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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42화 (42/200)

기공술사 42화

천애랑의 따뜻한 인사에 담소연이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두 눈이 어느새 퉁퉁 부어있었다.

그 모습에 천애랑이 살며시 웃자 담소연이 강하게 째려봤다. 그러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천애랑이 미소와 함께 말했다.

“하하? 고개 좀 들어보세요. 오랜만에 만나지 않았습니까.”

천애랑의 부름에 담소연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고개를 저었다.

천애랑이 물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그리고 낭자는 어찌 여기에?”

담소연이 고개를 번쩍 들고는 퉁명스레 말했다. 그녀의 표정이 뾰로통했다.

“아니, 절 보고 한다는 소리가 그것뿐이에요?”

알 수 없는 위기감에 천애랑이 주춤거렸다. 하지만 천애랑이 어찌 여자의 마음을 알까.

천애랑이 그저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예? 아니요. 담 소협도 여기 있습니까? 혹시 제 친우들은?”

눈치 없는 천애랑의 대답에 결국 담소연이 폭발했다.

“악! 그게 뭐예요! 천 소협이 심양에서 사라져서 죽은 줄 알고 제가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요? 게다가 이렇게 살아있었으면 연락이라도 해줄 수 있지 어디 청해나, 신강에 있던 것도 아니면서 산동의 담가(家)로 연락 한번 안 할 수가 있어요? 거기다가 다시 만나면 건강하게 만나야지 이건 뭐 시체가 다 되어 가지고 오면 어쩌자는 거예요? 또, 제 안부는 묻지도 않고 왜 여기에 있냐고요? 왜요? 제가 여기 있는 게 불만이에요? 담 오라버니요? 일 층에 있어요. 친우들이요? 그 사람들도 담 오라버니랑 같이 있어요. 됐어요? 네?”

담소연이 씩씩거리며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천애랑이 놀란 표정으로 담소연의 멍하니 쳐다봤다.

아마 말로 쾌검을 펼칠 수만 있다면 천하제일 쾌검인은 담소연일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천애랑이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 하하… 미안합니다.”

담소연이 팔짱을 끼었다. 그녀의 눈이 좁혀졌다.

“뭐가 미안한데요?”

“예?”

“뭐가 미안하냐고요.”

천애랑이 연신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뭘 잘못했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천애랑은 간신히 답을 꺼내 놨다.

“뭐 그냥… 다 미안한데요……?”

담소연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

“아니 뭐가 미안한지도 모르면서 그냥 제 입막음 하려고 미안하다고 한 거예요?”

천애랑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아, 아니…….”

“뭐가 아닌데요?”

천애랑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천애랑은 당장 팽풍궐이라도 나타났으면 했다. 그와 싸우는 것이 지금 상황의 정답을 찾는 것보다 쉬울 것 같았다.

우왕좌왕하는 천애랑을 보며 담소연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에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 묻은 분홍치마를 툴툴 털었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이래요. 온몸에 상처 아닌 곳이 없고 갈비뼈는 부러지고 눈은 핏줄이 다 터지고 몸은 또 과다출혈이었대요.”

담소연의 표정에 짙은 걱정이 어리었다. 그녀의 눈이 언제든지 눈물이 흐를 것처럼 촉촉해졌다.

이에 천애랑이 멋쩍게 미소 지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걱정해준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고마웠다.

그때 담소연이 천애랑의 몸에 감긴 붕대를 쳐다봤다. 절대적 안정이 필요한 사람이 무리하게 움직여서인지 피에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담소연이 고개를 저으며 떨어뜨린 물건들을 챙겼다.

“헤휴……. 우선 방으로 가요.”

“예?”

“아니, 피에 젖은 채로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에요?”

천애랑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리 붕대가 칭칭 감아져 있다지만 옷도 안 입고 나오면 어떡해요? 그리고 하체 쪽에 붕대가 뭉쳤나 보네요. 다시 감아야겠어요.”

담소연의 마지막 말에 천애랑이 자신의 아래를 내려다봤다.

“하, 하하….”

“은근 손이 많이 가네요. 어서 방으로 가서 붕대를 갈고 옷 입고 내려가요.”

천애랑은 담소연의 손에 이끌려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한 붕대를 준비하는 담소연을 보며 천애랑이 조심히 물었다.

“제가 얼마나 누워있었나요?”

“두 달 이상이요.”

“예?”

담소연은 아까보다 한결 펴진 얼굴로 천애랑을 쳐다봤다.

“한 달 전에 천 소협이 마차에 실려서 가문으로 왔어요. 응급처치를 하고 이동하는 도중 내내 혼수상태였대요.”

“아! 여기가 소연낭자의 가문입니까?”

담소연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분홍빛 치마를 손끝으로 잡아 무릎을 살짝 숙이면서 말했다.

“예, 산동 담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하하!”

천애랑은 기분 좋게 웃었다. 천애랑의 미소에 담소연도 환하게 웃었다.

“호호호.”

천애랑은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침대에 앉았다.

“피가 너무 묻은 붕대를 풀게요.”

담소연은 천천히 천애랑의 붕대를 벗기기 시작했다.

“으윽.”

천애랑은 몸이 욱신거려 인상을 찌푸렸다.

“가만히 있어요.”

담소연의 단호한 말에 천애랑이 막 입대한 신병처럼 자세를 바로 했다.

사락. 사락.

갑자기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천애랑과 담소연의 귀에 붕대 푸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다.

“저…….”

“저…….”

천애랑과 담소연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하하, 먼저 말 하세요.”

“아니에요, 천 소협이 먼저 말 하세요.”

천애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제가 의식이 없을 때, 치료를 소연낭자가 해줬나요?”

담소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신의(神醫)를 불렀어요. 그 분을 모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어휴! 그 꼬장꼬장한 노인네! 실력은 좋은데 영 사회성이 없어요.”

천애랑이 신의라는 단어에 살짝 놀란 눈을 했다. 그리고 원래 궁금했던 부분을 물었다.

“그럼…… 붕대 감는 것은?”

담소연은 무슨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표정으로 눈썹을 까딱였다.

“그거야 당연히 제가 계속 했어요.”

담소연은 칭찬을 바라는 표정으로 천애랑을 쳐다봤다.

천애랑이 머뭇거리며 한 마디를 더했다.

“그럼… 하체의 붕대도…?”

담소연은 그제야 천애랑이 하는 말의 의미를 눈치를 채고 귀가 빨개졌다.

하지만 담소연이 누구던가. 담가의 뻔뻔 낭자 아니던가. 담소연이 더 당당히 어깨를 폈다.

“그, 그럼요. 의원 보조로서 당연히 그랬죠.”

“의원 보조요?”

“예~ 제가 신의한테 기본적인 의술을 조금 배우고 있거든요.”

천애랑은 생각보다 당당하게 말하는 담소연을 보고는, 전문적인 의원 느낌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담소연은 빨개진 귀를 머리카락으로 살짝 가리고는 피가 흐른 상체의 붕대를 마저 갈아줬다.

“상체는 됐고, 아래도 붕대를 갈죠. 잘못 감았는지 한쪽에 붕대가 뭉쳤네요.”

담소연이 손을 뻗어 천애랑의 하체에 감긴 붕대를 풀려고 했다.

‘어? 거긴 붕대가 뭉친 게 아닌데.’

천애랑은 다급히 손을 뻗어서 담소연의 손을 막았다.

의도치 않게 서로 손을 잡은 천애랑과 담소연. 방 안에 또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휙!

놀란 천애랑이 담소연의 손을 휙 던져버렸다.

“꺅!”

담소연이 휘청거렸다.

천애랑은 깜짝 놀라면서 다급히 담소연의 허리를 붙잡았다.

“…….”

천애랑은 황급히 담소연을 세우고는 말을 더듬었다.

“미안합니다. 고, 고의는 아니었어요.”

당황하는 천애랑을 보며 담소연이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아래쪽 붕대는 괜찮을… 것 같으니 얼른 옷을 입어요. 천 소협이 깨어난 걸 알면 좋아할 사람들이 아래층에 가득이라서요.”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천애랑은 한쪽 탁자에 곱게 놓여있는 옷을 집어 들었다.

담가 남매랑 처음 옷을 살 때 입었던 것과 비슷한 검은 비단 무복(武服)이었다.

사르륵 손길을 타는 비단의 느낌이 기분 좋게 손을 맴돌았다.

천애랑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자리 잡았다. 이들 남매가 자신을 그리워하며 기억하고 있었음이 옷에서도 느껴졌다.

천애랑은 붕대가 한가득인 다리를 바지에 집어넣으려 하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돌아봤다.

“……소연낭자, 옷 갈아입는 것까지 의원이 봐야 하는 겁니까?”

천애랑의 말에 담소연이 화들짝 놀라며 요란을 떨었다.

“호호호호~ 뭐, 어때요? 어차피 볼 거 다 봤는데.”

“…….”

천애랑이 아무 말 없자 담소연은 민망한 듯 손사래를 쳤다.

“아, 알았어요. 먼저 일 층에 내려가 있을게요. 조심히 내려오세요.”

담소연이 분홍치마를 살랑거리며 방에서 나갔다.

그제야 천애랑은 준비된 옷을 낑낑거리며 입었다.

부상이 매우 심각한 탓인지, 꽁꽁 처치해 놓은 붕대 탓인지 옷을 입는 것이 힘겨웠다.

천애랑은 잠시 침상에 걸터앉아 숨을 돌렸다.

“후…….”

방 안에 홀로 남게 된 천애랑에게 여러 가지 상념들이 스쳐지나갔다.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평온할 날 없이 흘러온 시간들, 그러면서 만난 여러 사람들, 그중 자신의 삶에 깊숙한 인연으로 들어온 담대혁, 담소연, 찬호, 송소걸 등이 아래층에 모여 있다고 생각하니 설레었다.

자신의 성장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살마, 요향, 드라쿠, 팽풍궐(彭風厥) 등을 겪으며 성장한 자신을 되돌아봤다.

생각이 무공으로 이어지자 천애랑은 명상(冥想)을 하고 싶은 욕구가 확 올라왔다.

“참아야지.”

천애랑은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머릿속을 표류하는 지난 경험들을 복기하며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자신을 걱정하고 기다리는 이들을 떠올리니 마냥 그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다음에 하면 되지.”

송소걸이 이 말을 들었다면 뒷목을 부여잡고 또 재수 없는 소리 한다며 한바탕 잔소리를 하겠지만 천애랑은 쉽게 생각했다.

천애랑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삐걱. 삐걱.

일정한 박자로 나무발판의 소리가 이어질 때마다 천애랑의 설렘도 커져갔다.

천애랑이 내려갈 나무계단이 가까워지자 아래층의 대화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아. 천 소협이 깨어난 게 그렇게 좋으냐.”

“무, 무슨 소리예요?!”

“누가 보더라도 지금 네 표정은 ‘행복’이라고 써있다고 할 것이다.”

“유후~ 역시 우리 형님이네요.”

“아니! 송 소협도 저를 놀리시는 건가요?!”

“워워!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도 지금 담 소저와 같은 마음, 같은 표정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찬호 형님?”

“맞는 말이다. 그나저나 애랑 이 녀석은 언제 내려오는 거야? 혹시 다시 쓰러진 거 아니야?”

“헉! 설마요? 담 소저. 애랑 형님이 완전 깨어났다고 하지 않았나요?”

“예. 맞아요. 매우…… 건강해 보였거든요. 제가 다시 올라가서 확인해 볼까요?”

그때 천애랑이 계단 난간을 잡으며 천천히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보자 천애랑은 절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형님!”

“왔냐?”

송소걸과 찬호가 천애랑을 보며 반색을 했다. 담대혁과 담소연 또한 마찬가지였다.

“천 소협, 오랜만입니다.”

“호호.”

천애랑은 자신을 걱정하고 기다려준 이들을 보며 반가운 인사를 했다.

“다들 반갑네요. 아~ 죽을 뻔했지 뭡니까.”

천애랑의 너스레에 담대혁과 담소연이 서로를 보며 킥킥거렸다.

그리고 찬호는 담담히 미소를, 송소걸은 기가 찬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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