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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28화 (28/200)

기공술사 28화

운남팔귀의 미간들이 꿈틀거렸다. 천애랑의 웃음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저 자식들을 다 죽여!”

일귀의 외침에 천애랑 근처의 운남팔귀가 일제히 공격을 했다.

“케헬! 죽어라!”

천애랑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칠귀의 도(刀)와 삼귀, 사귀의 검(劍)을 바라보았다.

각 무기에 기(氣)가 서리는 것이 다소 위협적으로 보였다.

예전에야 어지간한 공격은 막대한 내공으로 막거나 피하면 그만이라 두려움이 없었지만, 지금처럼 내공이 없는 상태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검과 도를 볼 땐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그러나 이는 두려움의 감각이 아니었다. 천애랑에게 있어 위기 상황에서의 저릿함은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즐거운 쾌락으로 변해갔다.

천애랑은 감각이 극대화되면서 주위가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검과 도가 흐르는 길이 보였다.

칠귀의 도(刀)가 천애랑을 일도양단할 기세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천애랑의 눈엔 느릿하게 칠귀의 도(刀)가 코앞으로 떨어질 것이 예상됐다.

천애랑은 몸을 살짝 틀면서 아까의 감각대로 손을 뻗었다.

피잇!

천애랑의 손에서 피가 튀었다.

‘이게 아닌가.’

무언가 더 끈적한 느낌이었다. 무기와 닿는 순간 달라붙는 느낌으로 상대방의 힘을 되받아치는 느낌이었다.

천애랑은 예민해진 시공간 감각 속으로 삼귀와 사귀의 검(劍)이 찔러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심장과 허벅지를 노리고 들어오는 사귀의 검을 보며 천애랑은 발을 크게 뒤로 빼면서 심장의 검을 우선 피했다.

그리고 사귀의 검봉(劍鋒)을 아까처럼 손등으로 튕겼다. 검기가 담긴 검을 맨손으로 쳐냈기에 손등에서 피가 튀며 생채기가 생겼지만 천애랑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가능하다면 아까 도를 날린 것처럼 이 자의 검도 비틀어 날리려고 했는데 실패한 것이었다.

그러나 괜찮았다. 검수의 작은 손목 움직임에도 크게 흔들리는 게 검인데 검봉이 크게 흔들렸으니 검수에게도 영향이 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검봉을 타격당한 사귀는 크게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천애랑은 마치 한 흐름의 합처럼 뒤로 빼던 발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서 허벅지를 노리는 삼귀를 돌려찼다.

퍼억!

천애랑의 발차기를 다급히 막은 삼귀가 악을 쓰며 재차 목으로 검을 찔러 들었다.

그리고 자세를 수습한 칠귀의 도가 합공을 하듯 다리를 노리고 횡으로 그어왔다.

아마 이들의 합격술은 신체의 상, 하를 동시에 공격하는데 맞춰져 있는 것 같았다.

천애랑은 몸을 누이듯 뛰어올라 검과 도를 피하며 몸을 회전시켰다.

천애랑은 그 회전력을 이용해 발등으로 아래쪽 칠귀의 정수리를 찍었다. 그와 동시에 공격하느라 몸이 앞으로 숙여진 삼귀의 목젖에 손가락을 단단히 세워 찔러 넣었다.

“크윽!”

“꺼억!”

손가락으로 목젖이 찔린 삼귀는 피를 토하며 즉사했고, 칠귀도 천애랑의 발등에 의해 받은 백회혈의 충격에 눈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일귀는 순식간에 당한 형제들을 보며 천애랑에게 몸을 날리려 했다.

하지만 일귀의 시야가 갑자기 휘릭 돌면서 달려갈 자세를 취하던 자신의 몸이 보였다.

순식간에 다가와 휘두른 찬호의 검에 절정 고수였던 일귀의 생이 허무하게 끝난 것이었다.

천애랑은 넘어진 사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 몸을 날렸다.

천애랑은 몸을 날리며 찬호를 봤다. 극대화된 감각으로도 쫓기 힘든 그의 빠른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

사귀는 천애랑이 자신들의 형제 둘을 죽이고 자신에게 다가오자 다급히 검을 휘둘렀다. 훈련된 무공검식이 아닌 겁에 질린 다급한 휘두름이었다.

천애랑은 사귀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면서 그의 검면과 손잡이를 비틀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귀의 손에서 검을 빼앗아 그대로 사귀를 찔렀다.

푹!

자신의 검에 목이 찔린 사귀는 놀란 눈으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잠시 숨을 돌리려던 천애랑은 갑작스레 느껴지는 통증에 인상을 썼다.

손등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좀 전에 검기가 담긴 검을 쳐내서 그런 것 같았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피가 많이 흘렀다.

“이봐! 애랑!”

찬호가 급히 다가오더니 본인의 옷자락을 찢어 천애랑의 손등을 응급처치 해줬다.

손등이 압박되자 피와 고통이 빠르게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괜찮아?”

찬호가 걱정스레 물었다.

“덕분에. 고마워. 옷은 나중에 사줄게.”

천애랑이 찬호의 찢어진 옷을 보며 말했다.

이에 찬호가 손을 저으며 크게 웃었다.

“괜찮아. 하하하! 자넨 순하게 생겨서는 꽤나 호방하게 싸운단 말이지. 역시 재밌어.”

천애랑이 피식 웃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8명의 운남십귀는 모두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새 찬호가 5명을 처리한 듯했다.

천애랑은 아쉬움을 느꼈다. 좀 더 지금의 감각을 다듬고 싶었는데 상황이 아쉽게 끝나버린 느낌이었다.

그때 천애랑과 찬호에게 영웅건을 맨 미공자가 다가와서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두 분 덕분에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찬호가 대충 인사를 받으며 남자에게 설명을 부탁했다.

“이곳 마을을 잠시 지나던 객(客)이었습니다. 갑자기 운남십귀(雲南十鬼)가 쳐들어와 마을사람들을 학살하자 부족한 실력임에도 그들을 막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공자는 자신이 구해줬던 아이 잃은 가족이 생각나 인상을 찌푸렸다.

“그 과정에서 마을사람 중 한 명에게 구원을 청하라고 밖으로 보냈는데 이렇게 고수 두 분이 오셔서 다행입니다.”

“그런데 얼굴만 보고 운남십귀라는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대단하군? 상당 기간 조용히 잠적한 이들이라 들었는데 말이오.”

찬호가 팔짱을 끼었다.

“하하…. 전에 우연히 듣게 된 정보이기도 하고 구분하기 쉬운 놈들이기도 해서요.”

천애랑이 찬호의 눈빛을 보곤 귓속말을 했다.

-‘찬호, 왜 그러는가?’

-‘애랑, 뭔가 좀 수상해서 말이지.’

-‘에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던 사람인데 뭐가 있겠나. 그리고 우리라는 구원이 올 줄 어떻게 알고. 그냥 식견이 좋은 사람일 수 있지 않겠나.’

천애랑의 말을 들은 찬호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도 그렇군. 애랑, 자네의 말이 맞네.’

찬호가 생각해도 천애랑 말이 일리가 있었기에 찜찜한 기분을 잠시 접어뒀다.

그리고 수상하든 말든 자신들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큰 상관은 없을 듯했다.

그때 어디선가 노인이 뛰어왔다.

“아이고~ 대협님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목숨을 구했습니다.”

온통 눈물과 흙, 핏자국인 노인은 생김새완 달리 상당히 건강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아무래도 밭일을 하면서 햇볕에 그을려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 마을 사람들의 눈빛이나 태도를 봐선 이 자가 촌장쯤 되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오. 저흰 그만 돌아가 보겠소.”

찬호가 마을에 더는 위기가 없어 보이자 바로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아이고! 어찌 바로 가십니까.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은인이신데 무언가 보답이라도….”

찬호는 혀를 차며 까칠하게 촌장의 말을 잘랐다.

“됐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가족들이나 잘 챙기시오. 저놈들이 운남십귀라고 하던데 나는 잘 모르나 나름 별호가 붙은 거 보니 관청에서 포상금을 줄지도 모르오. 한 번 알아보시던지. 애랑, 가세.”

천애랑은 툴툴거리지만 마을 사람들을 생각해주는 찬호의 따뜻함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인사하러 온 마을 생존자들을 향해 대충 인사하고선 앞장서는 찬호를 뒤따랐다.

천애랑과 찬호가 마을을 벗어나려는데 영웅건을 맨 미공자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저……. 혹시 괜찮다면 동행 좀 하겠습니다.”

“일 없소.”

찬호가 단호히 말하자 미공자는 물론 천애랑도 당황했다.

-‘찬호, 왜 그리 냉정히 대해? 저 남자에게 뭔가 있는 거야?’

-‘딱히 그런 것은 아닌데…, 굳이 저 자와 동행할 필요가 있겠어?’

속닥이는 둘을 보며 미공자가 꼼지락거렸다.

“제가 좀… 다쳐서 그러는데 치료할 동안만 같이 하면 안 되겠습니까?”

찬호는 미공자의 말을 흘려들으며 천애랑에게 속닥였다.

-‘애랑, 우리가 지금 표사 임무를 수행 중인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을 함부로 합류시킨다면 표국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어.’

천애랑이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그게 그렇게 되나?’

그런 둘에게 미공자가 말을 더했다.

“저의 호위 명목으로 은 20냥을 드리겠습니다. 말이 호위지 그냥 동행만 허락해 주시면 됩니다.”

미공자의 말에 천애랑과 찬호의 신형이 멈췄다.

그런 둘을 보고 미공자가 크게 외쳤다.

“에잉. 각각!”

잠시의 정적 후에 천애랑이 찬호에게 속삭였다.

-‘……괜찮지 않을까?’

찬호가 마지못해 허락해 준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크흠…, 우리가 표사업무를 수행 중이라 이동은 같이 해야 하네. 그래도 괜찮다면 같이 가지.”

뭐가 됐든 동행하게 된 것이 좋은지 영웅건의 미공자는 환히 웃으며 다가왔다.

천애랑은 이 남자의 치아가 어찌나 가지런하고 오밀조밀한지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까이서 보니 꽤나 어려 보였다.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송소…걸이라고 합니다만 성함들이 어떻게 되십니까?”

“찬호.”

“천애랑입니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차분히 걸어 이동했다.

표국으로 귀환하는 동안 송소걸은 쉴 틈 없이 말을 했다.

천애랑은 세상사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 대답을 못 했고 찬호는 귀찮아서 건성으로 대답을 하는 중이었다.

그래도 송소걸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신 재잘거렸다.

“와~ 어떻게 그렇게 강하실 수 있는 거죠? 사문이 있으신가요?”

“…….”

이 질문엔 천애랑과 찬호, 둘 모두 대답을 하지 않았다.

천애랑은 기공가의 후예라는 것이 딱히 비밀인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쉽게 떠들 사안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지난 전투들 때문에 분명 마교나 혈교와도 원한 관계가 생겼을 것이니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 중이었다.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만약 마교나 혈교가 이 원한 때문에 추적해온다면 주변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지금의 몸 상태로 드라쿠 같은 강자를 만난다면 큰일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깨달음이 있다지만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고선 무조건 필패였다.

갑자기 침묵이 생기자 송소걸이 요란을 떨었다.

“헉! 설마 독학으로 그렇게 고강한 무공을 이루신 겁니까?”

찬호가 시끄러운 송소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난 그저 사부에게 배웠을 뿐이다.”

찬호의 두루뭉술한 말을 듣곤 천애랑도 눈치껏 대답했다.

“저는 할아버지에게 배웠습니다.”

다소 성의 없는 대답에 송소걸의 고운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무언가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깐깐한 이들을 보며 알 수 없는 오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두 분은 상당히 친해 보이시네요. 오랜 지기인가 보죠?”

찬호가 다시 한 번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아…….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우다. 누군가와는 다르게 쓸데없는 말이 많거나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지도 않고.”

찬호의 퉁명스런 대답에 송소걸의 볼이 부풀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웃음을 띠면서 자신의 대화 상대를 천애랑으로 바꿨다.

“천 소협은 마치 상대방의 움직임을 다 예측한 듯 움직이시더군요. 대단하던데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찬호와 다를 바 없는 짧은 답변이었지만 천애랑의 표정만은 친절했다.

천애랑이 느끼기엔 이 송소걸이라는 남자는 말이 좀 많을 뿐이지 느껴지는 성품이 나쁜 것 같진 않았다.

“천 소협은 누구와는 다르게 친절하시네요. 하하.”

송소걸은 말을 하며 찬호를 흘겨봤다.

“찬호 저 친구가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나 봅니다.”

“흥, 애랑 자네처럼 순수한 이는 모를 걸세.”

찬호의 의미심장한 말에 송소걸이 움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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