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41화
절대고수의 이기어부술을 중간에 가로챌 가능성을 무림인들에게 묻는다면 대부분은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천애랑은 회전하는 초월의 박자에 맞춰서 손을 뻗은 후 초월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초월의 회전방향 그대로 몸을 돌리며 팽풍궐을 향해 날렸다.
“하압!”
회전하던 힘에 더욱 힘을 받아서 날아가는 초월은 가공할 속도로 팽풍궐을 향해 날아갔다.
“크윽!”
팽풍궐은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어깨에 공격을 허용했다.
팽풍궐은 어깨에 꽂힌 자신의 애병(愛兵)을 쳐다보지도 않고 만월을 휘둘렀다.
천애랑은 그의 공격에서 필살의 의지가 느껴졌다. 왠지 저 의지가 팽풍궐의 인생을 말하는 것 같았다.
꽈아아앙---!
천애랑은 이장 안에 들어오는 만월을 완벽하게 느끼고 초월과 마찬가지로 제압하려 했다.
그러나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다.
“쿨럭!”
천애랑이 피를 토했다.
초월과 비교할 수 없을 강기를 머금은 만월을 되치기 하는 것엔 성공했으나 그 기운을 완벽히 제압하지 못한 탓에 그대로 강기와 충돌해버렸다.
천애랑은 자신의 몸에 점점 한계가 찾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끊임없이 순환하는 대자연의 기도 만능이 아닌 듯 그 순환이 더뎌졌다.
새로운 감각을 얻기 위한 부작용 탓인지 천애랑의 왼쪽 눈으로 피가 흘러내렸다.
입안은 계속 올라오는 핏물 때문에 한없이 비릿했다.
천애랑은 흐릿한 시야로 팽풍궐을 확인했다.
그는 어깨의 초월을 무심하게 뽑고선 바닥에 떨어진 만월을 줍고 있었다.
허공섭물로 무기를 줍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그도 많은 내력을 소모했음을 말하는 듯했지만 그뿐이었다.
팽풍궐의 눈빛이 더욱 생기 넘치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후욱. 후욱. 후우우---
천애랑은 운기조식을 하듯 호흡을 진정시키며 기의 흐름을 다독였다.
아마 최후의 일격이 될 것 같았다.
톡. 톡.
그때 천애랑의 고운 콧잔등에 빗방울이 떨어졌다.
천애랑은 하늘을 보았다.
투두둑. 투둑. 투두두- 쏴아---
하늘에서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애랑의 부동심 가득한 눈빛이 팽풍궐을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팽풍궐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엄청난 내공소모와 내상으로 어질했다.
이런 부상과 기분을 느껴본 지가 언젠지 까마득했다. 그래도 그 기분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천애랑이 최후의 일격을 생각했듯 팽풍궐도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팽풍궐은 양손으로 만월과 초월을 잡고 처음 무공을 익혔던 때처럼 진지하게 기수식을 잡았다.
천애랑도 호흡을 정리하고 자연체의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후우…… 갑니다!”
“요호호호! 오게나!”
천애랑은 앞으로 손을 뻗으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게 했다.
그러자 천애랑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푸르게 빛이 났다.
천애랑이 그대로 양팔을 벌렸다.
갑자기 주위가 고요해졌다.
팽풍궐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던 빗방울들이 역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빗방울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더니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수룡(水龍)…….”
팽풍궐이 눈앞의 아름다움에 나지막한 감탄을 뱉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무공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천애랑은 크게 벌린 팔을 박수 치듯 힘차게 모았다.
“흐아아아아압!”
모든 기력을 쏟아부은 큰 기합이었다.
팽풍궐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룡(水龍)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요호호호! 오늘 하나의 무극(武極)을 보는구나! 요호호호!”
팽풍궐이 전신의 내공을 개방했다.
그러자 몸에 닿던 빗방울들이 증기가 되어 안개처럼 흩어졌다.
그리고 양손에 도끼를 든 팽풍궐의 몸이 점점 커지는 듯했다.
삼갑자(三甲子)에 달하는 기운을 한 번에 뽑아내자 무형(無形)의 기운이 유형(有形)화 되었다.
콰지직. 콰지직.
팽풍궐의 발아래 땅이 쩍쩍 갈라졌다.
팽풍궐은 양팔을 자연스럽게 아래로 내렸다.
유형화된 기운이 점점 커지면서 산신(山神)이라도 강림한 것 같았다.
팽풍궐은 미증유(未曾有)의 힘으로 날아오는 수룡(水龍)을 승천시키려는 듯 만월(滿月)과 초월(初月)을 치켜들었다.
부아앙------!
쿠루르르르르르르------!
그날 사람들은 천지가 개벽하는 줄 알았다.
둘의 격돌로 그들의 위에 떠있던 구름에 구멍이 뚫리며 순간적으로 내리던 비도 멈춰버렸다.
쏴아아아아------
이내 비가 다시 쏟아졌다.
스슥.
이때 천애랑은 마지막 남은 기운을 쥐어짜 팽풍궐의 등 뒤로 축지법을 사용했다.
팽풍궐은 뒷목의 잔털들이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천애랑은 완벽하게 뒤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결판을 지으려고 했다.
큰 내공이 필요한 기술들보다 빠르고 은밀한 발경(發勁)을 통해 심장에 타격을 주려 했다.
그리고 어차피 내공이 거의 소진돼 큰 기술은 사용하지도 못했다.
천애랑의 손이 팽풍궐의 심장이 위치한 등에 닿으려는 찰나 의지를 가진 듯 초월이 날아와 천애랑의 손을 막아냈다.
화들짝 놀란 천애랑은 크게 물러났다.
천애랑이 놀란 눈으로 팽풍궐에게 말했다.
“……이것이 그대가 말한 신부합일의 결과인 겁니까?”
팽풍궐이 미소를 지었다.
“요호호… 그렇지. 내 오늘 개안을 했다네. 수룡(水龍)이라니…… 너무나 아름다워 그대로 맞아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네.”
천애랑은 팽풍궐의 말을 들으며 인상을 썼다.
‘더는…… 내공도 체력도 없는데…….’
천애랑의 시야가 흐릿해져갔다.
왼쪽 눈은 피가 들어갔는지 찐득거리며 시야를 방해했고, 막대한 내공 사용의 부작용인지 상단전의 고통과 함께 온몸이 떨려왔다.
체력도 고갈되어 서있는 것조차 힘겨웠다.
“요호호… 좋은 승부였다네. 뭐든 끝은 있는 법. 끝을 내야 하지 않겠나.”
팽풍궐이 천천히 다가왔다.
“요호호.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그대가 가히 최고라고 생각한다네. 그 어린 나이에 이런 경지라니. 초대 천마나 달마라도 그 나이엔 이루지 못했을 경지일 걸세. 그대 덕에 더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가야 할 길을 좀 더 보았어. 그대에게 경의를 표하며 깔끔하게 죽여주겠네.”
천애랑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 내공을 모으려 애썼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휴우… 복수를 이루지도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두고 이렇게 먼저 죽는다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다만 원 없이 싸우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으니 속이 시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니 조심하시죠.”
팽풍궐은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진정 무인이네. 마음 같아서는 내 옆에 두고 싶은데 말이야. 요호홋.”
“으…… 그딴 소리는 하지 마세요. 전 복수도 중요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도 꿈인 사람이란 말입니다.”
“요호호. 나 또한 그랬지만 인생사 뜻대로만 가던가. 이제 진정 끝을 내주겠네. 내 경의를 받아 주시게.”
팽풍궐이 어느새 천애랑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천애랑이 어떻게든 발악을 해보려던 찰나 둘의 사이로 강맹한 기운이 맹렬한 속도로 날아왔다.
콰왕!
부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있던 천애랑은 자신과 팽풍궐 사이에 꽂힌 거대한 화살 하나를 보았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니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거대한 활을 들고 서있었다. 그 주위로 아까 잠시 느꼈던 일단의 무리가 검과 창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팽풍궐이 천애랑을 보며 웃었다.
“하늘이 아직 자네를 살리고 싶나 보네. 요호호. 세상은 참 넓어. 황궁의 쓰레기들도 그 사실을 알아야 할 텐데 말이야. 뭐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겠지. 또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네. 요호호!”
팽풍궐은 자기 할 말만 하고는 화살을 날린 노인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려 사라졌다.
천애랑은 멀어져가는 팽풍궐을 보았다. 그가 사라지자 긴장이 풀리는지 온몸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갔다. 어디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천애랑은 흘러내리듯 정신을 잃었다.
* * *
어두움 속에서 갑작스레 빛을 보면 그 눈부심에 세상이 흐릿하듯 천애랑의 눈앞이 뿌옇게 일었다.
천애랑의 시선에 나무천장이 보였다.
‘…….’
기절했다가 눈을 떴을 때의 인지부조화가 천애랑에게 찾아왔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정상적인 사고(思考)가 가능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천애랑은 잠시간 멍하니 천장만 바라봤다.
살짝 정신이 돌아온 천애랑은 몸을 일으켰다.
“으윽!”
천애랑은 온몸이 질러대는 비명에 고통의 신음을 뱉었다.
불현듯 보인 몸엔 붕대로 감겨 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았다.
“산 건가?”
천애랑은 무지막지했던 팽풍궐과의 결전이 떠올랐다.
악양루에서의 깨달음이 없었다면, 그리고 전투 중에 추가적인 깨달음이 없었더라면 아마 죽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도왔다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재밌는 결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천애랑이 자신의 생각에 실소를 뱉었다.
죽을 뻔했으면서도 그날의 전투가 재밌었다 느끼는 자신이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천애랑은 이대로 그때의 전투를 복기하고 싶었지만 잠시 그 상념을 미뤄두고 주변을 둘러봤다.
고풍스러운 나무로 된 벽이 보였다.
방 가운데에는 딱 봐도 비싸 보이는 다탁(茶桌)이 놓여 있었고, 자신은 매우 푹신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침대의 옆에는 심신(心身)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용도인지 향이 피워져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지 모르즈만 창밖의 하얀 풍경과 차가운 기운이 계절을 짐작게 했다.
“끄응.”
천애랑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긴 어디지? 찬호랑 소걸이가 치료해줬나? 아니, 무사할까?’
천애랑은 천천히 걸어서 방문을 열었다.
드르륵.
방문을 열고는 좌우로 둘러봤다.
건물의 위층 안쪽이었는지 왼쪽은 막혀있었고, 오른쪽으로 길게 난 복도와 그 끝에 있는 계단이 보였다.
천애랑은 천천히 방을 나섰다.
그때, 천애랑은 깨끗한 물과 천을 가지고 계단을 올라오는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여인은 천애랑을 보더니 놀란 듯 물이 들은 그릇을 떨어뜨렸다.
탱그랑.
천애랑과 여인이 한참을 가만히 서서 서로를 바라봤다.
여인의 고운 눈에서 옥루(玉淚)가 뚝뚝 떨어졌다.
천애랑은 멋쩍은 미소와 함께 뒷머리를 긁적였다.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천애랑에게 뛰어왔다.
천애랑은 반가운 마음에 뛰어오는 여인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인은 천애랑에게 뛰어오더니 갑자기 주먹을 뻗었다.
퍽!
“욱!”
앙증맞은 주먹을 복부에 맞은 천애랑은 배를 부여잡으며 여인을 쳐다봤다.
여인은 작은 손으로 계속 천애랑을 때렸다.
“그, 그만. 진짜 아파요.”
천애랑의 고통에 찬 외침에 여인의 손이 멈췄다.
여인은 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서럽게 울었다.
“으엉~! 엉엉~ 끄엉~ 꾸엉!”
“저… 울음소리가 좀…….”
천애랑의 말에 여인이 울다가 천애랑을 째려봤다.
“하, 하…….”
천애랑이 멋쩍게 웃자 여인은 다시 통곡하듯이 울었다.
“흐엉!”
천애랑은 뒷머리를 긁적이고는 주저앉은 여인에게 천천히 다가가 무릎을 낮췄다. 그리고는 살며시 등을 토닥여줬다.
여인은 그런 천애랑에게 안기듯 기대며 더욱 서럽게 울었다.
천애랑의 코로 향긋한 향이 흘러 들어왔다. 인위적으로 만든 향이 아닌 여인의 살 내음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헛!’
몸은 다 죽어도 그곳(?)은 건강한지 천애랑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왜 이러나… 곤란하게.’
천애랑은 엉거주춤 힘든 자세를 유지했다.
그렇지 않아도 부상당한 몸으로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 있으니 천애랑의 온몸에선 그만하라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애랑의 품에서 한참을 울던 여인은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천애랑은 여인이 울음을 멈추자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소연낭자, 오랜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