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39화
폭발에 놀란 병사들이 다급히 몰려들었다.
팽풍궐은 자신의 강기참(罡氣斬)을 이상하게 응축된 내공으로 막아낸 천애랑을 보며 온몸에 흥분이 가득 차올랐다.
그에게 남자의 상징을 잃고 세상을 살아가는 낙이라고는 무공뿐 이었다.
특히나 강한 무공은 자신의 없는 양기도 세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저 젊은 놈이 제법 무공실력이 있는 것 같으니 가지고 놀다가 종래엔 양물을 잘라버리려 했던 유희가 기대 이상이 되었다.
팽풍궐의 피가 끓어올랐다.
천애랑은 흥분하는 팽풍궐의 상태에 한가득 인상을 썼다.
‘뭐, 뭐야? 저 변태 같은 표정은?!’
팽풍궐의 야릇한 표정에 식겁하는 것과는 별개로 천애랑은 자신에게 작은 실망감을 느꼈다.
최대한 많은 내공의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스스로의 시험이 순식간에 깨져버린 것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그래. 첫술에 배부르랴.’
천애랑은 다시금 심기일전했다.
팽풍궐이 웃으면서 강기를 날렸다. 그 기세가 공기를 저릿하게 했다.
천애랑은 안력을 높이고 감각을 최대로 끌어올려 집중했다.
천애랑이 손에 기를 두르고 팽풍궐이 쏘아낸 기운에 살포시 손바닥을 댔다.
그리고 이화접목(移花接木)의 묘리로 부드럽게 방향을 틀었다.
콰앙!
“으악!”
주변에서 창을 들고 경계하던 병사들이 봉변을 당했다.
천애랑은 자신의 손과 그 결과물을 봤다.
“되네?”
이화접목은 내공을 사용하지 못할 때 접하게 된 무공이자 찬호의 조언으로 다듬은 무예였다.
서로 다른 기운을 접붙이듯 하여 그 기운을 유연하게 다룰 수 있는 상승 기예였는데 꽤나 재밌는 무공이었다.
그간엔 내공이 안 실린 검이나 검기(劍氣)까진 맨손으로 받아봤었다.
그러나 강기를 맨손으로 받아치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아서 내공으로는 처음 이화접목을 펼쳐보는 것이었다.
이 방법이라면 내공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맨손으로 하는 것보다 더 섬세한 작업도 가능할 것도 같았다.
“요호호. 재밌구만?”
요상한 웃음소리를 내던 팽풍궐은 갑자기 근처에 있는 병사를 잡아서 냅다 천애랑에게 던졌다.
병사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은 것인지 병사가 날아오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천애랑은 이화접목의 묘리로 날아드는 병사의 방향을 틀었다.
“으아악!”
다만 그 방향이 위인지라 병사는 갑자기 하늘을 날아오르게 됐다.
그 모습에 팽풍궐이 흥이 돋은 듯 허공섭물까지 펼치며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던지기 시작했다.
“요호호호!”
그는 병사들의 생사는 도외시하는지 사람의 몸에 폭탄 같은 기운을 집어넣기도 하고 몸을 회전시켜 던지는 등 별의별 기행을 펼쳤다.
그때마다 천애랑은 극도로 섬세한 이화접목으로 병사들을 날려버렸다.
“으아악! 난다!”
“난다요!”
팽풍궐과 천애랑 주변으로 한바탕 병사들이 날아오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물론 착지는 그들의 몫이었다.
팽풍궐은 이화접목의 상승묘리를 보자 흥이 올랐다. 황궁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무위(武威)였다.
“무당 노친네가 보면 좋아라 하겠군. 오늘 아주 재미지구나. 자, 그럼 진짜로 간다! 요홋!”
팽풍궐은 병사들을 던지는 것을 그만 두고는 천애랑을 향해 발을 굴렀다.
팽풍궐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타났다.
쉬익-!
천애랑은 황급히 철판교(鐵板橋)의 수법으로 몸을 젖혔다.
몸을 젖힌 천애랑의 코앞으로 팽풍궐의 손이 빠르게 지나갔다.
팽풍궐은 몸을 날리듯 뛰어올라 손을 휘둘렀었는데 천애랑이 철판교로 피하는 것을 보고는 천근추로 천애랑을 내려찍었다.
다만 그 방향이 천애랑의 사타구니인 게 문제였다.
천애랑은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을 느꼈다. 심장에 검이 꽂히는 중이어도 이보다 위급함을 느끼진 않을 것 같았다.
“흐아압!”
천애랑은 절대 터질 수 없다는 각오로 뒤로 손을 뻗어 물구나무서듯 자연스럽게 발을 차올렸다.
빠악!
천애랑과 팽풍궐의 발이 충돌하며 굉음을 냈다.
팽풍궐을 밀어내고 다시 자리를 잡은 천애랑은 식은땀을 흘렸다.
‘졸지에 저자의 동지가 될 뻔했다.’
팽풍궐의 아쉬운 표정이 더욱 소름 돋게 했다. 분명 의도였으리라.
“아쉽군.”
아니나 다를까 팽풍궐이 한마디를 했다.
팽풍궐의 말에 천애랑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에이 요향이나 드라쿠보다 더한 놈아! 피 빠는 놈들보다 네가 더 나빠 새꺄!”
천애랑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왜 이리 흥분하는지를. 그것이 당연한 남자의 본능임을.
“요호호!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더욱 내 밑으로 두고 싶구만.”
“팽태감(太監) 어르신!”
잠시의 소강상태에 천부장이 정예 병사들과 함께 다가왔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팽풍궐은 호들갑을 떠는 이들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흥, 너희들은 나서지 말거라. 오랜만에 아주 흥이 돋으니까 말이야. 요호호.”
팽풍궐의 말과 표정을 본 천부장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모두들 오장(15m) 밖으로 물러나라.”
고수들의 싸움 근처에 있으면 진짜로 새우등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팽풍궐은 거리를 벌리는 천부장에게 말했다.
“채 천부장, 입구에 가면 마차에 내 무기가 있을 걸세. 그것을 당장 가져오게.”
채 천부장은 병사들을 불러 명을 내렸다.
“가서 팽태감 어르신의 무기를 가지고 와라.”
하늘 같은 천부장의 명에 병사들이 허겁지겁 뛰어갔다.
“요호호, 그럼 다시 시작해볼까?”
천애랑은 격앙됐던 자신의 마음을 다스렸다. 주위에는 수백의 병사들이 있었지만 오직 팽풍궐만 신경 썼다.
그런 천애랑을 보며 팽풍궐이 더욱 미소를 지었다.
“요호~ 역시 마음에 든단 말이지. 자네 정말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 없는가?”
천애랑의 단호한 거절의 눈빛을 읽었는지 팽풍궐이 아쉬워했다.
그와 동시에 팽풍궐의 신형이 천애랑의 지척에 도달했다.
이내 팽풍궐은 황풍권(皇風拳)을 기수식 없이 펼쳤다.
황풍권(皇風拳)은 황실의 기초 무공 중 하나인 황상권(皇常拳)을 팽풍궐 나름의 방식으로 쓴 것이다.
쉽게 말하면 기마자세로 하는 정권 찌르기일 뿐이지만 화경의 절대고수인 팽풍궐의 방식대로 펼치니 차원이 달랐다.
천애랑은 팽풍궐의 정권에 정직하게 받아치지 않고, 손등을 바깥쪽 회전시키며 그 주먹을 옆으로 치우듯이 밀었다.
정권에 실린 강력한 내기가 천애랑의 손을 저릿하게 만들었으나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의 묘리로 손쉽게 밀어낼 수 있었다.
“요호호? 이화접목에 이어 사량발천근인가? 좋구만!”
천애랑과 팽풍궐은 불과 일척(一尺)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서 공방을 이어갔다.
천애랑은 이화접목과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이 점차 익숙해지면서 팽풍궐의 공격을 점점 수월히 막아내고 있었다.
만약 천애랑이 팽풍궐의 정권을 마주 받아쳤다면 내기의 충돌에 따른 여파가 컸겠지만, 물 흐르듯 비켜내는 방어 덕분에 별다른 내공소모 없이 공방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수십 합의 공방을 이어가는 천애랑과 팽풍궐의 얼굴에 언제부턴가 작은 미소가 자리 잡았다.
팽풍궐은 황실에 들어와 처음 무공을 익힌 뒤로 이렇게 많은 공방을 주고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황궁의 정쟁과 암투란 결정적인 일격필살에 의의가 있는 것이기에 이런 정정당당한 느낌의 공방의 기회는 드물었다.
그런 팽풍궐이 일 갑자의 나이가 훌쩍 넘으며 처음으로 순수한 무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천애랑도 쾌속과 극강의 주먹질을 섬세한 감각과 내공의 운용으로 막아내는 것에 큰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팽풍궐은 거리를 벌리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대한 내공을 실어서 주먹을 내질렀다.
천애랑은 지금의 공격은 현재 수준의 이화접목이나 사량발천근으로는 온전히 막을 수 없음을 직감하고 급히 내기를 모아 마주 주먹을 내질렀다.
우웅------!
두 주먹이 일촌(一寸) 거리에서 내기의 충돌로 마주 멈추자 내기의 공명음이 울려 퍼졌다.
“으윽!”
“아악!”
내공이 약한 병사들이 각혈을 하며 쓰러졌다. 거리를 충분히 벌렸음에도 그 여파가 큰 탓이었다.
천애랑은 팽풍궐의 기운과 줄다리기를 하다가 팽풍궐의 기운 곳곳에서 작은 틈새와 같은 결을 봤다.
천애랑은 그 틈새 사이로 내기를 집어넣었다. 엄청나게 섬세한 내공운용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내공이 없을 때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 덕분인지 생각보다 수월하게 성공할 수 있었다.
카각. 카각.
팽풍궐은 무언가 자신의 권강을 갉아 먹으며 끈끈한 강기의 점성을 흐트러뜨리는 걸 느꼈다.
팽풍궐은 천애랑을 밀어내듯 주먹을 뻗고선 뒤로 잠시 물러났다.
“요허허…….”
뒤로 물러난 팽풍궐은 신기한 듯 자신의 주먹과 천애랑을 보았다.
천애랑은 지금의 현상에 대해 고민했다.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 듯했다.
“대단하고 또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겠네.”
팽풍궐이 순수한 감탄을 했다.
“어찌 저 어린 나이에 저런 심오한 내공운용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가진 내공과 무공에 대한 이해도를 보면 일가(一家)를 세워도 손색이 없는 정도가 아닌가.”
천애랑을 감탄한 팽풍궐은 손을 뻗었다. 팽풍궐의 손이 향하는 곳에는 병사들이 낑낑대며 들고 오는 거대한 도끼가 있었다.
부우웅---
거대한 도끼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가볍게 날아가 팽풍궐의 손에 안착했다.
천애랑은 팽풍궐이 대부(大斧)를 들자 기겁했다.
그동안 수강(手罡)이나 권강(拳罡)을 사용할 때와는 다른 막대한 기세(氣勢)가 팽풍궐에게서 뿜어져 나왔다.
대부(大斧)는 한쪽 날이 기형적으로 거대했고 반대쪽에는 작은 도끼날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중심의 봉 끝이 찌르기 위함인지 도끼날보다 더 위로 뻗어 있었다.
팽풍궐의 무기를 알아본 병사들이 저마다 감탄을 했다.
황실의 삼대기보(奇寶) 중 하나로 도끼날과 그것을 지탱하는 봉은 만년한철(萬年寒鐵)을 오 년간 제련하여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어떠한 것이든 베어내고 절대 부러지지 않으며 날에 피가 묻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천애랑은 대부(大斧)를 손에 쥐고 마치 그 맛을 음미하듯 돌려보는 팽풍궐을 보았다.
무기가 주인을 알아보는 것일까. 마치 반갑다는 듯이 웅웅거리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팽풍궐이 대부를 쥔 순간부터는 작은 허점도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지노(地老)처럼.
‘흐음…….’
난관이었다. 더는 내공을 아낄 상대가 아니었다.
송소걸의 말대로 적당히 치고 빠지고 싶어도 이미 그 때를 놓친 감이 있었다.
구출을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의형제들에게로 간다면 형제들마저 위험하게 만들 수준의 상대였다.
그리고 저 정도의 실력자가 순순히 도망가도록 하지 않을 것이 자명했다.
그렇다면 정면 돌파밖에 답이 없다는 이야긴데 이렇게 생각하니 또 설레는 부분이 있었다.
‘나도 은근 변태의 증상이 있나.’
그간의 일들을 돌이켜보니 강자를 만날 때마다 설레어 했던 것 같았다.
항상 할아버지의 건강 때문에 대련 한번 경험하지 못하고, 자연을 벗 삼아 상상만으로 무공을 수련했던 천애랑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무공을 주고받을 상대를 항상 꿈꿔왔었다.
그런데 세상에 나오니 강자가 넘쳐, 지루할 날이 없어서 좋았다.
복수나 희생, 선과 악 등의 이유들을 차치하고서 강자들과의 전투는 결과적으로 즐거웠다.
지금도 그랬다.
팽풍궐이 더 강해져서 절망감이 드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이 더 차오르는 기분.
두근. 두근.
팽풍궐이 기수식을 잡자 천애랑의 심장이 요동쳤다.
단 한 순간이라도 방심한다면 단번에 목숨을 잃을 수 있음을 직감했기에 눈을 감지도 않고 집중했다.
천애랑은 갑자기 감각이 새롭게 느껴졌다.
최근 극도로 예민했던 감각들이 살아 있는 듯 그 영역을 확장하는 것 같았다.
심장박동에 맞춰 움직이는 피부들, 보이지 않는 기(氣)의 영향에 의해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작은 솜털,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만반의 준비를 하는 자신의 작은 근육들까지.
그리고 대자연의 기가 쉼 없이 호흡 되기 시작했다. 몸의 피로와 상처들이 순식간에 사라져가는 게 느껴졌다.
기존엔 운기조식의 자세를 취해야 대자연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가만히 있어도 수시로 소통하듯 기가 느껴졌다.
온몸에 활력이 돋았다. 그저 온 혈도를 개방하고만 있어도 막대한 기가 소통하니 지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일전의 깨달음으로 도달한 기공 5단계의 효능이었다.
팽풍궐은 갑자기 변한 천애랑의 기도에 놀랐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보법을 밟았다.
천애랑도 그런 팽풍궐을 향해 축지법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거리가 가까워지며 둘은 역사에 남을 전투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