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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27화 (27/200)

기공술사 27화

화들짝 놀라는 표두를 보며 찬호가 물었다.

“왜 그러오?”

천애랑 또한 이유를 알 수 없어 의문의 시선을 모았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표두가 심각하게 말했다.

“운남십귀는 운남에서 유명했던 살인귀들이었습니다. 10명의 의형제들로 구성되어 살인을 즐기는 잔학한 이들이라고 들었습니다. 특히 대장인 일귀는 완숙한 절정의 고수라고 들었습니다.”

표두의 말을 들은 행수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반나절 전의 두려움이 다시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찬호와 제가 가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겠습니다. 만약 그들이 이 마을주민을 추적한다면 이곳이 마냥 안전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들과 싸우는 자가 있는 지금이 기회라 생각합니다. 저희가 가서 상황을 파악할 테니 대비를 하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행수는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천애랑을 말렸다.

“마을 사람들을 지키는 자가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소? 꼭 그래야 하오?”

표두가 행수를 침착하게 진정시켰다.

“행수. 저들의 말이 가장 현실적인 것 같소. 여차하면 우리 모두 표물인 말을 타고 도망칠 각오를 하면 되오. 그러면 극단적인 결과는 피할 수 있을 것이오.”

“끄응…….”

찬호는 두려워하는 행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표두를 보았다.

“한 시진이 지나도 우리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먼저 떠나시오. 어디로 갈지 방향을 아니 따라가겠소.”

표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찬호 또한 마주 고개를 끄덕이곤 천애랑을 봤다.

“금방 다녀오겠소. 애랑 가지.”

“그래.”

찬호와 천애랑이 마을 남자의 안내를 받으며 즉시 몸을 움직였다.

*  *  *

“크하하. 아주 살판이 나는구나!”

“낄낄낄, 그러게 말이유 형님.”

“케헤헤헤헤헤. 여기 계집들이 아주 반반하니 좋습니다요.”

“크크, 남자들은 다 죽이고 계집들과 재물은 모두 모아라!”

10명의 사내들이 마을 이리저리를 뛰어다니며 남자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패악을 일삼는 이들의 얼굴은 모두 흉측할 정도로 못생겼지만 몸놀림 하나만큼은 매우 날랬다.

“끄아악!”

“살, 살려주십시오! 윽!”

난데없는 불청객에 의해서 북경 외곽 소오태산에서 조용히 밭을 일구며 살던 마을이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그때 마을 안의 아름나무 위에서 한 인영이 몸을 숨겨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인영의 이마에 둘러진 영웅건은 질끈 올려 묶은 머리를 예쁘게 고정하고 있었다.

고운 턱선과 깨끗한 피부가 인상적이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공자라고 부를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왜 운남십귀(雲南十鬼)가 여기에? 어떡하지…….’

그때였다.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고 다니는 운남십귀의 막내 십귀(十鬼)에 의해 어린 남자아이가 피를 흘리며 죽었다.

“안 돼!”

아이의 어미는 쓰러지듯 오열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비로 보이는 이는 고함을 지르며 하염없이 피가 뿜어져 나오는 아이의 가슴을 손으로 막고 있었다.

아이의 피가 묻은 검을 살짝 털어낸 십귀는 아이의 어미를 음심(淫心)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와 동시에 방해가 되는 아이의 아비를 죽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칫!’

나무 위의 인영은 혀를 차며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깡!

아비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던 십귀의 검이 갑자기 등장한 검에 의해 튕겨졌다.

죽은 아이의 어미는 남편도 죽을까 봐 소리를 질렀고, 아비는 아이의 가슴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막느라 정신없었다.

십귀는 자신의 검을 막을 막은 이를 사나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누구냐!”

“몰라도 돼!”

서걱!

“컥!”

당연하게 상대가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십귀는 갑작스럽게 휘두른 상대의 검에 목이 잘리며 즉사했다.

정체불명의 인영은 아비규환의 마을의 상황을 둘러보고는 아이의 아비를 불렀다.

“이봐!”

아이의 아비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안고 있었다.

미공자는 혀를 차며 주변을 좀 더 세세히 둘러봤다. 그리고 바로 옆 건물 마구간에서 숨어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이봐!”

“히익!”

마구간에 숨어있던 남자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사내에 의해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다.

“너! 이 마을 사람 맞지?”

숨어있던 남자는 덜덜 떨면서 고개를 다급히 끄덕였다.

“당장 가서 주변에 도움을 청해.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볼 테니까.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을사람들이, 당신의 가족들이 살 수 있는 거야.”

끄덕끄덕.

짝!

두려움에 하염없이 고개만 끄덕이던 남자의 뺨이 휙 돌아갔다.

“정신 바짝 차리고 당장 뛰어! 저쪽이 비었으니 그리고 가!”

“예? 예, 예!”

남자는 허겁지겁 미공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뛰어갔다.

“흐음…. 참지 못하고 나오긴 했다만. 이제 어떡한담.”

미공자는 매끈한 미간에 힘을 주며 고민했다.

“흑흑… 여보…, 철아….”

죽은 아이의 어미는 아이와 남편에게 기어가며 오열했다.

아이의 아비는 하염없이 흐르던 울음을 멈추더니 빨개진 눈으로 일어났다. 그리고는 집의 구석으로 가더니 낫을 하나 들고나왔다.

“하아…. 이봐! 설마 그걸로 저들을 상대하려는 것은 아니지?”

미공자의 말에 아이의 아비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비명소리가 들리는 마을의 중심을 바라봤다.

“…….”

“자네의 심정은……, 에휴….”

팟!

미공자는 낫을 든 아비의 수혈을 짚었다.

“여보!”

여인은 남편이 죽은 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랬다.

이에 미공자가 말했다.

“걱정 마시오. 지금 그대의 남편이 심마(心魔)에 빠졌소. 극심한 슬픔과 분노에 빠져 이지(理智)를 잃어버렸으니 내 강제로 잠을 재웠소. 방으로 들어가 숨어 있으시오…. 아이의 일은 미안하오.”

미공자는 죽은 아이와 아비를 눈에 보이는 집으로 들여다 줬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여인이 잠든 남편과 죽은 아이에게 기대어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미공자는 그 모습을 일별하고선 조용히 문을 닫아줬다.

“홧김에 나서기는 했지만 이제 어떡한담…….”

미공자는 급히 움직이느라 흐트러진 이마의 영웅건을 다시 질끈 매고는 비명소리가 가득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천애랑과 찬호는 마을 어귀에 도착해서 조심히 마을을 살폈다. 이곳저곳 건물이 불에 타고 있었고 비릿한 피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심지어 마을 외곽에서도 몇몇의 시체가 보였었다.

“애랑, 내상을 입어 내공을 못 쓴다면서 괜찮겠어?”

천애랑은 걱정해주는 찬호를 돌아봤다.

“응. 괜찮을 거야.”

“고수가 있다면 내가 상대할 테니 무리하지 말라고. 태어나 처음으로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난 것 같은데 빨리 잃긴 싫단 말이야.”

찬호의 표정엔 진심이 가득했다.

그 표정을 본 천애랑은 기꺼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늦기 전에 어서 가보자고.”

천애랑과 찬호, 마을 남자는 조심히 마을 안을 향해 더 들어갔다. 마을 바깥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 있었다.

그때 길을 안내해 왔던 마을 남자가 덜덜 떨면서 움직임을 멈췄다.

찬호는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 남자를 보채려고 쳐다봤으나 곧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

마을남자는 싸늘하게 식어 누워있는 노파(老婆)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찬호는 그런 남자를 뒤로하고 천애랑을 향해 말했다.

“우리끼리 가자.”

천애랑도 그게 낫겠다고 생각하고는 건물들에 은폐하면서 조심히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무언가 소란이 느껴지는 마을 중심까지 다가가자 일단의 무리들이 보였다. 무리는 양쪽으로 나뉘어 대치하고 있었다.

천애랑은 대치하고 있는 양쪽을 살폈다.

살육의 피를 뒤집어쓴 채 웃고 있는 8명의 못생긴 사내들과 그 반대엔 몸 곳곳에 피를 흘리며 마을사람들을 지키고 있는 미공자가 있었다.

굳이 설명이 없어도 누가 적인지 파악이 됐다.

“크흐흐흐 새끼, 이젠 죽었다.”

“켈켈켈. 감히 우리 형제 둘을 죽여?”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며 공격하더니 드디어 발목을 잡았구만!”

“그러게 말이다 이귀(二鬼)야. 네 말대로 마을사람들을 인질 삼으니 제 발로 나오는구나. 크크큭.”

“운남십귀를 건드렸으니 살 생각은 말아라. 크헤헤헤.”

운남십귀라고 불리는 이들, 이젠 운남팔귀(雲南八鬼)가 되어버린 이들이 자신들의 앞을 막은 눈앞의 사내를 한껏 비웃으며 농락하고 있었다.

운남팔귀의 앞을 막은 사내는 피에 젖어 있었지만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닥쳐! 혹여 내가 죽더라도 최소한 네놈들 중 한 놈과는 같이 죽을 거다! 이 못생긴 것들아!”

남자의 말에 운남팔귀가 꿈틀했다. 평소 못생겼다는 말을 제일 싫어하는 육귀(六鬼)가 소리치며 뛰어들었다.

“이런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죽어라!”

“이익!”

챙!

미공자는 황급히 육귀(六鬼)의 검을 막아냈다.

챙! 챙!

생각보다 날쌘 움직임으로 육귀의 검을 막아내는 사내를 보며 일귀가 입을 열었다.

“협공해서 사로잡아. 저 반반한 얼굴가죽을 벗겨서 인피면구로 만들면 비싸게 팔리겠다.”

“켈켈켈, 알겠수 형님.”

육귀만 막기에도 벅차 보이는 사내에게 나머지 운남팔귀들이 달려들었다.

천애랑은 다급해진 상황에 놀라며 숨어 지켜보던 벽에서 뛰쳐나갔다.

“어? 같이 가야지!”

갑작스런 천애랑의 움직임에 찬호도 다급히 그 뒤를 따랐다.

천애랑은 도를 휘두르는 칠귀의 옆으로 빠르게 뛰어가서 도면을 손등으로 후려쳤다.

급한 마음에 손바닥이 아닌 손등으로 발경의 묘리를 펼친 것이었다. 그리고 본인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 행동엔 이화접목과 사량발천근의 묘리가 녹아 있었다.

휘리리릭!

천애랑에 의해 칠귀의 도가 크게 휘청거리며 날아갔다.

갑작스런 상황에 칠귀는 깜짝 놀랐다. 내기로 무기를 잡고 있었는데 미증유의 힘에 빨려가듯 놓쳐버린 것이었다.

뜬금없는 인물의 등장에 일순간 전투가 소강상태 되었다.

찬호는 천애랑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감탄했다.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움직임이 매우 날랬으며 전투 중의 뛰어난 신체 균형이 놀라웠다.

그리고 분명 이화접목과 사량발천근인 것처럼 보였는데 본인이 더 당황하는 것을 보니 노리고 한 것은 아니었었나 싶었다.

어떤 과거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참 재밌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공이 있었다면?’이라는 가정법으로 그간의 전투를 복기하니 살짝 흥미가 돋았다.

재능 넘치는 이들은 많이 봤지만 천애랑은 뭔가 더 특별한 느낌이었다.

“누, 누구냐!”

칠귀가 허겁지겁 날아간 자신의 도를 줍고 소리쳤다.

천애랑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매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녹림의 산적들을 상대할 때보다 감각이 더 예민해진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말로 설명할 순 없었지만 방금 손의 감촉이 새로운 길을 알려주는 느낌이었다. 어서 빨리 저 검들과 부딪혀 보고 싶었다.

“흐하하하하!”

천애랑은 알 수 없는 설렘에 앙천대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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