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33화
적벽 인근, 통산(通山)과 가까운 작은 마을의 객잔.
석양을 등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오늘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두 명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객잔 전체로 번져 순식간에 객잔이 시끌벅적해졌다.
“자네 글쎄 산이 무너졌다는 소식 들었는가?”
“나도 그 소식 들었네.”
“어? 자네도? 나도! 그런데 산에서 물난리가 났다던데?”
“맞네. 물난리가 나서 적벽에 모여 있던 무림인들이 봉변을 당했다더만?”
“에끼 이 사람들아. 무슨 산이 무너지고 심지어 산에서 물난리가 나? 벌써 취했나?”
“뭐야? 자넨 못 들었는가? 지금 적벽 인근 마을들은 이 소식에 난리가 났다니까? 진짜야!”
조용한 동네에 불어 닥친 새로운 소동에 마을 사람들은 신난 듯 떠들었다.
그 모습을 객잔 구석에 있는 세 명의 남자가 조용히 듣고 있었다.
“형님들 저거 우리 얘기 아닙니까?”
“글쎄다.”
“동굴이나 무너졌음 모를까 소문이 너무 과한데?”
송소걸, 찬호, 천애랑 셋은 사람들이 연신 떠드는 소문을 듣고선 왠지 자신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산이 무너지고 호수의 물이 넘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무림인들이 다쳤다는 이야기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글쎄 제갈세가가 비동의 진법을 해체하다가 그 봉변을 당한 바람에 상대적으로 부상이 심하다는구만.”
“그래그래. 그 때문인지 제갈세가가 앞장서서 사건의 원흉을 찾고 있다 들었네.”
객잔 사람들의 지금 말을 들은 의형제는 조용히 입을 닫았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도 없을 뿐더러 가만히만 있으면 자연재해로 넘어가리라 싶었다.
객잔 안 사람들의 이야기에 한참 귀를 기울이던 송소걸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만두학살극에 입을 떡 벌렸다.
“아니, 애랑 형님. 만두가 그렇게 맛있어요?”
송소걸이 천애랑을 질린 표정으로 봤다. 어느새 천애랑 곁에 비어있는 만두판이 8개나 쌓여있었기 때문이다.
천애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새로이 만두를 주문했다.
그 모습에 찬호도 고개를 저었다.
“많이 먹는 거야 건강한 무림인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 쳐도 같은 음식을 저리 광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나도 좀 신기한데.”
“그러니까요.”
송소걸 또한 고개를 저으며 차를 입에 갖다 댔다.
호록.
배도 부르고 따뜻한 차가 들어가자 입과 몸이 깔끔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물건은 네가 처분해서 온다고?”
찬호도 차를 홀짝이며 송소걸에게 조용히 물었다.
송소걸이 입을 가리듯이 차를 마시며 조용히 답변했다.
“네. 이런 작은 마을에서 이 정도의 물건을 소화할 사람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소란스러울 때 이목이 집중되면 피곤할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하게?”
송소걸이 으스대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가 왜 호북(湖北)이겠어요 형님?”
“또 선문답하지 말고.”
찬호의 찬 반응에 송소걸이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동정호(洞庭湖)의 북쪽이라서 호북 아닙니까. 그러니 여기까지 왔으면 당연 동정호는 가봐야죠! 모든 부(富)가 모이는 곳이니 물건을 조용히 처리하기에도 좋을 거예요. 간 김에 동정호랑 악양루 구경도 하고 말이죠.”
“찬호야 우리 막내 대단하지 않아? 모르는 게 없어.”
천애랑은 만두를 입 안 가득 씹으면서 송소걸을 칭찬했다.
이에 송소걸이 헤실헤실 웃었다.
“괜찮군.”
찬호도 꽤 괜찮다 생각이 드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 * *
동정호(洞庭湖)의 악양루.
강남 3대 누각 중 하나로써 많은 유명 인사들이 다녀간 곳이다.
옛 삼국시대 오나라의 노숙이 수군의 훈련을 참관하기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3층 누각이었지만 이제는 문학적 의미가 많아진 명소였다.
이곳 악양루 3층에 어렵사리 자리를 잡은 천애랑 일행은 창을 통해서 그 유명한 동정호를 구경했다.
어마어마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었기에 동정호가 가장 잘 보이고 유서가 깊은 악양루는 항시 문전성시였었다.
어느 관광지나 마찬가지이지만 선호되는 자리들이 있기 마련이었고 이곳 동정호의 악양루는 당연히 동정호가 보이는 창가 자리가 명당이었다.
그래서 항시 자리는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었고 그 예약비용 또한 만만치 않았다.
심지어 누각의 최상층인 3층의 창가 자리는 단순히 돈이 많다고 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유일하게 빨리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관리와의 관계였다.
이곳 악양루는 다른 주루와는 다르게 관청에서 수익사업으로 민간의탁 관리를 하는 곳이었기에 관할 관청의 고위 관리와 관계가 있는 이들은 보다 손쉽게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 자리에 천애랑과 찬호, 송소걸이 기분 좋게 둘러앉아 동정호의 바람을 느끼며 술잔을 기울였다.
“우리 막내는 대체 못하는 게 뭐냐?! 하하하!”
“그래. 덕분에 이 유명한 곳의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보는군.”
평소 칭찬을 잘하는 천애랑은 물론이고 다소 퉁명스럽게 대하던 찬호조차 이곳 자리를 구한 송소걸을 칭찬했다.
송소걸이 기분 좋게 형들의 칭찬을 만끽했다.
“그럼요. 엄청 고생했다고요? 제가 친분이 있는 하북 천진의 고위관리가 이곳 악양 현령과 가족관계인 게 큰 도움이 됐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돈도 썼지만요. 하지만 뭐 어때요? 돈도 많이 벌었겠다. 우리가 언제 이곳에 또 올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송소걸이 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두보주(酒)라는 이곳에서 유명한 술이었다. 옛 시인 두보가 악양루에 올라 동정호를 보며 마신 술을 기념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고 했다.
“형님들~ 형님들 만나고 제 인생이 아주 재밌습니다~”
송소걸이 세상을 만끽하듯 두 팔을 활짝 펼치고 말했다.
이에 천애랑과 찬호도 흡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소걸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세상이 지금처럼만 행복하고 우리도 지금처럼만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흠흠. 이하동문.”
송소걸이 벌떡 자리에 일어서더니 술잔을 높이 들고 크게 입에 털어 넣었다.
“크으~. 기분 좋다~.”
흥이 돋은 송소걸은 운율을 입혀 두보의 시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오래 전에 동정호에 대하여 들었건만
오늘에야 악양루에 오르네.
오나라와 초나라가 동남으로 갈라져 있고
하늘과 땅이 밤낮 물 위에 떠있네.
친한 친구로부터는 편지 한 장 없고
늙어가며 가진 것은 외로운 배 한 척
싸움터의 말이 아직 북쪽에 있어
누각 난간에 기대어 눈물만 흘리노라.
노래하듯 시를 읊는 송소걸의 목소리가 객잔 안을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의도한지는 모르겠지만 음공처럼 살짝살짝 내공이 섞여 듣는 이를 빨아들였다.
송소걸의 목소리는 잔잔한 호수의 산들바람처럼 시원하고 맑은 느낌이었으나, 그에 대비되는 시의 무게감과의 조화는 묘하게 가슴을 간지럽히는 느낌을 주었다.
송소걸의 노래가 끝나자 3층은 물론 2층에서도 환호소리가 들렸다.
“잘한다!”
“아~ 좋다!”
“내 생전 들어본 시 중 가장 아름답구만!”
객잔 사람들의 환호소리에 송소걸이 포권으로 인사를 하면서 만족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기분 좋게 의기양양한 송소걸의 모습에 찬호도 흥이 돋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생이 이러는데 이 형님이 가만있을 순 없겠군.”
찬호도 술잔을 화끈하게 털어 넣고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한 찬호의 행태에 천애랑과 송소걸은 물론 3층에 있던 사람들도 기대 가득 시선을 모았다.
“흠흠. 악양루에 올라.”
찬호가 첫 운절을 떼자 사람들이 감탄을 했다.
“두보에 이어 이백인가! 오늘 호사를 하는구만!”
주변 사람들이 술들을 홀짝이며 이어지는 찬호의 운율을 감상했다.
악양루에서 악양이 다 보이네.
시내는 멀고 동정호가 펼쳐지네.
기러기는 시름을 가져가 날아가고
산들도 좋고 달도 떠오르네.
구름 사이에 숙소 정해 머물고
하늘 위에서 술잔 돌려 마시네.
취하니 서늘한 바람 불어
휘돌아 춤추는 사람 소매깃을 휘도네.
청아한 송소걸과는 다르게 찬호의 호방한 목소리와 거침없는 운율은 남자다움을 느끼게 했으며, 이는 듣는 이들의 호연지기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멋지다!”
주루에 환호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2층에 있던 사람들도 궁금함에 찬호의 노래 시작과 함께 3층 계단으로 올라와 듣고 있었기에 함께 적극적인 환호를 보내주었다.
“하하하하하! 모두 한잔들 합시다!”
기분 좋은 찬호가 술잔을 높이 들자 호응소리는 더 커져갔다.
“찬호 최고다!”
천애랑이 신이나 박수를 쳤고 송소걸도 놀란 눈으로 술잔을 들었다.
“와하하! 우리 형님이 검만 일품인 줄 알았더니 노래도 일품이었네!”
너무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천애랑은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느끼며 술잔을 기울였다.
두 형제들의 노래 덕분인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와 주루는 거의 잔치처럼 변해갔다.
객잔 안 몇몇이 모든 주목을 받는 찬호와 송소걸에게 질투를 하고 시비를 거는 일들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의형제들과 함께 이미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시비객들은 쉽게 떨어져 나갔다.
이른 저녁에 시작된 술자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술에 쓰러지고서야 의형제는 준비된 숙소에서 쉴 수 있었다.
의형제들 덕분에 악양루의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 것 때문인지, 송소걸의 영향력 때문인지 관리인이 의형제를 별실로 안내해 주었다.
덕분에 천애랑과 형제들은 각각 별실에서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천애랑은 기분 좋은 취기를 느끼며 방으로 들어왔다.
“아! 좋다!”
너무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천애랑의 한 손에는 천에 휘감긴 검이 있었다.
비동에서 찬호가 챙겨 나온 쌍고검이라는 낡은 검이었는데 취한 찬호가 깜빡하고 두고 가는 것을 챙겨들고 온 것이었다.
천애랑은 별생각 없이 검을 감싼 천을 풀고 달빛에 의지해 검을 구경했다.
지금의 상태야 별로라고 하지만 비동의 진법을 구축하던 주축이었다고 하니까 괜히 신비롭게 느껴졌다.
파스락.
갑자기 검에서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응?”
웅웅웅.
갑자기 검이 울면서 검에 묻은 녹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파스스스.
천애랑은 놀라움에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낡아 보이던 검은 어느새 맑은 검신을 뽐내고 있었고 달빛에 비추자 영롱한 색을 발하고 있었다.
“어, 어? 어어어……?!”
천애랑은 취해서 헛것이 보이나 싶어 검을 가까이 쳐다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내기가 울렁거렸다. 그동안 내공이 없는 것처럼 굳어있던 단전이 거칠게 흔들거리는 느낌이 났다.
“크윽!”
무방비 상태에서의 충격이 어색하게 온몸을 강타했다. 취기가 화들짝 놀라 달아났다.
천애랑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단전의 꿀렁임에 천애랑은 다급히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손에 붙어버린 듯 떨어지지 않는 쌍고검을 무릎 위에 올린 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