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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15화 (15/200)

기공술사 15화

담대혁이 말했다.

“저도 수색을 돕겠습니다.”

모용단은 담대혁의 눈에서 절심함을 보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이미 수많은 이들이 찾고 있으니 침착하게나. 소중한 인연이었다고 하니 그런 담 공자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급하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네. 수색하는 동안 잠시 세가에 머물면서 지친 심신을 좀 달래게나.”

담대혁이 생각하기에도 자신과 여동생이 찾는다고 해서 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이 바짝 말라있는 여동생을 보니 모용단 가주의 말대로 세가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가주님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담대혁의 착잡하지만 진심 어린 어투에 모용단이 미소를 지었다.

어린 나이에는 항시 패기롭고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으면 흥분하기 쉽건만, 담대혁은 자신의 조언대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따르는 것이 대견했다.

모용단은 근처에 있던 세가의 무인을 불렀다.

“이분들을 모시고 세가로 가거라. 세가의 귀한 손님이니 정중히 대접하라고 전해라.”

“옙!”

세가 무인에게 명을 내린 모용단은 담대혁과 담소연을 바라봤다.

“세가에 가서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쉬고 있게나. 나는 아버님과 좀 더 현장을 조사해보고 돌아가겠네.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예, 감사합니다. 후에 뵙겠습니다.”

모용민과 모용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타고 왔던 말을 세가의 무인들에게 맡긴 채 현장으로 걸어갔다.

담대혁은 천애랑의 얼굴을 떠올렸다.

죽을 뻔한 목숨을 여러 번 구해주고 불과 몇 시진 전엔 즐겁게 담소를 나누던 모습들이 연속적으로 떠올랐다.

담소연도 천애랑이 당장이라도 옆에서 나타나 웃으며 ‘무슨 일들 있으십니까?’하고 태평하게 물어볼 것 같았다.

백두산에서 그 긴장감 넘치는 순간에도 ‘길 좀 묻겠습니다.’라는 천애랑이 떠올랐다.

추억과 비례해 슬픔이 더욱 몰려왔다. 몰려오는 슬픔은 눈에 이슬을 만들어 차가운 아침공기에 흘러내렸다.

“걱정마라 소연아. 쉽게 죽으실 분이 아니시다. 어딘가에서 다친 몸을 추스르고 있을 것이야. 그리고 어느 순간 나타나 ‘죽을 뻔했지 뭡니까. 배가 고프니 만두나 먹으러 갑시다.’라고 할 게다.”

담대혁의 말에 담소연이 울다가 피식 웃었다.

담대혁 말마따나 천애랑은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만두를 먹자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방덕을 구하러 가기 전에 객잔에서 시킨 것도 만두였었다.

담대혁은 동생이 조금은 진정이 된 것 같자 모용세가의 무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안내해주시오.”

*  *  *

천마신교 대전 안.

천마를 중심으로 양쪽에 사람이 서있었다.

“황제가 죽은 게 실은 암살이었다고? 그리고 뭐? 토그테무르 황태자가 죽어?”

천마가 의자에 몸을 반쯤 기댄 채 물었다. 언짢은 기분에 넘실거리는 마기가 공간을 잠식했다.

마뇌(磨腦)는 가공할 천마의 경지에 경외를 느끼며 공손히 말했다.

“예, 황실에서는 건강상의 문제로 승하(昇遐)했다고 공표했지만 조사 결과 암살인 듯합니다. 그리고 토그테무르 황태자 또한 암살로 죽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천마는 느릿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최근 쿠실라 황태자의 곁에 미모의 여인이 호위를 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알아보니 혈교의 요향이라는 음살단 단주였는데 토그테무르 황태자의 사망과 관련지어 조사를 하니 꽤나 접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황제가 죽기 전 미모의 첩들을 들였었다는 첩보가 많았었는데 돌이켜보니 아마 음살단의 계집들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채혈보음(采血補陰) 따위나 하는 계집년들 말이냐?”

천마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딴 짓을 했으면 강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천마의 입장에선 그렇지도 않아 쓰레기라 생각하는 부류였다.

마뇌는 좀 더 공손하게 말을 이었다.

“예, 하늘이시여. 그에 따라 파악된 정보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말해보라.”

“담씨 자제들을 납치하려 했던 음살단이 천애랑에 의해 전멸했다고 합니다. 아마 음살단주 요향도 천애랑에게 패하고 쿠실라 황태자에게 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음살단의 무공들이…. 남자들에게 효과적인 면이 있지 않습니까.”

“쯧, 그렇긴 하지.”

천마는 말을 하면서 마뇌의 건너편에 서 있는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기골이 장대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듯 웃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천마의 눈빛을 받은 남자, 지휘웅이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크흠, 다 지나간 일을 아직도 기억하시는 겁니까?”

태상교주에게 천마와 함께 수학(受學)한 지휘웅은 천마와 사제지간이었다.

그리고 천마와 마교를 수호하는 우호법이며 평소 다혈질로 유명했다.

마교 내 무력서열 2위의 인물이며 평소 열양공(熱陽功)을 익혀 웃통을 까고 다니길 즐겨했다.

또한 천마신교 내에서 유일하게 천마와 편하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했다.

“휘웅 네가 젊을 적 당시의 음살단주에게 홀린 것만큼 재밌는 이야기가 어디 있다고. 크하하하!”

천마의 말에 지휘웅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따, 고년이 얼마나 예뻤는지 압니까? 갑자기 환술을 거는 데 형님처럼 천마공(天魔功)을 익힌 나한테 환술 따위가 웬 말이요. 그저 예쁜이가 뭐하나 싶어 가만히 있었을 뿐이외다. 근데 잠자리를 가지다가 갑자기 심장 근처에 구멍을 뚫어 피를 빨아 먹는 거 아니요. 지가 피를 빨아놓고는 내 열양지기(熱陽之氣)에 식도가 타서 죽어버리는 것을……. 쩝.”

“하하하! 혈교 잡것들이 하는 짓거리라는 게 다 그렇지.”

한참 웃던 천마가 힐끔 마뇌를 쳐다보자 마뇌가 조심히 물었다.

“계속 이야기를 해도 되겠습니까?”

천마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의 지원을 받던 황제와 1황자인 토그테무르 황태자가 죽음으로써 혈교의 지원을 받는 쿠실라가 곧 황제에 등극할 것 같습니다.”

“쯧.”

천마가 마음에 안 드는 듯 가볍게 혀를 찼다.

황실과의 유착관계는 천마신교가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발판이었다.

비록 기공가 때문에 잠시 세력이 주춤했다지만 금세 황실과 관계를 회복해 전성기 시절 이상의 세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황제가 죽더니 계승 1 순위인 황태자마저 죽었다.

1황태자는 마교 고수를 지원해주겠다는 제안들을 연신 거절하더니 결국 입 안이 쓴 결과가 나와 버렸다.

천마는 강제로라도 마교 고수를 황태자 옆에 배치시킬 걸 그랬다고 생각했다.

“추가로 천애랑이라는 자 말입니다만. 초기에 살마(殺魔)의 말을 통해 기공가의 후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음살단의 전멸을 통해 기공가의 인물임을 거의 확신했었죠. 지금 본교로 귀환 중인 드라쿠의 전서까지 더해지면 기공가의 후예가 확실해 보입니다.”

마뇌의 말에 천마의 몸에서 강렬한 마기가 새어나왔다.

“기공가의 후예가 확실하다?”

“예, 하늘이시어. 그런데 드라쿠가 큰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지휘웅이 놀라 반문했다.

“뭐? 그 변태자식이?”

마뇌는 긍정의 의미로 지휘웅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마를 향해 말을 이었다.

“예, 심양으로 놀러갔던 드라쿠가 우연찮게 개방의 소방주를 만났고 죽이려 했다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천애랑의 방해를 받았고 전투를 했다 합니다.”

“더 자세히.”

“예, 드라쿠가 보낸 전서에는 간단히 적혀 있었을 뿐이었지만 추측하기로 기공가의 무공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내공으로 땅거죽을 들어 올리거나 막대한 내공을 이용한 공격 등이 흡사 20년 전 기공가의 무공과 많은 유사점을 보였습니다. 이는 살마단의 전투 흔적도 취합한 결과입니다. 그리고 기공가의 후예는 드라쿠와의 싸움으로 죽었을 것으로 확정시 추측하고 있습니다.”

“흐음…….”

천마는 기공가라는 말에 흥분이 몰려왔다. 자신에게 굴욕을 준 기공가의 가주 천석산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깨어날 지경이었다.

천마는 천하에 적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상대하면서 스승님까지 죽였던 기공가의 가주를 떠올렸다.

그때보다 더욱 성장한 지금이라면 천석산과 다시 싸워 반드시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다시는 싸워볼 수 없는 사람인지라 천마의 마음엔 큰 짐처럼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기공가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초기의 보고에 자신의 오랜 악몽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은근히 기대했었다.

하지만 죽었을 거라는 마뇌의 말에 기공가의 후예가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비웃음과 함께 아쉬움이 남아 복잡한 마음을 만들었다.

“그럼 드라쿠는 어디로 갔지?”

“황실에 있는 소교주를 보호하고자 황실로 보냈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쿠실라 황태자가 황제로 등극하면 혈교에서 황실 내에 있는 소교주를 가만히 보고 있지만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마찬호 그 아이를?”

“예, 소교주가 황실의 공주를 좋아하는 것은 아시지 않습니까?”

천마는 생각만으로도 한심한지 혀를 찼다.

“쯧쯧, 천고의 재능을 가진 놈이 고작 계집에 빠져서는. 그렇다고 그 아이가 쉽게 위험에 빠질 리는 없을 텐데?”

천마의 말에 마뇌랑 지휘웅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뇌가 말을 이었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혹시라도 혈교의 그 노인이 움직인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흐음…….”

지휘웅이 낮은 신음을 뱉었다.

“그 노괴가?”

천마는 매우 언짢았다. 소교주 시절 딱 한 번 보았을 뿐인 혈교의 지노(地老)라는 인물.

상상조차 못 할 경지의 차이에 당시엔 많은 좌절감을 느꼈었다. 그 뒤로 절치부심해 마교의 역사상으로도 최단기에 화경의 경지에 이르게 됐다.

다만 그 이후로는 기공가의 사건도 있고 하여 오랜 시간 잊고 지냈는데 다시금 거론되니 불편했다.

“예. 그 노인은 그 어느 대상보다 요주의 인물이기에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만약 혈교가 보다 확실한 패를 쥐기 위해서, 때마침 황궁에 있는 소교주를 노린다면 그 노인이 나서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이 없으니까요.”

“흠……. 그래도 찬호 혼자라면 도망은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자식이 여자에 빠져 있는 탓에 말도 안 되는 짓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부상당한 드라쿠 가지고는 부족할 것 같은데?”

“예, 그래서 감히 교주님의 허락 없이 대막에 있던 흑풍대(黑風大)를 황궁으로 보냈습니다. 부상 입은 드라쿠를 데리러 간 것도 흑풍대였습니다. 워낙 시급을 다투는 문제이기에…. 죄송합니다.”

마뇌는 당장 부복하려 했으나 천마가 손을 저었다.

“됐다. 소교주의 안위보다 더 급한 사항은 없겠지. 이 정도 월권(越權)은 문제 삼지 않겠다. 내 그대에게 마교 총군사 직을 준 것에는 그대의 이런 판단력을 중히 여김이었으니. 찬호 그놈에게 드라쿠와 흑풍대를 보냈으면 큰 문제는 없겠지. 그럼 황실의 문제는 이게 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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