날 형제의 맹세를 한 녀석도 있는 판에 무슨 문제겠어. 하하.”
찬호의 말에 천애랑도 마주 웃었다.
담대혁이 밝게 웃으면서 천애랑과 찬호, 송소걸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하하하, 다시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담가의 장남 담대혁이라고 합니다. 스물다섯 살입니다.”
“잠깐!”
송소걸이 갑자기 손바닥을 펼치며 시선을 집중 시켰다.
“이거 분명히 합시다. 제일 마지막에 들어왔으니 담 소협이 막내입니다. 그렇지요?”
딱!
송소걸이 또다시 뒤통수를 부여잡았다.
“아씨! 이젠 툭하면 때립니까? 제 고운 두상이 감자처럼 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송소걸의 투정에 찬호가 무심한 듯 대답했다.
“그렇다면 감두(감자 두상)지.”
“…….”
“…….”
“…….”
“껄껄껄… 껄, 꺼얼…….”
담하웅이 재미나게 웃다가 다들 뜨악하는 표정으로 조용하기에 웃음을 멈췄다.
송소걸이 천애랑의 팔을 가볍게 치더니 입을 열었다.
“혀, 형님. 혹시 내상이 도지거나 그러시진 않았습니까? 가뜩이나 오늘 막 깨어났는데 형님이 다시 드러누우실까 심히 걱정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제가 찬호형님에게 톡톡히 책임을 묻겠습니다.”
“하, 하하…….”
“안 그래도 찬호형님이 요즘 시전을 자주 돌아다니더니 유행한다는 아재농담을 배워왔나 봅니다.”
“아재농담?”
“보십쇼. 형님이랑 담 소협이랑 저랑은 큰 충격에 휩싸였지만 가주님은 아주 좋아 죽잖아요. 나이 먹은 사람들끼리 통하는 매우 은밀한 농담 따먹기입니다. 찬호형님 나이 다시 확인해 봐야 합니다. 스무 살쯤 아닐지도 몰라요.”
찬호는 민망함에 팔짱을 낀 채 방 천장만 보고 있었다. 어색한 감정 좀 바꿔 보려다가 맞은 봉변이었다.
“큼큼.”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담소연이 다과상을 가져왔다.
“응? 방 분위기가 왜 이래요?”
담소연이 다과상을 일행들의 중간에 놓으면서 둘러봤다.
“찬호 소협은 왜 얼굴이 빨개지셨습니까? 응? 아버지는 뭐 즐거운 일 있으세요?”
“흠흠.”
“어, 엉? 아무것도 아니다.”
찬호가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고 담하웅은 고개를 저었다.
“으음~~”
담소연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허리에 양손을 얹었다.
“다들 너무 하시네요! 내 욕하고 있었죠?”
“……동생아 난 가끔 너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담대혁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하자 담소연이 그를 째려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송소걸이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아~ 모르시는 것이 나을 겁니다. 안 들은 귀를 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테니까요.”
“흐응~?”
송소걸의 말에 더욱 호기심이 인 듯 담소연이 눈을 흘겼다. 그런 담소연을 보며 송소걸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아~ 이것 참. 그렇게 궁금하세요?”
“예.”
담소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소걸이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천천히 말했다.
“흐흐, 방 분위기가 왜 그러냐면요…….”
“그만!”
찬호가 소리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무심코 내공을 발출하며 일어난 바람에 방안이 순식간에 무거운 내기로 가득 찼다.
휙-!
그때 천애랑이 손을 휘젓자 방 안에 가득 찼던 무거운 기운이 부드럽게 해소됐다.
“찬호야.”
천애랑의 부름에 찬호가 털썩 자리에 앉으며 사과를 했다.
“미안합니다. 결례를 했습니다.”
“다들 편히 앉으시죠. 귀한 차가 식겠습니다.”
천애랑이 편안한 목소리로 말하자 다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편히 자리를 잡았다.
“휴.”
송소걸이 담소연에게 속삭였다.
-“아직도 궁금하세요?”
-“아, 아니요…….”
담소연이 찬호의 눈치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담하웅은 지금의 상황에 진심으로 놀랬다.
광산(光山)전투로 회자되는 지난 전투에 대해서 보고를 통해 듣긴 했었다.
친우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무위로 원나라 군을 베면서 돌진했다는 찬호의 실력은 익히 들었으나 그 기운이 이렇게 고강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광산(光山)전투의 주인공인 천애랑에 대한 소문은 과장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듯했다.
천애랑이 차분하고 착해 보여 세 형제들 중 두 번째나 세 번째 서열쯤 되는 줄 알았더니, 지금의 모습을 보면 실상 형제들 중 가장 실세라고 느껴졌다.
더군다나 자신의 친우를 말릴 때 모습이 마치 제왕과 그 심복 수하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물론 비약적인 상상력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제왕의 상’을 본 뒤라 그런지 자꾸 그런 쪽으로 상상력이 퍼져갔다.
담하웅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탐이 나는데…….’
담하웅은 천애랑과 담소연을 살며시 쳐다봤다. 그의 입가엔 뜻 모를 미소가 번졌다.
* * *
“마뇌.”
천마대전의 용좌에 앉은 천마가 나른하게 말했다.
“예, 하늘이시여.”
“혈교에 대한 공작은?”
“동생 놈이 잘 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지노(地老)가 있는 한 당장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쯧. 그 노괴는 죽지도 않고 뭐하는지 모르겠군.”
“무리하면 하늘께서 원하시는 바를 빠르게 이루실 수 있습니다만…….”
“아니야.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으니까. 허면 살막은?”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꼴같잖게 자존심이 강한데다가 은신처를 옮기며 숨는 것에 이골이 난 자들인지라.”
“건방진 것들.”
천마의 불편한 심기에 따라 천마대전의 공기가 꿀렁거렸다.
마뇌가 더욱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원래 없는 것들이 과거를 들먹이는 것이지요.”
마뇌의 대답이 나름 마음에 든 천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바꿨다.
“무림맹의 동태는?”
“생각보다 잠잠합니다. 저희와 혈교가 더욱 치고 박기를 원하는 눈치입니다. 뭐 어부지리 하겠다는 뻔한 생각이겠지요.”
“쯧. 여하튼 계획엔 차질이 없도록 잘 준비하도록. 그리고 찬호 그녀석의 행방은 어떻게 됐지?”
“그게…….”
“왜?”
마뇌의 뜸에 천마 주변의 기운이 더욱 요동쳤다. 마뇌는 그런 천마를 보며 황급히 대답했다.
“찾았습니다.”
천마의 눈썹이 까딱였다.
“그런데 뭘 그렇게 뜸을 들여?”
“다만 천애랑도 찾았습니다.”
“천애랑?”
천마가 고개를 갸웃하자 마뇌가 조심히 말했다.
“그 기공가의 후예 말입니다.”
천마의 기운이 거칠어졌다.
“……죽었다지 않았나?”
마뇌는 더욱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살아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소교주님과 의형제를 맺은 듯합니다.”
천마의 미간에 굵은 주름이 졌다.
“뭘 맺어?”
“서로 신분을 모른 채 마음이 맞아 의형제를 맺은 듯합니다.”
천마가 혀를 찼다.
“골치 아픈 놈! 그런데 소교주를 찾는데 왜 이리 오래 걸렸지?”
이 질문에 마뇌는 기다렸다는 듯이 허리를 살짝 펴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소교주가 극마에 이른 듯합니다.”
“뭐? 극마?”
콰지직!
놀란 천마가 손을 강하게 쥐자 의자 손잡이가 두부처럼 쉽게 으스러져 흩날렸다.
“예. 본교에서 의마(醫魔)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만리추종향이 지워졌습니다. 이 경우는 극마가 되거나 환골탈태하거나 둘 중 하나뿐입니다.”
“크크크큭… 좋구만 아주 좋아. 그러면 언제 본교로 돌아오지?”
“그게…, 소교주님을 제어할 사람이 본교에 더욱더 드물어져서…….”
천마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놈은 자랑스런 마교인답지 않게 마음은 유약하면서 그 고집과 재능만은 나를 닮았으니까.”
잠시 생각을 정리한 천마는 마뇌를 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사람을 보내. 허튼짓 그만하고 빨리 돌아오라고.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런데 의형제를 맺은 이가 그 기공가 자식뿐인가?”
“아닙니다. 한 명 더 있습니다. 그의 신원은 파악되지 않으나 무공실력은 그저 그런 것으로 압니다.”
“흐음…… 만약 돌아오지 않겠다면 그 의형제들을 죽여. 그때 그 여인처럼. 그러면 지가 거기에 머물 수 없으니 알아서 돌아오겠지.”
“하늘이시여. 마지막으로 남은 보고가 있습니다.”
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마뇌가 황급히 보고를 이어갔다.
“그래, 말하라.”
천마가 다시금 의자에 등을 붙였다.
“하남 광산(光山)에서 큰 전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숱한 전장을 보낸 천마에게 있어 어지간한 전투는 대단한 보고사항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는 천마조차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그 전투에서 황실의 변태 늙은이와 천애랑이 싸웠다고 합니다.”
“그 남자도 아닌 요물을 말하는 건가?”
“예 맞습니다. 정보수집 결과 그 늙은이가 기공가의 후손을 간신히 이기고 몸을 피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간의 정황상 천애랑이 화경 이상의 경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보분석 결과 천애랑의 성장 속도가 범상치 않습니다.”
천마가 흥미롭게 마뇌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마뇌가 말을 이었다.
“일전 드라쿠 장로와의 전투조사 결과와 지금의 현장조사 결과 간의 비교를 통한 성장 속도가 일반적인 기대치를 훨씬 상회합니다. 원래도 나이에 비해 괴물 같은 무위를 보였었는데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경지가 더욱 높아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변태 늙은이와의 싸움으로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유의미한 추측이 있기에 앞으로의 성장기대치가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더 위험해지기 전에 필요하다면 싹을 자를 필요도 있다고 보입니다. 어떻게 하오리까.”
마뇌의 보고가 끝나자 천마는 하얀 이를 환히 드러내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큭. 크하하하하하!”
쿠루루루루------!
천마대전 전체가 천마의 앙천대소(仰天大笑)에 흔들렸다.
마뇌는 내공을 전심으로 끌어올려서 간신히 자세를 유지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강해지려는지 볼 때마다 강해지는 천마였다.
한참을 웃던 천마가 마뇌를 오연히 쳐다봤다.
“마뇌.”
마뇌는 깊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예, 하늘이시여.”
“기공가의 녀석은 내 친히 상대할 것이니 놔두도록. 이 기회에 기공가의 기억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저 따르겠나이다. 하늘이시여.”
천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늘부로 다시 천마동에 들어가겠다. 그래왔듯 전체적인 일은 그대에게 일임한다. 그리고 나의 대리로는 마찬호 소교주를 임명한다. 이번 기회에 하늘을 부수고 다시 세상에 나오리라. 크하하하하하!”
순식간에 사라진 천마의 웃음이 대전 안에 잔향처럼 남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