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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5화 (5/200)

기공술사 5화

“네.”

천애랑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담대혁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말을 했다.

“저희는 산동 담가의 장남이자 삼녀입니다. 세상사에 대해 잘 모르신다고 하셨으니 모르실 수 있지만 꽤나 명망 있는 가문입니다. 저희 가문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식솔들만 4만이 넘으며 간접적으로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을 합치면 6만이 훌쩍 넘겠지요. 실은 더 될지도 모릅니다. 정확히 세면서 사는 게 아니라서요.”

“와…….”

천애랑은 그저 놀라웠다.

할아버지와 단둘이서만 지낸 천애랑은 담대혁이 말하는 만 단위의 숫자가 실감이 되지 않았다.

“우선 현 황실은 마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어진 담대혁의 말에 천애랑의 감정이 차게 식었다.

마교라는 단어가 순간적으로 살심을 불러일으켰다.

천애랑은 자신의 살기에 깜짝 놀라 창백한 안색이 된 담소연이 보였다.

그는 황급히 살기를 가라앉혔다.

“아! 낭자 미안합니다.”

“아, 아니에요.”

담소연이 얼굴을 살짝 붉히며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이 셋은 하산할 때 서로의 호칭에 대해서 정리를 했었다.

담대혁이 먼저 천애랑에게 ‘소협’이라고 부르니 천애랑도 단순히 담 소협이라고 마주 불렀다.

다만 담소연은 평범하게 ‘소저’로 부르는 것이 아닌 ‘낭자’라고 불러 달라 요청했고 별생각이 없던 천애랑은 그렇게 부르는 중이었다.

담소연은 가문에서 ‘소연아‘ 아니면 ’아가씨‘로만 불렸기에 연애소설에서 본 ’낭자‘소리가 그렇게 듣고 싶었었다.

천애랑의 훤칠한 외모에 고강한 무공, 위기의 순간 자신들을 구하러 나타난 영웅의 풍모까지!

가문에서 갇혀 지내다시피 한 담소연이 꿈꾸던 이상형이었다.

물론 담대혁이 이상해 보이는 호칭을 제지하려 했으나 여동생의 눈치를 보며 슬쩍 넘어갔다.

“흠흠. 여하튼 저희 담가는 현재 황실의 출사요구를 철저히 거절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현재의 담가는 그저 명망 있는 학사가문일 뿐이라는 거죠. 즉, 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낮에 보셨다시피 오히려 마교의 인물들이 저희를 납치해 가문의 어르신들을 협박하려 할 정도로 좋은 관계가 아니기도 하고요.”

천애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담대혁이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기공가의 후손이십니까?”

천애랑은 깜짝 놀랐다. 가문에 대해 아는 이를 만날 거라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기공가문은 백두산 깊은 곳에 진법으로 은거해 그저 기공술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고 했다.

외부와 딱히 교류도 없었으며 최소한의 생계유지와 연구 재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가문의 무사들이 종종 외출하는 것밖에 외부와 연결점이 없었다고 했다.

그렇기에 당연히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에선 기공가를 잊고 있을 줄 알았다.

마치 기공가의 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천애랑은 담대혁의 눈을 쳐다봤다.

담대혁은 천애랑의 진지하고 현묘한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자신의 진심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맑다. 눈빛도, 가진 기운도. 악의를 가지고 한 질문은 아닐 터.’

천애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제가 기공가의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이얏호!”

천애랑의 말에 긴장감으로 마음을 졸이던 담대혁이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면 환호성을 뱉었다.

갑작스런 소란에 점소이가 쳐다봤다. 외진 객잔, 늦은 시간인지라 식사를 하는 손님은 없었다.

담소연이 발광하는 담대혁을 진정시켰다.

“아아! 너무 좋아서 그렇습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기공가문을 워낙 좋아해서 말이죠. 남들이 모르는 기공가의 흔적을 찾는 것이 오랜 소원이었거든요! 가문 몰래 여동생을 데리고 백두산에 온 이유이기도 하고요.”

담대혁의 말에 동조하듯 담소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부모님이 저를 예뻐하시니까 나중에 방패막이 삼으려고 저를 데려오긴 했죠. 그런데 실제로 목표한 바를 이루니 정말 신기하긴 하네요.”

담소연은 놀란 눈빛으로 천애랑과 담대혁을 번갈아 보았다.

“그런데 제가 기공가의 후손임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천애랑의 질문에 담대혁이 기쁨의 감정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그 빛의 구체. 기록과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만 결정적으로는 그 공격 때문에 생각하게 됐습니다.”

“기록이요? 기록이 있습니까?”

멸문한 가문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일까.

천애랑의 표정이 살짝 달아올랐다.

“예. 개방과 하오문, 그리고 황실에서 조사한 필사본을 가문이 입수를 했었거든요. 조금씩 표현은 다르지만 결론적으로는 ‘내기를 응축한 구체로 폭탄과 같은 위력을 내는 기술을 천하제일인이었던 천석산 가주가 펼쳤다.’라고 적혀 있었죠.”

“천하제일인……?”

“아! 당시 천하제일인으로 추정되던 이는 천마 또는 태상교주였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기공가의 천석산 가주가 그 둘을 혈혈단신으로 상대한 것도 모자라 태상교주를 죽이고 천마마저 심각한 부상을 입히며 동귀어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간에서 기공가문의 천석산 가주를 천하제일인이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아…….”

천애랑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버지의 죽음이 허망 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또한 당연히 잊혀졌을 거라 생각했던 가문이 기록되고 기억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동안 들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전투가 시작된 시점과 가문이 멸문했다는 내용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외의 이야기를 우연찮게 듣게 되니 너무 반가웠다.

“여하튼 제가 그런 기공가를 동경해왔는데 이렇게 생존자를 만나게 되니 더할 나위 없는 기분을 느낍니다.”

“하하……. 저도 아버지의 소식은 처음 듣는 것이라 기분이 좋네요. 더 들을 수 있을까요?”

“하하하! 그럼요 그럼! 이 밤이 새도록 이야기 해드릴 수 있을 만큼 제가 기공가의 기록에 대해서 빠삭하거든요……. 응? 아버지?”

“네. 천석산 가주가 제 아버지 되십니다.”

“예에에에엑?!”

쿠당탕.

담대혁은 너무 놀라 뒤로 자빠졌고 담소연도 함께 놀라 조용히 먹던 소면을 뱉어냈다.

*  *  *

“그래, 쿠실라가 또 우리의 도움을 원한다고?”

어둠으로 가득한 밀실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말조심하십시오. 황태자십니다.”

“자네나 말을 조심하면 좋겠네만. 그리 주제도 모르고 입을 놀리면 친히 그 입을 찢어 죽여줄 것이네.”

“…….”

“됐고, 할 말이 있다면 어서 말하고 가게.”

거친 동물가죽으로 된 창파오(長袍)를 입은 남자가 무표정하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저희 쿠실라 황태자께서 그대들의 도움을 원하십니다.”

쿵!

암실 중앙, 왕좌를 연상시키는 높고 거대한 의자에 앉은 혈교의 교주 혈마(血魔)가 손짓하자 사신으로 온 이가 무형의 중력을 느끼며 무릎을 꿇었다.

“자꾸 주제파악을 못하는 것 같으니 내 친히 네 녀석의 눈높이를 맞춰줬다네.”

“크윽…. 저는 황태자 전하의… 사신….”

“뭐? 그래서? 황제를 암살해달라고 해서 기껏 암살해줬더니 아무런 연통도 없다가 갑자기 도움? 그게 그대들의 계산법인가? 혈뇌!”

“예!”

화상으로 짓물러 울퉁불퉁한 얼굴의 혈뇌(血腦)가 암실(暗室) 기둥 뒤에서 조용히 나타났다.

혈뇌(血腦)는 마교의 머리인 마뇌(魔腦)와 형제지간으로써 사이가 좋지 않다 알려져 있었다.

그 이유로는 얼굴에 큰 화상을 입은 혈뇌가 잘생긴 마뇌와 비교당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외모 때문에 혈뇌의 천재성이 평가절하 당한다는 이유도 더해졌다.

그래서 혈뇌는 혈교로 투신하여 혈교의 머리를 자처했고, 혈교를 성장시키는 데 매우 큰 일조를 해왔다.

“황제 암살의 대가로 우리가 받은 것이 있던가?”

“없습니다. 현재 저희의 주 영역인 내몽고 지역에 대한 자치권과 하북, 산서, 섬서에 대한 원활한 세력 확장의 지원이야 쿠실라 황태자가 권력을 잡은 뒤에 가능하다 치더라도 약속했던 황실 무고의 비급과 영약들은 아직 구경도 못 했습니다.”

혈뇌의 보고를 들은 혈마는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사신을 쳐다봤다.

“그렇다는데?”

사신은 혈마의 살기와 가공할 내기의 중력에 잔뜩 식은땀을 흘렸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을 유지했다.

사신도 나름 할 말이 있었지만 혈마의 저런 종잡을 수 없는 언행에 말을 아끼게 되었다.

황제의 암살은 혈마와 2황자인 쿠실라 황태자의 이해관계가 맞아서 이뤄진 거래였다.

2황자 쿠실라 황태자의 입장에서는 이 상태로는 황제와 1황자 토그테무르 황태자를 넘어설 수 없었다.

더욱이 황제가 더 오래 살수록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을 받는 1황자의 세력 또한 더욱 견고해질 것이기에 2황자는 다급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와 동시에 혈교의 입장에서는 현 황실과 밀접한 유착관계를 가지고 매우 강력한 세력을 뽐내는 마교를 견제할 방법으로 황제를 암살해 판을 뒤집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다시 펼쳐진 세력구도를 통해 마교를 견제하고 무림 제 1세력으로의 성장을 꿈꾸는 것이었다.

그리고 혈마는 쿠실라가 황제가 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무림일통까지도 꿈이 아닐 것이라는 기대도 하고 있었다.

사신은 여전히 혈마의 살기와 내기를 견디며 어렵게 대답을 했다.

“안 그래도 황태자님께서 귀공의 공로에 대한 보상을 언급하셨습니다. 다만 최근 거세진 토그테무르 황태자의 견제 때문에 준비가 끝나지 않아 그렇습니다. 곧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혈마는 사신을 옥죄던 기운을 풀었다.

사신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무릎을 꿇은 채로 혈마를 쳐다봤다.

“그래. 보상에 대해선 한 번 더 믿고 기다리지. 그래도 쿠실라에게 물건이 있구만. 사신이라는 녀석이 제법 강단이 있어. 그리고 눈치도 있군. 만약 일어났으면 다시 꿇리기 귀찮으니 무릎 아래를 잘라주려 그랬는데 말이야.”

“…….”

“뭐 됐고, 쿠실라의 부탁이라는 것이 뭔지 들어볼까?”

쿠실라의 사신(使臣)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듯 숨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최근에 마교에서 어떠한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아십니까?”

혈마는 얼마 전 혈뇌(血腦)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래, 무슨 산동 담가(家)의 자식들을 납치하네, 마네 하던 것을 듣긴 했네.”

“맞습니다. 토그테무르 황자가 쿠실라 황태자님을 견제하기 위한 방책으로 담가(家)의 세력을 흡수하고자 마교에게 부탁했지요. 자식들을 납치해 협박하기 위해서.”

“고작 학사가문 하나를 얻어서 무에 쓴다고 그 난리지?”

혈마는 어이없다는 듯 한쪽 눈을 찡그리며 의자의 팔걸이에 편히 몸을 기대었다.

“고작이 아닙니다. 담가(家)의 사병만 3만입니다. 그것도 정예병으로만.”

“뭐?!”

혈마는 사신의 말을 듣고는 놀랐는지 자세를 바로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한낱 가문 병사의 숫자 치고는 과하지 않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송나라 때부터 승상을 배출한 권문세가입니다. 원(元) 건국 후 거의 100년간 대외 활동을 하지 않고 내실만 다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우리보고 그 담가(家)를 공격하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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