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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8화 (8/200)

기공술사 8화

쓰러져 있는 백호는 미동이 없었다.

천애랑은 백호가 죽은 줄 알고 다가갔다.

산군을 먹는다는 찝찝함에 거부감이 들었으나 이미 죽어버린 호랑이를 어쩌란 말인가.

“그나저나 호랑이 고기는 맛있을까?”

천애랑의 혼잣말에 백호가 움찔한 것은 착각일까? 천애랑은 백호의 코앞까지 가서는 어떻게 들고 가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들고 가지? 이걸 가져가면 다들 좋아하겠지? 놀라려나? 아니면 토막을 내서 갈까?”

쓰러진 백호의 다리가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아! 조각내면 들고 가기가 더 어렵겠구나. 그건 안 되겠다.”

천애랑의 혼잣말이 동굴 속을 메아리 칠 때 쓰러져 있던 백호는 속으로 황당함을 느끼고 있었다.

백호(白虎)는 백두산에서 살던 영물(靈物)이었다.

기공가(氣功家)가 존재할 때에는 산의 기운이 상서(祥瑞)로워서 살기 좋았었다.

그러나 기공가의 멸문 날, 천지개벽할 마교와의 전투 때문에 마기(魔氣)가 땅과 공기 중에 강력한 영향력을 주었다.

상서로운 자연의 기운을 흡수하며 사는 영물의 입장으로서는 집이 불타버린 것과 같아서 참다못해 옆 마을로 이사를 한 것이었다.

그런데 기껏 이사를 하고 봤더니 이 동네에는 200년 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500년을 산 백호의 입장으로서는 이무기는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단숨에 이무기를 쫓아내고 이 산의 주인이 되려 했으나 만만히 봤던 이무기가 죽어가며 자신의 심장을 물은 것이 화근이었다.

심장에 침투한 이무기의 독을 영기(靈氣)로 밀어내려 했지만 실패하고, 이 동굴에 지쳐 쓰러져 있었다.

그렇게 움직일 힘도 없어 죽겠는데 웬 놈의 인간이 나타나 자기를 ‘맛있겠네.’, ‘토막 내네.’ 하고 있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크허허헝…….

백호는 죽을힘을 다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건재함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뭐야? 살아 있었잖아?”

천애랑의 말과 함께 백호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아… 마음 약해지게…….”

천애랑은 괜히 찝찝했다.

영기가 가득한 산에선 영물이나 산군(山君)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은 자연을 풍요롭게 하고 질서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아버지에게 들었었다.

또한 대자연의 기운에 감응하며 살아가는 기공가와 산군은 좋은 친우로서 자연을 공유한다고도 했었다.

그래서 처음 본 순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거부감이 들었으나 죽은 산군을 먹으면 안 된다는 말은 못 들었으니 일행들을 위해서라도 가져가려 했었다.

그런데 살아있으니 깔끔하게 먹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어디가 아픈가?”

마음을 비우자 이제야 백호의 모습이 눈에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백호도 인간이 자신을 죽이지 않기로 마음이 돌아서는 것을 느꼈는지 더욱 격렬히 반응했다.

크르릉….

어딘가 아파보이는 백호를 보며 천애랑은 백호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아 보았다.

천애랑의 손길에 백호가 움찔했으나 이내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에 놀라움과 반가움을 느꼈다.

백호는 천애랑에게 편히 머리를 내어줬다.

천애랑은 천천히 주위의 기들에 집중하자 다양한 기운들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감각을 이어 백호의 몸속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머리를 지나 심장으로 갈 때에 쾨쾨한 기운이 잔뜩 뭉쳐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놈, 심장에 독이 있구나. 독의 기운이 상당한데?”

천애랑은 손을 대지 않았으면 모를까 이왕 손을 댔으면 살려주자는 마음으로 독에 집중했다.

천애랑은 가부좌를 틀었다.

그리고 한 손은 백호의 백회혈이 있을 법한 위치에 올리고 다른 손은 백호의 심장 위치에 올렸다.

처음에는 인간과는 다른 신체구조가 생소했지만 차분하게 기운을 움직여 보며 독을 모으기 시작했다.

백회혈에 올린 손으로는 독을 빨아들이고 심장 부근의 손으로는 독을 밀어내면서 심장의 독을 입으로 유인했다.

어떤 독인지는 모르겠으나 저항하는 독의 기운이 상당했다.

크헝!

백호의 외마디 소리와 함께 독이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천애랑의 전신에 땀이 흥건했다.

처음해보는 기의 운용이자 치료였고 독의 기운이 상당했기에 진땀을 뺐다.

독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이 정도 크기의 산군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군분투를 한 끝에 다행히도 백호의 몸에 있는 독을 다 빼냈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기력이 소진한 백호를 이대로 두면 구멍 뚫린 둑을 그대로 두는 것과 다를 바 없을 터였다.

자력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곧 무너져 내릴 수 있었다.

천애랑은 백호에게서 손을 떼지 않고 그대로 대자연의 기운과 공명하며 자신의 기운을 곁들여 백호에게 전달했다.

기공 4단계를 통과한 후부터 운기조식을 할 때 소주천이나 대주천으로 나눠 하지 않고 그저 몸을 개방해 하나의 통로로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광활한 대자연의 기운이 마음껏 지나다녀도 자아를 잃지 않으니 그저 모든 것을 대자연에게 맡기면 되었다.

백호에게 기운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소진된 기력을 회복한 천애랑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담가 남매에게 돌아가야 했다.

동굴 밖은 이미 까마득한 어두움으로 가득 차고 은은한 달빛만이 비추고 있었다.

툭툭.

천애랑은 갑작스레 발밑에서 무언가가 부딪히기에 쳐다봤다.

하얀 털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고양이가 있었다.

고양이가 천애랑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천애랑이 멍하게 쳐다보자 고양이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크헝!’하고 울었다.

“백호? 어떻게 된 거지?”

자세히 기를 느껴보니 좀 전에 치료를 해준 백호와 기운이 같았다.

성인 두 사람만 한 크기의 백호가 작은 고양이가 되어 있으니 신기했다.

“히야…. 이래서 영물인 건가? 신기하네. 아직 몸이 성치 않으니 잘 추스르고 잘 살아라.”

신기한 건 신기할 뿐, 천애랑은 백호를 뒤로한 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면 민망할 듯하여 눈에 띄는 나무 열매들이라도 빠르게 주워서 갔다.

산속으로 꽤나 깊이 들어왔었는지 상당한 시간을 소요한 뒤에야 말을 묶어놨던 개울가에 도착했다.

‘응? 뭐지?’

개울가에 묶어 놨던 말들이 사라져 있었다.

천애랑은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 다급히 담가 남매가 기다리고 있을 자리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엔 타고 있는 작은 모닥불과 그 근처로 자리를 정리했던 흔적들만 남아있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천애랑은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기를 확산시켰다.

주변엔 아무런 기가 잡히지 않았다.

‘백두산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너무 안일했다.’

천애랑은 인상을 쓰며 연신 주위를 훑었다.

만약 납치를 당했거나 무슨 일이 발생했다면 추적을 해야 하는데 어디로 향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때 나무 사이로 고양이 크기가 된 백호가 의기양양하게 걸어왔다.

크헝!

“백호?”

천애랑의 시선을 끈 백호는 돌연 코를 킁킁대며 어딘가로 앞장섰다. 그리고 한 번씩 뒤를 돌아봤다.

‘따라오라는 건가?’

천천히 뒤를 따르자 백호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듯 뒤를 돌아보는 것을 보았다.

“누굴 찾아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거야?”

천애랑의 말을 알아듣는 듯 백호가 ‘그르릉’거렸다.

“이야…. 영물은 영물인가 보네. 대단하다.”

한참 코를 킁킁대며 앞장서던 백호가 ‘크릉!’하며 외치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작은 몸집임에도 상당한 속도를 내기에 천애랑도 축지법을 사용해 따라갔다.

축지법(縮地法)은 도술의 일종으로서 공간을 줄여 이동하는 신법이었다.

다른 경공술들과의 차이점이라고는 다리를 크게 구부리지 않고 달린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치 걷는 모양새가 되는데, 이는 마치 선비가 산책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줬다.

축지법에 대해 민간(民間)에서 구전(口傳)되는 것 중엔 ‘전쟁에서 패해 말을 타고 도망치던 한 장수가 어느 순간 자신의 옆에 있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을 발견했다. 노인은 장수에게 길을 묻고는 산책이라도 하듯이 걸으며 사라졌다. 장수는 뒤늦게 자신이 말을 타고 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축지법(縮地法)을 쓰면 하체의 움직임이 적기 때문에 몸 전체의 균형 안정성을 높이는 데 큰 강점이 있었다.

그래서 검, 도, 권 등을 쓰는 모든 무림인들이 축지법을 사용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했었다.

가장 큰 이유로는 막대한 내공(內功)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황보세가(皇甫世家)의 천왕보(天王步)의 경우도 상당히 패도적인 신법으로 내공의 소모가 크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천왕보는 내공이 약 반 갑자(半 甲子)만 되어도 벽력신권(霹靂神拳)과 함께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축지법(縮地法)은 내공(內功)이 일 갑자(一 甲子)는 되어야 시작할 수 있으니 무림인들이 엄두도 못 낼만 했다.

심지어 무리(武理)도 어려워서 차라리 그 시간에 다른 경공술과 보법을 익히는 것이 효율적이었다.

그렇게 축지법은 점차 사람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축지법의 방법도 거의 소실되었고 기공가(氣功家)와 같이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수련하게 되었다.

한참을 달리던 백호가 갑자기 낭떠러지 절벽 앞에서 멈춰 섰다.

깊은 낭떠러지를 두고 건너편에도 길이 보였다. 원래는 다리가 있었었는지 밧줄, 나무 등의 흔적이 있었다.

천애랑이 낭떠러지를 살피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 보였고 건너편까지의 거리는 십장(十丈, 30m)이나 되어 보였다.

크르르르르--!

천애랑이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자 백호가 낭떠러지 건너편으로 가야 한다며 신호를 보냈다.

“호(虎)야, 이리 와라.”

천애랑이 백호를 부르자 고양이의 모습을 한 백호는 훌쩍 뛰어서 천애랑의 품속으로 안겨 들어갔다.

백호와 별다른 소통의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마치 오랜 지기마냥 말이 통하는 느낌이었다.

“십장이나 뛰어 건널 수 있을까? 해본 적이 없긴 한데… 삼장(三丈, 9m)정도 너비의 호수는 뛰어 건너봤지만.”

하지만 천애랑은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천애랑은 추진력을 얻기 위해 낭떠러지에서 조금 물러났다. 그리고 힘차게 달렸다.

“어떻게든 되겠지! 호(虎)야 잘 잡아라. 읏차!”

높게 뛰어올라 순식간에 오장(五丈, 15m)의 거리를 건넜다.

하지만 아직은 허공.

중력에 의해 떨어지려 하자 천애랑은 양손으로 공을 쥐듯 내기를 모아 아래로 쏘아냈다.

투웅---!

반탄력이 중력에 저항해 몸을 띄우는 것을 느꼈다.

“되네!”

천애랑은 부력을 느끼며 일정한 박자로 내기를 쏘면서 전진했다.

품속의 백호가 무섭지만 재밌는지 ‘고로롱’거리며 천애랑을 격려했다.

탁.

몇 번의 반복 작업을 통해 무사히 건너올 수 있었다.

“휴우~ 살았다.”

고롱~ 고로롱.

백호도 비슷한 소리를 했다.

“이제 내려와서 빨리 안내해줘.”

천애랑의 품속이 좋았는지 백호가 아쉬움을 토하며 땅에 내려왔다. 그리고 다시 추적을 시작했다.

*  *  *

“호호호, 남자가 두 명이라고 들었는데 한 명뿐이라니 아쉽네~.”

혈교 음살단(淫殺團)의 단주 요향(擾香)은 담대혁과 담소연을 향해 붉은 입술을 핥으며 교소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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