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검해-132화 (132/275)

시험 (3)

“어디 보자…….”

백무량의 눈망울이 반짝였다.

평소답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어떤 무인이 와도 그처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할 터였다.

자소단.

소환단.

명장(名匠)이 만든 검과 창, 금원보에 이르기까지.

눈을 감았다 뜰 새도 없었다.

무엇보다 조원양이 직접 수기로 작성한 이름표와 설명이 제법 자세했다.

영약의 경우에는 언제 누구에게 받았는지 입수한 내력이 쓰여 있었다.

백무량이 고개를 돌리자, 조원양이 어깨를 으쓱였다.

“영약 같은 경우에는 시시비비에 자주 얽히지 않나. 자세히 적지 않으면 언젠가 화를 입을 거란 생각이었네.”

“대단하십니다.”

“이걸 가지고 무슨.”

말은 그렇게 하지만, 조원양의 얼굴에 밴 미소가 제법 짙다.

백무량은 그와 마주 웃고는 탐색을 이어 갔다.

‘소양검(少陽劍), 천산도(穿山刀), 청린창(靑鱗槍)이라.’

가문의 보물 혹은 한 문파의 상징으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은 귀물들.

백무량은 하나하나 쥐어 보고 휘둘렀다.

도나 창은 제대로 쓸 줄도 몰랐지만, 만지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기운이 있었다.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시장가를 둘러보는 어머니들의 마음이 이러할까?’

백무량은 그렇게 여러 무기를 둘러보았다.

마음이 동하는 무기는 많았지만, 한순간 자신을 압도했던 명검은 오직 하나였다.

천무검성의 검.

백무량의 시선이 허리로 향했다.

티를 내지 않는다고 노력했지만, 자기도 모르게 백선신검 옆에 묶어 두고 있었다.

그걸 보니 궁금증이 일었다.

“이 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애석하게도, 나도 모르네.”

“……?”

“칠십여 년 전, 천무검성 유성백의 행방이 묘연해진 이후로 직계 가문이 큰 피해를 봤거든.”

하필이면 그 시기에 큰 피해를 보다니.

백무량의 마음이 저절로 시렸다.

천무검성 또한 자신의 사부인 주자령과 같은 결말을 맞이한 셈이었다.

“누가 공격한 겁니까?”

“자네는 모르겠지만, 천무검성에게는 적이 많았네.”

‘……아!’

백무량은 탄성을 안으로 삼켰다.

남 일은 잘 안 듣긴 했지만, 천무검성에 관한 이야기는 당시에 회자가 많이 되었다.

구파일방의 속가제자가 저지른 악행을 홀로 벌했다든가.

터무니없이 비싼 요금을 요구하는 객잔에 분뇨를 뿌렸다든가.

행동에 주저함이 없는 고수였다.

강호십대고수가 아니었다면 진즉 변사체가 되었을 거라며 낄낄 웃거나, 존경하는 이 또한 적지 않았다.

백무량이 어색하게 웃자, 조원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아는 거라도 있나?”

“아닙니다, 하던 얘기 계속하시지요.”

“그래. 그래서…… 우리 상단에서 검을 회수할 땐 이미 유씨 일가가 흩어진 지 오래였고, 돌려줄 수단도 없었네. 언젠가 적장자가 오면 돌려줄 생각이었지.”

그것이 어언 사십 년이 되었다며.

조원양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쯤 되면 자네가 가져도 된다고 생각하여 보여 준 것일세.”

“하면 이름은 제가 지어도 되겠군요.”

“마음대로 하게.”

“음, 흐음, 뭐로 할까?”

백무량은 콧노래를 부르며 검을 매만졌다.

검이 자기 나름대로 예기를 흩뿌리긴 했지만, 청운 앞에서는 무용했다. 결국 순응하게 될 터였다.

“천예검(千銳劍). 천예검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군. 하지만 도사가 쓰기엔 조금 그렇지 않나?”

“저는 이미 좋은 검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백무량이 백선신검의 칼집을 툭 쳤다.

그걸 본 조원양이 팔짱을 끼고는 히죽 웃었다.

“자네의 검이 곤륜파의 보물이라는 건 알겠으나, 천예검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무인을 도발하는 방법을 아주 잘 아시는군요.”

백무량은 두 검을 동시에 뽑았다.

가벼운 도발이었으나 거리낄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백선신검과 천예검, 어느 쪽이 더욱 강건할 것인가.

조원양의 시선이 백선신검으로 향했다.

“자네, 그 검……. 오래된 고검(古劍)이 아닌가?”

“그렇지요.”

“한데 이상하군.”

조원양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백선신검을 매만졌다.

“허어, 이게 이럴 수가 있나…….”

“저도 종종 그렇게 생각하곤 하지요.”

백무량은 턱을 들고는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처음에는 녹이 잔뜩 슬어 있었지만, 운룡으로 복원시킨 백선신검.

그때로부터 칠 년.

“천예검이 대단하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선기를 머금은 검을 이기긴 어려운 법입니다.”

스윽.

백무량이 백선신검을 천예검 아래에 두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천예검이 내뿜는 예기가 한풀 꺾이는 듯했다.

조원양은 저도 모르게 머릿속의 주판을 두들겼다.

“이건…… 정말로 천금으로도 모자라겠군.”

만금상단이 수집한 귀물들은 가보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의천검이나 간장막야처럼 설화로 남진 못한다.

그것들과 비견될 격이라고 함은, 백선신검과 천예검.

그러나 전자는 오랜 시간 동안 백무량에게 가꿔지지 않았던가?

그 결과는 곧바로 증명되었다.

까앙!

천예검으로 백선신검을 후려쳤지만, 흠집 하나 없었다.

오히려 색이 더욱더 맑아져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휘광을 드러냈다.

백무량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예검이 모자라는군요.”

“방치되었으니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흐흐, 그런 거로 하지요.”

“자네도 참, 노인한테 한번을 져 주질 않는구먼.”

조원양은 고개를 가볍게 내저으며 피식 웃었다.

“능력이 없으면 내 체면을 깎았다고 따졌을 텐데 말이야.”

“제가 너무 잘나서 미안합니다.”

“요 맹랑한!”

한 손을 슬쩍 들어 올린 조원양이 껄껄 웃으며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수많은 영단과 영약이 가득했다.

‘보통이라면 서로 가진 기운이 상충했을 터인데…….’

무슨 조처를 해 놓은 건지, 뒤섞이거나 부딪침 없이 적당한 습기를 머금은 채 각각의 함에 담겨 있었다.

백무량은 속으로 조원양의 능력에 감탄하며 다가섰다.

“몇 개나 가지면 되겠습니까?”

“만금상단의 기둥을 뽑아 갈 참이냐?”

“이미 건물이 무너졌으니, 부러진 기둥이나마 챙겨 가겠다는 거지요.”

“어허, 놈!”

조원양이 손가락 하나를 폈다.

“하나만 가져가라. 어차피 화산파와 긴밀한 맹약을 맺지 않았느냐?”

그 말을 들은 백무량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걸 어찌 아십니까?”

“다 아는 방법이 있느니라.”

득의양양한 미소를 품은 조원양의 모습에 백무량이 고개를 홱 돌렸다.

이렇게 된 이상, 가장 좋은 영약을 챙기는 게 나름의 놀림거리였다.

“근데 하나만 고르기가 너무 어렵군요.”

백금을 쥐어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 영약이거늘.

만금상단의 저장고에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축적한 영약이 많았다.

영약 중 으뜸이라는 대환단만 없을 뿐, 구파일방에서 유명한 비전의 영약이 각 함마다 있었다.

백무량이 쭈그려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원양의 미소가 짙어졌다.

“어때, 기가 좀 죽나?”

“이만하면 두 개를 주셔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욕심은!”

서로가 농담인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무엇보다, 백무량은 조원양이 자신에게 품은 호감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나름의 이용이라면 이용이지만, 언젠가 나한테 부탁을 해 올 테니까.’

그때 받은 만큼 도와주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백무량은 고심을 이어 가며 함을 뒤적거렸다.

숙고의 기준은 단 한 가지.

‘내공은 이미 충분해. 그러니까…… 기혈과 대맥, 혹은 세맥을 강건하게 만드는 게 필요해.’

마인과 싸우면서 어렴풋이 느낀 게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무공을 다루는 게 아니라, 기괴망측한 마공으로 정신을 흔들거나 내공의 수발을 어지럽힌다.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삼단전의 조화를 갖추고 기맥을 단련할 필요가 있었다.

‘삼단전의 조화는 태청신공이 있어서 괜찮아. 하지만 맥을 단련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지.’

요컨대, 태청신단과 같은 귀물이 필요하다.

그때 백무량의 눈에 낡은 목함이 들어왔다.

“이건 뭡니까?”

겉에 삐쭉 튀어나와 있던 자소단, 소환단과는 다르게 목함은 안쪽에 처박혀 있었다.

하물며 조원양의 수기도 적혀 있지 않다.

백무량의 물음에 조원양은 괜히 시선을 돌리며 헛기침했다.

“크흠, 흠. 아직 버리지 않았나 보군.”

“이것도 영약 아닙니까?”

“그게…… 사기를 당한 물품이라네.”

“사기라니요?”

호기심을 느낀 백무량이 목함의 뚜껑을 열었다.

황색을 띤 영단.

영단이 품은 청량한 향기가 순식간에 사향노루의 냄새를 덮었다.

‘태청신단이랑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

백무량이 영단을 주의 깊게 바라보자, 조원양이 말을 덧붙였다.

“내가 어리숙한 시기에 담보로 받은 물건일세.”

“향만 맡으면 엄청…… 좋지 않습니까?”

“나도 의원에게 잡초 덩어리라고 듣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네.”

그때만 생각하면 염증이 치솟는다는 듯, 조원양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준 금원보가 얼마나 많은지 아는가? 송가 놈이 그걸로 삼십 년은 놀렸네. 만금상단이 그때 망할 뻔했다고.”

“그렇습니까?”

백무량은 조원양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며 영단을 살폈다.

‘이게 잡초 덩어리로 만들 수 있는 향인가?’

조원양이 직접 알아본 만큼, 거짓은 없을 터였다.

하물며 낡은 목함이니 보관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단 뜻이었다.

그럼에도 백무량은 무언가 끌렸다.

‘삼십 년을 방치했는데 이런 향을 품고 있다면…… 무언가 특별한 기운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백무량의 시선이 손등으로 향했다.

이렇게 고민할 때마다 가끔 운룡의 문양이 해답을 주곤 했다.

‘고요해.’

빛 하나 없이 잠잠한 운룡.

손등에서 시선을 거둔 백무량은 말없이 황색 영단을 노려보았다.

청운으로 건드리고, 태청신공을 운용하기도 했다.

‘반응도 없군.’

자소단이나 태청단처럼 특별한 영약이라면 청운을 밀어 내고, 영단은 흡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영단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저 자기가 담고 있는 향기를 품고 있을 뿐이었다.

‘밀거나 담지 않는다……라.’

백무량은 충동적으로 선택했다.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정말? 후회하지 않겠는가?”

“예.”

백무량의 확답에 조원양이 눈을 끔뻑거렸다.

악동 같던 눈빛이 황색 영단을 보고는 맑게 변해 있었다.

조원양의 입술이 가늘게 열려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유명한 의원이 잡초 덩어리라고 한 영약을 가져가겠다? 정녕 그게 자네의 선택인가?”

“그냥…… 끌렸습니다.”

“끌렸다. 그 마음 하나로, 내가 사기를 당했다고 말한 영약을 가져가겠다고?”

조원양이 실소를 터트렸다.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검지 손마디를 긁고 있었다.

“내 얼굴에 금칠하는 것 같아서 조금 민망하네만, 내가 사기를 당할 만큼 아주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네. 내가 만류할 때 마음을 바꾸게.”

“두말하면 사내답지 않잖습니까.”

백무량은 호탕하게 웃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조원양의 말을 따르는 게 나았다.

이곳에는 소환단이나 태청단처럼 효능이 보장된 영약이 많았다. 영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래도.’

사대사행 이후로 예감이 맞아떨어지는 일이 꽤 잦았다.

단순히 생사결이나 수련의 문제가 아니라, 육감에 가까웠다.

‘이게 가장 마음에 들어.’

백무량은 낡은 목함을 쥐었다.

그걸 본 조원양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집하고는. 그래, 마음대로 하시게.”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기다리게나.”

조원양은 관리인들에게 다가갔다.

“자루에 금원보와 하품(下品)으로 분류된 영약을 담게.”

백무량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금원보도 금원보지만, 영약은 하품이라고 한들 귀중한 약재이자 일반적으로 구할 수 없는 귀물이었다.

그걸 자루에 통째로 주겠다니!

백무량의 눈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조 노야……!”

“나중에 내 욕이 들릴까 싶어서 주는 걸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원양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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