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45화
“에취!”
담하웅이 갑작스레 재채기를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에 뒤따르던 천애랑이 걱정스레 물었다.
“가주님 어디 추우십니까?”
담하웅이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아닐세.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 말이야. 세월의 무상함에 취해 하염없이 눈을 구경했더니 그런가 보네.”
일행들은 담하웅의 서재에서 자리하고 앉아 담소연의 차(茶)를 기다리며 담소를 나누는 중이었다.
“아버지, 너무 책만 읽지 마시고 무공 수련도 꾸준히 하시면서 건강 챙기세요.”
담대혁의 걱정에 담하웅이 가슴을 활짝 내밀며 말했다.
“이 자식이 아비를 퇴물로 아나? 나 아직 청춘이다. 아직까진 삼 일 밤낮 안 쉬고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어지간한 무인들도 찜 쪄 먹을 수 있다!”
“하아…… 아버지, 승상도 배출했던 학사가문 가주의 언어 선택이 매우 교양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담하웅이 비웃듯 웃었다.
“교양? 요즘 세상엔 교양(敎養)이 교양(驕揚)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 그런 것보다야 낫지.”
“가르침을 쌓는다는 것이 교만함을 쌓는 걸로 바뀐다라…….”
찬호가 감탄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찬호의 반응을 보며 담하웅이 대뜸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네. 그럼 교양(敎養)이란 무엇일까.”
방 안의 모든 이들에게 던지는 질문이었다.
담대혁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물음이 생소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항상 화두를 던져서 스스로 생각하고 대답하기를 가르치셨으니까. 그래야 자신의 입지(立志)를 세울 수 있다면서.
“교양(敎養)이란 뜻 그대로 가르침의 축적 아니겠습니까? 책을 보며 쌓은 지식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찬호가 대답했다.
“옳은 말일세. 하지만 부족하다.”
송소걸이 손을 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가르침을 주고받는 주체가 너무 좁은 것 같습니다. 책으로만 쌓은 지식은 죽은 지식일 뿐입니다. 진정한 교양(敎養)은 책으로 쌓은 지식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용하여 그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서 얻는 종합적 지식들의 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담하웅이 흡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송소걸을 칭찬했다.
“자네의 견해가 매우 뛰어나군. 그 말도 매우 옳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천애랑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는 모든 것은 자연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책이라는 것은 결국 그 저자의 깨달음일 뿐이지요. 그 저자는 누구로부터 깨달음을 얻었을까요? 하염없이 거슬러 올라간다면 결국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무언가의 깨달음을 얻었을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할아버지의 가르침 외에는 모든 것을 자연으로부터 얻고 배웠으니까요.”
담하웅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자연이라…… 색다르군. 그것도 옳다.”
“아니 도대체 다 옳다고 하면 정답은 뭐라는 거지?”
송소걸이 조용히 투덜거렸다.
담하웅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옅게 웃었다.
“자네는 학문을 했어야 하네. 하하하.”
송소걸이 인상을 찌푸렸다.
담하웅은 그런 송소걸을 재밌다는 듯 쳐다보고는 담대혁에게 질문을 던졌다.
“대혁이 너는 알고 있느냐?”
담대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아버지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 교양(敎養)이란 무엇일까.”
“교양(敎養)이란 다른 사람과 갈등 또는 충돌상황이 발생했을 때, 상대편뿐만 아니라 나도 틀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줄 아는 것입니다.”
담하웅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연신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생각에 잠긴 이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찬호는 자신의 아버지와 문파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도 틀릴 수 있음을 생각하라’는 말이 어렵다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한껏 인상을 쓰고 있었다.
송소걸은 무언가 감을 잡으려는지 허공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었고, 천애랑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인재들이군. 이 정도 화두에 저렇게 여러 깨달음을 습득하려 하다니 말이야. 하하하. 미래가 참으로 밝구만.’
담하웅은 일행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하던 말을 마저 이었다.
“그래, 그런데 상대방은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이 배웠다고는 하지만 그 배움이 교만함이 됐을 뿐이지. 그래서 교양(驕揚)이라고 한 것일세. 세상엔 말이야 정답이라는 것은 없다네. 특히나 어느 집단의 군사(軍師)라는 직책을 가진 사람일수록 항시 귀를 열고 매 순간 자신의 판단에 의심을 하고, 모든 가능성을 염두해서 움직여야겠지.”
담대혁은 아버지가 이들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하면서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항상 무심한 듯 자신을 신경 써주는 아버지를 보면서 담대혁은 피식 웃었다.
처음 홍건적에 합류하겠다고 했을 때 탐탁지 않게 여기셨던 아버지께서 사병들까지 호위로 붙여 주셨었다.
천애랑은 담대혁과 담하웅이 한 말이 할아버지의 가르침과 어우러져서 다가왔다.
‘애랑아, 우리 가문은 자연을 닮고 싶어 하고 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란다. 그렇다면 자연이란 무엇일까?’
‘자연이요? 흠…… 저기 보이는 나무들이나 호수 이런 거 아닌가요?’
‘하하, 그래 그런 것이 자연이지. 하지만 우리 가문이 깨달은 자연이란 공(空)이었단다. 또한 만(滿)이기도 하지.’
‘비어있기도 하고 가득 차있기도 하다고요?’
‘그래, 자연은 모든 것을 포용한단다. 뭐든 포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흠, 넓은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하하하 그것도 맞는 말이지. 하지만 더 쉬운 방법이 있단다.’
‘그게 뭔데요 할아버지?’
‘모든 것을 포용할 만큼 가진 모든 것을 비워내면 되는 것이지. 그렇다면 절로 채워질 것이야.’
‘끙……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 할아버지.’
‘하하하하, 그럴 테지. 나중에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게다. 그렇게 된다면 가문의 염원에 다가갈 수 있겠지. 다만 이것만은 기억해라.’
‘뭔데요?’
‘세상을 바라봄에 있어 항상 중간에 서서 관망할 것. 다만 너의 입지(立志)가 확고하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행할 것. 그리고 세상에 따로 귀천(貴賤)은 없으니 모든 것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둘 것.’
‘끄응…….’
‘걱정하지 말거라. 기공가의 자손이라면 자연이 자연스럽게 너를 이끌 것이다. 하하하하.’
천애랑은 간만에 떠오른 할아버지의 모습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떴다.
‘헉!’
담하웅은 천애랑의 눈을 보고는 그만 큰 소리를 지를 뻔했다.
‘호랑이의 눈(虎眼)에 일반인보다 조금은 긴 팔… 그리고 미간의 점. 아무리 다시 봐도 딱 제왕의 상이 아닌가. 게다가 지금 보이는 저 눈빛이란…… 허어, 천애랑이라는 이 자 곧 세상의 중심에 서 있겠구만.’
천애랑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담하웅을 향해 크게 포권을 취했다.
“큰 가르침 감사합니다.”
천애랑의 말에 담하웅이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니네. 이 망나니 같은 놈한테 한소리 해주고 싶었던 건데, 자네들이 더욱 깨달음을 얻은 것 같구만.”
“가주님 아저씨 덕분에 저도 눈이 트인 느낌이에요. 고맙습니다.”
송소걸이 밝은 표정으로 말을 했다
“무슨 호칭을 두 가지나 쓰나. 가주님이라고 부르려면 부르지 가주님 아저씨가 뭔가? 그런데 무얼 얻었기에 눈이 트였는지 물어도 되겠나?”
송소걸이 찬호를 힐끗 보면서 자신 있게 웃었다.
“전 찬호형님의 말은 항상 허튼소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마냥 무시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옆에서 경청하던 찬호가 인상을 썼다.
“뭐가 어째?!”
송소걸이 찬호에게서 슬며시 거리를 벌렸다.
“어, 어? 형님. 우리 가주님 말씀대로 본인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줄 아는 교양인이 됩시다. 거~참, 검 손잡이는 왜 잡으려고 합니까. 또.”
“쳇.”
찬호는 혀를 차고는 송소걸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듯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하하. 자네 둘은 참으로 사이가 좋구만.”
찬호가 담하웅을 향해 인상을 쓰며 답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찬호의 표정과 반대로 송소걸은 신이 난 듯 말했다.
“맞아요. 저희는 풍하결의(楓下結義)를 맺은 형제들이지요. 당연히 사이가 좋을 수밖에요. 하하하.”
“풍하결의?”
담하웅이 궁금한 듯 물었다. 담하웅의 관심에 송소걸이 신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애랑 형님하고 찬호 형님하고 저하고 셋이서 옛 유비, 관우, 장비들처럼 형제의 맹세를 했지요.”
“오~~ 재미지구먼?”
담하웅은 추임새를 넣으면서 천애랑을 쳐다봤다. 곰곰이 천애랑을 쳐다보던 담하웅이 한마디를 더 보탰다.
“아깝다 아까워.”
“뭐가 말입니까 아버지?”
담하웅이 담대혁을 쳐다봤다.
“저들 세 형제들을 보니 난세의 주역들이 될 듯한데, 네가 저기에 끼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담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내심 그 형제의 맹세에 끼고 싶네요.”
담대혁은 내심 기대하는 듯 천애랑과 찬호, 송소걸을 쳐다봤다.
“의형제의 의견이 더 중요해서요.”
천애랑은 솔직하고 완곡하게 거절의 표현을 했다.
마음이야 담대혁을 좋아하기에 의형제라는 소중한 인연이 추가되는 것은 찬성이지만, 자신의 인연에 의존해서 의형제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천애랑을 보며 찬호가 피식 웃었다.
“애랑 네가 좋다면 나는 좋다. 지난 한 달간 봐온 담대혁이라는 저 자는 누구와 다르게 품행방정해서 의리와 진득한 맛이 있는 것 같았다.”
의외로 먼저 찬성의 의견을 내는 찬호와 다르게 송소걸은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듯 고개를 저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그런 송소걸에게 찬호가 눈썹을 까딱이며 묻자 송소걸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송소걸의 표정에 질문을 던진 찬호는 물론 천애랑과 담가 부자(父子)도 긴장되게 쳐다봤다.
송소걸이 조심히 입을 뗐다.
“크흠…… 형님, 저도 담 소협님이 참으로 마음에 듭니다.”
“근데?”
찬호가 되묻자 송소걸이 뜸을 들였다. 그리고는 말을 했다.
“네 명이라는 숫자가 안 예쁩니다.”
딱!
“아야!”
송소걸이 뒤통수를 부여잡으며 울상을 지었다.
“그딴 걸 이유라고 그렇게 진지하게 굴었냐?”
찬호가 핀잔을 주자 송소걸이 뒷머리를 문지르면서 대답했다.
“아이고 아파라. 이젠 형님이 폭력까지 휘두르네. 보셨죠 담 소협? 형제의 맹세를 하면 뭐 합니까 이렇게 폭력적인 형님이 있는데 말이죠.”
“한 대 더 맞을래?”
찬호가 다시금 손바닥을 들어 올리자 송소걸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아이고~ 찬호 형님이 송소걸을 잡네. 동네 사람들~!”
송소걸의 너스레에 찬호가 피식 웃으며 손을 거뒀다.
“네가 숫자가 안 예쁘다고 말하니 방법이 떠올랐다.”
찬호의 말에 송소걸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뭡니까?”
찬호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널 빼면 되겠구나. 그러면 유비형제처럼 계속 세 명이 될 테니 말이다.”
“헉!”
송소걸이 헛바람을 삼키면서 찬호를 쳐다봤다.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듯 송소걸은 표정을 계속 굳힌 채 있었다.
송소걸의 표정을 보면서 찬호는 농담이 심했나 싶어서 사과를 했다.
“야야 미안해. 당연히 농담이지 이런 걸로 그렇게 충격을 받냐?”
찬호의 사과에도 송소걸의 표정이 풀리지 않자 천애랑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소걸아, 찬호가 설마하니 너를 싫어해서 진심으로 한 말이겠어? 너도 잘 알 것 아니냐.”
그제야 송소걸이 천애랑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애랑 형님.”
“응?”
“찬호 형님이 농담이라는 것을 깨달았나 봅니다. 그간 농이라고는 모르는 폭력쟁이였는데 말이죠. 드디어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것이겠죠?”
“으, 응?”
천애랑이 당황한 표정으로 슬며시 찬호를 봤다. 그곳엔 차가운 검날이 겁집에서 뽑혀 나오고 있었다.
스르릉.
방 안에 차가운 기운이 넘실거렸다.
송소걸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담하웅의 옆으로 갔다.
“어, 어? 형님. 농담입니다. 농담! 아 뭔~ 툭 하면 검부터 뽑습니까? 여기 가주님도 계십니다? 어허? 마교인도 그렇게 다짜고짜 화부터 안 낼 겁니다?”
송소걸의 말에 찬호가 다시 착검하고는 팔짱을 끼었다.
찬호의 표정이 좋지 않자 송소걸이 미안함에 찬호 옆으로 다가갔다.
“아이 형님. 장난 좀 친 걸로 그러십니까? 화 푸세요~”
찬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송소걸을 향해 물었다.
“마교인이 참으로 나쁜 이들일까?”
찬호의 뜬금없는 물음에 송소걸이 어깨를 으쓱였다.
“마교인들하고 비교해서 그래요? 마교인들이야 당연히 나쁜 놈들이죠.”
“왜?”
송소걸에게 되묻는 찬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송소걸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왜라니요. 당연히 마교하면 나쁜 놈! 아닙니까.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질렀는데요.”
“살인이야 정파인들도 하잖아? 그리고 군인들도 하고.”
“흠, 그거야 그렇지만 정파인들이나 군인들은 명분이 있잖아요. 하지만 마교인들은 그냥 살육에 미친 놈들이에요. 상종 못할 놈들이죠.”
찬호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담대혁과 담하웅을 쳐다봤다.
“가주님과 담 소협이 보기에 마교란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