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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4화 (4/200)

기공술사 4화

살마단은 천애랑의 주변을 맴돌며 합공을 시작했다.

살마단은 일제히 품에서 비도를 꺼내 천애랑의 사혈(死穴)을 향해 날렸다.

그와 동시에 허벅지 바깥에 매어놓은 단검을 꺼내서 눈, 명치, 겨드랑이, 심장, 사타구니 등 만만히 막기엔 곤란한 부위까지 공격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어찌 보면 잡다한 공격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방어하기 까다롭고 치명적인 늪과 같은 질척함이 느껴졌다.

차륜살마검진은 이런 공격이 쉬지 않고 이어지는 합격술이었다.

1선과 2선으로 나뉜 살마단이 하나의 몸처럼 움직이니 검진이 제대로 시작되기만 하면 그 대상이 아무리 격상의 고수라도 체력적으로 말려 죽일 수 있었다.

심지어 중간중간 숨어있는 절정의 살마단원이 검기까지 쏘아대니 초절정의 고수라도 검진 안에 제대로 갇힌다면 죽은 목숨이었다.

실제로 초절정 고수로 유명했던 차당검문주가 살마단의 차륜살마검진에 의해 죽음으로써 무림에 차륜살마검진의 위력이 확실히 알려지기도 했다.

천애랑은 바람의 결을 읽고선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날아오던 비도가 반대로 방향을 전환하여 날아갔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내리 떨어지는 단검들은 손등으로 흘리듯 쳐내면서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살마단원들은 최초에 자신들이 날린 비도가 더 강맹한 기세를 가지고 되돌아오자 황급하게 얼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숙여 피해냈다.

그리고 그대로 가속도를 붙여 목표지점에 단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니 순식간에 사라진 목표물에 살마단원들의 움직임이 잠시 멈췄다.

“위다!”

살마는 외치면서 불완전하지만 강력한 힘을 보유한 검강을 천애랑에게 날렸다.

천애랑은 강기의 궤적에 있는 대기의 결을 내기로 일그러뜨리자 강기가 강맹한 기세 그대로 엉뚱한 허공을 갈랐다.

살마는 천애랑이 자신의 공격을 저렇게 막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불완전하다고 하지만 무려 강기였다.

단순한 공격력으로만 따지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이었다.

살마는 천애랑의 절대적인 방어를 보며 어떤 공격을 하든 쉽게 막힐 것만 같은 벽이 느껴졌다.

살마는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교내의 호법이나 장로들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소름과 비슷했다.

어린 외모와는 다르게 자신보다 격상의 무인일지도 모른다는 객관적 생각이 들었다.

혹시 반로환동한 고인을 건드렸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대화를 통해 상황을 타파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으로 말을 꺼내려는 찰나 천애랑의 양손에서 밝은 빛을 내는 내기의 구슬이 수하들 사이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모든 것들이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졌다.

살마의 눈에 엄청난 결과가 펼쳐졌다.

콰과과광!

수하들 사이로 떨어진 빛의 구슬이 폭탄이라도 되는 듯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검진을 펼치느라 모여 있던 수하들이 순식간에 육편이 되어 사라졌다.

살마는 인지부조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자신들이 누구던가.

마교 서열 100위 안에 드는 자신과 그 수하들이 아니었던가.

암살과 관련해선 교내 최고를 다투었고 무림에서도 살마단이라고 하면 모두가 벌벌 떠는 존재들이었다.

생각은 잠시, 생명의 위험에 대한 온몸의 경고신호에 살마는 정신을 차리고 급히 나려타곤으로 뒹굴었다.

무림인이라면 자존심이 상하는 행위로써 꺼리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당나귀처럼 바닥을 뒹구는 나려타곤이었다.

그러나 그 덕에 살마는 머리 위를 스치는 내기의 덩어리를 피할 수 있었다.

“자, 잠시만! 잠시마안!”

살마가 다가오는 천애랑을 보며 다급히 외쳤다.

천애랑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멈춰 섰다.

“할 말이 있나?”

살마는 천애랑이 자신의 부름에 대답을 하자 자세를 낮추며 물었다.

“혹시 어느 고인이십니까?”

천애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젠 내가 묻지.”

“마, 말씀 하십시오.”

살마는 천애랑이 고인이 아니라고 했지만 반로환동한 노괴가 장난질을 치는 것이라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20년 전의 천마가 지금도 살아있나?”

“……?”

살마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잠시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 걸음씩 다가오는 천애랑의 모습에 다급히 대답을 했다.

“예! 예! 교주님은 잘 계시지요.”

살마는 자신의 대답에 옅은 미소를 짓는 천애랑을 보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천애랑 주변의 대지가 ‘드드득’거리며 흔들리고 대기조차 공명하듯 울음을 토해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내공이 고강하기에 감정의 변화만으로 저런 기사(奇事)가 일어나는지 알 수 없었다.

천애랑은 살마의 말을 듣고선 처음 느껴보는 기이한 감정에 휩싸였다.

할아버지는 굳이 복수를 생각지 말고 행복 찾아 자유롭게 살아가라 하셨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가족들을 죽인 마교에 대한 분노는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무덤을 만들면서 할아버지 이야기 속 기공가의 식솔들의 수만큼 추가로 구멍을 팠었다.

본 적은 없지만 자신을 사랑해줬고 희생했던 식구들을 함께 기리기 위함이었다.

기백의 구멍 앞에서 며칠간 명상을 했다.

하루는 할아버지만을 추억했다.

하루는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과 기공가의 식구들을 상상했다.

하루는 모든 식구들이 마교에 의해 죽임당하는 것을 상상했다.

나머지 기간엔 파둔 구덩이마다 흙을 채워 봉분을 만들었다.

흙을 채우면서 식구들을 기리고 복잡한 감정들 또한 모두 꾹꾹 묻어버렸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길을 나서는 천애랑에겐 오직 행복을 찾으라는 할아버지의 유언과 가능한 마교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개인적 의지만 남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교인들과의 만남이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처음 하는 살생이라 조금의 거부감이 있었지만 마교인들이라 그런지 행동에 주저함은 없었다.

그저 마교인들을 좀 더 죽이고 싶다는 살심만이 더욱 차오르고 있었다.

심지어 가족들의 원수인 천마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더욱 감정을 격앙시켰다.

기공 4단계를 통과하며 부동심을 익힌 후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의 동요였다.

감정이 소용돌이치자 내기가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거칠게 날뛰는 내기가 하단전은 물론 상단전까지 요동치자 위기감이 느껴졌다.

“흐아아악!”

돌연 천애랑이 기합성과 함께 내기를 발출했다.

“크헉!”

갑작스런 천애랑의 사자후에 전방에 있던 살마가 급히 귀를 틀어막았다. 그의 귀와 입으로 피가 흘렀다.

“쿠웩!”

천애랑은 곧이어 피를 토해냈다.

‘할아버지가 조심하라고 했던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다.’

기공 4단계를 수련하면서 크게 깨달은 것은 부동심(不動心)이었다.

그리고 천애랑은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세상에 나가거든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항시 부동심으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을 경계할 것.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의 상황을 겪으니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천애랑은 부동심을 잃어 주화입마에 빠지려는 것을 내상을 감수하고 털어내었다.

‘그 찰나에 도망쳤나…….’

천애랑은 그새 눈앞에서 사라진 살마의 흔적을 찾아 둘러봤다.

하지만 작은 기척이나 핏자국 등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살마를 통해 마교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었던 천애랑은 작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고개를 흔들어 그 상념을 지웠다.

갑작스레 심신이 피곤해져 왔다.

“아!”

천애랑은 이제야 두 남매가 생각이 났다.

‘마교’라는 단어에 흥분해서 잠시 잊어버렸었는데 혹시나 싸움의 여파에 휩쓸려 무고한 이들이 죽어버린 건 아닌지 걱정됐다.

두 남매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광폭환의 여파로 날아갔었는지 전장에서 조금은 떨어진 나무둥치에서 기절해 있었다.

천애랑이 다가가 살피니 다행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별다른 부상도 없어 보였다.

“휴우…….”

천애랑은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가볍게 한숨을 쉬고선 그들 옆에 자리를 잡았다.

시체 가득한 장소였지만 이들이 깨어나길 기다릴 겸 내상을 다스리기 위해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  *  *

천애랑은 깨어난 담가 남매를 따라 백두산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지리를 잘 아는 담대혁이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상황을 이끌었다.

마을에 도착했을 땐 이미 해가 저문 후라 일행들은 바로 객잔으로 향했다.

담대혁의 주문에 따라 일행들은 곧장 따뜻한 물에 간단히 몸을 씻었다.

그리고 요기를 위해 다시 모였다. 모두 한결 개운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피와 먼지에 가려졌던 외모들이 드러나자 식사주문을 받으러 온 점소이가 눈을 비볐다. 방을 안내해줬던 이들이 맞나 싶었기 때문이다.

“천 소협 덕분에 이렇게 살아서 밥을 챙겨 먹네요. 하하하!”

암묵적으로 일행의 대표처럼 되어버린 담대혁이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너스레를 떨었다.

“으이그. 저걸 긍정적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바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담소연이 담대혁을 흘겨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지 않느냐. 우리 소연이가 평소 덕을 쌓더니 덕분에 하늘이 우리를 돕기 위해 천 소협을 보내주신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고 두야. 그렇게 말한다고 제가 얼렁뚱땅 넘어갈 줄 알아요? 집으로 돌아가면 어머니한테 다 말씀드릴 거니까 각오하세요!”

“아아아…. 그것만은!”

담대혁이 과장되게 손을 저으며 반응하자 담소연이 피식 웃었다.

천애랑도 이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보기 좋았다. 형제가 없었던 천애랑에겐 다소 생소했지만 형제의 정이라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나눈 가족의 정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다.

“아이고~ 천소협이 다시 웃으시니 이 담 모가 마음이 놓입니다.”

천애랑은 담대혁의 넉살에 몸의 긴장을 풀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실은 마교와 악연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려오는 내내 생각을 정리하느라 그랬습니다.”

“역시 그랬었군요. 그런데 마교와 악연이 있으신 것과는 다르게 살마를 모르셨습니까? 매우 유명한 자였는데요.”

천애랑이 고개를 저었다.

“몰랐었습니다.”

“그랬습니까? 그리 고강한 무공을 익히고 계신데 산속에서 무공만 수련했나 봅니다.”

담대혁의 말에 천애랑은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예. 할아버지와 단둘이서 지냈었죠. 그래서 세상사에 대해 잘 모릅니다.”

천애랑의 쓸쓸한 기색을 읽은 담대혁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 이제 혼자가 되어서 세상으로 나오신 겁니까?”

“예. 얼마 전 돌아가셨거든요.”

“아아……. 유감입니다. 그리고 괜한 말을 꺼낸 듯해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무엇이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세상의 이치이니까요.”

담대혁은 다음 질문을 해도 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실은 백두산에서 천애랑과 동행하면서부터 고민하던 질문이었다.

“후우……. 천 소협. 제가 꼭 천 소협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만 그에 앞서 저희들과 가문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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