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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술사-2화 (2/200)

기공술사 2화.

무릉도원이 있다면 이곳이 아닐까 싶은 경관이었다.

웅장하지는 않으나 주위 경관과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는 폭포, 그 아래 호수 중앙에는 사람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돌이 2개가 있었다.

그 주위로는 부드러운 곡선의 돌들이 호수를 둘러 인공적이나 매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폭포 호수의 우측으로는 울창한 나무들이 어우러지고, 좌측에는 황토와 나무로 지어진 초가집이 있었다.

봄이 왔는지 초가집 주위로 꽃들이 만개해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었다.

“할아버지!”

앳된 외모에 어깨까지 부드럽게 내려온 검은 머리카락. 균형 잡힌 몸매에 이제 지학(15세)이 된 천애랑은 매우 기분이 좋은 듯 자신의 할아버지를 불렀다.

초가집 앞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던 천단호는 자신을 다급히 부르는 손자를 흐뭇하게 쳐다봤다.

“애랑아 왜 그러느냐.”

“대지의 기를 느꼈어요!”

“대지의 기를?!”

천애랑의 말에 천단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요새 수련이 더뎌져서 산길을 걸으며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발밑에서 평소와 다르게 기운이 뭉쳐 있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네. 그래서 뭐지 싶어 손으로 만져도 보고 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더라고요. 답답한 마음에 발밑으로 내공을 방출했더니 제 앞에 있던 아이 몸통만 한 돌이 터져버렸어요. 이거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게 맞지 않나요?”

“허허.”

‘천재인가.’

천단호는 천애랑의 재능에 속으로 감탄을 뱉었다.

대자연의 기를 느끼는 경지는 가문에서도 역대급 천재라고 불리던 천석산도 약관이 넘어서야 간신히 들었던 경지였다.

아무리 진법의 영향이 있다 하더라도 지학(15세)의 나이에 이 경지에 발을 들인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애랑아…….’

천애랑의 천재성이 보일수록 천단호의 입안이 썼다.

가문이 온전했더라면 천애랑은 가문의 전폭적인 사랑과 지원을 받으며 부흥을 이끌었을 것이었다.

그래도 천단호는 어린 손주가 대자연의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니 다소 마음이 놓였다.

최근 들어 쇠약해지는 몸 때문에 나날들이 걱정이었다.

천단호는 이러한 걱정을 속으로 삼키고 말했다.

“대단하구나. 잠시 이리 앉거라. 이제는 가문에 대해 이야기를 해줘도 되겠구나.”

천단호의 힘없는 손짓에 따라 천애랑이 쪼르르 옆으로 가 마루에 걸터앉았다.

천단호는 손자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말했다.

“우리 가문은 자연이 곧 세상이라고 본단다. 사람도, 동물도, 돌, 나무들도 모두 자연의 일부이듯이 모든 것을 구분 지으려 하지 않지. 그런 우리 가문은 자연을 닮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시작된 곳이었단다. 자연을 닮고 싶어 했고 몸속에 자연을 담고 싶어 했지.”

평소 잘 하지 않던 가문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천애랑은 신이 났다.

천애랑은 기대 가득한 눈으로 할아버지의 입만 쳐다봤다.

천단호는 그런 손자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내공이라 함은 자연 속에 있는 기운들을 인공적으로 호흡하여 몸 안에 쌓은 것이지. 초창기의 무림인들은 대부분 도사들이라고 보면 된단다. 그들은 몸을 기(氣)의 통로로 만들며 무병장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지. 즉, 대자연의 기(氣)를 몸 안으로 끌어들여 혈맥(血脈)들을 맑게 했던 것이야. 세월이 지나자 그런 도사들 가운데서 내공을 단전에 축적하고 사용하는 자들이 생겨났고 그게 현재 우리 무림인들의 모습이란다.”

“우와…….”

천단호는 손주의 순수한 반응에 머리를 한 번 더 쓰다듬었다.

“그러던 중에 초대 가주님께서는 단전만 내공의 그릇이라 생각하지 않으시고 몸 전체가 내공의 그릇이 될 순 없을까 고민하셨단다. 그때부터 축기(築氣)를 하지 않으시고 대자연 속에서 명상을 시작했단다. 1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날 때 대자연 속에서 각자의 기운들이 느껴지기 시작하셨지. 대지(大地)에도 그 기운이 있었고 물(水)에도 고유의 기운이 있고 하는 등 말이다. 초대 가주님께서는 이것들을 대자연의 기운이라고 부르셨지.”

말을 많이 하니 목이 탔는지 천단호는 작은 나무통에 길러놓은 물을 떠서 한 모금 마셨다.

“크……. 하지만 대자연의 기를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하자 거대한 대자연의 기 안에서 자아를 잃을 뻔했다는구나. 강이 바다로 흐르듯 상대적으로 적은 기운이 거대한 기운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려 했다는구나. 그 뒤로 5년을 더 명상하며 견뎌내시고서야 대자연의 기운 속에서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었단다. 그때부터는 진법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었지.”

“진법이요? 그 사람을 현혹시키는 그걸 말씀하시는 거죠?”

천단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진법 자체가 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기에, 대자연의 기운들을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되면 진법은 그저 꼬불꼬불한 길이 될 뿐이란다. 그분은 더 나아가 주위에 느껴지는 대자연의 기들을 움직일 수 있게 되셨지. 사물들을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거나 공중 어느 지점에서 일정한 폭발력을 가지게 한다거나 하는 거 말이다.”

“할아버지, 허나 그런 것은 전에 말씀하신 무림인들도 할 수 있지 않나요?”

“물론 무림인들도 허공섭물을 하거나 기공술을 비슷하게 흉내 낼 수는 있겠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막대한 내공과 상승의 무리가 필요하니까 쉽지 않단다. 그래서 그들은 이런 행위들을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그 시간에 다른 것들을 수련하지. 그에 비하면 우리 기공술사들은 압도적인 내공효율성과 창의성을 가지고 있기에 결이 다른 수련을 한다고 보면 된단다.”

“아……. 그럼 제가 오늘 경험한 것이 대자연의 기를 느끼는 단계인가요?”

“허허, 녀석 급하구나. 너는 이제 발가락 하나 문턱에 집어넣었을 뿐이다. 대지의 기를 느끼기 시작했으니 물의 기운도 느껴야 할 것이고 종래에는 바람과 같은 공기 중에서도 그 기를 찾아내야 하겠지. 그렇게 되면 각 기운의 결이 보이게 될 것이다. 우선 대지의 기를 느끼기 시작했다면 그 뒤는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니 염려 말아라.”

“다행이네요. 나름 막막했었거든요.”

천애랑은 좀 더 할아버지 쪽으로 자세를 더 돌려 앉더니 말했다.

“초대 가주님 이야기를 더 해주세요.”

천단호는 그동안 천애랑에게 가문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었다.

부득이 무공수련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만 가르쳤었는데 그 이유는 멸문한 가문을 생각할 때마다 죄책감에 따른 슬픔을 이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죽음이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받는 요즘엔 더 늦기 전에 기공가의 모든 것을 전할 필요성을 느꼈다.

특히나 오늘은 성취를 얻은 손자를 보며 그 마음이 더 강해졌다.

“그래……. 초대 가주님께서는 후에 자신의 경지를 단계별로 나누어 가문의 무인들에게 교육하셨으며 우리는 현재까지 그 체계로 공부를 해오고 있단다. 기공 1단계는 무의 입문으로서 기를 느끼며 내공을 축적하는 단계. 2단계는 그 축적한 기를 움직이고 사용할 수 있는 단계. 여기까지는 일반 무림인들과 다를 게 없지. 3단계는 대자연의 기를 느끼는 단계. 애랑 네가 막 발을 들인 단계란다.”

“아…….”

“4단계는 무한한 대자연의 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게 되는 단계. 5단계는 대자연의 기와 수시로 소통해 내공이 마르지 않으며 제공권을 가지는 단계. 6단계는 상대방의 기까지 조절할 수 있는 단계. 7단계는 시전자의 의지에 자연 자체가 반응하는 단계. 이렇게 나누셨단다.”

“와, 대단하시네요. 그럼 초대 가주님께서는 7단계에 드시고 신선이 되신 건가요?”

“6단계 끝자락이셨다는구나. 돌아가시기 직전에 7단계의 존재를 느끼고는 유언으로 남기셨단다. 후대들은 그 유언을 첨가해 총 7단계의 기공술을 체계화 시켰단다. 그리고 우리들은 4단계의 자아상실 위험성을 줄일 방법도 찾아냈지.”

“그게 뭔데요?”

“진법을 이용한단다. 네 아비도 이 방법으로 금방 4단계를 지날 수 있었지. 그리고 초대가주님 이후 처음으로 6단계에 이르렀단다.”

“우와…… 아버지가요? 대단한데요? 근데 아버지가 3단계에서 4단계를 통과하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천애랑은 종종 할아버지가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아버지와 비교하는 것을 들었었다.

무의식중에 나온 말이었는지 이내 슬픈 표정으로 변하시기에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없었다.

물론 묻는다고 대답을 잘 해주시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궁금했던 것을 먼저 말해 주시고 하니 이 기회에 그동안의 궁금증을 최대한 풀고 싶었다.

“8년이다.”

“8년…….”

천애랑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천단호는 작정을 한 듯 그동안 기공가에 있었던 일들도 모두 이야기했다.

가문의 식구들이 모두 천애랑을 사랑했다는 것.

천애랑이라는 이름 안에 죽은 며느리의 이름이 담겨있으니 항상 그 사랑을 기억하라는 것.

마교의 침입과 가문의 멸문까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최대한 담담히 전달했다.

천애랑에게 있어서 놀라움이 가득한 이야기들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슬픔을 볼 때마다 나름의 짐작을 하던 것들이었기에 다소 침착하게 그 이야기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이야기 속 가족들의 사랑과 이런 소중한 가족을 앗아간 마교에 대해 깊은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꾹꾹 가슴 속 깊숙이 삭였다.

*  *  *

5년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천애랑의 나이도 어느덧 약관(20살)이 되었고 천단호의 도움을 받아 5년 만에 기공 4단계를 통과했다.

천단호가 4단계 수련을 위해 설치해준 진법은 극단적으로 대자연의 기운을 응집해 모았으며 그 진법 안은 외부와 완벽히 차단되었었다.

5년의 시간 동안 철저히 고립되어 오직 대자연의 기운 속에서 자아를 찾고 유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결과 천애랑은 매우 빠른 기간 안에 수련을 마칠 수 있었다.

천애랑은 진법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보고 싶었던 천단호를 제일 먼저 찾았다.

그런데 5년 만에 만난 천단호는 엄청나게 늙어있었다. 그리고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진 게 느껴졌다.

기공 4단계를 통과한 천애랑은 주변 기운들을 느끼는 것에 자연스러워졌음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천단호를 보자마자 그의 기가 매우 미약하고 불규칙함을 느꼈다.

그 건강의 악화가 자연적인 노화보다 이상하리만큼 빠름을 느낀 천애랑은 천단호에게 그 이유들을 물었다.

수없이 채근하고서야 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마교에 의해 입은 부상을 제때 치료하지 못해 점차 기력이 쇠한 것.

그리고 현재 거주하는 진법을 설치하느라 그나마 치료 가능했던 마지막 기운을 썼던 것.

또한 4단계 진법을 설치하느라 그나마 쇠함을 막던 기운마저 크게 사용했다는 것을 천애랑은 알게 되었다.

이러한 대답을 듣자 천애랑은 이제는 할아버지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이후론 훈련보다는 할아버지의 남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항상 곁에 있었다.

그렇게 초록 내음이 가득한 계절을 지나 하늘이 높아지고 나무들은 조금씩 색이 변해갔다.

조손(祖孫)은 초옥 마루에 앉아 이런 변화의 시간들을 매일매일 함께 구경했다.

“애랑아.”

천애랑은 천단호의 부름에서 마지막이 느껴졌다.

혹여나 천단호에게 찬바람이 들까 싶어 천애랑은 계속 내기로 주변을 다독였다.

그럼에도 천단호의 생명력이 계속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네. 할아버지.”

천애랑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지만 최대한 담담히 대답을 했다.

“저 멀리서 아들 내외가 손짓을 하는구나.”

“할아버지…….”

“우리 가문의 식구들이 미소를 짓고 있어.”

“…….”

천애랑이 바라본 천단호는 희미한 눈동자로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천단호의 눈에 얕은 힘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천애랑을 보며 말을 했다.

“애랑아. 처음에는 네가 기공가를 재건해 주었으면 했단다. 그리고 석산이와 식구들을 죽인 천마와 마교에게 복수를 해주기를 바라기도 했지. 네 재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으니까. 하지만……. 너와 지낸 지난 시간들이 이런 생각을 부질없게 만들더구나. 큭!”

“할아버지!”

천단호의 기침에서 피가 섞여 나오자 놀란 천애랑이 다급히 천단호의 말을 막고 초옥 안으로 모시려 했다.

그러자 천단호가 손과 고개를 저으며 천애랑을 말렸다. 그 몸짓조차 너무 연약해서 천애랑의 마음이 쓰라려 왔다.

천단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이 할애비는 그저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이젠 세상으로 나가 좋은 여자 만나고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그저 네가 기공가의 자손임만을 잊지 않고 우리들을 추억해줬으면 좋겠구나……. 아아…… 대자연이 나를 부르는구나.”

천애랑이 붙잡고 있던 천단호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천단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해 보였다.

“하, 할아버지……. 할아버지!”

끝내 참고 있던 천애랑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  *  *

신강 십만대산 천마신교 내 천마대전.

거대한 대전의 가장 안쪽, 가장 높은 자리에 천마가 황금용이 그려진 붉은 비단 장포를 입고 있었다.

“마뇌(魔腦). 황실 늙은이들이 말한 그 애들은 어떻게 됐는가?”

“살마(殺魔)와 살마단이 갔습니다.”

“살마가 직접?”

“예, 고작 아이 둘 잡는 일을 시킨다고 투덜대긴 했지만 일처리 하나는 잘하니까요.”

“뭐, 그렇긴 하지. 종잡을 수 없는 놈이긴 하지만 임무수행은 확실하니까. 조만간 잡아오겠군. 마뇌, 그럼 난 천마동에 있을 테니 살마가 돌아오면 부르도록.”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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