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검해-109화 (109/275)

암자 (5)

현종휘가 펼친 분광뇌운결.

그건 백무량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의 출수였다.

‘나는 검법에 뇌운결을 덧씌우는데, 종휘는 뇌운결을 쏘아 냈구나.’

백무량은 분광뇌운결과 검법을 합치는 것을 중시했다.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균천관일에 뇌운결을 실으면 멀리 있는 나무를 꿰뚫고, 분광검에 실으면 파괴력이 강해졌으니까.

하지만 현종휘는 달랐다. 분광뇌운결으로만 상대방을 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분광뇌운결의 본래 모습이 바로 저것이지 않을까.

백무량은 철유의 자세를 봐주는 걸 멈추고는 현종휘에게 다가갔다.

“환영은 어떻게 했느냐?”

“꿰뚫었어요. 하지만 사라지진 않은 것 같아요.”

현종휘의 눈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당연한 일이다. 분광뇌운결은 심력을 소모하는 무공이니까.

그것을 쏘아 냈다면 백무량이 펼치는 방식보다 더욱더 힘들 터였다.

백무량은 현종휘에게 물었다.

“검법에 뇌운결을 실어서 펼치는 건 생각하지 않았느냐?”

“그런 방법도 있었네요. 하지만 방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왜?”

“저한테 달려드는 칠성교도가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래서 멀리서 처리하고 싶었어요.”

현종휘의 얼굴이 붉어졌다.

백무량에게 자기가 겁이 많다고 시인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백무량은 그것을 우습게 여기지 않았다.

무공이란 해석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무엇보다 현종휘의 분광뇌운결은 원본에 가깝게 느껴졌다.

‘마치 심천의 노인이 펼치는 것처럼 보였어.’

검에 국한하지 않고 펼친 분광뇌운결이라.

현종휘에게 재능이 느껴졌다.

그건 육체의 완성이나 경지와는 상관없이, 순수한 재능 혹은 감각의 영역이었다.

백무량은 속으로 크게 감탄하고는 상황을 기억했다.

현종휘처럼 분광뇌운결을 펼칠 수 있다면 언젠가 위험한 상황을 하나쯤 넘길 수 있을 터였다.

생각을 정리한 백무량이 철유를 바라보았다.

“철유야, 너는 선택지가 늘었구나.”

“예?”

“원래는 검법에 뇌운결을 실어서 펼치는 운용을 가르치려고 했는데, 종휘가 저런 걸 보여 줘서 말이야.”

“음…….”

철유가 속으로 생각했다.

백무량이 저렇게 감탄한 걸 보면, 아무래도 현 사형이 무언가 대단한 변형을 일으킨 것 같았다.

그렇다면 현종휘처럼 펼치는 것이 맞다.

“현 사형처럼 펼치고 싶어요.”

“그래?”

백무량은 속으로 철유에게 감사를 표했다.

본래 철유와 현종휘를 가르치려고 왔지만, 저런 걸 보니 연습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 같았다.

“크흠, 흠.”

헛기침을 한 백무량은 목검을 들었다.

“자, 이제 호흡을 바깥으로 흘리는 것부터 연습하자꾸나.”

“예!”

현종휘가 활기차게 대답한 것에 비해, 철유의 걱정은 제법 깊었다.

“그런데 대사형, 물은 그렇다 쳐도 식사는 어떻게 합니까?”

“그걸 몰라서 묻느냐?”

“……?”

“곤륜산에 널린 것이 산짐승 아니더냐.”

“…….”

분광뇌운결을 연습하고 난 뒤엔 산짐승까지 사냥해야 한단 말인가.

철유가 고개를 내저었지만 현종휘의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예전부터 해 왔으니까 자신 있어. 사제가 못 잡아 오면 나눠 줄게.”

“감사합니다, 사형.”

“안 된다.”

“…….”

철유가 울상을 지었다.

***

이틀 뒤.

야영을 하다 보니 세 도사의 도복이 엄청 더러워졌다.

특히 철유의 행색이 가관이었다.

“개방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겠구나.”

“……대애사형.”

놀리지 말라는 듯 입을 꽉 다무는 철유.

백무량은 껄껄 웃으며 입안에 산수유를 던져 넣었다.

마침 늦가을인지라 열매가 아주 달달했다.

옆에 있는 현종휘가 채신머리없이 군침을 흘릴 정도였다.

“줄까?”

“주세요.”

“그건 싫어.”

“…….”

두 제자를 골린 백무량은 남은 산수유 열매를 한입에 삼켰다.

아작아작 씹는 소리가 정상에서 말없이 흐른다.

그동안 백무량은 분광뇌운결을 가르친 성과를 떠올렸다.

‘철유는 아직 부족하고, 종휘는 너무 과해.’

구파일방이 왜 심상 수련을 자제시키겠는가!

심상에서 빈사의 상처를 입거나 삼켜졌다가는 백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심상 수련을 권하는 건 정신이 어느 정도 완성된 약관부터였다.

하지만 현종휘는 칠성교도를 마주한 충격으로 심상이 억지로 열린 상태.

스스로 극복하지 않고서는 수련을 멈출 수가 없었다.

‘환영을 수없이 터트리면서 분광뇌운결의 성취는 크게 올랐지만, 아직까지 극복하지 못했단 말이지.’

백무량의 시선이 현종휘에게 향했다.

악몽을 안 꾼다 뿐이지 잠을 자꾸만 설쳐서 눈 아래가 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종휘의 성취가 자기 나이대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긴 하나, 정신적으론 아직 유약하니까.

‘내가 저 나이였을 땐 저러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백무량은 금세 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제 내려가자.”

“……!”

현종휘와 철유가 시선을 교환하고는 서둘러 달려갔다.

백무량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문파로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그것을 본 백무량은 피식 웃었다.

“녀석들, 얼마나 힘들었으면.”

불행하게도 백무량의 행선지는 곤륜파가 아니었다.

“여긴 어디야?”

현종휘가 눈을 끔뻑거렸다.

곤륜파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인 데다 길이 없어서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에 비해 철유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암자가 이 근처에 하나 있습니다.”

“암자?”

“예, 대사형께서 며칠 전에 들렀다고 합니다.”

그 말에 현종휘가 뒤따라오는 백무량을 돌아보았다.

천천히 걸어가는 백무량의 표정이 어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설마 비무는 아니겠지?”

“그럴 체력은 대사형 말고 없을 겁니다.”

“하긴…….”

현종휘가 한숨을 내쉬고는 분광뇌운결을 펼쳤다.

파직!

허공에서 뇌기가 퉁겼다. 그러자 칠성교도의 신형이 녹아내렸다.

대체 며칠째 잠을 설치는 건지.

현종휘는 수면이 간절했다. 이대로라면 정신이 돌거나,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할 것 같았다.

“사형, 아래에 나무뿌리가…….”

“알아!”

현종휘의 짜증에 철유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걸 본 백무량이 혀를 가볍게 찼다.

“저러다 일 하나 치겠구만.”

“사형도 조용히 하세요!”

“…….”

백무량이 눈을 끔뻑였다.

분광뇌운결의 수련에 도움이 된 건 좋지만, 이제는 현종휘에게서 심상을 떼어 낼 때였다.

그렇게 일다경 뒤.

백무량은 한 암자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

“모르겠어요.”

“주백천이라는 선배께서 수학하던 곳이다.”

“주백천……?”

현노윤에게 이름을 몇 번 들었던 현종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철유는 아예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어떤 선배셨는지요?”

“학도사였다. 그것도 아주 대단했지. 모든 도교에서 가르침을 원했고, 시서화에도 능하셨다. 천문은 더 대단했지. 칠십여 년 후를 내다봤으니 말이다.”

상식에서 벗어난 소리에 철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거 어디 저잣거리에 나도는 소설 이야기입니까?”

“아니다. 실재한 선배시다.”

백무량은 여기 앉으라는 듯 암자의 마루를 두드렸다.

현종휘와 철유를 앉힌 백무량이 주백천의 일생(一生)을 이야기했다.

많은 걸 알진 못했다. 어느 시점부터 백무량이 강호를 왕래하고 다녔기 때문에 대부분 소문만 주워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백련교의 난, 곤륜파가 멸문당하던 그때.

조금의 물러섬 없이 도경을 챙기던 주백천은 참으로 위대했으니까.

그 이야기는 철유를 격동시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현종휘는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 보여 주셨던 검무가 바로 백련교의 난이었고, 사형과의 인연이었구나.’

이제야 이해가 갔다.

현종휘가 백무량을 바라보았다. 그가 암자를 그리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울음을 참는 것만 같았다.

현종휘는 그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검을 쥐었다.

스윽.

현종휘가 보폭을 넓히자 낙엽이 스르르 밀려 나갔다. 그 소음에 철유와 백무량이 고개를 돌렸다.

“무엇을 하려느냐?”

“…….”

현종휘는 백무량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소리는, 그러니까, 말은 필요 없었다.

백무량이 연무지회에서 검무로 구파일방에게 보여 줬듯.

현종휘 또한 검무로서 답할 생각이었다.

‘이번에 배운 분광뇌운결이면 할 수 있어.’

생각해 보면.

현종휘는 백무량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다.

곤륜파를 위해 운산보와 싸우고, 현노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사실상 기둥마저 무너져 가던 곤륜파를 재건해 준 게 백무량이다.

배고프던 시절에 먹었던 고기가 어찌나 맛있던지.

그 맛은 삼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거무튀튀하던 생(生)은 점차 밝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나도 무언가를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 일념 아래, 현종휘가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콰르르……!

분광뇌운결이 흩뿌리는 뇌전이 떨어지는 낙엽을 꿰뚫고, 좌우로 비산했다.

백무량이 뇌화라면 현종휘는 뇌창(雷槍).

허공에서 나타난 뇌창이 비처럼 흩날린다. 눈을 쉬이 뗄 수 없는 절경이었다.

그것도 겨우 열세 살의 도사가 단신으로 펼치는 검무라.

현종휘의 검무가 이어질수록 뇌창의 숫자가 많아졌다.

낙엽 하나를 꿰뚫고 흩어지던 것이 그 자리에 멈춰 갔다.

“이게, 무슨…….”

철유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경악했다.

하지만 백무량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허공에 멈춘 뇌창이 글자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도울 원(援).

십이 획을 그린 뇌창이 허공에서 부유하고 있었다.

“…….”

검무를 멈춘 현종휘가 말없이 백무량을 바라보았다.

심력이 극한에 이른지라 무언가 말을 하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백무량은 그것으로 이해했다.

백 마디 말, 감정의 표현보다 진한 것이 가슴팍을 때렸다.

“고맙다.”

한마디.

백무량의 대답을 들은 현종휘가 제자리에서 쓰러졌다.

그사이에 현종휘는 목도했다.

심상으로 존재하던 칠성교도가 열두 개의 뇌창과 함께 완전히 사라지는 광경을.

***

“종휘는 푹 쉬게 두게. 정말 힘든 시간이었을 테니까.”

백무량의 말에 현노윤이 물었다.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화산파에 있는 사형의 그림을 회수해야지.”

“……종휘가 일어나면 서운해할 겁니다. 매번 사조님을 따라가고 싶어하니까요.”

“그래서 더 안 되는 거야.”

백무량은 현종휘의 이마를 매만졌다.

심상이 열려 있는 동안 항상 미열이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심상이 닫혔다는 뜻이다.

‘걱정은 덜었어.’

앞으로 더 수련한다면 언젠가 심상을 자기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있으리라.

백무량은 창가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살이 통통하게 찐 전서구가 있었다.

누구에게 보낼지는 이미 정했다.

-후배 곤륜신성이 낙매신검께 가르침을 구하고자 합니다.

일필휘지로 쓴 전서를 전서구의 다리에 묶었다.

백무량이 엉덩이를 툭 치자, 전서구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본래 있었던 둥지인 무림맹 청해지부로 향할 터였다.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백무량이 한마디를 중얼거렸다.

“종휘, 정말 대견하지 않느냐?”

이에 현노윤이 백무량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사흘간의 수련 동안 종휘에게 크게 감동한 것 같았다.

“대견하지요.”

“……그래.”

백무량이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본보기가 되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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