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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34화 (34/200)

기공술사 34화

천애랑은 오랜만에 내공을 느꼈다.

‘내기가 느껴진다.’

그동안은 내기의 유무를 파악할 수도 없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웅웅웅웅---

아까처럼 검명이 일었다.

‘흠? 이 검이 원인인 건가?’

검이 우는 것과 함께 내기가 움직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뭐가 됐든 좋았다. 천애랑은 이 기회를 놓칠세라 운기조식에 집중했다. 오랜만의 운기조식이었지만 빠르게 심상으로 빠져들었다.

처음 할아버지에게 운기조식과 내공에 대해 배움을 얻은 후부터 백두산을 하산하며 담가 남매와 마교를 만나고 혈교와 지노를 지나 드라쿠와의 전투까지 빠르게 이어졌다.

그리고 의각원의 인연들을 만나고 지금의 의형제들을 만나고 함께 하기까지, 천애랑은 수많은 희노애락을 느꼈다.

천애랑은 세상에 나와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다.

좋은 인연과 그 속에서의 정, 신의, 우애 등을 느끼며 세상엔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많이 사라졌다.

그간 여러 전투를 치렀지만 대부분은 마교에 대한 복수라는 개인적 이유가 강했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구함을 받고 고마워하는 것은 낮은 가치의 부차적 선물일 뿐이었다.

그러나 일장 형제들에게 선의를 베풀고, 의각원의 화란을 치료하고, 녹림 산적들로부터 짐꾼들을 지키고, 의형제들을 만나 생활하면서 생각이 많이 변해갔다.

물론 행동이유에 개인적 욕망이 섞일 수는 있어도 예전보단 많은 비율로 타인을 위해서 힘을 사용하고 있었다.

천애랑의 심상은 자연스럽게 힘에 대한 주제로 이어졌다.

힘이란 무엇일까? 개인의 재능일까? 아니면 하늘이 준 능력일까? 축복일까? 재앙일까?

무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왜 우리는 무공을 수련하는 것일까?

그저 자신의 영달을 위한 수단인 것인가? 왜 우리는 협객(俠客)을 그렇게 귀히 여기는 것일까? 협객이 귀해야만 했던 단어였던가?

내공이란 무엇일까? 정말 인간의 노력만으로 이루어낸 결과물일까? 혹시나 하늘이 우리에게 그 내공의 쓰임에 대한 소명을 주는 것은 아닐까.

천애랑은 끝없이 이어지는 화두 끝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공에 대해서 차별을 두지 않고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우웅웅웅---!

검명이 더욱 크게 방안을 울렸다.

천애랑은 지금까지 내공이라는 것이 온전히 본인을 위해 쓰일 수 있는 오직 본인만의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즉, 찬호의 내공은 찬호의 것, 소걸의 내공은 소걸의 것 각자의 내공은 각자의 것이라는 생각이 당연했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해보니 우리 모두가 같은 자연 속에서 흡기(吸氣)하고 축기(畜氣)하여 내공을 쌓았음에도 왜 서로 다른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놓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대로 받아들이자.’

웅웅웅웅---!

천애랑은 스스로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공을 잃은 그대로, 가끔은 화도 내는 자신을, 기쁠 땐 웃는 자신을, 때로는 누군가와 형제들을 위해 협을 행하는 자신을, 그리고 복수를 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까지도.

웅웅웅웅웅------!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시작한 천애랑은 갑자기 온몸이 개방되면서 대자연의 기운이 부드럽게 스며들기 시작함을 느꼈다.

어디에 그리 꼭꼭 숨어 있었던 건지 알 수 없던 적은 양의 내공이 단전 속에서 빠져나오며 전신을 휘감았다.

단전의 작은 내공은 대자연 기와 만나 부끄러운 듯 스쳐 흐르다가 서서히 경계를 허물고 섞이기 시작했다.

하단전, 중단전, 상단전, 그리고 온몸의 개방까지. 막대한 쾌감이 전신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천애랑의 가부좌 튼 몸이 서서히 떠올랐다.

*  *  *

다음날 아침.

“응?!”

“애랑 형님……? 그 검은 뭐에요?”

천애랑은 별실 앞에서 만난 찬호와 송소걸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았다. 그 모습에 천애랑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게 귀물은 귀물이었나 보더라고. 달빛에 비추고 내기에 감응하더니 이렇게 본 모습을 드러냈네?”

“애랑 자네의 기도가 달라진 듯한데 이와 관련이 있어?”

찬호의 질문에 천애랑은 때마침 흩날리는 나뭇잎을 ‘끌어오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아아---

천애랑의 시선에 있는 나뭇잎이 흔들거리더니 작은 바람에 흩날리듯 천애랑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생각, 과정, 결과라는 일련의 순서가 하나의 점이 된 듯 어긋남 없이 부드럽게 이루어졌다.

송소걸과 찬호가 깜짝 놀라했다.

“헉? 형님. 허공섭물을 하신 겁니까?”

“대단하군. 애랑. 드디어 내공을 회복한 건가?”

“그렇다고 보는 게 맞겠지.”

두 형제의 놀람에 천애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송소걸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 그게 무슨 애매한 표현입니까 형님.”

“그게 참.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천애랑이 멋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작은 깨달음이 있었어. 그 후에 몸을 점검하니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 쓰는 것이 아니라 대자연의 기를 그냥 이용하는 느낌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아직 완벽히 내 상태를 수습한 것이 아닌지라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네.”

천애랑은 현재 운기를 하지 않아도 대자연의 기와 수시로 소통하는 기공 5단계에 들어섰음을 느꼈다.

다만 이 단계에 대한 것을 형제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찾질 못하는 중이었다.

대신에 어젯밤 있었던 쌍고검의 변화와 그 깨달음에 대해서 공유를 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찬호가 갑자기 가부좌를 틀고 깊은 심상에 빠져들자 천애랑과 송소걸은 눈치껏 찬호와 거리를 벌려 호법을 섰다.

다행히도 이곳 별실 이용객은 의형제뿐이었기에 입구만 제한시키면 다가올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찬호와 적절한 거리를 벌렸다 생각한 송소걸이 조용한 호들갑을 떨었다.

“형님! 대단하세요!”

“뭐가?”

천애랑이 유난을 떠는 송소걸의 표정에 고개를 갸웃했다.

송소걸은 상기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현인은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는다.’라더니 딱 형님이네요.”

“그게 뭔 소리야?”

“아니, 어떤 무인이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다고 그 깨달음을 이렇게 공유를 해줘요?”

천애랑이 고개를 모로 했다.

“그게 왜?”

송소걸은 순수한 천애랑이 재밌는지 킥킥 웃으며 말을 했다.

“원래 무림인들은 자신의 깨달음을 목숨보다 귀하게 여겨요. 그래서 같은 사문 내에서도 서로 쉬쉬하는 경우도 있는걸요?”

“그래? 그런데 너와 찬호는 내 소중한 형제잖아.”

송소걸이 움찔하면서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형님……. 그래도 말이죠. 보통의 무림고수들은 이렇게 깨달음을 공유하지 않아요. 오죽하면 무림 고수의 깨달음 즉, 심득을 얻기 위해 목숨까지도 걸까요?”

“응? 깨달음이야 또 얻으면 되지 그런 것을 얻자고, 심지어 남의 깨달음을 얻자고 목숨을 건단 말이야?”

천애랑의 말에 송소걸의 입가에 팔자주름이 생기면서 어이없는 표정을 만들어냈다.

“예에엥? 또 얻으면 되지? 이 형님 보소. 무인에게 깨달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아요? 그것도 자신의 경지를 높이는 깨달음이라면 말이죠!”

천애랑은 침까지 튀기며 열을 내는 송소걸을 진정시켰다.

“아, 알았어. 내가 뭔가를 잘못한 건가?”

“이런! 앞으로 다른 무인들 앞에서 ‘깨달음 따위 잠시 명상하면 오는 것일 뿐.’ 이딴 개소리는 하지 말아요. 무공의 고하와 상관없이 몰매 맞아 죽을 재수 없는 말이니까.”

송소걸은 과장되게 천애랑의 표정을 따라하며 말을 했다.

천애랑은 그런 송소걸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하하 알았어. 조심할게.”

그리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리고 내 표정이 그렇게 재수 없었냐?”

송소걸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괜찮아요. 형님은 잘생겨서 그 자체가 재수 없거든요.”

천애랑의 눈썹이 들썩였다.

“뭐?”

송소걸이 얼굴은 가만히 있는 채 눈알만 옆으로 돌리고는 모르는 척을 했다.

천애랑과 송소걸이 조용히 담소를 나눈 지 한 식경(30분)이 지나자 찬호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이에 송소걸과 천애랑이 축하를 했다.

“찬호 형님. 축하드려요.”

“축하해.”

두 사람의 축하를 받은 찬호가 순수하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찬호는 손바닥을 탁탁 털면서 말을 이었다.

“애랑의 회복과 너희들 축복의 기념으로 오늘은 내가 맛있는 것을 쏘지! 먹고 싶은 것은 말만 하라고!”

찬호의 말에 송소걸이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대답을 했다.

“오예! 형님! 이곳 동정호의 생선머리 요리가 일품이래요.”

“좋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오늘도 먹고 마시고 놀자!”

“좋다!”

“좋아요!”

*  *  *

의형제는 악양루에서 벗어나 ‘평화객잔’이라는 간판의 객잔으로 찾아갔다.

어젯밤 술자리에서 사람들이 생선머리 요리는 평화객잔이 최고라고 했었기 때문이었다.

객잔은 2층으로 이루어진 적당한 크기였는데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았다.

“어서옵쇼! 어두일미(魚頭一味) 평화객잔입니다. 생선요리, 술, 기본식사까지 다 가능합니다. 뭐로 하실까요?”

일행이 객잔에 들어섬과 동시에 점소이가 일사분란하게 안내하고 주문을 받았다.

일행은 민물생선머리 요리 전 종류와 술을 시켰다. 과한 감이 없잖아 있었지만 기분 좋은 찬호가 호탕하게 시킨 주문이었다.

주문한 음식들은 순차적으로 빠르게 나왔는데 구이, 찜, 튀김, 순한맛, 매운맛 등 미각의 다양함을 충족시켜주었다.

“이야~ 이거 동정호에서 평생 형님들과 호의호식하며 살까 봐요. 풍경 좋아, 음식 맛있어, 사람들도 여유로워. 좋지 않아요?”

송소걸이 경극 배우처럼 팔을 휘적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천애랑과 찬호도 공감을 했다.

“그러게 말이다. 우리 막내 말 듣고 여기 와보길 정말 잘한 것 같다.”

“간혹 쓸 만할 때가 있단 말이지.”

송소걸이 어깨를 꼬며 찬호에게 말했다.

“헤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속으론 엄청 고맙죠? 막 동생이 사랑스럽죠?”

송소걸의 넉살에 찬호가 피식 웃으며 술을 마셨다.

찬호가 비어있는 형제들의 잔에 술을 채우고 건배를 하려는 때, 천애랑의 시선이 객잔 밖에 붙잡혔다.

천애랑이 벌떡 일어났다.

“애랑 형님. 소피 마려우세요?”

송소걸의 말에도 천애랑은 대답하지 않고 안력을 집중했다. 그리고 형제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예전에 작은 인연이 있던 자가 있었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아. 옷에 피도 묻어 있고….”

천애랑은 미안한 표정으로 형제들을 둘러봤는데, 찬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그래? 그러면 가서 확인해 보자.”

“그래요, 형님.”

송소걸도 동조를 했다.

“…그래도 될까?”

천애랑은 괜히 자신 때문에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망칠까 봐 조심스러웠다.

송소걸이 피식 웃었다.

“에헤이~ 또, 또 세상 걱정 혼자 다 짊어진 늙은이마냥 행동하신다.”

“그래 애랑. 이런 상황이 뭐 어려운 거라고 그리 끙끙 앓아. 가자!”

찬호 또한 천애랑을 독려하자 송소걸이 재빨리 찬호에게 말했다.

“찬호 형님. 빨리 계산하고 오세요!”

찬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게 할 거다만 쓰읍. 묘하게 기분이 나쁘네?”

“에이~ 또 뭐가요~. 얼른 다녀오세요. 가요! 애랑 형님!”

객잔에서 빠져나온 천애랑은 찾고자 하는 이를 빠르게 뒤쫓았다.

얼마 가지 않아 골목에서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봐요!”

천애랑의 부름에 한 남자가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는 화들짝 놀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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