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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29화 (29/200)

기공술사 29화

얼마 지나지 않아 천애랑 일행은 표행의 야영지에 무사귀환 할 수 있었다.

표두 추상운이 다가와 반갑게 일행들을 맞이했다.

“어서 오시오! 무사하셔서 다행이오. 응? 이자는 누구요?”

표두의 시선을 받은 송소걸이 기운차게 인사를 했다.

“송소걸이라고 합니다. 표두신가 보네요. 반갑습니다.”

“반갑소….”

추상운은 송소걸이라는 이가 믿어도 되는 자인지 천애랑과 찬호에게 눈빛으로 물었다.

찬호는 한숨을 쉬었고, 천애랑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을 것입니다. 운남십귀로부터 혈혈단신 마을사람들을 지킨 이니까요.”

송소걸의 협행을 들은 표두의 표정에서 경계심이 다소 누그러졌다.

“허어… 대단하오. 그런데 정녕 운남십귀였소? 그렇다면 그들은…?”

“다 죽였습니다.”

“허어…….”

표두가 감탄을 넘어 경외 어린 눈빛을 보였다. 그런데 이내 표두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왜 그러십니까?”

천애랑이 걱정스레 묻자 표두가 한숨을 쉬었다.

“아깐 경황이 없어 생각을 못 했는데 최근 운남십귀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오. 표국 차원의 주의사항들에 대한 정보지가 제갈세가로부터 가끔 오는데 거기에 운남십귀에 대한 내용이 있었소.”

“그게 뭡니까?”

“운남십귀가 최근 산서, 하북 근처에서 목격됐으니 주의할 것. 그리고 그들이 최근 혈교에 가입했다고 하니 보면 무조건 피할 것. 그 때문에 혹여 혈교가 복수를 하러 오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오.”

추상운의 말을 옆에서 가만히 듣던 송소걸이 입을 열었다.

“그럴 일을 없을 거예요.”

송소걸의 확신에 찬 어투에 추상운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어찌 그리 확신하는 거요?”

송소걸은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이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어찌 여기 사람들은 피를 잔뜩 흘린 사람을 보면서 치료할 생각부터 하지 않는 거죠?”

“……미안하오. 그러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정보를 먼저 듣고 싶어서 말이외다.”

표두가 미안한 표정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이에 송소걸은 가볍게 혀를 차고선 말을 했다.

“제가 방랑벽이 있어서 돌아다니며 얻은 정보들이 꽤 됩니다. 최근 얻은 정보 중 하나가 마교와 혈교의 전쟁 가능 소식이에요. 황실의 뒷배를 얻은 혈교와 그것을 다시 빼앗으려는 마교의 싸움이 급박해져 북경의 분위기가 흉흉하다더군요.”

야영 준비를 하던 표국의 모든 이들이 어느새 주변으로 모여 숨도 쉬지 않고 조용히 경청했다.

만약 혈교가 추적해 온다면 야영을 포기하고 자리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북경 근처에 주된 사업장이 있는 하북 석가장 지점의 표국인들로서는 매우 신경을 써야하는 정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송소걸의 말대로 마교와 혈교가 전쟁을 치른다면 북경을 포함해 하북까지 치안이 흉흉해질 것이고, 나중에 아무 생각 없이 북경 쪽으로 표행을 하다가는 재수 없이 눈먼 칼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요?”

행수가 송소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으윽… 조금 뒤로 좀….”

송소걸이 부담스러운지 행수를 밀치며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운남십귀는 최근 혈교에 가입했고 혈교에서의 비중이 매우 낮기에 혈교에서 신경 쓰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아요. 그보다 혈교가 이런 곳에 신경 쓸 여력이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거예요. 그들은 마교뿐만 아니라 최근 세력을 확장하는 무림맹의 견제까지 신경 써야 하니까요.”

송소걸이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며 살짝 어깨를 으쓱였다.

“아마 운남십귀가 이곳에 있는 것은 그들의 단독행동일 가능성이 높아요. 물론 다른 의도가 있을 순 있으나 최소한 황실 내 쟁투와 관련이 있을 것 같진 않거든요. 그러니 당장은 혈교의 추적 같은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겁니다.”

“휴…….”

“다행이네.”

“그러게 말이야.”

표행의 사람들이 너도나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긴장 풀지 말고 경계와 맡은 일에 힘써라.”

표두가 긴장 풀린 표사들과 사람들을 다그쳤다.

“너희들은 이들에게 준비된 식사 좀 챙겨 드려라.”

행수는 일꾼들을 시켜 일행의 식사를 신경 써줬다. 그리고는 모두가 각자의 할 일을 하러 바삐 사라졌다.

“…….”

송소걸이 무한표국이 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결국 폭발했다.

“이씨! 나 피 엄청 흘렸다고?! 나 안 보여? 이런 고급 정보까지 주었는데 완전 투명인간 취급이네?!”

천애랑이 웃으며 송소걸에게 다가갔다.

“소걸, 내가 호법을 서줄 테니 상처를 치료하시오.”

천애랑의 말에 송소걸이 미소를 지었다.

“방금 말 상당히 친해진 느낌이네요? 호호.”

“응?”

천애랑이 상당히 얇은 목소리로 웃는 송소걸을 이상하게 보았다.

송소걸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흠흠, 옷을 좀 갈아입어야 하는데 마차는 없습니까?”

“다 남자들뿐인데 옷이야 그냥 갈아입으면 되지.”

찬호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안 돼요. 제가 낯가림이 심해서….”

“흥, 낯가림 심하다는 사람이 그렇게 수다를 떠나?”

“으윽…. 여하튼 마차 있어요? 없어요?”

찬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차는 없소. 표물이 말이고 급히 움직이는 중이니까.”

“끄응…. 그럼 잠시 금창약도 좀 바르고 옷 좀 갈아입고 올 테니 아무도 못 오게 해줘요. 알았죠?”

송소걸은 퉁명한 찬호를 무시한 채 천애랑에게 부탁했다.

천애랑은 세상에는 특이한 사람들이 많을 거라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송소걸은 찬호를 째려보더니 후다닥 숲으로 들어갔다.

“애랑, 저 자의 말을 왜 그리 잘 들어 주는 겐가?”

찬호는 천애랑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땅을 뚫고 올라온 나무뿌리에 대충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천애랑도 찬호의 옆에 있는 돌에 앉고는 살며시 웃었다.

“외로움이 느껴져.”

“응?”

“자네에게 말했듯이 이십 년을 할아버지와만 살았어. 그때는 그게 당연했고 외롭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 하지만 할아버지를 여의고 세상에 나오니 내가 참으로 외로운 존재라는 것이 느껴지더군.”

“…….”

“물론 좋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나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혼자라는 생각이 가득했네. 무언가 소속감이 부족한 느낌이었지.”

“그랬…구만.”

찬호가 생각에 잠기며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데 자네를 처음 만났을 때 자네의 웃음 뒤에서 나와 비슷한 외로움이 느껴졌어.”

“…….”

찬호가 다소 놀란 눈을 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다고 했었나? 나는 이성 간의 사랑이라는 것을 아직은 잘 몰라. 그저 할아버지에 대한 나의 마음에 비춰보며 대강 이해할 따름이지. 그리고 내가 할아버지를 잃었던 슬픔을 자네가 연인을 잃었을 때 느꼈을 슬픔과 같다고만 생각해도 얼마나 자네 마음이 아팠을지 통감했다네.”

찬호는 천애랑의 위로를 들으며 그간 마음 한 켠 채워지지 않던 공허함이 채워지는 기분을 받았다.

“고맙군.”

찬호의 고맙단 말에 천애랑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내가 고맙지. 많이 달라졌다지만 아직은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게 어색한지라 자네의 호의가 반가웠어. 먼저 친구처럼 지내자고 해줘서 고맙게 생각하네.”

천애랑의 솔직한 말들에 찬호는 머쓱하니 단풍나뭇잎으로 둘러싸인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렇다면 나도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나에겐 친구가 없었거든. 실은 자네의 끌림이 좋아 나름 용기를 낸 것이긴 했네.”

“어?”

“하하, 의아한가?”

“자네라면 그렇지 않겠나?”

“내 자네에게 말했듯이 조금 큰 가문의 아들이라네. 엄한 집안의 분위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주위엔 마음을 터놓고 지낼 또래의 친구가 없었지. 다만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이들은 많았다네. 그런 답답한 가문을 뛰쳐나와 처음으로 마음을 나눴던 이가 그 여인이었네.”

천애랑은 말을 하며 회상하는 찬호의 슬픈 표정을 보았다. 찬호는 말을 이었다.

“그렇게 미인은 아니었으나 참으로 지혜롭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었지. 그러나 그 여인이 죽고 슬픔에 방황한 후 자네라는 친구를 만났다네. 지금은 이 만남이 그 여인의 선물은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네.”

“그런가……?”

찬호는 씁쓸하나 기쁜,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상실의 슬픔 때문에 1년간 술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세상을 바라본 것이 얼마 되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중에 가진 돈이 없더군. 그래서 여비를 벌 겸 이 표행에 참여했는데 자네를 만났으니 인연 아니겠나.”

“허어…….”

“하하하! 우연처럼 만났지만 나는 인연이라고 생각한다네. 어느 현인이 나에게 그러더군. 인연은 인력(人力) 아닌 천력(天力)의 영역이니 자의(自意)의 영역은 오직 수긍만 남은 거라고 말이야.”

“음?”

인연이라.

천애랑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하하! 나는 지금까지 그 말을 한 현인을 개소리하는 똥싸개라고 욕했었는데 말이야. 자네를 보고 있으면 그 현인에게 그동안 욕한 것을 사죄하고 싶다니까? 내 생전 이렇게 누군가를 편히 여기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처음이야.”

밝게 웃는 찬호를 보며 천애랑도 마주 웃었다.

“하하! 그건 나도 그렇다네.”

“우리가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이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관계라면 진정한 운명이자 인연이 아니겠는가.”

“그렇기는 하군.”

“아마 유비와 관우, 장비도 그러지 않았을까 싶네.”

“오~ 나도 그들의 이야기 들어봤어. 도원결의를 했다지.”

찬호가 천애랑 쪽으로 몸을 숙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혹시 그럼 우리도 그들처럼 진정한 친우가 되자는 맹세를 할까?”

이에 천애랑이 박수를 쳤다.

“오호! 그것도 좋겠군.”

천애랑은 찬호와 함께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천애랑은 친우라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만남일 줄은 몰랐다. 짧은 만남의 시간이었지만 오랜 지기처럼 마음이 쉽게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말이 잘 통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득을 위해 무엇인가를 재는 행위가 필요 없는 관계. 천애랑은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나무숲 안에서 송소걸이 급히 뛰어나오며 입을 열었다.

“나도! 나도!”

천애랑과 찬호가 시선을 모아 송소걸을 어이없이 쳐다보자 송소걸이 다급히 말을 했다.

“나도 도원결의 할래!”

“…….”

천애랑과 찬호가 아무 말이 없자 송소걸이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나도! 그거 하고 싶어요. 예전부터 도원결의 같은 만남을 꿈꿔왔단 말이에요!”

“흥, 그대를 언제 봤다고? 그리고 어찌 믿고?”

찬호가 아니꼬운 듯 송소걸을 쏘아보았다.

찬호의 말에 송소걸이 비 맞은 강아지마냥 축 처졌다.

그걸 본 천애랑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소걸 당신의 나이가 어찌 됩니까?”

“함부로 여, 아니 열아홉 살이요….”

천애랑은 찬호에게 가까이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찬호, 상관없지 않겠나. 숫자도 세 명이 되는 것이 재밌기도 하고.’

찬호는 송소걸을 흘겨봤다.

-‘저자를 언제 봤다고? 그리고 어떻게 믿고?’

-‘우리는 뭐 오래 만났나. 그리고 나는 잘 믿으면서 그래?’

-‘자네와는 달라. 쟤는 너무 시끄럽다고.’

-‘하하, 그러면 막내로 받아들이고 지켜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어? 저렇게 원하는데. 그리고 나쁜 얘 같지는 않잖아?’

-‘으음….’

-‘하하. 인연이라는 것이 있다면서?’

찬호가 송소걸을 노려보며 고심을 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그래. 자네 뜻대로 하자고.’

천애랑은 미소를 지으며 송소걸에게 말했다.

“그대보다 우리가 두 살이 더 많으니 형님으로 깍듯이 모신다고 약속하면 함께 하겠네.”

“예에?”

“뭐야? 그 표정은?”

찬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찬호의 말에 송소걸이 멋쩍게 웃으며 황급히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무공들이 고강해서 당연히 나이가 더 있는 줄 알았죠. 하하! 기꺼이 형님들로 모시지요.”

천애랑은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있는 거대한 단풍나무 앞에서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다가 이 자리에서 만났다.”

천애랑의 서두에 찬호는 피식 웃으면서 일어섰고 송소걸은 신이 난 듯 방방 뛰면서 천애랑의 곁으로 다가왔다.

천애랑이 가볍게 웃으며 포권을 취했다.

“나 천애랑은 유비, 관우, 장비처럼 한날한시에 죽자고 맹세하지는 못하나 그 우애만큼은 언제나 함께 할 것임을 맹세합니다. 같은 곳에 있든 떨어져 있든 서로를 생각하며 그 우애가 이어지기를 대자연에게 기도합니다. 형제의 일은 곧 나의 일이며 그 희노애락을 함께하기를 약속합니다. 오늘 이 단풍나무 아래서 이어지는 형제의 약속에 대자연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천애랑은 말을 하고는 찬호가 빌려주는 검을 받았다.

천애랑은 선뜻 무인의 검을 내주는 찬호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왼손바닥을 가볍게 그어 주먹을 꽉 쥐었다.

뚝. 뚝.

단풍나무 밑동에 천애랑의 피가 떨어졌다.

찬호도 천애랑에게 검을 이어받으며 왼손바닥을 베었다.

“나 찬호는 진정한 친우를 만났음에 하늘에게 감사한다. 나의 검은 언제나 형제의 일에 최우선으로 움직일 것임을 다짐한다. 지금 흘리는 나의 피가 앞으로 흘릴 형제의 피를 대신하길 기도한다.”

찬호도 천애랑처럼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손에서도 피가 뚝뚝 떨어졌다.

송소걸은 두근거려 떨리는 손을 바지에 쓱쓱 닦더니 자신의 검으로 손바닥을 아주 얇게 베었다.

또옥.

주먹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꽉 쥐고서야 간신히 피가 한 방울 똑 떨어지자 찬호가 날카롭게 쳐다봤다.

송소걸은 지금 이 상황이 그저 신이 난지 찬호의 날카로운 눈빛에도 아랑곳 않고 말을 했다.

“나 송소걸은 새로이 두 형님을 모십니다.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협을 행하는 두 형님을 모셔 영광입니다.”

천애랑은 송소걸을 향해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소걸 너는 지켜볼 것이야.”

“지켜본다.”

찬호도 송소걸을 보며 말을 거들었다.

두 사람의 작은 경고에도 송소걸은 마냥 신난 표정을 지었다.

“예~예~ 캬! 저도 이런 우정을 나눌 기회가 생기네요. 단풍나무 아래서 한 결의이니 풍하결의(楓下結義)라고 하는 게 어때요?”

“그거 좋다.”

천애랑이 밝게 웃었다.

찬호도 나쁘지 않은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에 송소걸이 소매가 공기를 때리는 소리가 나도록 팔을 펼치더니 과장되게 포권을 취했다.

“형님들, 아우 송소걸이↗ 다시 한 번↘ 인사드립니다~~”

송소걸의 과장과 넉살에 천애랑은 크게 웃었고 찬호도 피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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