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1)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구천검 백무량이 성명절기로 익혔던 구천화우검의 검무를 보여, 무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가장 빠르겠지만 호감을 사는 방법은 아니었다.
화산파에서 칠지검협에게 많은 조언을 받았다.
많은 사람이 선배의 귀환을 인정하지 않거나, 이해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에 대해선 등산로를 오르며 본 두 도사가 증명했다.
[그야, 제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죽은 사람이 돌아왔다고 생각하기보다 ‘도사 놈’의 정신을 의심할 테지.]
왜 호칭이 ‘도사 놈’이 되었나 싶지만,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어찌 됐든 백무량은 무당파로 오면서 궁리를 했다.
세상 사람에게 과거의 죽은 자신을 증명한다.
무척 우스운 말이지만,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래야 앞으로 마교와 싸움에 있어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 너구리 같은 무림맹주 녀석.’
그렇지 않아도 자신에게 은근히 무림맹과의 협력을 논하던 놈이다.
한번 말려들면 머리통까지 조르고도 남았다.
그러니, 그 전에 높은 항렬로 머리를 후려친다.
제아무리 맹주라도 칠십여 년 전 대단했던 구천검의 위상을 건드리지는 못할 테니까.
‘그래도 막상 사람들 앞에 서니까 당황스럽습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무당산이 언제부터 관광지가 된 거냐?]
무당산에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 어떻게 예상했겠는가?
칠성교, 백련교, 천마신교.
그 잡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데 어찌 무당파의 상태가 눈과 귀에 들어오겠냔 말이다.
백무량의 시선이 모여든 사람들에게 향했다.
얼굴에 상처를 입은 낭인, 염소수염의 남자, 소속 모를 무인.
참으로 많은 인간 군상이 모였다.
무당파 장문인이 아프다는 말에, 상관도 없는 놈들이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백무량은 그것이 조금은 아니꼬웠다.
그래서, 첫마디부터 호탕하게 나갔다.
“무당파 도사도 아닌 사람들이 꾸득꾸득 기어 올 만큼 귀가 뚫려 있다면, 내가 구천검 백무량임을 밝혔다는 사실도 얼추 들었겠지.”
“……!”
“근데 표정 봐라. 어린놈한테 이런 소릴 들으니 꼽나? 근데 난 어려져도 마인이랑 싸우고 다녔는데, 너희는 잇속이나 챙기려고 여기까지 기어 와?”
“뭐, 뭐 저런……!”
“지금까지 너희들 같은 잡것한테도 예의 바른 척, 도사인 척 구느라 갑갑해 죽는 줄 알았다. 이제 어쩌냐? 내가 내 신분을 증명할 만큼 강해졌고, 증인도 강호십대고수인데.”
백무량은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 냈다.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여기에 몰려온 면면을 보니…….
남천의 말을 빌리자면, 좆같았다.
백무량의 손가락이 염소수염을 가리켰다.
“장문인이 제자들을 불렀지, 너 같은 상인을 부른 줄 아느냐?”
“아, 아니…… 그건…….”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차기 장문인이 될 도사를 눈여겨보고 선이나 대려고 했겠지.”
“이보시오!”
얼굴이 붉어진 염소수염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백무량이 조소를 머금었다.
“참고로 나 만금상단주 조원양이랑 한집에서 지내봤다. 말할 거면 신중하게 해.”
“…….”
그 말에 염소수염이 입을 꾹 다물었다.
‘뭐, 사실은 호위를 서느라 며칠 있었던 거지만.’
어찌 됐든 사실이 아니던가?
사소한 건 넘어가고서, 백무량의 손가락이 낭인에게 향했다.
“너는 왜 왔냐? 네가 무당파 제자냐?”
“검은 가지고 오지 못했으나, 권장술이라도 겨루고자…….”
그 말에 백무량은 낭인의 용무를 알아차렸다.
“무당파 도사 성품이 다들 착한가 보다, 무공 조언이라도 받을 생각으로 온 걸 보면. 아, 하긴, 그러니까 무당산 중턱에 장사판이 났겠지.”
“…….”
낭인이 슬그머니 사람 속으로 섞여 들었다.
그걸 본 백무량은 헛웃음을 치며 소속 모를 무인을 바라보았다.
“그쪽은…… 뭐가 그리 많이 왔지?”
“무슨 소리요, 나 혼자 왔소.”
무인의 대답에 백무량이 인상을 구겼다.
“어딜 거짓말이냐! 복식만 다르면 못 알아볼 줄 알았느냐?”
백무량의 손가락이 허공을 누볐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찍을 때마다 표정이 새하얘지거나 구겨졌다.
사람들은 그 과정을 희극 보듯이 보았지만, 백무량의 속내는 달랐다.
‘뭐 하는 놈들이야?’
마인은 아니라지만, 하나의 현에서 고수로 대접받을 정도의 무인들.
그런 놈들이 모두 서른 명이나 다른 복식을 한 채 잠입해 있었다.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백무량의 눈동자에 기이한 안광이 드러날 때쯤, 전면에 있던 무인이 손사래를 쳤다.
“그만하시오. 모두 하산하겠소.”
“말이 짧다. 내 항렬이 구파의 장문인보다 높다.”
그 말에 무인이 황급히 말을 고쳤다.
“……하산하겠습니다.”
“이렇게 모여든 이유는?”
“무당파 장문인께 은혜를 입은 사람끼리 전서구를 돌렸습니다. 함께 찾아가자고요. 그것이 의심스럽게 보였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무인의 말에 백무량은 속으로 생각했다.
‘저게 사실이면 창피를 당하게 한 내가 나쁜 놈이 아닌가?’
백무량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무당파 도사에게 향했다.
“장문인은 어디 계신가? 이들을 확인하고자 하는데.”
“지금은 출타 중이십니다.”
“허, 아쉽군.”
그 말에 무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못 미더우시다면 저희의 별호나 출신지, 문파라도…….”
“작정하고 왔으면 그것도 다 꾸몄을 것 아니냐? 해검지는 어떻게 통과했겠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무인이 억울하다는 듯이 백무량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무인은 사람을 잘못 판단하였다.
백무량은 저런 놈의 시선 따위는 쉽게 흘릴 수 있다.
‘평소 선배의 혀 차는 소리보다야.’
[왜 또 나를 걸고넘어져?]
심천검이 억울하다는 목소리를 냈으나, 백무량은 가볍게 무시하고서 도사에게 말했다.
“장문인께서 돌아오시면 이들의 신분을 제대로 확인해. 내 앞에서야 양처럼 굴지만, 모두 성강의 경지에 이른 고수야.”
“……!”
도사의 눈동자가 커졌다.
백무량 앞에서 저렇게 어린 양처럼 구는 자가 사실은 고수였다니!
이에 도사가 의구심을 품고서 물었다.
“하나 저 사람은 태양혈이 밋밋하고…….”
“그걸 드러나지 않게 바꾸는 무공도 있기 마련이지.”
백무량은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 가령…… 흑도라든가.”
그 말에 무인이 시뻘게진 얼굴로 외쳤다.
“이건 모욕이오! 당신이 아무리 구천검 선배일지라도, 아니 믿고 싶지도 않지만!”
“뭐, 아니면 말고.”
백무량이 무심코 진심을 토하니 무인의 표정이 멍해졌다.
“……뭐요?”
“농담이고. 지금처럼 무당파가 혼란할 때를 노릴 집단이 있을지도 모르잖나? 의심받을 만하다는 생각도 했어야지.”
“그건 그렇습니다.”
무인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백무량은 도사를 보았다.
“태양혈을 보고 고수를 판단하는 것도 안 좋은 버릇이야. 특이한 무공을 익히면 태양혈이 발달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절맥의 신체일 수도 있으니까.”
“기억해 두겠습니다.”
도사가 포권하는 모습에 백무량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문득 상황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구천검임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나? 어쩌다가 화를 쏟아 내게 되었더라?’
백무량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예나 지금이나 고강한 왈패 소리나 듣겠구만.’
과거, 구천검 시절에도 이런 짓을 벌이다가 사부에게 단단히 혼나지 않았던가?
그래도 성질대로 말을 쏟아 냈으니 후회는 없었다.
다만 사문의 장문인과 제자들에게 조금 미안할 뿐.
[나한테는?]
‘선배께도 항상 감사하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심천검에게 무성의한 답을 보낸 백무량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도 좌중은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본디 성질이 급하고 격한지라, 다들 이해해 주게.”
이에 젊은 호사가 하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전에 있었던 일을 물어도 되겠습니까?”
“뭔가?”
“매화비원에서 있었던 일. 무용담을 장본인에게 듣고 싶습니다.”
“…….”
백무량은 잠시 눈을 감고서 심호흡했다.
그 모습을 보고서 호사가들이 눈을 빛냈다.
***
구천검 백무량!
무인 사이에서 불세출의 천재이자 백련교의 난에서 죽은 고수로 남았지만, 호사가 사이에선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그분의 이야기 서너 개면 평생 밥 굶을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이른바, 천하일설(天下一舌).
현세대로 치자면 금모도왕 남천과 비슷했다.
가는 곳마다 싸움이 일어나고, 욕설이 터진다는 점에서.
칠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니, 호사가들 사이에서 구천검은 엄청난 기인(奇人)이라는 평이 많았다.
‘오길 잘했어!’
다른 호사가가 묻는 걸 지켜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직접 물어야 명성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백무량에게 질문을 던진 젊은 호사가는 속으로 생각했다.
‘일생일대의 기회다! 못 먹으면 호구 병신이지!’
백무량이 그 구천검이라면 뭐라도 반응을 보일 터.
호사가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도 귀를 기울였다.
물론 그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평생 술안줏거리가 되겠어.’
‘오만하게 부풀려서 말하려나?’
‘뭐든 빨리 말했으면 좋겠군.’
귀는 열렸으되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백무량을 보았다.
그들은 옛 구천검이 그러하였듯 허세와 기만, 욕설이 가득한 이야기를 원했다.
듣고 나면 강호에 재포장되어 퍼트리리라.
그것을 모를 정도로 순박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왜 얼른 이야기하지 않는 거야?’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편서(片書)할 것이라도 가져올걸.’
좌중이 급박한 마음을 표정에 드러낼 때쯤.
백무량이 눈을 떴다.
“그 이야기가 왜 무용담이냐?”
“……그, 그야 매화비원을 복원하고 낙매신검을 구하시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한 마교의 수장을 처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호사가가 사람들의 기대를 뒷배 삼아 크게 대답했다.
백무량은 잠시 침묵하였다가, 짧게 물었다.
“진자충은?”
“예?”
호사가가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으니, 백무량이 다시 물었다.
“진자충의 죽음은?”
“그, 그건…… 피치 못할 것이었다고…….”
“그 자리에 없던 놈이 그렇게 말해도 되나? 내가 생각이 짧거나, 경우가 없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백무량이 낮은 목소리로 찌르듯이 쏟아 냈다.
이에 호사가가 제 상황을 과신하고, 순간 욱하여 대답했다.
“그러한 일엔 보통 누군가의 희생이 있지 않습니까?”
“……희생.”
백무량이 호사가가 한 말을 곱씹으니, 호사가는 그제야 자기 실책을 깨달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손사래를 쳤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아니야, 네가 보기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백무량은 무심한 얼굴로 젊은 호사가와 그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지켜본 사람 앞에서 희생을 논해? 조의를 표해도 모자랄 판에, 무용담 따위에 시시덕거려?”
백무량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기대감도 없었다.
듣는 사람의 마음을 진창으로 끌고 들어가는 듯한 음울함이 깃들었다.
깊은 환멸.
농담 하나 없는 차가움, 날카롭게 벼려진 칼과 같은 기세가 젊은 호사가를 짓누르는 듯했다.
“한 번은 죽었던 사람이 말하니, 똑똑히 들어라.”
“…….”
좌중이 침묵하고 무당파 도사 또한 귀를 기울였다.
백무량은 공력을 운용해 깊고 넓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되살아나고 나서 한 생각은 하늘이 날 찾았다는 자부심이나 명성이 아니라, 다시 기회가 왔다는 것뿐이었다.”
백무량이 한 호흡을 가라앉히고, 말을 이었다.
“강호의 명성은 언뜻 보면 광채가 나는 것 같아도 한 번에 더러워지고, 재수 없게 죽으면 끝나는 것에 불과해. 예컨대 백 년 전 천하제일인이 누구인지 아는 이 있는가?”
“…….”
호사가들이 침묵했다.
백무량은 그제야 하려던 말을 꺼냈다.
“내가 행하려는 일은 명성이나 공명심을 위한 것이 아니네. 천하가 혼란하지 않게 마교를 멸하고, 방책을 세우려는 것이지.”
척.
백무량이 모든 사람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그러니, 내 진의를 이해하였다면 널리 알려 주게. 마교와 싸우는 그때, 선두에 내가 있을 터이니.”
“…….”
천하가 구천검 백무량의 귀환을 인지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