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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37화 (37/200)

기공술사 37화

파오라고 부르는 이동식 몽골막사에 도착하자 백부장이 천애랑을 잠시 대기시키고 막사 안으로 들어가 소리쳤다.

그사이 천애랑은 막사의 외관을 구경했다.

원형의 지붕이 천막들 위에 덮인 모양새였는데, 입구 말고는 바람 하나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았다. 모래바람을 견디기 좋아 보이는 구조였다.

백부장의 호통에 시중을 들기 위해 같은 막사 안에 있던 병사들이 허겁지겁 막사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들은 막사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천애랑을 보고선 단체로 숨을 들이켰다.

“헉!”

“커헉!”

요란스럽게 구는 병사들을 향해 뒤따라 나온 백부장이 또다시 호통을 쳤다.

“이 새끼들이! 당장 일하러 가지 못해?!”

소리 지르는 백부장 때문에 병사들은 황급히 정신을 수습하고 자리를 피했다.

백부장은 그제야 만족했는지 누런 이를 시원스럽게 보이면서 막사 문을 젖히고 섰다.

막사로 들어서려면 천애랑이 백부장의 품에 스치듯 지나가야 하는 모양새였다.

“안으로 드시오. 내가 대 원 황실의 백부장이라 이리 큰 막사를 배정 받는다오. 크하하!”

‘하아… 누가 저놈의 입 냄새 좀…. 방귀인가 방덕인가 그 거지랑 붙여 놓으면 막상막하겠네.’

천애랑은 백부장의 시원한 웃음과 함께 퍼지는 악취에 숨을 참으며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백부장은 자신을 지나치며 풍기는 천애랑의 향취에 코를 벌렁거렸다.

백부장은 온갖 상상을 하며 막사의 문을 꼭 닫았다.

천애랑은 막사 안을 둘러봤다.

급히 설치해서 대충 만들었을 것 같은 생각과는 다르게 상당히 정교했다.

중앙에는 불을 피울 곳이 존재했고, 가장 안쪽엔 상석으로 보이는 자리가 있었다.

백부장은 자연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단면이 잘린 두꺼운 통나무 두 개를 들고 왔다.

그 모양새가 마치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듯했다.

백부장은 통나무 하나를 자신과 가까운 거리에 두고 천애랑에게 권했다.

“여기 앉으시오. 이동을 하다 보니 따로 의자는 없다오. 아!”

앉으려던 백부장은 벌떡 일어나선 구석진 곳으로 갔다. 그리고 하얀 가죽 하나를 들고 왔다.

“크하하! 이건 북쪽에서만 사는 백여우 가죽인데 매우 귀한 것이오. 이것을 탐내는 천부장들이 있을 정도요. 내 그대를 위해 기꺼이 가져왔소. 엉덩이가 차가울 것인데 따숩게 깔고 앉으시오. 크하하하!”

백부장은 말을 하면서 천애랑의 엉덩이를 쳐다봤다.

‘이 새끼를 그냥!’

천애랑은 평소 하지 않던 욕과 욕지기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힘겹게 되삼켰다.

“호호, 고마워요.”

백부장은 천애랑의 미소와 목소리에 황홀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내 정신을 차린 백부장은 나름의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천애랑에게 물었다.

“그래, 도움이 필요하다 했소?”

백부장은 말투도 평소답지 않게 점잔을 뺐다.

천애랑은 최대한 슬픈 표정을 지었다. 드디어 주입식 교육의 산물을 뱉어낼 차례였다.

“예…. 북경에 계신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는 전갈을 받고는 급히 가는 중이었어요.”

천애랑의 슬픈 연기에 백부장은 몹시 가슴이 아파졌다.

평소 여자를 하대하고 냉혈한으로서 병사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인 백부장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순정소설의 자상한 남자처럼 여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능력이 생긴 듯했다.

그만큼 천애랑의 미모의 파급효과는 엄청났다.

“크흑! 아버님께서 위독하시단 말이오?”

백부장의 ‘아버님’을 말하는 어투가 마치 장인어른을 부르는 듯한 것은 착각일까. 천애랑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백부장이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는 천애랑의 대답을 기다리자 천애랑이 재빨리 슬픈 표정을 만들었다.

“흐윽… 예. 그래서 급히 북경에 가야 하는데 마차를 몰던 분이 마차와 함께 절벽으로 떨어진 바람에 그만……. 이리저리 살아남아 길을 헤매는 중이었는데 다행히도 이곳을 발견하고 도움을 구하러 온 것입니다.”

천애랑은 소맷자락으로 눈을 찍었다.

“크허… 그랬단 말이오? 마음의 상처가 컸겠구려. 하지만 걱정 마시오. 내가 다 도와주겠소! 크하하하하!”

천애랑은 황당한 표정으로 백부장을 봤다.

‘이 어설픈 설정이 먹힌다고…?’

천애랑은 감동한 척, 백부장의 가슴에 몸을 기대듯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하아…….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백부장은 자신의 가슴팍으로 고운 머리를 기울이는 천애랑을 보며 헤벌쭉 웃으며 안기 편하도록 팔을 벌렸다.

백부장은 눈앞의 미녀를 도와줌으로써 자신에게 벌어질 달콤한 미래를 상상하며 흥분감에 젖어들었다.

“컥!”

하지만 백부장의 빛나는 미래가 벌써 찾아온 것인지 눈앞에 별이 가득했다.

“커…억.”

백부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숙이던 여인이 갑자기 자신의 목젖을 강하게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음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내공을 일으키거나 몸을 움직이려 하면 더욱 강하게 쥐는 손가락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천애랑의 슬픈 눈빛이 한순간에 싸늘하게 변하면서 백부장의 눈에 파고들었다.

백부장은 갑자기 돌변한 눈앞의 미녀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다.

천애랑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

백부장은 갑자기 남자 목소리로 변한 천애랑을 보며 멍하게 있었다,

“커어억!!”

“내 말에 눈을 깜빡이는 걸로 대답한다. 알았어?”

백부장의 목젖을 쥐고 있는 천애랑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자 백부장이 황급히 눈을 깜빡였다.

“그래, 잘했어.”

‘찬호는 이런 것을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는 거야. 상당히 효과적인데?’

찬호를 잠시 떠올린 천애랑은 백부장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동정호에 갔었지?”

백부장이 행동을 미적거리자 천애랑의 손가락에 힘이 더 들어갔다.

목젖이 부서지겠다 싶은 고통에 백부장은 다급히 눈을 깜빡였다.

“망설이지 말고 바로 반응해. 아니면 눈을 좌우로 굴리고.”

깜빡깜빡.

“좋아, 그럼 동정호에서 머물 때 표국 하나를 약탈한 적이 있었나? 정훈표국인가 하는 이름이었을 거야.”

깜빡.

“그때 표국의 사람들을 죽이고 납치를 했나?”

백부장의 눈빛에 고민이 가득했다.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백부장의 눈동자가 슬며시 좌우로 움직이려 했다.

“컥!”

하지만 천애랑의 거친 손길에 백부장이 다급히 눈을 깜빡였다.

“거짓말을 하면 바로 죽을 줄 알아. 이미 눈빛에서 답이 나오니까 말이야. 그리고 다 알고 물어보는 거다.”

깜빡깜빡.

“그때 얼굴이 매우 닮은 형제들도 있었나?”

백부장은 천애랑의 의도를 알 수 없었지만 필사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럼 그들의 위치와 다른 백부장, 천부장이 있는 곳은 어디지?”

백부장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천애랑은 백부장의 혈을 짚고선 목젖에서 손가락을 뗐다.

백부장은 몸을 움직이거나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집힌 혈도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망연자실했다.

스릉.

천애랑은 백부장이 옆에 세워놓은 검을 뽑아서 백부장의 목에 갖다 대었다.

“아혈을 풀어줄 거야. 허튼짓 하면 바로 죽는다.”

천애랑은 백부장의 아혈만 풀었다.

“다시 묻지. 백부장들과 천부장이 있는 곳을 상세히 말해봐.”

백부장은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연신 눈을 깜빡였다.

“……아혈 풀었어. 그만 깜빡이고 묻는 질문에나 잘 대답해.”

천애랑은 품에서 천조각을 하나 꺼내더니 펼쳤다.

찬호가 정찰을 하고 송소걸이 나름의 추측으로 그려낸 병영의 지도였다.

“여기다가 위치 표시해 봐.”

백부장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왜… 그러는 것이오 낭자. 난 그저 그대를 도우려고…… 컥!”

천애랑이 백부장의 배를 강하게 걷어찼다.

몸이 굳어 있는 백부장은 목석마냥 뒤로 넘어졌다.

“낭자가 아니라 남자다 이 새꺄! 확 그냥 죽여 버릴라.”

천애랑은 씩씩거리며 백부장을 다시 끌고 왔다.

“괜히 송소걸 작전대로 한댔다가 욕만 느네. 쩝.”

툭. 툭.

천애랑은 백부장의 혈을 조율했다.

“읍읍?”

“아혈(啞穴)을 다시 짚었어. 대신 몸은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 그 지도에 표시를 해봐.”

백부장은 재빠르게 내공을 일으켜 천애랑에게서 검을 빼앗은 뒤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몸을 꿈틀댔다.

푸욱-

천애랑이 무심한 눈빛으로 백부장의 허벅지를 찔렀다.

“으읍읍읍!”

백부장이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천애랑이 그런 백부장의 눈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이봐, 내가 말이야 이상하게도 악인이라 생각되는 자를 죽이는 것에 대해서 크게 거리낌이 없더라고. 허튼수작 부리면 반대 다리도 찌른다?”

천애랑은 왠지 자신이 악당이 되는 기분을 느꼈지만 애써 무시했다.

백부장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혈이 짚여 말을 하지 못하는 백부장은 황급히 천에 그려진 지도에 자신의 허벅지에서 흐르는 피로 표시를 시작했다.

이곳저곳 열 군데를 표시한 백부장은 두려운 눈빛으로 천애랑을 바라봤다.

천애랑은 가만히 지도를 보며 표시된 곳들을 숙지하고는 다시 품에 넣었다.

“가거들랑 너희들이 죄 없이 죽인 이들의 원혼에게 사죄를 하길 바란다.”

천애랑은 백부장의 심장에 손을 대고는 강하게 기운을 쏘아냈다.

부욱!

북 터지는 소리가 나면서 백부장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천애랑은 송소걸의 조언대로 백부장을 끌어서 막사 가장 안쪽에 눕혔다.

그리고는 백여우 가죽으로 바닥에 흘린 피를 덮고, 백부장의 허벅지엔 아무 거적이나 주워서 이불처럼 덮어 주었다.

마치 잠이 든 것 같은 백부장의 모습을 확인한 천애랑은 막사 밖으로 조용히 나와서 이동했다.

*  *  *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까요?”

송소걸이 초조한 눈빛으로 천애랑이 들어간 병영을 바라봤다.

“글쎄다.”

찬호 또한 다소 걱정스런 눈빛으로 송소걸과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혹시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진작 소란스러워졌어야 하는데 말이죠.”

“그만큼 은밀하게 처리하고 있다는 말 아닐까?”

“혹시나 잡히거나 그런 것은 아니겠죠?”

송소걸의 걱정에 찬호의 얼굴도 심각해졌다.

찬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쉽게 당하진 않을 거다.”

그때였다.

갑자기 송소걸이 화들짝 놀라며 찬호를 불렀다.

“헉! 형님!”

찬호도 송소걸과 똑같은 광경을 보고 있기에 똑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병영 중심에서 사람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허공답보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타의에 의해 날려가고 있었다.

“저, 저게 뭐예요?”

송소걸의 놀람에 찬호는 내공으로 안력을 높였다.

병영 한가운데서 천애랑이 수많은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 보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병사들을 천애랑에게 던지고 천애랑은 태극권처럼 손짓해 그들을 날려버리고 있었다.

어찌나 자연스러운 손짓인지 무당파의 장삼봉이 환생했다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미친!”

찬호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는 몸을 날렸다. 송소걸도 당황하며 찬호의 뒤를 빠르게 쫓았다.

*  *  *

“요호호!”

“그놈의 요상한 웃음 좀 그만해!”

천애랑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내시와 그 주위를 둘러봤다.

온 땅이 사람으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사람에 의해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천애랑은 호흡을 정리하며 상황이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했다.

*  *  *

“흐음, 그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이리로 안내를 해줬다고?”

천부장이 천애랑을 살폈다.

“예.”

“여인의 몸으로 고생이 많았겠구만 그래.”

“걱정 감사합니다.”

천애랑은 부끄러운 척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앞서 10명의 백부장을 죽이면서 연기가 일취월장 늘어난 상태였다.

점점 자연스러워지는 연기에 천애랑 스스로도 점차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천애랑의 교태에 천부장은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움이라…. 당연히 도와야지. 마침 잘 됐구만.”

천애랑이 천부장의 미소에 의아함을 느끼는 찰나 막사 문이 열리며 안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 남자의 복장과 분위기가 매우 묘했다.

얼굴에 주름은 많은데 수염이 매끈하게 하나도 없었고 눈이 작아 눈빛을 읽기가 어려웠다.

또한 원(元)이라는 글자가 가슴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목소리가 이상했다.

“채 천부장, 오랜만일세.”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의 인사에 천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어르신 오랜만입니다. 오신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당연히 찾아뵈려 했는데 먼저 찾아 주시니 황송합니다.”

천부장의 공손한 인사에 남자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있지도 않는 턱수염을 쓰다듬는 시늉을 했다.

“자넨 여전히 예의가 바르구만. 주제를 잘 알아. 내 그래서 자네를 귀히 여기는 것이지.”

천부장은 더욱 허리를 숙이며 답을 했다.

“세상의 평안이 모두 어르신의 공덕이지 않습니까. 그 덕에 제가 평안할 수 있는 것이니 항상 어르신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요호호호, 자네의 입이 한층 경지에 오른 것 같구만. 한데 이 자는……?”

“아! 이번에 저희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 있다며 온 여인입니다.”

남자는 천천히 천애랑을 훑어봤다.

천부장의 넓은 막사 안에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천부장은 남자의 표정이 좋지 못하자 조심히 물었다.

“어르신… 무슨 문제라도…?”

“여인이 확실한가?”

“예? 그게 무슨……?”

천부장이 놀란 눈을 하자 남자가 천부장을 지그시 쳐다봤다.

“이봐 채 천부장. 내가 누군가?”

천부장은 자신이 줄을 대고 있는 어르신의 알 수 없는 반응에 한껏 몸을 움츠리며 대답을 했다.

“불철주야 황실의 수호에 수고하시는 팽 태감 어르신이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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