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6)
‘어떻게 하면 좋을까?’
유성한을 도사로 만들기만 한다면 사형의 안배를 취할 뿐만 아니라, 비구니에게 건 조건까지 얻을 수 있다.
한데 말이라는 게 참 얄팍하고 우습다.
‘도사로 만들라는 게 대체 무슨 뜻이요, 사형?’
백무량은 주백천에게 애꿎은 마음이 들었다.
칠성교의 술법에 걸린 천무검성의 후인을 도사로 만들라니.
‘대체 어떻게 해야 ‘도사’가 된다는 말인가?’
백무량이 쉬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개념적이었다.
이곳이 보타문이 아니었다면 도경을 수십 권씩 쌓아 두고 샅샅이 뒤져 봤을 터였다.
“이를 어쩐단 말인가?”
백무량은 유성한을 안쓰러운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
“문주님, 정말 그 소협을 믿으십니까?”
한 제자의 물음에 비구니, 보타문주 목락윤(木樂尹)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네가 보기에는 마땅치 않니?”
“성한이가 또 기절해서 왔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검을 보여 줬는데, 칠성교의 낙인이 반응했다고요.”
“…….”
목락윤은 말없이 찻잔을 기울였다.
그걸 본 제자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목락윤이 저런 반응을 보이면, 뜻을 굽힐 의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언제 칠성교가 다시 올지 모릅니다.”
“올해 네 나이가 몇이었지?”
목락윤의 뜬금없는 질문에 제자가 한쪽 팔을 주물렀다.
“서른두 살입니다.”
“하면 기억하지 못하겠구나, 보타문에 들렀던 도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목락윤의 아련한 눈빛에 제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원체 자기 과거사를 말하지 않았던 목락윤이었기에, 저런 표정은 난생처음이었다.
“정인(情人)이라도 되었나요?”
“정인?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니.”
“아잇, 애끓게 하지 마시고 바로 말씀해 주세요.”
“호호, 그 소협을 안 좋게 보더니, 너도 똑같이 성격이 급하구나.”
한차례 찻잔을 기울인 목락윤은 차향을 음미했다.
대단할 건 없었다.
보타문에서 구할 수 있는 찻잎이라곤 대부분 싸구려였으니까.
바다를 배로 건너다 보면 물기가 빠지고, 향이 날아간다.
어디 그뿐이랴.
가끔씩은 열에 아홉이 말라붙어서 오기도 한다.
과거에 만났고, 백무량이 찾는 그 도사가 그런 사람이었다.
“무슨 일로 보타문에 오셨는지요?”
“알 필요 없소.”
목이 끝까지 말라붙은 것 같은 건조한 목소리, 봉두난발의 머리.
위와는 다르게 잘 차려입은 도복만 아니었다면 곧바로 쫓아냈을 남자였다.
복장은 도사이되, 관상은 낭인만도 못했으니까.
그때의 목락윤은 도사를 왈패로 오인했다.
“제가 당신을 쫓아내는 이유도 알 필요가 없겠지요?”
“확인할 것이 있어서 왔소. 그러니 길을 비키시오.”
“그러지 못하겠다면요?”
그 말에 도사가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목락윤으로선 부아가 치밀었다.
‘해보자는 건가?’
가끔씩, 이런 식으로 보타문에 입문하고 싶다며 강짜를 부리는 외인이 한둘이 아니었다.
도사 또한 그런 부류 중 하나이리라.
목락윤은 등을 돌렸다. 자기 스스로 뭍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말할 때까지 방치할 요량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봉두난발의 도사는 말없이 정좌하고 있었다.
앓는 소리 한번 하지 않은 채, 천천히 죽어 갔다.
“대체 뭘 확인하러 왔길래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천리(天理).”
물 한 모금, 죽 한 입 없이 딱딱하게 말라붙은 입술.
한마디를 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울 터인데도, 도사의 눈빛은 형형했고 맑았다.
목락윤은 도사가 보인 의지에 져 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이례적인 일이기도 했다.
보타문에 관련되지 않은 외인을 심처로 들인 셈이니까.
쫘아악……!
물로 적신 천을 도사의 얼굴에 올려 두고서, 목락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리가 그리 중요한가요? 해안가에서 앉아 있다 죽어도 될 만큼?”
“…….”
“됐어요. 대답을 바란 내가 바보죠.”
“올 거요. 먼 미래에, 한 명의 도사가.”
도사가 한 음절을 내뱉을 때마다 팔뚝에 피멍이 들었다.
목락윤의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진짜였어.’
천리를 누설하면 생긴다는 죄업.
그저 전설로만 치부했던 광경이 눈앞에서 벌어졌기에 목락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도사를 지켜보고 있던 또 다른 여승이 목락윤을 밀치면서 외쳤다.
“그 정도만 하십시오! 더는 누설하면 안 됩니다!”
“천무검성의 후인을, 도사로, 만들라고 하시오.”
도사의 고개가 비스듬히 돌아갔다.
천으로 얼굴이 가려져 있음에도 왠지 모르게 목락윤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목락윤은 목에 무언가가 걸린 것 같았다.
운명이 자신을 바라본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목이 바짝 말라 왔다.
그러나 피하지는 않았다.
“그럴게요.”
“고맙소.”
짤막한 대화를 나눈 이후, 도사가 침상에서 일어났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섬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망부석도 아니고…….’
목락윤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잠시 꾸벅 졸았다.
그땐 이미 도사의 신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 이후로 삼십여 년.
목락윤은 차향을 음미했다.
천리를 확인하러 왔다던 이름 모를 도사, 그리고 백무량.
그 둘은 어째선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도사님은 정좌로 나를 설득했지만, 백 소협은 무공으로 비켜 세우려고 한 게 다른 점이지만.’
둘 다 행하려는 길을 걷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목락윤의 시선이 제자에게 향했다.
“궁금하니?”
“예!”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그때 말해 주마.”
“아이 참!”
제자가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한 가지를 물었다.
“그럼 이거 하나는 가르쳐 주세요.”
“무엇을 말이니?”
“백 소협이 조건이라면서 문주님께 한 귓속말요. 무슨 말이었나요?”
제자의 물음에 목락윤이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언뜻 보면 관음과 같았지만, 제자에게 있어 답답하기 그지없는 웃음이었다.
“또 그렇게 넘기시려고요?”
“너는 나를 너무 잘 아는구나.”
“에휴!”
제자가 두 손을 들었다.
***
두 시진 뒤.
상체를 일으킨 유성한이 멍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해는 이미 저물고, 밤이 왔다.
해안가에서 치미는 음기가 반점이 있는 부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짜악!
유성한이 왼팔로 오른쪽 어깨를 때렸다. 아주 잠시에 불과하지만 고통이 멎었다.
그 소리에 깨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일어났니?”
“아저씨.”
유성한이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 같은 눈으로 백무량을 바라보았다.
“또 제가 뭔가 한 거죠?”
“뭘 하기는?”
백무량은 히죽 웃으며 유성한의 머리칼을 흩뜨렸다.
하지만 유성한의 표정은 여전히 음울했다.
“이곳에 오고 나서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제가 검을 괜히 만진 걸까요?”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어?”
“하지만…….”
“어허.”
백무량은 유성한을 다그치면서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나 본데.’
잠깐 사이에 유성한이 보인 상승의 검법과 귀기.
그건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무공보다 칠성교의 그것에 가깝다고 보는 게 옳았다.
백무량은 생각을 고쳐야만 했다.
‘어릴 적의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더 심하구나.’
천무검성의 후인이라는 주변의 시선과 학대.
칠성교의 술법 때문에 간혹 잃게 되는 정신.
그걸 어릴 적부터 경험했으니 괴팍해지는 게 당연했다.
‘나한테는 사형이 있었지만, 이 아이에겐 아무도 없었겠지.’
올해로 열다섯임에도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체형.
백무량은 유성한을 불쌍하게 보려던 시선을 애써 고쳤다.
“고기는 먹어 본 적 있느냐?”
“전에는 많이 먹었죠. 배가 터지게요.”
“아, 그래.”
처음 만난 현종휘에게는 제법 잘 먹힌 질문이었거늘.
백무량이 다른 화젯거리를 떠올리는 사이에 유성한이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제 잘못이겠죠?”
“뭐가?”
“제가 처음부터 재능이 있었다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고…… 그랬겠죠.”
“네가 왜 재능이 없어?”
백무량으로선 기가 찰 말이었다.
해안가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 유성한이 보인 움직임은 제 나이대보다 경쾌하고 묵직했다.
하물며 천예검을 쥐고 펼쳤던 초식은 어떠한가?
육체를 타고나지 않은 이상 귀신이 도와도 펼칠 수 없을 살초였다.
유성한의 재능은 아무리 낮게 잡아도 현종휘와 비슷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백무량의 눈치를 살핀 유성한이 애꿎은 땅바닥을 흘겼다.
“하지만 저를 가르친 사람들은…….”
“네가 처음부터 천무검성이길 바란 놈들이겠지.”
백무량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괜히 진지한 표정을 짓고 무게를 잡아 봐야 유성한에게는 진심으로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많은 어른에게 데었을 테니까.
그 예상이 맞았는지, 유성한이 희미하게나마 웃음을 보였다.
“아저씨의 말이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저씨 아니라니까. 거짓말도 아니고.”
백무량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일단은 마음부터 다스리는 법을 가르쳐 주마.”
“불경요? 그거라면 충분히…….”
“충분히 배웠겠지. 그러니까 다른 도경으로 해 보자는 거야.”
백무량은 유성한의 다리를 툭 두드렸다.
그러자 익숙하다는 듯이 유성한이 가부좌를 틀었다.
“자, 이제 내가 말하는 대로 숨을 잘 따라와라.”
“내공심법인가요?”
유성한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가득해졌다.
비구니가 무공을 아예 가르쳐 주지 않았다더니, 그 말이 정녕 사실인 듯했다.
백무량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후…… 그러면 뭔데요?”
“대놓고 실망하면 가르쳐 주기가 싫어지는데.”
“내공심법이 아니면 괜히 아픈 가부좌를 틀 이유가 없잖아요.”
유성한이 자기 다리를 가리키며 투덜거렸다.
확실히, 워낙에 살이 없는지라 뼈가 뼈를 짓누르는 모양새였다.
백무량은 힘내라는 듯 유성한의 등을 툭 쳤다.
“참아, 진득하게 익히면 내공을 쌓을 수 있는 호흡법이니까.”
“……정말이에요?”
“그래.”
언제 투덜거렸다는 듯이 정신을 집중하는 유성한.
백무량은 그걸 보고는 유성한의 등에 두 손을 대었다.
“지금 가르칠 호흡법은 태청심결이라는 거야.”
“태청심결이요?”
“내가 익히고 있는 내공심법에서 호흡법만 뗀 거지.”
곤륜파의 호흡은 무한을 다스린다고 한다.
하지만 무한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정돈하지 못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자멸(自滅) 혹은 자진밖에 되지 않는다.
그걸 막기 위해서 태청신공 이전에 배우는 것이 바로 태청심결.
백무량은 유성한의 귀기와 살기를 없애는 데 가장 주효한 호흡임을 직감했다.
‘사부님이 보면 사문의 무공을 왜 누출하느냐고 진노하시겠지만, 뭐.’
사형이 남긴 시험이 바로 유성한을 도사로 만드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유성한을 곤륜파로 입문시키면 그만 아닌가?
……이런 생각으로 백무량은 유성한에게 태청심결을 가르칠 작정이었다.
하물며 유성한의 무재 또한 나쁘지 않았다.
‘현종휘한테 붙인다면 대성할 수 있을지도 몰라.’
백무량은 피식 웃었다.
벌써 현종휘와 유성한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자, 이제 준비는 됐겠지?”
“네! 언제든지요!”
“목소리 하나는 좋구나. 그래, 이제 시작하자.”
백무량의 두 눈이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