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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7화 (7/200)

기공술사 7화

식사를 마친 천애랑과 담가 남매는 객잔에서 나와 길을 걸었다.

백두산 인근의 작디작은 마을임에도 있을만한 건 다 있었다.

물론 유동인구는 적어서 한적함이 느껴졌다.

천애랑과 담대혁은 길을 걸으며 짧은 담소를 나눴다.

“기공가의 무공은 오로지 기만 사용하는 겁니까?”

“흐음…, 그건 아닙니다. 타고난 체질이 기를 사용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지만 보법, 권법은 필수로 배웁니다. 무기를 잘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천소협은 내공이 상당하던 것 같던데 영약을 드신 겁니까? 아니면 기공가의 비전입니까?”

학자로서 연구열이 솟은 담대혁은 천애랑에게 계속 물었다.

이런 질문들은 대게 사문의 비밀일 수도 있어서 예민한 부분이 있었다.

그렇기에 무림인들은 보통 서로의 전신절기에 대해선 자세히 묻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담대혁은 평생을 흠모하고 탐독해왔던 기공가의 기록에 없는 내용을 듣자 흥분감에 그런 것을 따질 정신이 아니었다.

천애랑도 담대혁의 질문이 딱히 철저한 비밀을 요하는 요점들은 아니었고, 일절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다소 편한 마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딱히 영약을 먹은 기억은 없네요. 그냥 가문의 특징일지도 모르겠어요. 아! 물론 진법 안에서 생활하긴 했습니다.”

평소 진법에도 관심이 많은 담대혁은 천애랑의 말에 반가워했다.

“제가 진법에 관심이 많아서 그러는데 어떤 진법이었는지 들을 수 있나요?”

“흠… 잘은 모릅니다. 할아버지가 만드시고 어릴 적부터 존재하던 진법인지라…. 다만 진법 안의 기(氣)를 충만하게 하는 효용이 있었던 것 같네요.”

“아아!”

담대혁은 감탄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애랑의 설명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진법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상당한 수준의 진법이 아닐까 하는 추측만 해보았다.

조용하던 담소연이 불쑥 담대혁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오라버니……. 포목점에 들러서 옷 좀 사면 안 될까요? 옷이 너무 더러워서…….”

평소 가문에서 깨끗한 옷만 입어온 담소연은 먼지가 가득하고 헤진 현재의 옷이 신경 쓰였다.

“그러자꾸나.”

그 마음은 담대혁도 마찬가지였기에 흔쾌히 동의하며 포목점을 찾아갔다.

작은 가게였지만 주인의 안목이 제법인지 나름 괜찮은 옷들이 있었다.

“아이고오~ 선녀가 따로 없으시네요~~”

포목점 주인이 담소연을 향해 칭찬 폭격을 날렸다.

“어때요?”

담소연이 담대혁을 향해 치마를 살짝 팔랑이며 자세를 취했다.

연녹색 비단 상의와 주황색의 주름진 치마가 어우러진 옷 위에 노란 겉옷을 입으니 잘 어울렸다. 허리에는 매화꽃 모양의 하늘색 노리개를 달았다.

“호오~ 우리 막내도 이제 다 컸구나~ 숙녀가 다 됐어.”

한껏 치장한 담소연을 보며 담대혁이 장난치듯 칭찬했다.

“원래 숙녀거든요?”

뾰루퉁하게 입을 내민 담소연은 때마침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천애랑을 보았다.

천애랑은 마땅한 무복이 없어서 흑색으로 물들인 비단 상하의를 입었다. 얇은 금색 실로 장수를 의미하는 만천홍이 수놓아져 있었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천애랑의 모습에도 미공자라는 이미지가 강했었는데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으니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담소연은 한참을 멍하니 천애랑을 보았다.

“동생아 침 닦아라.”

“쓰읍!”

담소연은 담대혁에게 눈을 흘기고는 천애랑의 외모를 몽롱한 표정으로 감상했다.

담대혁은 여동생의 반응이 재밌었으나 충분히 공감되어 자신도 천애랑의 자태를 칭찬했다.

“아이고~ 천소협. 정말 잘 어울리십니다. 하하.”

천애랑은 담대혁의 칭찬이 머쓱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어색한 비단옷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하하…. 이거 비단옷을 처음 입어 봤더니 어색하네요. 뭔가 야들야들 한 것이…….”

어느새 다가온 포목점 주인이 천애랑의 옷맵시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무복에 가깝게 나온 옷이라 활동하기에 불편함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 장사하면서 이렇게까지 옷이 잘 어울리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천애랑은 할아버지와의 생활 중에는 돈이 필요 없어서 무언가를 사거나 이용하려면 돈이 필요한 줄도 몰랐었다.

객잔에서 먹고 자고 했던 모든 것에도 돈이 필요했다는 점을 객잔을 나오고야 알았다.

천애랑이 난감해하자 담대혁이 괜찮다며 자신들을 구해준 사례도 제대로 못 했고 호위까지 부탁했으니 앞으로의 경비 일체는 걱정하지 말라 했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입은 비단 옷이 꽤나 비싸 보였다. 보통 호위 대금으로 얼마나 받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다.

그리고 당시 담가 남매를 구하고 싶은 생각보다 마교 놈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던 결과였는데 과례를 받는 것 같아 민망한 마음도 있었다.

“천 소협. 말씀드렸다시피 부담 가질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로는 사례가 계산되지 않아요. 자꾸 그러시면 저희가 불편합니다.”

담대혁이 진지하게 말하자 천애랑은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감사히 입겠습니다.”

“천 소협~ 정말 옷이 멋지시네요!”

담소연이 순수한 감탄을 말했다.

그새 담대혁이 ‘옷이 아니라 천소협이 멋지다고 고백하고 싶은 것은 아니냐?’라며 장난을 치다가 담소연에게 등짝을 맞았다.

“감사합니다. 소연낭자도 정말 잘 어울리네요.”

천애랑의 칭찬에 담소연은 오라버니를 때리던 손을 황급히 거두고선 입을 가리고 정숙하게 웃었다.

“호호. 감사해요~”

담대혁이 보기에 담소연의 눈빛이 또 흐릿해지며 망상에 빠지는 것 같자 서둘러 일행들을 데리고 포목점 밖으로 나왔다.

포목점 주인은 작은 마을에선 보기 드문 귀인이 나타나 횡재한 탓에 극진히 인사하며 일행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배웅을 했다.

한결 모든 면에서 개운해진 일행은 마구간에서 가서 말을 구한 즉시 요녕성의 수도인 심양으로 출발했다.

모든 일정과 진행은 담대혁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담대혁은 살마단과 조우한 지 꽤나 시간이 흘렀기에 최악의 상황으로 추격대가 붙었을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었다.

모두가 전멸을 했다면 더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겠지만 살마가 생존해 도망쳤다고 하니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야 했다.

담대혁은 여유를 부리는 것도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담대혁은 마을을 빠져나오고선 말발굽 자국들을 조작했다. 그리고 몇몇 길목들엔 매우 기초적인 환속진을 설치했다.

경지가 높은 무림인들에겐 별 영향이 없겠지만 그래도 작은 가능성의 씨앗을 심는 기분이었다.

적당한 작업이 끝난 후 담대혁은 길을 앞장서며 말을 몰았다.

천애랑은 마을을 빠져나와 들판을 달리자 마음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천 소협께선 말을 타보신 적이 있으신 겁니까?”

“아니요. 처음입니다만?”

“그런데 상당히 잘 타시네요. 무공이 높으면 말도 잘 타는 걸까요?”

담대혁이 신기한 듯 감탄했다.

“하하. 글쎄요. 그런데 심양을 들려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요녕성의 성도인 만큼 마차를 구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아! 마차를 타고 가게요?!”

마차라는 말에 담소연이 기분 좋게 외쳤다.

“녀석. 그렇게 좋으냐?”

“당연하죠! 오라버니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알기나 해요?!”

“미안하다 진심으로. 천 소협이 없었다면 우린 백두산에서 죽었겠지. 너는……. 휴우, 다 내 잘못이다. 죽어서도 천추의 한을 남길 뻔했다는 것을 안다.”

진지한 담대혁의 사과에 담소연이 멋쩍게 인상을 썼다.

“흥! 괜찮아요. 결과가 좋으면 됐죠.”

담소연은 말을 하면서 눈짓으로 천애랑을 가리켰다.

그런 담소연을 보며 담대혁도 무거운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보기 좋은 남매의 모습에 천애랑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탄 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말의 기운에 감응해서 그런지 말이 알아서 가는구나. 대자연의 기운에 감응하던 것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말은 천애랑의 손길이 기분 좋았는지 투레질을 하며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 말을 타고 달린 천애랑과 담가 남매는 어느 산속의 개울가에 자리를 잡고선 말들에게 물을 먹였다.

담대혁은 저무는 해와 지형들을 살피며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좋겠습니다.”

해가 힘을 다했는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산 너머로 떨어져 내렸다.

산속의 야영은 생각보다 낮이다 싶을 때 준비를 시작해야 하지만 적당한 지형이 안 나온 탓에 일행들은 급히 야영을 준비해야 했다.

나무가 가득한 산속은 금방 어두움에 잠식되어 갔다.

“오라버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은 맞을까요?”

“맞을 게다. 방향은 잘 잡고 가고 있으니까.”

“에고~ 이제 어두워져서 잘 안 보이려고 해요.”

담소연의 말에 담대혁이 서둘러 부싯돌을 꺼냈다.

모두 무공을 익혔기에 내공심법으로 일반인보다 어두움에서 자유로웠지만 그것이 만능은 아니었다.

담대혁 자신도 짙어지는 어둠에 서서히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일행 중 가장 무공이 약한 담소연은 더 어두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 서둘러 불을 켜고 야영 준비를 해야겠다.”

“제가 주변을 살필 겸 먹을 만한 것이 있나 좀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천 소협께서요? 하긴,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흰 여기에 자릴 만들고 있겠습니다.”

담대혁이 보기에 이런 어둠에서도 천애랑의 시선은 또렷했고 일행 중 가장 무공이 고강하니 주변을 살필 겸 움직이는 것에 대해 걱정이 되지 않았다.

천애랑은 일행들에게 먹을 것을 찾아주고 싶었다.

할아버지와 생활할 때는 진법의 영향 때문인지 배고픔과 먹는 것에 대한 감각이 둔했었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 경험해보니 누군가와 함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꽤나 즐겁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는다기보단 일행들과 무엇이라도 함께 먹고 싶은 마음에 솔선수범 나선 것이었다. 이왕이면 고기를 나눠 먹고 싶었다.

현재 도착한 산이 크니 산짐승들도 제법 있을 것이라 예상됐다.

그래서 천애랑은 빠르게 사냥하고 돌아가고자 했다.

그런데 기대와 다르게 생각보다 동물들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천애랑은 좀 더 욕심을 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어디선가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드디어 찾고 있던 산짐승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작은 기대감을 가지고 기운의 근원지를 찾아갔다.

그곳엔 동굴이 있었다. 절묘한 위치 때문인지 외부에선 쉬이 찾기 어려운 동굴이었다.

천애랑은 지체 없이 동굴로 향했다. 동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느껴지는 기운이 점점 거대해졌다.

‘기운의 크기가 심상치 않은데?’

동물에게서 나올 수 없는 기운의 크기였다. 오히려 무림인은 아닐까 싶었다.

동굴로 간 천애랑은 조심스럽게 동굴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강한 기운을 내는 것일까?’

혹여 담대혁이 걱정하던 추격대라면 사전에 응징할 계획이었다.

천애랑은 기운을 따라 좀 더 동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동굴 안쪽 끝에는 하얀 털빛의 호랑이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덩치가 거대했다.

“백호(白虎)? 이런 곳에 산군(山君)이 죽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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