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32화
천애랑은 찬호의 어깨에서 침착하게 주변을 살폈다.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절벽 굴인 듯했다.
까마득한 아래쪽으로는 원래는 계단이었을까 싶은 구조물들이 후두둑 떨어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러다 천애랑의 시선에 오 장(15m) 밑 절벽에 발 하나 걸칠 정도의 돌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온 것이 보였다.
“찬호야 저기! 우측 아래 오 장! 돌!”
찬호도 빠르게 떨어지는 와중에 천애랑이 가리키는 돌들을 확인했다.
“신호하면 돌로 날릴 테니 잘 착지해! 지금!”
“예엥?! 으아악!”
송소걸은 갑자기 몸이 날아가자 화들짝 놀라 허우적거렸다.
“소걸 잡아!”
가뿐하게 먼저 착지한 천애랑은 송소걸에게 손을 내밀었다.
“으히익!”
송소걸은 천애랑의 판을 유일한 구명줄로 보고 최선을 다해 손을 뻗었다.
천애랑은 엄청난 균형감각과 집중력으로 송소걸의 팔을 잡아챘다.
“흐읍!”
천애랑은 디딤이 좁은 공간에서 순수한 근력으로만 떨어지는 사람을 잡으려니 엄청난 부하가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가볍게 송소걸을 들어 올리며 돌에 발을 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송소걸이 두려움에 천애랑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애들아! 여기에 들어갈 만한 굴이 있다!”
천애랑과 송소걸이 있는 위치보다 아래에서 찬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애랑은 송소걸을 진정시키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삼 장(9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손을 흔드는 찬호가 보였다.
천애랑은 모두가 안전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주변 상황이 좀 더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떨어져 내렸던 위치는 무너졌는지 잘 확인이 되지 않았다.
까마득히 높은 천장은 동굴 바깥과 연결이 돼 있는지 얕은 빛이 일직선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빛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치 둥그렇게 땅이 꺼진 듯 깊이를 모를 구멍이 이어져 있었다.
어찌나 깊은지 아까 떨어지던 구조물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천애랑은 침을 꼴깍 삼키며 무저갱을 배경으로 손을 흔드는 찬호와의 거리를 가늠했다.
뛰어서 가야 하나 싶을 때 우후죽순 절벽에 튀어나와 있다고 생각한 돌들이 마치 계단처럼 찬호가 있는 위치까지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천애랑은 반가운 기색으로 찬호에게 말했다.
“금방 내려갈게!”
천애랑의 외침에 찬호가 더욱 손을 흔들었다. 천애랑은 피식 웃고선 송소걸의 상태를 살폈다.
“소걸아 이제 괜찮아. 그렇게 꽉 안 안아도 된다. 여기 돌들을 계단처럼 밟고 내려가게.”
천애랑의 옷깃과 몸통을 꽈악 잡고 있던 송소걸이 감고 있던 한쪽 눈만 살짝 떠서 올려다봤다.
“으으…… 형님. 죄송해요. 제가 고소공포증이 좀 있는지라.”
“하하! 그래서 그래?”
동생의 행동을 귀엽게 보던 천애랑은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럼 업혀라.”
“예?”
“네 후들거리는 다리를 보고 있자니 걱정이 앞선다. 내가 업고 빠르게 내려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송소걸이 천애랑을 꽉 잡은 상태로 빠끔히 아래를 봤다.
지옥의 아가리 같은 무저갱을 본 송소걸이 작고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으… 그럴게요. 부탁해요.”
천애랑은 좁은 공간에서 부드럽게 몸을 뒤틀며 송소걸을 업었다. 어렵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기공술은 대부분 맨손 격투를 애용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신체훈련을 많이 했었다.
마보는 기본이고 외발로만 다니기, 손가락으로만 다니기, 심지어 연못에 흩어진 연꽃잎 위로 걷기 등 근력과 유연성, 신체균형 향상훈련을 많이 했었다.
무거운 돌들을 들고서도 작은 꽃잎들을 밟고 물을 건넜는데 이 정도 난이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간다.”
천애랑의 말과 함께 등에 업힌 송소걸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탓. 탓. 탓. 탓.
천애랑은 송소걸을 업고도 가벼운 몸놀림으로 돌들을 계단처럼 밟고 내려왔다.
타악.
찬호가 있는 위치까지 도착한 천애랑은 송소걸을 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옷을 꽉 잡고 놓치 않는 송소걸을 보며 실소를 뱉었다.
“하하! 소걸아. 다 왔다. 그만 무서워하고 내려라.”
그 모습에 찬호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나무 위나 지붕 위는 잘만 올라 다니던 놈이 뭘 그리 무서워 해?”
찬호의 핀잔에 송소걸이 천애랑의 등에서 자라처럼 목만 쭈욱 빼서 바닥을 살폈다.
그리고는 조심히 천애랑의 등에서 내려왔다.
“흠흠흠.”
멋쩍어하는 송소걸을 보며 천애랑이 웃었다.
“하하하! 우리 막내가 무서워하는 것도 다 있구나.”
천애랑은 송소걸을 의외라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평소 뭐든지 척척 알아내고 잘 해내는 송소걸이었고, 찬호에게 장난치면서 무서운 척은 해도 이렇게 진심으로 무서워하는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신기했다.
“으으……. 높이를 알 수 없는 무저갱 같은 까마득함은 무서워요. 형님들 얼른 이동하시게요.”
의형제는 찬호가 발견한 작은 동굴 입구로 몸을 집어넣었다. 넉넉히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굴이었다.
의형제는 어두움 속에서 벽을 더듬으며 나아갔다. 이들은 잠시간을 나아간 후 독특한 공간에 도달할 수 있었다.
타타타타탁!
갑자기 횃불들이 자동으로 켜지며 주위가 밝아졌다.
무엇을 만졌는지, 밟았는지, 어떤 이유와 방법에 의한 것인지는 모르나 의형제는 밝아진 주위 상황을 살폈다.
“무덤?”
천애랑은 나지막이 공간의 첫인상을 말했다.
무덤치고는 제법 큰 규모이긴 했으나 아치형 지붕에 중앙 안쪽에 놓인 관이 무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주고 있었다.
또한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뚫린 구멍들이 눈에 띄었다.
“흐음…, 벽돌무덤이네요.”
송소걸이 천애랑의 의문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벽의 한 부분을 유심히 보았다.
송소걸이 눈을 좁히며 벽에 적힌 무언가를 읽었다.
“만일을 위해 신묘한 방책을 남긴다. 관에 들어 있는 검은 폐하의 쌍고검 중 하나로써 대자연의 기운과 소통하는 신묘한 힘이 담겼다. 허락되지 않는 자가 검을 든다면 곧 이 무덤과 동굴이 무너질 것이며 진법으로 잡아둔 지반들이 붕괴되어 호수의 수룡이 조조군을 휩쓸리라.”
송소걸이 벽에 쓰인 글을 다 읽고선 놀란 눈으로 천애랑과 시선을 마주쳤다.
“형님! 들으셨죠? 저 관에 있는 검 만지면 안 되겠어요오오오오오!”
천애랑에게 말을 하던 송소걸은 비명을 질렀다. 천애랑의 어깨너머로 마침 관에서 검을 빼어 든 찬호가 보였기 때문이다.
“야! 여기 시체 말고 검이 하나 있다. 낡아가지고 값도 안 나가겠는데?”
찬호가 검을 휙휙 휘두르며 그 상태를 품평했다.
“아! x됐다.”
송소걸의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불길한 소리가 팔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벽에 있던 구멍에서 물이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쿠드드드드.
들어왔던 입구 쪽에서도 거친 폭포소리가 났다.
찬호는 들고 있던 검을 멋쩍게 내려 들었고 송소걸은 여전히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천애랑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벽의 구멍들 중 한 곳에서만 물이 흘러나오지 않고 있었다.
다가가서 구멍 안을 살피니 먼 끝에서 작은 빛의 점이 보였다. 구멍은 완만한 곡선으로 위를 향해 뚫려있었다.
구멍의 크기가 크지 않아서 서서 가지는 못해도 기어서는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으으! 찬호 형님 놈! 도움이 안 되네!”
“뭐? 놈? 노옴?!”
천애랑은 이 와중에도 티격태격하는 찬호와 송소걸을 향해 외쳤다.
“얘들아 여기로 빠져나가자!”
천애랑의 다급한 외침에 찬호와 송소걸이 여전히 투닥거리면서 빠르게 움직였다.
이번엔 내공이 없는 천애랑이 맨 앞, 그 다음 송소걸, 마지막으론 찬호가 나란히 구멍 안을 기기 시작했다.
“애랑 형님! 빨리 빨리!”
“야이! 조용히 하고 너도 빨리 가! 뒤에 물 차오른다!”
천애랑은 살짝 뒤를 돌아봤다. 찬호의 발밑까지 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이 구멍의 위치가 아까의 무덤에서 대각선 위로 나있었기 때문에 저 정도라면 이미 무덤이 물에 가득 잠겼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흐읍! 간다! 가!”
천애랑이 기합을 넣으면서 거세게 손과 발을 움직였다. 흡사 바퀴벌레처럼 유연하고 기민한 몸놀림이 엄청난 속도를 뽐냈다.
“호오와.”
송소걸이 나지막한 감탄사를 뱉었다.
“야! 송소걸! 발에 물 젖는다. 빨리 가라니까!”
천애랑의 기묘한 몸놀림에 감탄하던 송소걸이 찬호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며 빠르게 기었다.
송소걸은 손가락과 발가락에 내공을 사용해 바닥을 강하게 긁었다. 마치 개헤엄을 치는 듯한 자세로 빠르게 나아갔다.
찬호는 걸리적거리는 검 두 자루 때문에 기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누워 검들을 품에 안았다.
허리춤에 찬 본래의 흑검은 검집이 있기에 괜찮았지만 무덤에서 건진 낡은 검은 그렇지 않아 자꾸 기어가는 상황에서 거슬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찬호는 발바닥으로 내공을 강하게 발출하며 누운 채로 나아갔다.
바퀴벌레, 개, 정체불명의 자세 셋은 매우 빠르게 전진을 했다.
콰득!
어느새 출구까지 도달한 천애랑이 애매하게 덮여있던 흙더미를 힘으로 뜯어 밀었다.
“후우!”
천애랑의 탈출과 함께 빠르게 송소걸과 찬호도 구멍에서 빠져나왔다.
빠져나온 구멍을 보니 물이 거의 출구까지 차오르다가 꼬르륵 거리면서 더는 차오르지 않았다.
그 모습을 확인한 셋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대로 하늘을 보며 대(大)자로 뻗었다.
천애랑은 최근 무공을 쓸 때도 안 오던 근육통이 느껴지는 가운데 쓸데없이 맑은 하늘이 보여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으흐흐흐.”
천애랑의 웃음을 시작으로 찬호와 송소걸도 따라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
“으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한참을 박장대소하던 셋은 누운 채로 대화를 나눴다.
“다친 데는 없지?”
천애랑이 고개만 돌려 일행들을 살폈다.
“예. 애랑 형님. 중간쯤엔 뒤에서 지렁이가 다가오길래 조금 놀라긴 했어도 괜찮아요. 애랑 형님도 괜찮죠?”
“야이. 송소걸! 설마 그 지렁이 나 말하는 거냐?”
“아닌데요? 무슨 말씀이신지?”
또다시 송소걸과 찬호가 티격태격했다.
천애랑은 미소를 지었다. 위기도 있고 어이없는 상황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재밌었다. 이 둘을 만난 뒤로는 항상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아! 그나저나 아까 추락할 때 야명주는 다 떨어지고 결국 건진 게 내가 들고 있는 낡은 검 하나뿐인 건가?”
“그러게요 형님. 근데 그거 유비가 썼던 쌍고검 중 한쪽이래요.”
“에잉. 그러면 뭐하냐. 다 낡은 옛날 검.”
찬호와 송소걸의 대화를 듣던 천애랑이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소걸아. 찬호야.”
천애랑의 부름에 찬호와 송소걸이 눈만 돌려 쳐다봤다.
“엥? 형님… 가슴이?”
송소걸이 천애랑의 봉긋 솟은 양 가슴을 보고 토끼눈을 했다.
“하하하!”
천애랑이 웃으며 품에서 무언가 두 개를 꺼냈다.
“헉! 야명주!”
송소걸이 눈을 크게 뜨고 화들짝 놀라했다.
주먹만 한 야명주 두 개가 햇빛을 받아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호오!”
찬호가 격하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한 송소걸과 찬호의 반응에 천애랑도 크게 웃었다.
“우리 이제 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