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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21화 (21/200)

기공술사 21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천애랑은 마 의원이 놀라기에 덩달아 심장이 철렁였다.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놀라면 어찌 담담하게 반응할 수 있단 말인가.

“자네 기공가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애랑은 조금은 경계심이 들었다.

‘여기서 왜 가문이 나오는가.’

천애랑은 마 의원에게 잡힌 손목을 조심히 빼내었다.

그 모습에 마 의원이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네. 내 기공가와 인연이 있는데 그쪽의 기운과 비슷해서 말일세.”

천애랑이 여전히 경계심이 깃든 표정으로 조심히 말했다.

“……어떤 인연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마 의원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기공가의 가주와 깊은 인연이 있었네. 의술과 진법에도 조예가 깊었던 자라 많은 교류를 했었지. 영약에 대한 논쟁도 자주 했던 자이네만 나는 친우라고 생각하고 있다네.”

천애랑이 놀란 눈을 했다.

“가주… 말입니까? 혹시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마 의원에게서 짙은 그리움의 향기가 뿜어져 나왔다.

“천단호라고 한다네.”

천애랑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할아버지?’

여기서 갑자기 할아버지가 왜 나온단 말인가.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이름을 들은 천애랑은 꽤나 당황스러웠다.

천애랑은 조심스레 말했다.

“……할아버지 되십니다.”

마 의원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할아버지? 자네가 단호 그 친구의 손자란 말인가? 이 어찌……?”

마 의원이 옆에서 시립하고 있던 여인을 불렀다.

“화란아.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구나. 차를 한 잔 내주겠니.”

마 의원의 말에 여인이 공손히 대답했다.

“예. 할아버지.”

여인은 기품 있는 자세로 방을 나섰고, 천애랑은 신기한 눈빛으로 마 의원과 시선을 마주했다.

*  *  *

마 의원의 본명은 마충. 약 100년 전 송나라 시절 황실 의원 수습생이었다.

나라가 전복된 후 세상을 떠돌며 의술에 전념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마 의원이라고 주로 불렸으며 한참 때엔 마 신의(神醫)라고 불리기도 했다.

한때 소림사 대환단을 만들던 진 신의와 더불어 무림의 양대 신의로 명성을 떨치다가 돌연 세상과 담을 쌓고 의각원을 세웠다.

결정적인 원인은 20년 전 기공가의 멸문이었다.

“그날의 충격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네. 평생의 지기를 잃은 것은 물론 석산이 그놈과 식솔들은 나와의 인연이 깊은 아이들이었으니까.”

“그랬군요….”

마충은 당시 천단호가 만든 천고의 영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연구에 몰두하던 중이었다.

오랜 시간을 거쳐 나름의 성과를 얻고 오랜만에 이 주제로 친우와 논쟁도 하고 술도 한잔하려고 기공가를 방문했을 땐, 전투와 화마가 지나간 허망함밖에 남아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단호 그놈이 그렇게 살아남아 이리 훌륭히 손자를 키웠을 줄이야. 허허허.”

마충의 말에 천애랑은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유독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날이었다. 특히나 할아버지를 잘 아는 이와 서로의 추억을 공유하니 더욱 그러했다.

천애랑은 마충과의 대화를 통해 할아버지와 가문에 대한 그리움과 동시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마치 천단호 옆 마루에 앉아 가문의 이야기를 즐겁게 듣던 그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천애랑은 처음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고 마충과 기공가문에 대해 시시콜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한참의 대화를 나누던 중 천애랑은 마충에게 물었다.

“할아버지의 친우시라면 제게도 할아버지가 되시니 괜찮으시다면 할아버지라 불러도 되겠습니까?”

천애랑의 말에 마충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물론일세! 이렇게 기쁜 날이 있나! 그래. 나도 이제부터 말을 편히 할 테니 애랑 너도 친할아버지처럼 편히 말을 하거라.”

천애랑의 얼굴에서 따뜻한 웃음이 피었다.

“예.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손녀와도 친하게 지내라. 나이도 비슷하니 말이 통할 것이야.”

천애랑은 다소 놀란 눈으로 화란을 보았다.

‘마 할아버지의 손녀인데 나랑 나이가 비슷하다니…….’

마충의 나이가 120세인데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알겠습니다.”

천애랑과 충의 긴 대화 중에도 화란은 처음처럼 담담히 면포를 쓴 채 앉아 있었다.

마 의원이 그 모습에 혀를 차고 핀잔을 줬다.

“에잉. 화란아 실내에선 면포 정도는 벗어도 되지 않겠니.”

왜 면포를 고집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닙니다. 혹시 저 때문에 불편한 거라면 전혀 개의치 않으니 편하게 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천애랑의 말에 화란이 잠시 천애랑의 눈치를 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할아버지와 깊은 인연을 가지고 계신 분께 실례했습니다. 너무 놀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괜찮은데.’

천애랑은 멋쩍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가 보기에 무림의 사람들은 참 예의를 잘 챙기는 것 같았다.

화란은 천애랑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면포를 살며시 벗었다.

걷어진 면포 뒤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왜 화란이 그토록 실내에서도 면포를 고집했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화란의 얼굴은 한쪽이 화상 때문에 피부가 수축해서 생긴 주름으로 가득했다.

화상을 입은 쪽의 눈이 멀쩡한 게 천운처럼 느껴질 흉터였다.

화란을 보는 천애랑은 덤덤했다. 그런 천애랑을 화란이 이채를 띠며 보았다.

“놀라지 않으십니까?”

천애랑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놀라운 게 아니라 안타깝습니다. 그 상처 많이 아프셨을 텐데요. 할아버지. 저 상처는 치료가 불가능했던 겁니까?”

천애랑이 순수하게 묻자 마충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내 기공가라면 그럴 줄 알았다. 항상 외견보다 그 내면과 본질을 꿰뚫는 재주가 있는 이들이었지. 그런 성향 때문인지 무공의 성취가 남다르기도 했고 말이야.”

산의 초입에서 진법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화란의 이야기를 마충이 언급한 거였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게 최선이었단다. 지금 보이는 상처보다 더 크게 다쳤었는데 그나마 많이 치료하고 어쩔 수 없는 상태만 남았지.”

“아…….”

천애랑은 안타까움의 탄식을 뱉었다.

화란은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천애랑을 보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상의 흉터 때문에 미소가 어색했지만 그래도 포근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천애랑은 갑자기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마충이 몇 마디 말을 더 했음에도 천애랑은 이를 듣지 못하고 생각에 집중했다.

마충과 화란은 갑작스런 천애랑의 행동이 의아했으나 잠시 조용히 기다림을 가졌다.

잠시간의 시간이 지난 후 천애랑이 천천히 입을 뗐다.

“혹시 환골탈태는 어때요?”

고심 끝에 내민 천애랑의 말에 마충이 허허롭게 웃었다.

“하하하! 애랑아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성취를 말하는 것이냐. 참신하다만 불가능하다.”

천애랑이 치료법이라고 한 말은 마충이 100년이 넘는 의원 생활 동안 본 적 없는 전설의 영역이었다.

마충은 손녀를 걱정해주는 천애랑이 그저 귀엽고 대견했다. 그는 그런 천애랑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차를 홀짝였다.

천애랑은 마충의 무심한 반응을 보고서 덤덤히 말했다.

“제가 해봤는데요? 불가능하진 않아요. 어려울 순 있어도.”

“풉!”

마충이 차를 뿜었다.

화란도 놀라서 따르던 차가 넘치는지도 모른 채 천애랑을 쳐다봤다.

천애랑은 콧잔등을 찡그리며 두 사람을 보았다.

왜 놀라는지는 이해는 되는데 그렇다고 저렇게 놀랄 일인가 싶었다.

“내공 쌓고 수련하고 대자연을 담을 그릇을 만드니까 몸이 절로 그리 되더라고요. 환골탈태에 대한 할아버지의 축하를 받기도 했었고요.”

작은 초옥 안에 적막이 흘렀다.

쪼로로록.

화란이 따르던 찻잔이 계속 넘치고 있자 천애랑이 조심히 화란의 손에서 찻주전자를 건네 잡았다.

그 과정에서 살짝 손이 스치자 화란이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마충은 진지한 표정으로 천애랑에게 물었다.

“환골탈태를 했다고? 그 과정에 대해선 기억이 나느냐?”

천애랑은 당시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저에겐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어서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일 갑자 이상의 내공과 대자연의 기운에 대한 소통이 원만할 때 이뤄졌던 것 같네요.”

“일 갑자… 대자연의 기운…….”

마충이 연신 중얼거리며 혼자만의 심상에 빠져들었다.

천애랑은 이럴 때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차를 홀짝였고 화란은 그런 천애랑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잠시간의 시간이 흐르자 마충이 또렷한 시선을 회복했다.

“애랑아. 혹시 우리 화란이를 치료해 줄 수 있겠느냐?”

마충의 말에 천애랑은 의아했다. 의원은 내가 아니라 이들이지 않은가.

“할아버지. 저는 의원도 아닌걸요. 그냥 그런 방법도 있지 않을까 사례만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마충은 주름진 입술을 질끈 깨물고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애랑 네가 익힌 기공가의 심법을 화란이가 익힌다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천애랑은 마충이 왜 저리 고심하고 무겁게 말을 꺼냈는지 이해했다.

천애랑이 마충에게 환골탈태를 말한 것은 그저 하나의 치료에 대한 임상적 결과를 보고 그 해결 방법은 의원들이 찾아야 한다는 의미였었다.

그러나 마충이 지금 하는 말은 그 치료를 천애랑에게 전담으로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충이 말을 매우 조심스럽게 하는 이유는 손녀의 치료를 위해서 기공가의 비전을 공유해 달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무림에 이름을 날린 무공비서가 발견되기라도 하는 날엔 수많은 피가 흐르기도 하는 것이 상승 무공 비전의 가치였다.

천하제일인이 있었고 기와 관련해선 천하제일을 논하는 기공가의 비전이라면 그 값을 매길 수 없을 것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천애랑에게 있어서 이 부탁을 쉽게 들어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천애랑은 고민하면서 화란의 흉진 얼굴을 보았다.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말해라. 개인적으로 가능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주마.”

마충은 손녀의 얼굴을 치료할 수만 있다면 개인적으로 어떤 대가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손녀가 얼굴의 흉터 때문에 20여 년간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마충은 손녀의 얼굴이 제발 치료되어 답답한 면포도 그만 벗고 원활한 가정도 꾸리며 살았으면 싶었다.

자신이야 살 만큼 살았기에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고 여한도 없지만, 단 하나 마음에 남는 것은 손녀의 행복한 미래를 만드는 데 도움을 못 준다는 점이었다.

천애랑은 각오 가득한 마충의 눈빛을 보았다.

천애랑 또한 진지한 눈빛으로 마충과 시선을 마주했다.

“기공가의 식구가 되십시오. 그렇다면 힘이 닿는 한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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