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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9화 (19/200)

기공술사 19화

천애랑은 의원이 이렇게 어지럽혀진 공간 안에서 물건을 착착 찾아내는 것이 기예처럼 보였다.

잠시간 종이에 무엇인가를 적은 의원은 그것을 천애랑에게 내밀었다.

“이곳 적성에서 서쪽으로 가면 장가구가 나옵니다. 두 도시 사이에 있는 다섯 바위 봉우리의 중심에 의각원이 있습니다. 산의 초입에 보시면 거북이처럼 생긴 바위가 있을 겁니다. 거기서 어슬렁거리시면 누군가가 나올 겁니다.”

천애랑은 의원의 말을 상당히 흥미롭게 들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간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들이 제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고 보는 겁니까?”

천애랑의 질문에 젊은 의원이 순순히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자신하진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의술만 수련하는 신비문파 중 하나이기에 다양한 임상이 존재합니다. 공자님의 상태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들은 천생 의원이기에 새로운 증상의 환자들을 매우 환대합니다. 아마 공자님을 박대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천애랑은 그들이 꽤나 어이없는 사람들인 것 같았다.

저 말대로라면 다양하게 아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면 잔치라도 열릴 집단 같았다.

“그런데 왜 자꾸 저보고 공자라고 부르는 겁니까.”

천애랑이 아까부터 들었던 궁금증을 묻자 의원이 작은 미소를 띠었다.

“실은 제가 그 의각원의 수련생 중 하나입니다. 나름 성취도 있어서 실습 및 돈벌이 겸 이곳에 잠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환자분들을 뵀었죠. 당연히 무림인들도 있었구요.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진료를 위해 손목을 내주진 않았습니다.”

“대체 그 손목이 뭐기에 그럽니까?”

젊은 의원은 이런 질문을 하는 천애랑을 신기하게 봤다. 무림인이 분명한 사람이 궁금해하기엔 매우 기초적인 지식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공을 익힌 무림인에게 직접적인 내공의 간섭은 즉시 큰 부상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엔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지요.”

천애랑은 놀란 눈을 했다.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천애랑은 순순히 내민 그의 손목을 보고 의원이 더 당황하던 게 떠올랐다.

‘어쩐지…….’

이제야 이해가 된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천애랑을 여전히 신기하게 쳐다보던 의원이 극히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설동이라고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의각원의 수련생 중 한 명입니다. 꽤나 좋은 인연을 만난 듯해 이리 인사드립니다.”

갑작스런 의원의 인사에 천애랑은 당황했다.

인사를 하는 자세가 너무 과할 정도여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니 쳐다봤다.

이내 정신을 차린 천애랑은 마주 인사를 했다.

“천애랑입니다. 그리고 과례입니다. 인사를 그만 거두어 주시지요.”

천애랑의 대답에 의원 설동이 깊게 숙인 고개를 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언젠가 상식과는 궤를 달리하는 영웅을 만날 날을 고대해 왔습니다. 첫 만남에도 운명적 느낌을 받는 이를 기다려왔죠. 왠지 공자님이 그런 느낌을 제게 줍니다. 무림인이 제게 전적인 신뢰로 손목을 내어준 것은 처음이었거든요!”

천애랑은 설동을 보며 눈을 좁혔다.

‘왜 이러는 걸까. 미친놈인가. 아니면’

“뭘 잘못 먹었습니까?”

‘아. 속말이 튀어나와 버렸네.’

천애랑의 실언에도 설동은 더욱 환히 웃었다.

그 모습에 천애랑이 더욱 눈살을 좁혔다.

‘이쯤 되니 무서울 지경인데.’

설동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쑥스러워 겸양을 하시는 것도 재치가 있으십니다.”

뭔가 상태가 이상한 의원에게 멀어지기 위해서 천애랑이 뒷걸음질 치자 의원 설동이 다급하게 무언가를 주섬주섬 챙겨서 건네 왔다.

천애랑이 의아해하자 설동이 여전히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이슬비로만 적신 수상초와 장시간 숯으로만 은은하게 말린 백린초 등을 적절히 혼합해 만든 자양강장제입니다. 건강에 좋은 거니까 가시는 길에 챙겨 드시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천애랑은 당혹스러웠다. 잠시간 미친 의원이라고 생각했는데 환자를 대하는 태도만 보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천애랑이 다시 이 약에 대해 값을 치르려 하자 설동은 격하게 손을 저었다.

“아아! 됐습니다. 공자님의 앞날을 위한 작은 투자금이라고 편히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저흰 인연이니 다시금 만날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천애랑은 설동을 보며 역시 이상한 의원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공자의 앞날 앞에 ‘저와’라는 단어가 작게 들린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깊게 생각지 않기로 했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천애랑은 설동 의원이 써준 의각원 추천서와 자양강장제 여섯 알을 품에 챙기고선 밖으로 나왔다.

세상엔 참 착하지만 이상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 하루였다.

포목점에서 늑대가죽을 판 잔금으로 새로 옷도 맞췄고 의원도 만났으니 이제 계획했던 마지막 행선지로 향하기만 하면 됐다.

담 소협처럼 길 안내를 해줄 꼬마를 찾을까 하다가 심양만큼 큰 마을은 아니어서 그냥 둘러보며 찾기로 했다.

‘담 소협과 소연 낭자는 잘 지내려나.’

좋은 추억을 쌓았던 담가 남매가 떠오르자 포근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아마 둘은 잘 지내리라.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나겠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었다.

이 몸 상태로는 그들을 지키기도 어려울 것이고 심양 이후로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집으로 잘 귀가했을 것 같았다.

천애랑은 이런저런 상념을 가지고 객잔을 찾았다.

객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왁자지껄 사람들의 향취가 물씬 풍겼다. 추워진 겨울 날씨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따뜻한 음식들로 몸을 데우고 있었다.

천애랑은 점소이의 활기찬 인사를 받으며 자신 있게 주문을 했다.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직접 하는 주문이자 처음으로 직접 계산하는 거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괜히 웃음이 나왔다.

“우선 만두 다섯 판!”

천애랑의 주문에 점소이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점소이는 이내 영업미소를 띠며 자리를 안내했다.

*  *  *

적성에서 장가구를 향해 서쪽으로 향하는 길은 산으로 가득했다.

천애랑은 끝없는 산들을 보며 헛웃음을 뱉었다.

‘난 산이랑 깊은 인연이라도 있는 건가.’

태어난 곳도, 담가 남매와 걸었던 길들도, 큰 전투와 봉변을 당했던 장소 모두가 산이었다.

그래도 잘 먹고 푹 쉬었더니 내공만 없을 뿐 몸 상태는 매우 좋았다.

오히려 감각이 전보다 예민해져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추가적으로 무언가 간질거리는 느낌이 있었지만 알 순 없었다.

객잔에서 잔뜩 포장한 만두를 등에 메고 그중 하나를 입에 물고 한참 산길을 오르는데 갑자기 덩치가 큰 남자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모두 헐거운 옷을 입고 있었는데 추운 겨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산적?’

산적을 만나는 것도 처음인 것 같다.

천애랑은 요즘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서 항상 새롭고, 그 과정에서 작은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천애랑은 이런 게 평화와 행복인가 싶었다.

“크하하! 겁도 없이 이 길을 혼자 걷는 놈이 다 있네.”

“형님 드디어 기회가 왔소. 저 놈 옷도 준수하니 나름의 푼돈은 있겠는데요?”

천애랑은 산적들의 숫자를 세어봤다.

“열 명?”

“응?”

천애랑의 혼잣말에 산적들이 반응했다.

천애랑은 진지하게 고민을 하더니 산적들에게 말했다.

“이 인원으로 한 명 털면 타산이 맞습니까? 이쪽은 길이 험해 사람도 없는 것 같던데요.”

그랬다. 천애랑은 빠르게 가로지를 생각에 방향 상의 직선으로 무작정 가는 중이었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어찌나 산세가 험한지 야생동물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었다.

천애랑의 엉뚱한 질문에 산적들이 진지하게 토론했다.

“그것도 맞는 말이우 형님. 우리 입은 열 개인디 수익이 없어서 생고생이지 않소. 요즘엔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수준 아니오.”

“맞는 말이우.”

산적들이 웅성거리자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크게 혀를 찼다.

“쓰읍! 어허! 우리가 그걸 몰라서 여기 있느냐. 약한 소리들 말어!”

천애랑은 산적들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산적들이 어수룩해 보였다. 그리고 뭔가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

꼬질꼬질한 얼굴과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도 비슷했고 강인해 보이는 주걱턱도 비슷했다.

심지어 가장 어려 보이는 놈은 덩치는 커도 아직 수염이 자라지도 않았다.

‘아! 그건 나도 비슷하네.’

천애랑은 근처에 있는 앉기 좋은 바위에 털썩 걸터앉으며 말했다.

“형제들입니까?”

산적들은 자신들을 앞에 두고도 태연한 천애랑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자태가 범상치 않아 섣불리 행동하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산적들의 손에 들린 곡괭이, 낫, 죽창이 머쓱하게 각자 엉뚱한 방향으로 꼼지락거렸다.

“맞다! 우린 모두 자랑스러운 형제들이다!”

몇 째인지는 모르지만 대충 수염 난 주걱턱의 누군가가 호기롭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눈은 잔뜩 진동하며 때마침 만두를 집어 입에 넣는 천애랑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천애랑은 피식 웃으며 손짓을 했다.

“다 이리로 앉으세요. 제가 가족, 형제 이런 거에 마음이 약한 사람인지라 크게 인심 씁니다.”

천애랑은 등에 한가득 짊어지고 있던 봇짐을 조심히 내려놨다.

그리고 봇짐을 열자 대형 만두 판이 5개 쌓여있었다.

산적들은 쭈뼛거리다가 슬금슬금 천애랑에게로 모여들었다.

“거 살기(殺氣)도 없고 무기도 잡아본 경험도 없는 것 같은데 괜히 힘 빼지 말고 앉읍시다?”

천애랑의 나긋한 말에 또다시 몇 째인지 모를 대충 수염과 주걱턱의 산적이 발끈했으나 두목이 다급히 말려 진정시켰다.

천애랑과 가장 가까이 있던 산적 두목이 순식간에 일렁이는 천애랑의 분위기 변화를 느낀 것이었다.

산적 두목은 천애랑이 여러모로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 느꼈다.

그리고 분명 자신들은 상대가 안 되는 무림인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눈치 하나로 살아온 자신이었다.

“혹시 사람을 헤쳤습니까?”

천애랑의 질문에 눈치 빠른 산적 두목이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사정을 설명했다.

“아닙니다. 실은 토호들의 전횡(專橫)과 요즘 시끄러운 전황(戰況) 때문에 산으로 숨어든 무지렁이들입니다. 이번 산적질도 처음이었습니다.”

그 말에 천애랑이 안도의 끄덕임을 하며 만두 하나를 산적 두목에게 건넸다.

산적 두목은 천애랑의 만두를 공손히 받으며 눈치껏 자신들을 소개했다.

“저희 10명은 형제들로 저 일장부터 이장, 삼장, 그렇게 십장까지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애랑은 촌스러운 형제들의 이름에 말문이 막혔다.

그 기색을 읽은 일장이 굳이 이름에 담긴 의미를 말했다.

“……장수하라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긴 합니다.”

천애랑은 웃음을 참았다.

일장은 천애랑의 눈치를 보면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대협께선 역시…… 무림인이시겠죠?”

천애랑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대협이라는 표현은 부담스러우니까 공자라고 부르세요. 한 번 들어보니까 듣긴 좋더라고요.”

일장이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질문은 천천히 하고 우선 다들 만두나 먹읍시다.”

산적들이 여전히 쭈뼛거리자 천애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면 저한테 산적질을 강행하실 겁니까? 굳이 그러시겠다면야.”

손을 털고 일어서려는 천애랑을 보며 산적들이 황급히 착석했다.

배고픔 때문에 산적질을 하려던 건데 다투지 않고 배를 채울 수 있다면 원하는 바를 달성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산적들은 생각했다.

천애랑은 산적들을 보았다. 만두 하나씩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들을 보니 생김새와 달리 순박해 보였다.

인상은 좀 더럽다 해도 그 본질은 선한 사람들 같았다.

어떤 사연들이 이들을 산적으로 몰아붙였는지 모르나 아직은 개도의 기회가 있어 보였다.

“일장 님.”

갑작스런 천애랑의 부름에 만두들 먹는 형제들을 흐뭇하게 보던 일장이 화들짝 놀라며 다가왔다.

“예, 예! 공자님!”

“산적질을 계속하실 생각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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