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공술사-1화 (1/200)

1화. 프롤로그

기공가의 가주 천석산은 분노 가득한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죽음을 도외시하는 마교 정예 무인들 때문에 기공가의 가솔들이 하나둘 쓰러져 가고 있었다.

천석산은 당장이라도 몸을 날려 적들을 도륙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눈앞에서 자신만을 바라보는 천마와 태상교주가 있음은 물론이고, 기공가문 외벽 밖에서 대기하는 수백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당장 전투가 가능한 기공가의 가솔들은 백여 명에 불과했다.

이대로 전면전을 한다면 자신은 괜찮을지라도 가솔들은 전멸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천석산은 거꾸로 솟던 피가 다시 차가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천석산은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천마여. 내 그대들의 요구대로 마교에 속하겠다면 물러가 주겠는가?”

“하하하하하!”

천마는 천지가 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웃음을 토해냈다.

“이제 와서? 그래. 제왕의 덕이라면 넓은 아량도 필요하겠지. 그렇게 하지.”

천마가 손가락을 털었다.

“으악!”

갑작스런 천마의 탄지공에 천석산과 멀리 떨어진 가문 무인들이 허무하게 쓰러지며 죽음을 맞이했다.

이에 천석산이 분개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마교를 돕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천마는 그런 천석산을 비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큭큭큭, 이봐! 뭔가 착각하나 본데 자네들은 계륵 같은 존재야. 부상 입고 몸을 피한 그 노인네와 여기 모인 다른 이들을 보니 고분고분할 성격들이 아니지 않는가. 난 내게 도끼눈 뜨는 놈들을 가만둘 생각이 없다네.”

천마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필요한 건 자네들의 영약과 기공술일 뿐이야. 일반 무사들 수준이 아닌. 가주 비전! 그러니 자네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언제 뒤통수칠지도 모르는 다른 이들을 내가 살려둘 이유가 있을까?”

으득.

천석산은 절로 이가 갈렸다.

“결국 피를 보고자 함인가!”

“누가? 우리가?”

천마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를 죽여라!”

“존명!”

천마의 명에 마교 무인들이 더욱 거칠게 공격을 시작했다.

그 모습에 천석산은 다급히 가솔들을 챙겼다.

“모두 모여라!”

천석산은 마교 무인들에게 둘러싸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솔들의 위치로 크게 팔을 휘둘렀다.

콰과광!

무지막지한 내공의 바람이 땅과 마교 무인들을 갈라버렸다.

천석산은 자신의 주위로 모이는 가솔들을 향해 크게 말했다.

“모두 죽음을 각오해라! 가족들을 지키고 가문을 지켜라! 그대들은 기공가의 자손들이다! 간악한 저들에게 기공가를 건드린 대가가 무엇인지를 보여라! 내가 앞장서겠다!”

“가주님을 따라라!”

“와아아아!”

하나로 뭉친 기공가의 무인들은 선두로 달리는 천석산을 따라 마교 무인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콰광!

콰드득!

천석산의 기함할 공격에 마교 무인들이 우후죽순 쓰러져갔다.

절정 이상으로만 이루어진 마교 정예부대였음에도 천석산의 공격 앞엔 무기력했다.

“쯧.”

천마는 피해가 커지는 상황에 혀를 차며 가볍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천석산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

천마의 독문무공 중 하나인 천살장(天殺掌)이었다.

대수인처럼 손바닥의 존재감이 커지며 막대한 내기가 천석산을 뒤덮어갔다.

그 모습을 본 천석산이 양손으로 내기를 빚더니 천살장에 마주 쏘아냈다.

쿠콰콰콰콰광------!

천석산과 천마, 두 기운이 부딪히자 거대한 기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크아아악!”

막대한 내기가 섞인 기파에 근거리에 있던 무인들이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두 사람 간의 기파엔 피아(彼我)의 구분은 없었다.

장내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고 무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천석산과 천마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이번에는 천석산이 먼저 몸을 날렸다.

토룡지와(土龍之臥).

천석산이 막대한 내기로 땅을 내리치자 천마 주위 지반이 지진이 난 듯 갈라지고 부서지며 천마를 덮쳤다.

무공의 기본은 보법에 있으며 보법의 기본은 완벽한 디딤 발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디딤 공간 자체가 무너지자 천마가 잠시 당황했다.

심지어 부서진 거대한 땅거죽들이 솟아오르며 천마의 팔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토룡지주(土龍之宙).

천석산의 손짓에 거대한 땅거죽들이 천마를 향해 응집했다.

콰드득!

순식간에 거대한 봉분이 생겼다.

파악이 되지 않는 천마의 상황에 마교 무인들이 잠시간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드드드드득------

거대한 봉분에서 거친 마찰음이 들렸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천살만화장(天殺萬化掌).

천마의 대표 독문무공으로 인해 봉분이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천마의 눈 전체가 검붉게 변했다.

천석산의 공격에 위기를 느낀 것과 더러워진 외모에 크게 자존심이 상한 천마였다.

천마현신(天魔現身).

진짜 마귀가 된 듯 천마의 몸 주위로 막대한 마기(魔氣)가 유형화되어 넘실거렸다.

“꼭…, 죽이리라.”

천마의 입에서 마치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는 듯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나 또한 너희들을 용서치 않으리라.”

천석산이 천마의 기운에 지지 않고 기공을 끌어 올렸다.

천마가 천마현신을 한 상태로 천마군림보와 천살만화장을 일점(一點)으로 쏘아 보냈다.

무림사(武林史)에 높이 기록된 최강의 무공들이 한 점에 모이자 천지가 개벽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땅이 무너지고 하늘은 거대한 손바닥들로 가득 찼다.

나선폭환.

천석산은 천마의 막대한 기운들을 담담히 지켜보며 강기의 대포들을 만들어냈다.

하나하나에 담긴 내기의 폭발력은 절정의 무인들도 즉사시킬 양이었다. 그러한 내기 폭탄이 수십 개가 만들어졌다.

“모두 호신강기로 대비하라!”

천석산은 멀찍이 떨어져 마교 무인들과 전투를 치르는 가솔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그는 즉시 나선폭환들을 천마의 공격을 향해 쏘아 보냈다.

“물러나라!”

마교 태상교주도 심각한 상황에 다급히 무인들을 후퇴시켰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가주전을 포함한 주변의 전각과 장벽, 나무, 암석 모든 것들이 폭발에 의해 비산했다. 그리고 한 줌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좀 전까지 세가의 상징이었던 현판과 장벽, 가주전은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했거나 미흡하게 대비한 마교 무인들 수십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호신강기로 대비한 기공가의 무인들조차 부상자들이 속출했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무인들은 십 수 장을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크으윽!”

천마가 막대한 내기충돌의 반탄력에 고통의 신음을 내뱉었다.

내부가 진탕되어 머리가 어질거리고 눈앞이 흐려졌다.

화경을 넘고 천마가 된 후로 처음 느끼는 격통이었다.

천석산 또한 막대한 내기를 소모해 일시적 탈진감을 느끼고 있었다.

공격 후 가솔들을 지키느라 내기를 아끼지 않고 호신강기를 넓게 펼쳤기 때문이었다.

그때 갑자기 천석산의 사각지대에서 한 개의 손이 솟구쳐 휘둘러왔다

콰드득!

천석산이 다급히 피했지만 속 근육이 다 보일 정도로 옆구리가 뭉텅이로 뜯겨나갔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마교 태상교주가 본인의 절기인 흑룡아(黑龍牙)로 공격을 한 것이었다.

태상교주는 추가 공격 없이 마교 진형으로 몸을 뺐다.

“크윽!”

천석산은 다급히 지혈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기와 살기가 끈적하게 상처부위를 지지며 치료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일시적 내공고갈과 과다출혈이 겹치자 천석산은 머리가 핑 돌았다.

“윽!”

“가주님!”

천석산이 쓰러질 듯 휘청거리자 가솔들이 다급히 그를 지탱했다. 그리고 주변을 경계하며 호위를 했다.

천석산은 고통 속에서도 다가온 가솔들을 살폈다.

기파에 의한 상처를 제외하고도 자잘한 검상은 기본이고 손가락이나 팔 등을 잘리고도 악착같이 버티고 서있었다.

천마와 공수를 주고받는 짧은 시간 동안에 이리 많은 피해가 있었다는 것에 새삼 마교의 강한 저력이 느껴졌다.

천석산은 전방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엔 태상교주가 천마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마교의 무인들도 자연스럽게 천마와 태상교주를 호위하는 방진을 짜며 모여들었다.

서로 많이 죽었지만 마교 무인들은 여전히 그 수가 많았다.

그에 반해 기공가의 무인들은 이젠 눈으로 쉽게 가늠할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심지어 가장 중심축이 되는 자신은 치명적 부상을 입은 상태이기에 오래 끌면 좋을 것이 없었다.

천석산은 호흡을 정리했다.

‘아버지는 애랑이와 잘 빠져 나가셨을까.’

천석산은 천마와 직면하기 전 큰 부상을 입은 아버지에게 어린 아들을 부탁했었다.

가문의 저주 속에서 태어난 귀한 아들이었다.

‘이제야 아빠라고 말하기 시작했는데.’

천석산은 아들 천애랑의 얼굴을 떠올렸다. 절로 미소가 나왔다.

‘부디 살아남아 기공가를 이어주렴.’

가벼운 기원과 함께 호흡을 정리한 천석산은 몸을 자연체로 만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뇌룡(雷龍)을 펼칠 것이다. 운무(雲霧)를 준비하거라. 그리고 미안하고 고마웠다.”

기공가의 무인들은 천석산의 말이 마지막 명령임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신호를 보내마.”

천석산은 가솔들의 눈물을 뒤로 한 채 마교의 진형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정신을 차린 천마는 천석산의 오연한 자태를 보며 인상을 썼다.

세상을 내려다보는 저런 시선은 자신의 것이어야 했다.

부상 때문에 수하들의 뒤에 있다는 것이 매우 자존심이 상한 천마는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천석산을 마주 보고 섰다.

“내 오늘 이 자리에서 기공가주 그대를 반드시 죽일 것이네. 그리고 자네의 가솔들을 제일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친히 죽일 생각이네.”

천마의 조롱에도 천석산이 대답하지 않고 오연한 눈빛을 보냈다.

천석산은 최대한 부동심을 유지한 채로 천마와 태상교주의 단전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오 장(15m) 이상 떨어진 거리였기에 천마와 태상교주는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화경 이상의 고수들에겐 이 정도 거리도 충분한 공격범위가 될 수 있으나 자신들 또한 화경의 고수이기에 공격범위만큼 수비범위도 자신 있었다.

또한 태상교주에게 당한 옆구리에서 심각할 정도로 피가 흘러내리는 천석산을 보면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짐작되었다.

급한 것은 자신들이 아니었다.

“흐읍!”

천석산이 잠시간 눈을 감고 집중하더니 뻗었던 양손을 꽉 쥐었다.

“무, 무슨?!”

천마와 태상교주는 자신들의 단전에서 자의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내기의 흐름에 깜짝 놀랐다.

태상교주가 천마의 앞을 급히 가로막았다. 그리고 천마신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리며 사자후를 토해냈다.

“갈(喝)!”

천마는 단전을 쥐어짜는 고통이 좀 전의 내상과 겹쳐져 쉽게 거동할 수가 없었다.

태상교주가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단전이 터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천석산의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기공 6단계의 깨달음을 온전히 수습하지 못해서인지 공격이 완벽하지 않았다.

아쉬움을 느낄 겨를은 없었다. 막대한 심력을 소모하면서 실시간으로 몸이 무너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최후의 공격을 해야 할 때다.

“지금이다!”

천석산의 외침에 기공가의 생존자들이 선천지기를 포함한 모든 기운을 일시에 발출했다.

순식간에 내기의 안개가 전장을 뒤덮었다.

천석산은 자신과 동질의 내공심법으로 다져진 내기의 운무 속에서 한 마리의 용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르릉!

뇌전이 번쩍이며 마교 무인들이 모인 곳에 천석산이 나타났다.

운무는 같은 내공심법을 익힌 천석산에겐 아군이었지만 마교인들에겐 아니었다.

운무의 끈적함이 움직임에 지장을 주거나 시야를 가리며 빠른 대응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천석산이 마교 무인들 사이를 헤집으며 마구잡이로 살수를 펼쳤다.

콰르릉!

진짜 뇌룡이 현신이라도 한 듯 희미한 안개 속에서 번쩍거리며 천석산이 날뛰었다.

마교 무인들도 방진으로 대응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저 힘으로 찍어 누르는 막대한 기공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갔다.

순식간에 마교 무인 대부분이 죽어갔다.

일다경(15분)의 시간도 아니었다.

태상교주가 천마를 운무 밖으로 빼내는 잠깐의 시간 동안 마교 무인들이 전멸에 가깝게 사망한 것이었다.

화들짝 놀란 태상교주는 운무 속으로 뛰어들며 기공가의 무인들부터 죽이기 시작했다.

기공가의 무인들이 죽어갈수록 운무가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기에 태상교주는 더욱 확신을 가지고 살수를 펼쳤다.

천석산 또한 가문의 가솔들이 죽어가는 것을 느꼈지만 이를 악물고 최대한 마교의 무인들을 죽였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마교 무인들을 죽이고 동귀어진을 할 셈이었다.

모든 마교 무인을 죽인 천석산은 뒤를 돌아봤다.

태상교주 또한 모든 기공가의 무인들을 죽인 직후였다.

마주 본 두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천석산은 태상교주의 흑룡아를 피하면서 태상교주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모든 내기를 끌어올렸다.

몸을 매개체로 몸 안에서 미리 만든 나선폭환을 일시에 터트렸다.

선천지기까지 아득바득 끌어 쓴 나선폭환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을 만들어내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혼미한 정신으로 내상을 다스리던 천마는 엄청난 폭발의 시작을 보았다. 그는 황급히 호신강기를 펼쳤다.

천마는 막강한 폭발력에 그대로 날아가 산 아래로 떨어졌다.

*  *  *

무림이 발칵 뒤집어졌다.

개방의 방주는 보고받은 서신을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살폈다.

[천마신교 정예와 기공가의 전투로 인해 기공가 멸문. 마교 태상교주 사망, 천마 실종, 그 자리에 있던 마교 정예 500여 명 전멸. 마교가 세력정비를 위해 신강 십만대산 본교로 후퇴.]

그리고 십만대산 인근에서 천마를 목격했다는 보고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 올라왔다.

일련의 보고들은 무림은 물론 국가정세가 뒤흔들릴 사건임에 충분했다.

천하제일인이라 추측되었던 천마와 그 스승 태상교주를 홀로 상대한 천석산이 당금 무림의 천하제일인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었고 자연스레 기공가의 명성이 온 무림을 울렸다.

원나라 황실을 지원하던 마교의 세가 급격히 줄어든 탓에 황실의 자금 사정이 약해졌다. 그리고 황제가 병사하자 황자들의 난이 일어났다.

불안정한 정세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끝없는 황실의 사치향락에 백성들은 고혈을 빨렸다. 길거리에 아사(餓死)한 백성들의 시체가 많아졌다.

전국 각지에선 이런 잘못됨을 바로 잡겠다는 한족(漢族)들의 봉기가 일어났고 그 중심에는 주원장과 정도맹이 있었다.

난세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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