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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7화 (17/200)

기공술사 17화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청의 서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공명의 후예이자 무림 문파들 중 가장 머리가 좋기로 소문난 제갈세가는 평소 무림세가들의 회의가 있을 시에 진행을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왔다.

제갈청은 말을 했다.

“모두들 이렇게 귀한 발걸음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 괜히 말 빙빙 돌리지 말고 빨리 진행합시다.”

평소 안하무인 적 성격에 다혈질로 유명한 하북팽가(河北彭家)의 가주 팽진성(彭震盛)이 제갈청을 재촉했다.

제갈청은 침착한 미소를 지었다.

“벽력도제(霹靂刀帝)의 말씀대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탁상 주위의 모든 이들이 집중했다.

“마교가 움직였습니다.”

제갈청의 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마교가 움직이는 거야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붉은 승려복을 입은 부드러운 인상의 중이 말을 했다.

그는 현재 소림사 장문인인 오각대사가 면벽수련 중이었기에 대신 참석한 호법전주 무원대사였다.

제갈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우선 마교와 황실, 둘 간의 유착관계는 대외적으로 공표된 사실은 아니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원 황실이 들어선 이래 마교의 세력이 걷잡을 수 없게 커졌지요. 20년 전 잠시 주춤했다지만 여전히 천하제일세(勢)는 마교입니다. 하지만 우리 정파의 든든한 기둥들이신 여러 어르신들께서 계시기에 견제가 되고 있음도 사실입니다.”

제갈청의 말에 장내의 인물들이 만족스러운 듯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청은 장내의 인물들을 천천히 살피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마교의 흑풍대(黑風隊)가 비밀리에 북경에 들어섰습니다.”

“뭐라?!”

하북에 적을 두고 있는 하북팽가와 진주언가의 가주들이 놀라 크게 반응했다.

특히 하북성 북경에 위치한 하북팽가의 가주 팽진성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했다.

하북팽가의 가주가 붉어진 얼굴로 언성을 높이려 하자 검의 명문 화산파의 장문인인 신검(神劍) 백청선이 그 틈을 자르며 입을 열었다.

“확실한 정보인가?”

백청선은 화경의 고수로서 평소 그 성품이나 실력에서 만인의 존경을 받는 이었다.

전각 밖의 수많은 군중들 중 많은 이들이 화산파의 장문인을 구경하기 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얗고 곱게 늘어뜨린 수염을 쓰다듬는 백청선의 목소리와 손에 약간의 떨림이 묻어났다.

제갈청은 공손히 대답했다.

“여기 개방의 와개(臥丐)님이 가져온 정보입니다. 자세한 사항은 여기 와개님이 말씀드릴 겁니다.”

제갈청의 옆에 앉아 차분하게 사람들을 관찰하던 와개(臥丐) 방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정중히 포권을 했다.

평소 가벼운 언행으로 살던 방덕도 이 자리에서만큼은 몸가짐을 조심했다.

“개방의 방덕입니다.”

웅성거리던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정보 집단의 최고봉인 개방의 대표로서 하는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회의장의 인물들이 집중했다.

그만큼 마교 흑풍대라는 이름의 영향력은 컸다. 50년 전 마교가 원나라를 적극 도와주면서 세력을 확장할 때에 정파와 마교 사이에서 매우 큰 전쟁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정파의 모든 세력들이 연합하여 자신들의 터전을 지킬 수 있었지만 그 피해가 엄청났다.

당시 마교의 선봉에는 흑풍대가 있었고 그때를 기억하는 정파의 원로들은 흑풍대의 공포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교적 젊은 하북팽가의 가주는 당시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다른 이들의 공포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마교의 무력단체가 자신의 영역을 지나갔는데 몰랐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해있을 뿐이었다.

“흑풍대가 뭐기에 이렇게 긴장들 하는 겁니까? 그깟 마교 나부랭이들은 그냥 제 벽력도로 쓸어버리면 그만인 것을.”

“하아……. 팽 가주 자네의 조부께서 흑풍대에 돌아가셨다네.”

당시 전장에서 동분서주했던 아미파의 백원신니(白猿神尼)가 팽진성을 조용히 타일렀다.

“크흠…….”

배분과 명성이 높은 백원신니의 말에 팽진성이 반박하지 못하고 멋쩍은 헛기침을 했다.

화산파 장문인인 백청선이 분위기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와개여 계속해 주시게.”

방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예, 제가 모종의 연유로 백두산을 거쳐 요녕의 심양에 갔을 때에 마교의 장로를 만났습니다.”

웅성웅성.

다시 한 번 장내가 시끄러워졌다.

“그만!”

백청선이 내공을 섞어 말했다. 그러자 주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백청선은 다시 방덕에게 계속하라고 눈빛을 보냈다.

방덕이 말했다.

“마교 장로의 이름은 드라쿠. 비교적 최근 마교에 합류한 자입니다.”

“마교 태생이 아니라 합류를 했는데 장로다?”

방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조사한 바에 의하면 서역에서 건너온 이종(異種)으로서 사람의 피를 마십니다. 목욕이나 진법 등 다양한 방법으로 피를 이용하고 내공으로 치환하는 채혈과는 다르게 이 이종은 흡혈이라는 과정만으로도 내공을 늘릴 수 있는 듯합니다.”

“허어…….”

장내에 불편한 기류가 가득했다. 정파에서 금기시하는 부류의 무공을 익힌 자가 마교의 장로라고 하니 ‘마교 놈들은 역시!’ 하며 분노하는 이들도 있었다.

방덕은 그런 분위기를 살피다가 설명을 이었다.

“조사된 자료와 직접 붙어본 결과 그자의 무위는 화경으로 확실시 추측됩니다.”

“뭐라!”

팽진성이 놀라 탁자를 거칠게 내려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는 팽진성보다 더 배분이 높은 무림의 선배들이 있는 자리에서 매우 무례한 언행이었지만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모두 비슷한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신검 백청선처럼 화경의 경지인 사람도 있지만 다수의 장(長)들은 초절정의 경지였기에 마교의 일개 장로가 화경이라는 것에 놀라는 중이었다.

팽가의 가주 팽진성도 화경의 문을 보고 있다지만 아직은 초절정의 경지이기에 이 소식이 매우 놀랍고 불편했다.

심지어 마교에서 자란 것도 아닌데 화경인 자가 마교에 합류를 했다고 하니 침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경우가 은밀히 쌓여있다면 지금 상정하고 있는 것보다 마교를 더 강하다고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백청선이 나긋하지만 진중하게 물었다.

“확실한 건가?”

방덕이 신검의 눈을 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합니다.”

“그런데 자넨 어찌 살아왔는가?”

어찌 보면 방덕에게 다소 불쾌한 질문이 될 수 있었지만 방덕은 신경 쓰지 않았다.

충분히 합리적인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화경의 고수 앞에서 그 아무리 초절정이라고 한들 쉽게 도망치기 어려운 건 사실이었고, 초절정의 경지인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었다.

그리고 각 경지 간 격차가 심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화경과 초절정 사이의 격차는 그 전의 모든 격차보다 더한 것이었다.

방덕은 완숙한 화경의 고수인 백청선의 질문 의도가 이해되었다.

방덕은 백청선의 질문에 떠오른 협(俠)의 은인, 천애랑을 생각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마교 장로 드라쿠를 대신 상대하고 저를 구해준 협사(俠士)가 있었습니다.”

“구해준 협사(俠士)가 있었다?”

“예.”

“우리가 아는 이인가?”

신검 백청선의 말에 방덕은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잠시간 눈을 감았다. 마치 기도하는 느낌의 자세였다.

방덕이 눈을 뜨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뜬구름 잡는 방덕의 대답에 팽진성이 인상을 썼다.

“그 무슨 소린가!”

제갈청은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감정 조절도 못하는 이가 어찌 초절정을 넘기고 가주가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고개를 저었다.

방덕은 팽진성의 재촉에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름은 천애랑. 저를 대신해 드라쿠와 싸웠습니다. 그자가 저를 구해주는 과정에서 제가 기절을 하는 바람에 전투의 과정은 보지 못했지만 천지개벽할 흔적은 보았습니다. 화경의 고수와 싸우면서 숲의 한쪽이 초토화가 되는 흔적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만한 실력이 있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방덕의 시선을 받은 신검 백청선이 진중한 얼굴로 수긍을 했다.

“맞네. 격하의 무인을 상대하는데 주변에 그리 큰 피해를 만들 이유가 없지. 검기나 검강으로 깔끔하게 스윽 베어내면 될 일이니까.”

“맞습니다. 물론 드라쿠라는 자가 엄청난 내공을 소유했기에 과도한 무공을 펼쳤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런 과도함을 이끌었다면 그것대로 대단한 일이지요.”

장내의 인물들은 심상 속에서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만들어 봤다.

대다수가 초절정의 고수들이었고 신검을 필두로 극소수의 화경 고수가 있었기에 가정법으로 각자의 경지를 가늠하고 있는 것이었다.

백청선이 적막을 깨고 질문을 이어갔다.

은연중 장내의 대표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고, 대다수 이러한 점을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렇다면 자네를 도와준 그 협사는 어디에 있는가?”

방덕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마 죽은 걸로 추측됩니다. 모용세가에 도움을 요청해 현장에 도착했을 땐 기함할 장면만 남긴 채 모두 사라져 있었습니다. 개방 본타로 돌아가 취합된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드라쿠는 부상을 입고 흑풍대와 합류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현재 천애랑 소협의 추적과 현장의 분석은 모용세가의 천중인검(天中仁劍)과 단화대협(端和大俠) 가주가 하고 있습니다.”

“아…….”

장내의 인물들은 그제야 정파의 대표 5대세가 중 하나인 모용세가가 참석하지 않았음을 인지했다.

머쓱한 헛기침들을 보며 방덕이 속으로 혀를 찼다. 모용민 태상가주의 뼈있는 말이 떠오르자 입 안이 썼다.

필요할 때는 정파와 5대세가라는 범주를 내세우며 이권을 챙기지만 그러지 않으면 저리 남 대하듯 하니 걱정이었다.

마교나 혈교는 천마와 혈마라는 절대적 권위 아래서 철저한 상명하복의 체계를 구축해 강력한 명령권과 행동력을 보였다.

그리고 부하들의 실패엔 철저한 벌을 내리기도 하지만 성공엔 기대 이상의 보상을 해주기에 하류 인생들의 유입이 끊이지 않는 세력들이었다.

그래서 이 두 세력을 밀어내고 싶어도 막대한 구성원 숫자와 처절한 명령 수행 의지 때문에 빈번히 실패하고 있었다.

현재 마교와 혈교는 그 어느 때보다 내실을 잘 다지며 강대한 세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반면 정파는 여전히 사상누각과 같이 서로를 대면하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물론 가문과 문파를 위하는 마음이야 이해는 가지만 만약 당장이라도 마교와 혈교가 전쟁을 걸어온다면 지금 같은 마음가짐으로는 큰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럴 때일수록 이들의 구심점이 될 자가 필요했기에 방덕은 천애랑의 죽음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정도 무림의 원로들과 중년 무림인들의 구심점으로야 여기 신검 백청선이나 아미파 백원신니도 있고 소림의 오각대사도 있으니 걱정이 안 되지만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후기지수들이 걱정이었다.

그들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영웅의 풍모를 가진 천애랑이 된다면 정파 무림을 하나로 묶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지만은 않았다.

특히 20년 전의 사건을 전설처럼 기억하는 젊은 후기지수들이 천애랑이 기공가의 후예임을 알게 된다면 더욱 성공적으로 뭉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우리가 알 수도 있는 자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름은 처음 듣는 것 같은데 말일세.”

백청선의 말에 방덕이 바짝 마른 입술을 살짝 적시고 대답했다.

“이름은 천애랑. 나이는 약관. 그리고 사문은 기공가(家)입니다. 기공가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전대 가주 천석산의 아들이며 후계자라고 합니다. 당시 생존했던 할아버지에게 기공가의 진전을 이었으니 현 기공가의 가주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

장내가 순식간에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다른 소식들엔 시끌벅적 소란이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잠시간 적막이 흘렀다. 너무 놀라면 오히려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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