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31화
진법 안의 길이 보인다는 천애랑의 놀라운 말에 찬호와 송소걸이 눈을 크게 떴다.
“애랑 형님.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익혔던 무공 특성 때문에 진법, 환술에서 자유롭거든. 내공이 닫혀서 혹시나 했는데 길이 보이네?”
“하하! 역시 애랑이야! 입만 산 막내보다 낫구만. 그럼 지체하지 말고 가자고?”
찬호가 기분 좋게 웃었다.
은근슬쩍 놀리는 찬호의 말에 송소걸은 반박할 수 없었다.
진법이나 환술이 통하지 않는 특수한 경지의 사람이 있다는 건 들어봤지만 이런 경우는 기본적으로 내공과 무공의 경지가 최상급에 이른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경우였다.
천애랑처럼 내공 없이 효과가 있는 것과는 전혀 결이 다른 문제였다.
만약 천애랑처럼 내공과 상관없이 진법 등의 환각계열 무공에 면역을 가질 수 있다는 점과 그 방법이 알려진다면 무림에선 큰 파장이 일 것이 분명했다.
최소 진법에 능한 제갈세가에서는 엄청난 불편함을 표할 것이 자명했다.
“소걸 뭐해? 가자!”
앞장서는 천애랑을 보며 찬호가 고갯짓을 했다.
그 모습에 송소걸은 어깨를 으쓱이곤 뒤따랐다.
깊은 고민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저 ‘대단한 의형들을 두었구나.’라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예이~ 가요!”
천애랑을 따라 모두는 진법 안으로 발을 디뎠다.
천애랑은 눈에 보이는 길을 따라 걸으며 형제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는 길이 보여서 그냥 발을 딛는 건데 혹시 모르니까 똑같이 밟으면서 따라와.”
“아아~ 그래. 그 정도야 뭐 문제도 아니지.”
“넵!”
진법 내부의 풍경은 바깥과 똑같은 산의 풍경이었다.
보통의 진법은 바깥에선 몰라도 진법 안으로 들어서면 특유의 이질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은 그 경계선이 어찌나 자연스러운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왔다면 진법인지도 몰랐을 정교함이었다.
천애랑은 천천히 주변을 관찰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이곳저곳에 꽤나 꼬불거리는 길들이 있네. 환속진처럼 보이는데 뭔가 더 복잡해 보여. 너희들도 보여?”
천애랑의 말에 찬호와 송소걸이 두리번거렸지만 보이는 거라곤 그저 숲의 풍경뿐이었다.
“아니요 형님. 그냥 숲밖에 안 보이네요. 대단하신데요 형님.”
“그래. 우리 눈엔 안 보이고 애랑 네 눈에만 보이나 본데? 그 능력 좋다.”
의형제들의 칭찬에 천애랑은 기분 좋게 웃었다. 칭찬 때문에 웃는 것도 있었지만 그 말 속에 담긴 순수한 믿음이 좋았다.
“저 앞쪽에 동굴 입구가 보이거든? 여기로 갈게.”
그렇게 천애랑 일행은 아무런 혼란도 겪지 않고 동굴로 들어섰다.
불청객을 막기 위해 무던한 수고를 했을 진법의 주인이 허탈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내 의형제들이 들어선 동굴 안은 진법의 주인이 미소 지을 상황들로 펼쳐졌다.
“젠장! 형님 숙여요!”
송소걸이 천애랑의 목덜미를 누르며 바닥을 굴렀다.
피피핏!
머리 위로 화살 대여섯 개가 빠르게 지나갔다.
“위!”
찬호의 외침에 송소걸과 천애랑이 황급히 옆으로 굴렀다.
서거걱!
거대한 도끼의 날이 천장에서 떨어져 정확히 바닥의 틈으로 사라졌다.
만약 그대로 있었다면 도끼의 날에 몸이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찬호! 네 오른쪽이 진짜야!”
찬호의 좌우 벽에서 창들이 찔러 나오고 있었다.
천애랑의 외침에 찬호가 우측 창들만 검으로 쳐냈다.
카가강!
찬호의 검에 막힌 창들이 후두둑 땅에 떨어졌다.
“뭐야 이거?!”
“환술이랑 섞인 기관진식인가 봐요! 흐히익! 이것들은 또 뭐야!”
송소걸이 질색을 하면서 검을 마구 휘둘렀다.
동굴 안쪽에서 박쥐 떼가 후두두둑 날아 일행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수가 동굴 정면을 가득 메울 정도인지라 천애랑과 찬호도 두 눈을 크게 떴다.
천애랑은 신묘한 팔의 움직임으로 박쥐들에게 발경을 날려댔다. 천애랑의 손짓 따라 박쥐들이 이리저리 튕겨 날아갔다.
“아으! 이 벌레들이!”
찬호 또한 귀찮은 기색으로 엄청난 쾌검을 선보였다.
그 검이 어찌나 빠른지 검막이라도 생긴 듯 그의 앞엔 박쥐가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행들을 지나친 박쥐 떼가 파드드드 거리며 동굴 밖으로 빠져나갔다.
박쥐가 사라지자 동굴 안엔 작은 돌가루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찬호 형님. 박쥐는 벌레가 아니라 동물류에요.”
송소걸이 낄낄거리며 찬호의 지식을 구박했다.
이에 찬호가 검을 휘둘렀다.
“히익! 뭐 하는 짓이에요?!”
갑작스런 찬호의 검을 피한 송소걸이 황당한 눈으로 찬호를 봤다.
찬호가 입을 삐쭉이며 눈썹을 까딱였다.
“아! 너였냐? 동. 물. 박쥐인 줄 알았지 뭐냐.”
“뭐요?! 이 형님이 미쳤나?!”
송소걸이 인상을 쓰자 찬호도 인상을 썼다.
“뭐? 하늘 같은 형님보고 미쳐? 미친 게 뭔지 보여줄까?”
송소걸과 찬호가 언제나처럼 투닥거렸다.
그때 천애랑이 무언가를 보곤 형제들을 말렸다.
“애들아! 그만해.”
“아니, 형님! 찬호 형님이.”
찬호에게 일방적으로 멱살이 잡혀 있던 송소걸이 천애랑에게 고자질을 했다.
이에 찬호가 슬쩍 멱살을 풀며 모른 척을 했다.
그 모습에 천애랑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안쪽에서 작은 빛이 보이는데?”
천애랑의 말에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이좋게 빛이 보이는 방향을 살폈다.
여러 갈림길 중 한쪽 깊숙한 곳에서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만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오! 좋아요 애랑 형님! 역시 찬호 형님보단 듬직하시네요.”
“뭐?!”
“이크”
또다시 발끈하는 찬호를 피해 송소걸이 천애랑 뒤로 숨었다.
그리고 천애랑의 옆으로 고개만 빠끔히 내밀고 말했다.
“아무래도 전진 순서를 바꿔야겠어요.”
찬호와 천애랑의 시선이 모이자 송소걸이 찬호를 가리켰다.
“찬호 형님이 선두, 애랑 형님이 중앙, 제가 후미에 위치할게요.”
찬호가 고개를 삐딱하게 틀었다.
“왜 네가 후미냐? 내공이 없는 애랑이가 아니라?”
송소걸이 눈을 크게 뜨고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무슨 당연한 말을 하냐는 느낌의 행동이었다.
“당연히 애랑 형님이 저보다 강하잖아요?”
“…….”
당당한 송소걸의 대답에 찬호는 말문이 막혔다.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자존심 때문이라도 상대적으로 자신이 더 약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데, 송소걸에겐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내가 중앙에 설게.”
천애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에 찬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언제든지 반응할 수 있게 검을 들고선 물었다.
“소걸이 네가 이 기관진식인가를 해체할 순 없는 거냐?”
송소걸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잘난 저라도 기관진식까지 통달한 것은 아니라서요.”
“쯧. 중요할 땐 도움이 안 되는구만.”
후미에 있던 찬호가 툴툴거리며 일행의 선두에 자리했다.
“내가 선두에서 갑작스런 공격들에 먼저 반응하면 되는 거지?”
찬호의 물음에 송소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혹시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것들에 대해선 애랑 형님이 대응할 거예요.”
마치 본인이 그리한다는 것처럼 말하는 송소걸이었다.
“그래. 차라리 무력으로 뚫을 수 있다 생각하니까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찬호는 검을 붕붕 휘두르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 모습에 송소걸이 ‘잘났네 증말.’이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에 찬호가 뒤돌아보자 송소걸은 다시 천애랑의 등 뒤로 숨었다.
“조심히 출발해보게요! 이런 기관진식까지 설치할 정도라면 대단한 보물이 있을 거예요!”
* * *
일행들이 긴장했던 것과는 다르게 갈림길로 들어선 순간부턴 어떠한 기관진식도 작동하지 않았다.
일행들은 진법의 설계자가 앞선 함정들에서 대부분의 불청객을 걸러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보다 하며 은은한 빛이 새어나오는 곳으로 조심히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들은 천장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봤다.
천장엔 어두운 동굴을 은은히 비추는 주먹 크기의 구슬들이 있었다.
“헉! 야명주예요! 엄청 비싼 건데? 심지어 크다!”
송소걸이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천애랑은 야명주라는 것을 처음 듣고, 처음 보는 것이라 그저 신기하게만 구경했다.
“저게 큰 거야?”
천애랑의 질문에 송소걸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요즘엔 손가락만 한 야명주도 귀해요. 매우 비싸기도 하고요. 귀중품을 보관하는 곳에서 불을 피우기엔 위험요소가 크니까 부자들이 야명주를 많이 찾거든요.”
“떼어 갈까?”
찬호가 넌지시 묻자 송소걸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연하죠! 이 비싼 것들을 가만히 두고 가면 예의가 아닐 거라고요?”
모두의 합의하에 의형제는 야명주 따기를 시작했다.
천장의 높이와 야명주의 상품가치를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서 목마작전을 세웠다.
내공과 근력이 좋은 찬호가 말이 되고 그 어깨 위로 비교적 가벼운 송소걸이 곡예 하듯 올라섰다. 천애랑은 송소걸이 버섯 따듯 따주는 야명주를 받아주기로 했다.
“찬호 형님. 좀 더 앞으로! 아니 우측으로!”
“야이씨! 제대로 말해!”
“그대로 있어요! 야명주 땁니다!”
송소걸의 섬세한 칼질에 천장에 박힌 야명주가 똑! 하고 따졌다. 깔끔한 채취였다.
“애랑 형님. 받으세요. 그리고 찬호 형님 정면으로 5보!”
찬호는 묵묵히 송소걸이 지시하는 대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이 어색하지 두 번째 야명주를 따는 둘의 몸놀림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세 번째 야명주에서는 거의 곡예사처럼 합이 잘 맞았다.
“으하하하! 찬호 형님! 우측 4보, 전진 5보!”
송소걸의 손놀림과 찬호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차착! 차차착!
네 번째 야명주를 따는 순간 동굴 내부에 이상한 잔음이 들렸다.
“이야! 우리 이제 부자다!”
송소걸이 신이나 다섯 번째 야명주를 따려는 순간 천장에서 돌 부스러기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소걸아 잠깐!”
천애랑의 외침에 송소걸이 의아한 표정으로 손을 멈췄다.
“왜요 형님?”
찬호도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주변의 이상을 느꼈다.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인가.”
드드드득.
드드득, 드드드드득…….
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천장은 물론 동굴 전체가 흔들렸다.
“아… 설마…….”
불길한 느낌을 받으며 찬호가 송소걸을 대충 떨궜다.
“으악! 찬호 형님 쫌!”
바닥에 떨어지던 송소걸이 낙법으로 부드럽게 굴러 착지했다.
송소걸은 찬호를 향해 인상을 썼지만 이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어?! 제엔장! 여기에도 기관진식이 있었나 봐요! 애랑 형님 피해요!”
천애랑은 송소걸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천장에서 떨어지는 돌덩어리를 보았다. 다급히 나려타곤으로 몸을 굴려 피했다.
콰광!
큰 바위가 떨어지자 동굴의 흔들림은 더욱 심해졌다.
“이런 젠장!”
찬호는 무너지는 입구를 보았다.
이번 기관진식은 침입자만 처단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이 공간 자체를 부수려는 의도가 있는 듯했다.
찬호는 즉시 경신술을 펼쳐 몸을 일으키는 천애랑과 소리를 지르는 송소걸에게 다가가 둘을 어깨에 들쳐 멨다.
그리고 동굴 안쪽으로 빠르게 뛰어 들어갔다.
“으아아악! 무너진다!”
송소걸의 비명이 동굴을 메아리처럼 울리던 찰나. 찬호는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경황없이 야명주가 없는 동굴 안쪽으로 뛰어 들어왔더니 발바닥에 밟히는 게 없었다.
“으아아악! 떨어진다!”
부유감을 느낀 송소걸의 비명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