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문엽 (2)
콰콰쾅!
마교도들이 던진 비도가 벽이나 땅에 처박혔다.
뒤이어 거리에 분진이 가득해졌다. 아녀자의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위문엽에게는 훤히 보였다.
“붉은 눈깔들이 참으로 많군.”
말을 그렇게 뱉고 보니 불쾌함이 치밀었다.
“근데 하필이면 왜 지금 이랬냐? 달밤이 참으로 좋은데, 너희 같은 놈들이 나타나서 기분을 잡치게 하냔 말이다.”
“……야차.”
“위문엽.”
조장으로 보이는 두 마교도가 동시에 말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없었던 일로 해 주겠다.”
그 말에 위문엽이 껄껄 웃었다.
우습다 못해 측은함이 들어서 왼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아서라, 참.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우스운가?”
“칠성의 주인께서 너를 쫓으실 것이다.”
“푸하하!”
두 마교도가 한 말에 위문엽이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웃음기를 싹 빼고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강자가 정하는 것이다.”
“멍청한.”
“선택을.”
“칠성의 주인아! 있다면 당장 나와 보아라!”
위문엽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나도 구천신검처럼 유명해져 보자! 겁쟁이냐!”
절대 지존이 능멸당하자 수십의 마교도가 땅을 박찼다.
수백, 수천 번을 연습했을 차륜전의 진.
강호에서 암약하는 동안 원숙하게 수련했을 진법이 위문엽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휘르르…….
한산했던 거리가 암흑으로 물들었다.
과거 흑사문이라는 곳이 펼쳤다던 부동암형진을 방불케 했다.
‘무겁고, 어둡고,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흑사문이 어쩌면 마교에서 분화한 흑도 문파일지도 모르겠다.
위문엽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사방을 살폈다.
그러다가 발밑에서 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기에 진각을 강하게 밟았다.
“쿠엑!”
벌레가 짜부라지는 소리가 났다.
위문엽에게는 그 정도 감흥밖에 없었으나 아녀자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질렸다.
“소리 지르지 마. 딱 붙어. 심호흡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진법의 기운에 스러진다.
위문엽과 아녀자가 숨을 내쉬면 한기 서린 입김이 피었다.
한 치도 보이지 않는 어둠은 공포심과 감각의 상실을 불러오기 마련이지만, 위문엽의 걸음은 확고했다.
저벅.
한 걸음을 내딛자 어디선가 장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
창이었다.
두 개의, 날이 어둡게 칠해진 특이한 무기라.
늑골을 노리는 궤적을 본 위문엽은 그저 웃고 말았다.
“시도는 좋지만, 노리는 곳이 훤히 보여서야.”
기습이라고 칭할 수 없다.
위문엽은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오른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쩌적’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손에 쥔 무언가가 강한 돌풍을 일으켰다.
침잠한 어둠을 자아내는 마교의 절진 앞에서도 애병(愛兵)은 자기 빛을 찬연히 드러냈다.
“차!”
뜻을 알 수 없는 암어가 진 전체에 울렸다.
마교도끼리만 통하는 사어(死語).
사이한 기운이 담겨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데 정통하니.
“허억!”
평범한 아녀자가 버텨 낼 리 만무했다.
그걸 곁눈질한 위문엽이 쯧 하고 혀를 찼다.
“심호흡하랬지.”
“예?”
“두고 가진 않을 테니까, 최소한 움직여.”
위문엽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그러면 살려는 줄 테니까.”
늑골을 노리는 창에 이어 짧은 시차로 등장한 열다섯의 칼날.
지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방위에서 공격이 행해졌다.
일반적인 무학으로는 쳐 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호신강기에 의존해야 했다.
‘호신강기론 안 되겠지.’
위문엽은 오만하지만, 상대를 모르진 않았다.
명색이 마교인데 호신강기를 꿰뚫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강호십대고수를 죽일 순 없을 테니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입이 무거운 편인가?”
“예? 예……!”
“말하면 너니까 살고 싶으면 평생 다물고 있어.”
위문엽이 한쪽 발을 뒤로 물리며 오른손에 힘을 가득 주었다.
주변이 왜곡되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금속의 정체가 드러났다.
“저건!”
“허?”
철저하게 교육받은 마교도마저도 경악을 참지 못했다.
그 정체는 어떤 명칭으로도 정의할 수 없었다.
“특이한 무기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깟 흑색 창이 아니라.”
위문엽이 사납게 웃으며 공력을 운용했다.
도가와 불가가 반쯤 뒤섞인 기운이 오른손에 쥔 무기로 스몄다.
일곱 개의 단층.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게 만드는 축(軸).
끝에 있는 송곳 하나가 겨우겨우 검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였다.
콰르르르!!
그 검 혹은 둔기.
뭐라고 불러도 좋았다.
위문엽만이 다룰 수 있는 기괴한 병기가 거대한 와류를 옭아맨 채 회천(回天) 했다.
마교도들이 내지른 칼날과 창 모두 무력하게 꺾였다.
‘저, 저런 걸 다룰 수가 있나?’
아녀자의 생각은 마교도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구천신검 백무량마저도 자기 공력으로 만든 구름을 다룬다는데, 저 와류는 자기 힘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좌도방문.
차력(借力)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건만, 위문엽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뿐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구경 잘했으면 죽음으로 갚아라.”
“……?!”
“이걸 드러낸 이상, 살려 보낼 생각은 없으니까.”
위문엽의 눈가가 일그러졌다.
***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검이 일으킨 와류가 스쳐 지나갈 때마다 마교도의 살이 찢어지고, 뭉개졌다.
진이 무너지는 것이야 당연지사.
위문엽은 마교도가 모두 전멸하는 순간까지 실실 웃으며 와류를 휘둘렀다.
그 모습이 마치 풍신을 떠올리게 해서 아녀자의 가슴에 깊이 남았다.
“가, 감사합니다…… 대협.”
“대협은 무슨. 내가 그렇게 불릴 위인이 아니라서 오글거리기만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위문엽의 뺨 한쪽이 불그스름했다.
얼른 더 해 달라는 것처럼 보여서, 아녀자가 눈치껏 몇 마디를 덧붙였다.
“대협이 아니었으면 정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었을 거예요.”
“아이참.”
“저한테는 영웅이세요. 어떤 고수보다도 강하시고요.”
“그 정도만 하라니까, 그만.”
“매일 대협을 위해서 정화수라도 떠도 될까요?”
“그거 좋…… 아니, 됐다고 했잖나. 쩝.”
위문엽은 검을 특수 제작 한 검갑에 넣고는 처음으로 편안한 웃음을 보였다.
“십대고수라면 방금 같은 꼴을 보고도 가만히 있어선 안 되지, 암.”
“저, 그런데…… 대협,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편하게 이야기해.”
“그걸 휘두를 때마다 왜 그렇게 아파하시나요?”
“……눈치가 참 빠른 사람이구만.”
위문엽이 검을 조금만 빼놓았다.
손잡이와 가장 가까운 일단(一段)의 단층.
그것을 슬쩍 드러내며 궁금증을 해소할 만큼만 말해 주었다.
“이 검은 순수한 근력으로만 가동할 수 있거든.”
“……예?”
“뭐, 바람이 일어나고 나서는 무인이 수련하는 내공으로 조절할 수 있겠지만…… 와류를 일으키는 건 순수 내 힘이라는 거야.”
아녀자가 입을 쩍 벌리고는 위문엽의 팔뚝을 보았다.
피멍이 든 것처럼 붉게 물든 피부.
그 안에 끊어진 힘줄을 이어붙인 흔적이 누더기처럼 있었다.
약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위문엽은 위문엽이었다.
“팔이 떨어질 것 같으니 표정이 지랄맞게 변하지. 안 그래?”
무덤덤하게 말하는 목소리에 강함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것이 위문엽.
강호가 야차(夜叉)라고 부르는 무인의 본질이었다.
***
며칠 뒤.
무림맹의 소개로 만나게 된 구천신검 백무량의 첫마디가 위문엽을 당황스럽게 했다.
“아미복호검을 이은 사람이 여기 있었구나!”
“아미…… 뭐?”
위문엽의 표정이 짜증으로 뒤덮였다.
야차 위문엽.
평소에 그의 행적이나 별호를 들을 때마다 성격이 더러운 낭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요컨대 금모도왕 남천처럼 말이지.’
그래서 백무량도 위문엽을 소개해 준다고 했을 때, 어느 정도 기대를 버렸다.
선배로서 대접받을 거라든가, 편한 자리가 될 거라든가.
많은 걸 덜어 내고서 처음 대면하자마자 느낀 건 검해에 남은 자취에서 이어진 선연(善緣)이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변형되었겠지만, 분명…… 아미복호검을 익힌 녀석이다!’
정혜 신니에게 가르친 것이 정통의 아미복호검이라면 위문엽은 수많은 무인이 개량한 형태일 터.
궁금증과 호기심이 일었으나 위문엽의 태도가 영 좋지 않았다.
“아미 뭐시기는 잘 모르겠고, 나는 선배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통적인 무학을 쌓은 사람이 아니요.”
‘거, 근본 있는 사람이 왜 그러실까?’ 하는 표정.
오랫동안 찡그려 왔는지 더러워진 인상.
그것이 적절히 조합되니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불만이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위문엽 딴에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한 것임에도 그러했다.
[나한테 안 좋은 감정 있냐?]
백무량의 전음에 위문엽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런 오해 많이 받소. 원래 인상이 더러우니 선배가 이해하시오.]
무인의 자존심.
정말이지 쓸데없는 남자의 본능이 위문엽을 굳게 지탱하고 있었다.
이에 백무량이 피식 웃었다.
[이보게, 후배야. 내가 뭐 드잡이하자는 것도 아니고…… 후배가 익힌 무학의 원류를 알려 주고 싶어서 그래.]
[선배가 뭔데 아시오?]
[응?]
[내가 익힌 건 독문의 무공인데 무슨 아미니 뭐니, 괜히 가르치는 척 뺏어 가려는 건 아니오?]
[아니, 인마.]
[소문으로 들었소. 선배가 다른 도문의 무학을 조금씩 배우고 다닌다고. 이번엔 내 차례인 거요?]
[…….]
그 말엔 백무량마저도 할 말이 없었다.
공동파와 화산파, 무당파.
하다못해 불가인 보타문이나 아미파의 무학마저도 익혔으니까.
‘……그래도 이건 좀 억울한데?’
아무리 그래도 덮어 놓고 의심하다니.
백무량은 입술을 씰룩이며 못된 말을 전음에 품었다.
[배울 것 없는 무학에 욕심을 가져서 무엇 하겠나?]
[뭐요?]
쿵!
위문엽이 탁자를 내리치자, 중간에 끼어 있던 무림맹의 무인이 움찔거렸다.
“저어…… 뭔지는 몰라도 대화는 차분히 나누시지요.”
고수끼리의 싸움에 끼면 자기만 손해다.
무인은 오랜 경험으로 체득한 본능에 따라 방 밖으로 나갔다.
“싸우지만 마십시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외마디가 가까스로 백무량과 위문엽을 진정시켰다.
다만 둘 다 비슷한 생각을 품긴 했다.
‘재수 없는 놈.’
‘선배가 아니라 무공 도둑이 아닌가?’
백무량과 위문엽은 서로 시선을 돌린 채 차만 홀짝였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계속 이어지던 와중이었다.
“팔씨름 한번 해 보겠소, 선배?”
위문엽의 제안에 백무량이 씨익 웃었다.
“애도 아니고 팔씨름은……. 좋다! 내가 이기면 내 말대로 해라!”
“반대로 내가 이기면, 했던 말에 대해 사과하시오.”
“좋아.”
“좋소, 명색이 도문의 대선배가 두말하지 않으리라 믿겠소.”
“지고 울지나 마라!”
백무량은 위문엽의 코를 꺾겠다고 호쾌하게 팔을 걷었으나.
“엥?”
패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