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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8화 (18/200)

기공술사 18화

“기공가…….”

“약관에 화경의 고수랑?”

“허어…….”

“아미타불…….”

“무량수불….”

“안타까운 인재를 또다시 잃었는가…….”

“역시 천하제일가….”

다양한 반응들이 장내에 찰랑거렸다.

방덕은 속으로 생각했다.

‘천 소협. 그대의 희생으로 내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기에 볼품없지만 나름의 작은 보답을 한 것이네. 기공가의 위상이 잠시나마 이어졌고 모두가 기억하고 고마워한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구만.’

방덕은 장내의 분위기가 적당히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기공가와 기공가의 후손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다시 마교와 그에 파생된 소식들을 전하고자 합니다.”

방덕의 말에 분위기가 다시 진지하게 무르익었다.

“그래 주시게.”

“우선 다들 아시겠지만 새로 등극했던 토그테무르 황제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쿠실라 황제가 새로이 등극했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흑풍대가 몰래 황실로 들어갔지요.”

“아미타불. 그게 연관이 있다고 말하고자 함인가?”

소림 방장 대신 참석한 무원대사가 궁금증을 표했다.

“맞습니다. 우선 전 황제였던 토그테무르 황제는 기존 황실이 그래왔듯 마교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던 황제였습니다. 그런데 새로 황제가 된 쿠실라는 혈교와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마교가 움직일 이유가 하나 생긴 겁니다. 자신들의 달콤한 끈이 사라졌으니까요.”

방덕은 사람들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흑풍대의 행보에 대한 이유 중 하나가 마교의 소교주에도 있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소교주?”

“예. 마교의 소교주가 전전대 황제의 5번째 첩의 딸인 한 공주와 관계가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신분을 속이고 황실에 머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황자의 난 때 다수의 공주들이 죽었고 그때 그 공주도 죽은 것 같습니다. 그 후로 마교 소교주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행방이 묘연하다?”

방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때문인지 흑풍대가 황실에서 벗어나지 않고 무언가를 찾는 모양새입니다. 추측건대 흑풍대가 황실 근처에 머무름으로써 소교주의 행방과 안전을 확보하는 한편 현 황제와 혈교를 견제하는 역할도 하려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방덕은 이야기를 마치고선 대중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만히 듣고 있던 제갈청이 방덕에게 감사의 눈인사를 보냈다.

“와개님의 정보를 토대로 판단하자면 우리가 해야 할 움직임이 정해집니다.”

제갈청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게 무언가?”

제갈청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첫째로는 사라진 소교주의 행방을 찾아야 합니다. 마교의 소교주라면 마교를 압박할 패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갈청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둘째는 혹시 모를 마교나 혈교의 도발에 대비해야 합니다. 50년 전의 사건처럼 일이 터지고 난 뒤 연합하여 대응한다면 또다시 수많은 이들의 피를 흘려야 할 것입니다. 하여 무림맹을 제안합니다.”

제갈청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쳤다.

“셋째로는 마교나 혈교가 판치는 황실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적대적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 전 주원장이 홍건적들을 이끌고 황실의 10만 군세를 물리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세는 늘어나지만 그들을 이끌 중간단계의 인물들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각 문파의 일, 이대 제자들을 파견하여 도움을 주면 좋을 듯합니다.”

팽진성은 가문의 인재들을 도적들에게 보낸다는 게 영 맘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홍건적이라고 하면 기껏해야 도적들이 아닌가?”

팽진성의 다소 무례하고 날 선 반응에 제갈청이 부채를 펼쳐 입을 가리며 표정을 숨겼다.

“단순한 도적이 아닙니다. 현재 크게는 세 개 정도의 홍건적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중 주원장의 사상이나 실력이 가장 뛰어난 걸로 판단됩니다. 무림인에 대한 이해도도 높구요.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주원장은 호랑이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날개죠. 우리가 도움을 준다면 충분히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신기제갈(神機諸葛)이라 불리는 제갈세가 가주의 말이기에 장내의 사람들이 고심하기 시작했다.

제갈청이 펼친 부채를 접으며 손바닥에 탁 쳤다.

“생각해 보십시오. 마교를 등에 업고 나라를 세운 몽골족 황실이 우리를 얼마나 핍박했는지. 그리고 황실의 힘을 업은 마교에 의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야 했는지요.”

제갈청의 말에 장내의 인물들이 인상을 썼다.

분위기를 주도한 제갈청이 말을 이었다.

“그나마 각개로 대응할 무력이 있고 정파라는 유대감이 있기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혈교가 잠시 권세를 잡았겠지만 조만간 마교에서는 새로이 황제가 된 쿠실라를 몰아내고 확실하게 본인의 입맛에 맞는 황제를 세우고자 할 것입니다. 그동안 황실과 쌓은 관계와 그 저력이 만만치 않을 테니까요.”

장내의 인물들이 제갈청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들을 주억거렸다.

“그렇게 된다면 저희의 입지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 자명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황실은 완벽히 하나의 마교로 세력화가 될 테니까요. 그때부턴 저희는 무림인 간의 싸움이 아닌 수십만의 황실군대와 싸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모두가 불편한 상상을 펼쳤다.

“크흠…….”

“흐음…….”

장내의 이들은 머리가 복잡한지 연신 침음을 흘렸다. 그런 이들을 보며 제갈청이 더욱 강경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항상 수동적이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능동적으로 우리가 기회를 잡을 때입니다. 이제부터 정파 무림의 누구도 배척하지 않는 겁니다. 전공을 세우길 원한다면 중소문파의 이들도 기꺼이 무림맹의 깃발 아래로 참여시키는 겁니다. 우리도 서로의 이득을 위해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같이 무림맹이라는 깃발 아래서 우리가 황제를 세울 수 있습니다.”

제갈청은 우리라는 말에 힘을 주며 황제를 세운다는 다소 불순한 선동어를 내뱉었다.

정파라는 명분이 약하고 이권에 애민한 세력의 인물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신검 백청선 등 최고 원로들에겐 미리 양해를 구한 내용이었다.

제갈청의 의도대로 장내의 몇몇 세력의 장(長)들은 연신 탐욕스러운 눈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들은 잠시간 고심의 시간을 가지고 투표를 했다. 여러 설전이 오가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무림맹의 결성에 의견이 모아졌다.

제갈청은 이야기를 마무리 짓기 위해 목소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하여 무림맹의 초대 맹주로는 연배도 높으시고 그 식견이나 무공실력, 대중의 인지도가 가장 높으신 신검(神劍) 어르신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크흠…….”

하북팽가의 가주 팽진성은 내심 맹주자리가 욕심이 났지만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신검 백청선을 인정하는 분위기인지라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견이 있으신 분들은 말씀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무도 이견을 말하지 않았다.

만약 이곳에 소림 방장이 있었다면 모를 일이었지만 그는 현재 폐관수련 중이기에 논외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리고 장내의 사람들은 이왕 의견이 모아진 무림맹 결성 앞에 괜히 나서 시류에 역행하는 누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무림맹 결성 초기 과정에서의 이득을 확보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모두의 의견이 정리되자 백청선이 자리에 일어나서 포권을 취했다.

“감사히 맹주의 직을 받겠소. 그리고 직급은 위에 있다고 하지만 여러분들의 의견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경청하겠소이다. 다만 시급을 요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관습에 그래왔듯 맹주의 권한으로 진행할 수 있음을 미리 밝히니 양해를 부탁드리오.”

장내의 인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좀 더 세부 부서를 구성해야겠지만 우선 무림맹 군사 직은 제갈청 가주에게 맡기고 싶소만 괜찮겠소?”

“그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미파의 백원신니(白猿神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림이나 무당파, 공동파, 청성파 등의 인문들도 동조를 했다.

이미 백청선 및 제갈청과 이야기가 된 문파들이 반응을 이끌어 가자 무난히 회의가 흘러갔다.

대충의 사항들이 정리되자 제갈청이 일어나 공식적으로 말했다.

“분골쇄신(粉骨碎身)하여 맹의 군사 직을 수행하겠습니다. 그럼 각자 휴식을 취하시고 이틀 뒤에 세부적인 안건들에 대해 회의를 재개하겠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  *  *

하북 북쪽에 위치한 적성(赤城)의 마을.

천애랑은 포목점에서 늑대가죽을 팔고 받은 두둑한 전낭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처음으로 스스로 번 돈이었다.

이왕 잡은 늑대들이었기에 가죽을 벗겨 마을까지 챙겨왔었다. 마을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니 늑대고기는 그 자리에서 먹고 남은 것은 다 버리고 왔었다.

포목점 주인이 늑대고기도 선호층이 있어서 곧잘 거래된다고 했을 땐 챙겨올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괜찮았다.

늑대가죽으로 상당한 대가를 받았다. 검이나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늑대를 잡았기에 가죽상태가 최상품이라고 포목점 주인이 넉넉히 값을 치러 주었다.

천애랑은 처음에 포목점 주인이 이상한 눈빛을 보이기에 직접 때려잡은 거라고 피 묻은 손을 보여준 것 덕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직접 잡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내민 손이었지만 포목점 주인의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천애랑은 어깨를 으쓱였다.

‘대가를 잘 받으면 좋은 거지.’

천애랑은 돈을 들고 그대로 의원을 찾아갔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진단을 받고 싶었다.

[의(醫)]

의원을 나타내는 깃발이 한 건물 앞에 펄럭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쿰쿰하고 달짝지근한 한약 냄새가 풍겨왔다.

의원(醫院) 안은 모든 집기류가 어지러이 흩어져 지저분한 인상을 주었다.

쉽게 깨지기 좋은 자기(瓷器)류가 입구 바닥에 뒹굴고 있어서 천애랑은 조심히 발을 들였다.

이런 지저분한 곳에 손님이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계십니까.”

크게 사람을 부르자 건물 뒤편에서 누군가 손을 털며 나타났다.

“누구십니까?”

꽤나 단정한 외모에 흰색 계열의 옷을 입은 남자였는데 약재를 달이고 있었는지 작은 부채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이가 젊어 보이는 게 특이했다. 많아 봐야 이립쯤 됐을까? 약관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듣기로는 의술이라는 공부가 매우 심오해서 성취가 있기까지의 기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었다.

그래서 나름 마을에서 방귀 좀 뀐다는 의원들은 못해도 나이가 40은 훌쩍 넘는다고 들었다.

물론 젊다고 해서 실력이 없다는 편견은 섣부르니 천애랑은 방문한 목적을 말했다.

“히야~ 손님이라니! 반갑습니다. 내상을 입으셨다고요? 무림인이시고요?”

조금 이상한 구석이 있지만 눈빛은 맑았다.

천애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의원은 이리저리 천애랑의 신색을 살피더니 손을 내밀었다.

“우선 진맥을 해보겠습니다. 손목 좀 주시겠어요?”

천애랑은 의원의 말에 순순히 손목을 건넸다.

그런데 이 행동에 젊은 의원이 화들짝 놀라며 입을 헤벌쭉 벌렸다.

“신기한 분이시네요. 내공을 익힌 무림인들은 손목을 잡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데요.”

천애랑이 무슨 의민지 이해를 못해 고개를 갸웃하자 의원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흰소리입니다. 우선 상태를 살펴보겠습니다.”

의원이 눈을 감고 천천히 천애랑의 상태를 진맥했다.

천애랑은 이질적인 내공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대체로 편안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의원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곤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예?”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공이 굳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에 반해 몸 상태는 꽤나 양호하네요. 마치 다리뼈가 부러졌는데 건강하게 잘 걸어다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데 제 식견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강제로 내공을 자극시키는 방법들이 떠오르긴 합니다만 임상적으로 근거도 자료도 없어서 전혀 고려하고 싶진 않네요.”

천애랑은 덤덤히 의원의 말을 들었다.

어차피 이곳에 오기 전 큰 기대는 한 것은 아니었다.

내공의 부상이라는 것이 쉽게 치료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들렀을 뿐이었다.

또한 내공이 없어도 당장 생존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은 경험이 불안감을 많이 희석시켜 주었기에 급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있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천애랑이 계산을 하려 하자 의원이 황망하게 손을 저었다.

“제대로 된 원인과 치료법도 말해주지 못했는데 돈은 받을 수 없습니다. 다만 공자께서 생각이 있으시다면 의원들의 집촌인 의각원에 추천서를 써드릴 수는 있습니다.”

“의각원?”

의원이 방 안 어딘가로 대충 손을 뻗어 종이와 붓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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