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술사 13화
담대혁은 자세를 낮추고 개 목에 둘러진 매듭을 좀 더 자세히 살폈다.
“헉!”
“왜요. 오라버니?!”
담대혁의 놀람에 담소연도 덩달아 놀라했다.
“6결!”
“그게 뭡니까?”
“개방의 장로 이상 급의 증표입니다.”
개는 담대혁의 말을 알아듣는 듯 매듭이 좀 더 잘 보이도록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그리곤 천애랑에게 다가와 연신 주변을 맴돌았다.
“이게 무슨 의미죠?”
혹시 구애의 춤인가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자꾸 몸을 비비기에 천애랑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때 품에 안겨있던 백호가 그르릉 거리며 내려와 누렁이의 머리통을 딱 소리가 나게 때렸다.
그리고는 둘이서 몇 번의 눈빛을 주고받더니 백호가 객잔 문으로 향하며 내게 고갯짓을 했다.
“따라오라는 건가?”
백호의 옆에 서서 연신 불안한 눈빛으로 꼬리를 흔드는 누렁이를 보니 맞는 것 같았다.
“개방과 관련된 개인 것 같습니다. 아마 개방의 높은 분이 위험에 처해서 도움을 요청하러 온 것은 아닐까요?”
담대혁이 나름의 추측을 말했는데 백호와 누렁이의 하는 양을 보니 일리가 있어 보였다.
‘굳이 따라갈 필요가 있을까.’
천애랑은 고민이 들었다.
담가 남매를 두고 자리를 비웠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그런 부주의함은 한 번이면 족했다.
천애랑이 망설이자 누렁이가 다시 다가와 낑낑거리며 재차 주변을 맴돌았다.
“흐음… 천 소협, 혹시 저희 때문에 망설이시는 겁니까?”
담대혁이 천애랑의 마음을 눈치채고 조심히 물었다. 이에 천애랑은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담대혁이 잠시간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저희야 감사하지만 아무래도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습니다. 6결이면 개방의 장로 이상. 중요한 사건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천 소협께선 마교에게 복수를 하고 싶다고 하셨죠?”
천애랑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개방에 은(恩)을 입힌다면 복수에 필요한 정보 등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천애랑은 살짝 놀란 눈을 했다.
‘짧은 시간에 내 상황까지 고려했던가.’
천애랑은 담대혁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그리고 6결 이상 개방의 고수가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이라면 저희가 가봐야 짐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희는 인근 만금전장으로 찾아가 은신처에 숨을 테니 천 소협께선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천애랑은 담대혁의 기민한 대처와 대안이 썩 마음에 들었다.
이들의 안전에 대한 죄책감과 불안감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그런 부분까지 고려해주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조심하셔야 해요.”
담소연이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치맛자락을 꽉 쥐는 것이 보였다.
“낭자도 조심하세요.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천애랑은 담소연과 담대혁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선 객잔을 나섰다.
“어디니?”
천애랑은 연신 꼬리를 흔드는 누렁이에게 물었다.
그러자 말을 알아들은 듯 누렁이가 크게 한 번 짖고는 빠르게 앞장섰다.
천애랑은 누렁이의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서 깜짝 놀랐다.
옆에서 잘 따라오는 백호만큼은 아니어도 상당한 영물인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일다경(15분)쯤 갔을까.
이미 마을을 벗어난 지는 오래였고 깊은 산속으로 한참을 들어가고 있었다.
누렁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길을 찾다가 어느 지점에서 낮은 소리로 짖었다. 그러자 숲속에서 누군가가 부스럭거리며 나타났다.
봉두난발한 머리에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 거적때기 옷에 엄청난 냄새까지.
상상 속에 존재하던 거지의 완성체를 보는 듯했다.
다만 온몸이 피에 절어 있다는 점이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게 했다.
누렁이가 황급히 다가가 남자의 몸을 지탱해줬다.
“이봐요. 괜찮아요?”
천애랑도 다가가자 거지 남자는 손을 저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당장 피해야 해.”
남자의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는데 탈수될 정도로 고된 전투를 치른 것 같았다.
천애랑은 뭐가 됐든 거지의 말대로 우선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그때였다.
섬뜩한 기운에 천애랑은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나무 사이로 섬뜩한 기운의 주인이 나타났다.
어찌나 그 기운이 대단한지 누렁이뿐만 아니라 백호도 경계를 했다.
갑자기 나타난 이는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달빛만 존재하는 어두운 밤인데도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하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빨갛게 일렁이는 눈은 붉은 머리카락과 함께 어우러져 아름답다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리고 매끈한 피부선과 큰 신장에서 나오는 신체의 균형미가 돋보였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아~ 왜 그렇게 용을 쓰며 도망치나 했더니 지원을 부르려고 그랬나?”
그 목소리가 달빛에 어울려 숲속에 아름답게 울려 퍼졌다.
천애랑의 감상과는 별개로 거지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젠장!
거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힘겹게 전투태세를 취했다. 맞서 싸우려는 듯했다.
이에 천애랑이 손을 저어 말렸다.
“다친 몸인데 물러나세요. 그리고 간단히 상황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거지가 천애랑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저릿저릿하게 느껴지는 상대방의 기운 속에서 태연한 자세가 얼굴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거지는 잠시 고민하더니 천애랑에게 빠르게 설명했다.
천애랑은 경계를 하며 거지의 설명을 들었다.
이름은 방덕. 개방의 차기방주로 내정된 소방주.
거두절미하고 마교의 흔적 및 무언가를 조사하던 중 드라쿠라는 마교의 장로를 만났고 큰 곤욕을 치르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개방의 영물인 똥개에게 주변에서 가장 강한 자를 찾아서 도움을 청하라고 했더니 내가 왔다고 한다.
누렁이가 전투력은 없어 보이는데 추적이나 감지에 일가견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마교의 장로라니.’
천애랑은 자신이 마교와 지독한 악연의 고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가만히 지켜보던 드라쿠가 천애랑을 보며 감탄을 했다.
“호오~ 그대는 참으로 아름답구만. 실로 이 달밤과 어울리지 않는가!”
천애랑은 갑작스런 마교 장로의 헛소리에 인상을 썼다.
미친 건가 싶어 삐딱하게 쳐다보니 드라쿠가 이가 보이게 환히 웃었다.
고른 치아 사이에서 유독 도드라진 송곳니가 인상적이었다.
“마교의 장로라고?”
천애랑의 말에 드라쿠가 키득대며 웃었다.
“아아~ 목소리마저 아름답구만. 역시 아름다움이 최고지. 저 거지새끼는 아름다움과는 완벽히 정반대에 있어서 괴로웠는데 말이야.”
“아이 시펄! 송장같이 창백한 놈이 뭔 개소리야!”
천애랑은 방덕의 걸죽한 욕에 그를 뒤돌아봤다.
다 죽어가는 줄 알았더니 입만은 팔팔한 사람이었다.
“큭큭큭. 아름답지 못한 것은 이만 사라져라.”
드라쿠가 우아한 움직임으로 손가락을 들자 붉은 점이 보였다.
천애랑은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다.
“피해!”
천애랑은 급히 뒤차기로 방덕을 날려버리고 한 손으로는 백호와 누렁이를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남은 한 손으로 황급히 수강(手剛)을 만들었다.
얇은 수기로는 저 기운을 감당할 수 없음이 직감됐기 때문이다.
드라쿠의 손끝에서 빛난 붉은 점은 번쩍거리며 날아와 천애랑의 수강과 부딪혔다.
까앙!
‘흐음.’
천애랑은 속으로 침음을 흘렸다.
급히 쳐낸 기운이 어찌나 강맹한지 수강을 두른 손이 얼얼했다.
“호오~ 아름다운 것은 외모만이 아니었구나!”
드라쿠가 흡족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더 폈다.
천애랑은 전신의 감각이 저릿하게 경고하는 것을 느꼈다.
“알아서 피해요! 호(虎)랑 누렁이도 피해라!”
천애랑의 말을 알아들은 백호와 누렁이가 황급히 몸을 피했다.
누렁이는 그 와중에 방덕을 등에 부축하며 자리를 피했다.
천애랑의 발차기 때문인지 방덕이 누렁이 등에 축 늘어져 있었다.
‘죽지는 않았겠지.’
천애랑은 드라쿠의 공격 때문에 여유롭게 방덕을 살필 수 없었다.
까가가강!
천애랑은 양손에 두른 수강으로 드라쿠가 쏘아낸 지공(指功)들을 막아냈다.
지공이라 함은 손가락을 하나의 통로로 인식하고 내기의 탄을 쏘아내는 것이었다.
손가락으로 내기를 발출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묘리가 있었다.
단순히 내기를 발출하는 방법, 회전력을 더해 관통력을 주는 방법, 내기를 뾰족하게 가공해 그 속도와 은밀함을 얻는 방법 등 시전자의 배움과 노력에 따라 달라졌다.
다만 지공은 탄지공에 비해서 손가락을 튕기거나 하는 보조행동을 얻지 못하기에 파괴력이 약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물론 방비가 되지 않는 급소에 적중시킬 수 있다면 꽤나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드라쿠가 쏘아낸 지공은 엄청난 내기의 압축으로 이러한 기본 상식을 상회하는 속도와 공격력을 뽐내고 있었다.
“호오오~ 난 자네가 더욱 마음에 드는구만. 혹시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나?”
“개소리.”
“큭큭큭… 그래그래. 쉬운 것은 금방 질리는 법이지. 내 자네를 제압해서 데려가야겠네.”
천애랑은 드라쿠의 말을 들으면서 웃을 수 없었다.
드라쿠의 지공을 막기 위해 사용한 내공 때문에 온몸이 아우성이었다.
지노와의 충돌로 얻은 뼈와 혈도의 부상이 온전히 낫지 않아 내공 사용에 제약이 있었다.
수강을 사용해보니 다친 팔의 뼈는 약간 뻐근하긴 해도 참을만했다.
문제는 회복되지 않은 혈도였다.
내공을 사용하기 위해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리는 것까지는 괜찮았다.
다만 신체 전체로 뻗은 혈도로 내공이 지나가려 하면 극심한 통증이 동반됐다.
작은 내공을 천천히 움직이는 운기조식 정도야 회복의 일환이었지만 강기가 아니면 막기도 버거운 드라쿠의 공격을 보니 앞으로 생길 공방의 대처가 걱정됐다.
개방과의 은(恩)도 좋고 마교에게의 복수도 모두 좋은 완벽한 기회였지만 그 상대와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천애랑은 심호흡하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후우…….”
뇌기를 사용하지는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방법이 생기리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들어오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움직이겠네.”
드라쿠의 신형이 사라졌다.
천애랑의 신형도 사라졌다.
콰직!
천애랑이 있던 자리에 드라쿠의 진각이 강하게 찍혔다.
순식간에 드라쿠의 등 뒤를 점한 천애랑이 권(拳)을 뻗었다.
적화권(赤花拳).
주먹이 닿은 자리에 꽃과 비슷한 자국이 남는다는 권법이었다.
불의 기운을 머금어 붉은 기운을 띠는 것이 특색이었고 주먹에 내기를 싣는 것이 빨라 초근접에서의 빠른 공격에 적합했다.
콰왕---!
어느새 몸을 비튼 드라쿠가 팔꿈치로 천애랑의 주먹을 찍었다.
막았다는 개념보다 되려 공격을 가한 느낌이었다.
“큭!”
천애랑은 주먹을 울리는 강렬한 내기의 잔향을 털어내며 거리를 벌렸다.
드라쿠라는 자가 단순히 내공만 강한 것만이 아니라 그 다룸도 매우 높은 수준임이 느껴졌다.
신체의 끝자락보다 그 중간에 위치한 부위들에 내공을 싣고 발출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데, 그런 행위들이 매우 자연스러운 것을 보니 역시나 이 싸움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도망칠 수도 없었다.
우선 드라쿠가 순순히 도망치게 놔둘 것 같지도 않았고 지금 부지런히 도망치고 있을 동물 일행과 거지가 아직 산을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엔 천애랑이 먼저 몸을 날렸다.
축지법을 이용해 순식간에 공간을 접어 드라쿠의 측면에 도착했다.
수강으로 드라쿠의 급소를 노렸으나 손쉽게 막혔다.
천애랑은 실패한 공격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선풍각(旋風脚)으로 이어갔다.
바람의 결을 찾아 그곳으로 각법을 날리니 보통의 선풍각보다 더욱 예리하고 강맹한 공격이 이루어졌다.
“호오~.”
드라쿠는 흥이 돋아 감탄사를 뱉었다.
“원래 난 박투술을 좋아한다네. 다만 아름답지 못한 것들과는 손 섞는 것이 싫어서 평소엔 자제하는 편이네만 상대가 아름다우니 이렇게 흥이 나는구만!”
드라쿠의 손과 발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천애랑과 드라쿠는 순식간에 50여 합의 공방을 주고받았다.
한 합, 한 합에서 무시 못 할 기운의 강기가 줄 뻗치니 그 기파(氣波)에 주변의 나무가 거칠게 부서지거나 흔들렸다.
‘역시 이것만으론 무린가.’
최대한 내공을 아끼며 싸우려 하니 생각만큼 성과가 나오질 않았다.
천애랑이 강하게 드라쿠를 밀어내면서 나무숲으로 몸을 숨겼다.
천애랑의 행동을 본 드라쿠가 가소롭게 웃었다.
“그런다고 내 손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천애랑을 향한 드라쿠의 손가락에서 좀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기가 뭉쳤다가 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