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검해-108화 (108/275)

암자 (4)

백무량의 시선이 현종휘와 철유의 가슴으로 향했다.

“모두 내공의 운용을 멈추고 호흡을 최대한 엉망으로 만들어라.”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현종휘와 철유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항상 백무량을 신뢰하면서 지내 왔지만, 이번 지시는 의아했다.

곤륜파의 호흡이 무엇이던가!

무공을 펼치고 보법을 행함에 있어 늘 유지해야 하는 것.

곤륜파 무학의 근육이라고 할 수 있는 호흡을 엉망으로 만들라니…….

현종휘가 한 손을 소심하게 들었다.

“자는 때도 유지하라고 했던 게 사형이셨잖아요. 그런데 왜 갑자기 엉망으로 만들란 거예요?”

“어허, 다 나에게 뜻이 있다.”

말은 농담처럼 나갔지만, 백무량의 눈이 몹시 진지하다.

현종휘와 철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분광뇌운결의 수련에 필요한 일이라니 따르겠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후욱, 후.

두 제자가 호흡을 엉망으로 쉬기 시작하자, 백무량은 피식 웃었다.

“지금 상태 그대로 정상에 있는 운검묘로 간다.”

“진짜요?”

“아니, 대사형, 그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곤륜파의 정상이라면 몸을 단련한 도사도 오르기 힘겨워하는 곳이었다.

특히 현종휘에게 있어 등정로는 두려운 장소였다.

흘낏.

현종휘가 백무량의 오른발을 곁눈질했다.

삼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정강이를 얻어맞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했다.

‘게다가 호흡을 엉망으로 만들면, 높은 곳에서 숨을 주체하기가 어려운데…….’

학도사인 현노윤도 정상까지 오르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곤륜의 호흡이다.

그것을 빼놓고 최고지대인 운검묘로 향해야 한다니.

현종휘와 철유의 얼굴이 핼쑥하게 질렸다.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결과가 미리 보였다.

‘사형께서 우리 둘을 업고 갈 리가 없으니 기어서라도 가게 만들겠구나!’

백무량의 눈치를 살살 살피던 철유가 손을 번쩍 들었다.

“아직 사제들에게 가르치지 않은 무공이 있습니다!”

“이래서 눈치 빠른 녀석들은 싫다니까.”

백무량은 씨익 웃었다.

“너희가 분광뇌운결을 배우는 동안 사제들은 기초적인 단련을 시킬 것이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아라.”

“하아아…….”

현종휘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백무량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잠시 후.

“허억, 헉!”

삼 년 전에는 양인에 불과했던 철유가 가장 먼저 풀썩 쓰러졌다.

대(大)자로 퍼진 것을 보아 더는 못 가겠다는 반항처럼 보였다.

적어도 백무량에게는 그랬다.

“일어나. 정상까지 가야지.”

“모, 못 갑니다.”

“가게 될 거야.”

백무량은 앞서 걸어가던 현종휘를 불렀다.

“무슨 일이세요, 사형?”

현종휘의 표정이 구겨졌다. 체력이 극한에 달하니 감정보다 몸이 먼저 괴로움을 표했다.

그걸 본 백무량이 대자로 퍼진 철유를 턱짓했다.

“네 사제가 저기 있잖느냐.”

“저보고 데려가란 말씀이세요?”

“잘 아네.”

“…….”

현종휘가 백무량을 흘겨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환영 때문에 힘든 후배를 이렇게까지 괴롭혀야 되겠냐는 원망이 가득했다.

백무량은 속으로 웃음을 머금었다.

‘새롭네.’

누구에게도 화 한번 내지 않았던 현종휘의 원망이라.

어떻게 보면 희귀하다고 볼 수 있지 않나.

그런 속내를 숨긴 채 백무량이 입술을 달싹였다.

“데리고 가지 않으면 여기서 멈추어 서 있겠다.”

그 말에 철유가 몸을 일으켰다.

“으그극, 윽.”

근육이 완전히 굳은 건지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공기가 희박해서 혈류가 제대로 돌지 않은 까닭이다.

몸을 일으킨 건 오로지 철유의 의지가 강해서다.

백무량은 철유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좋아. 그대로 가자꾸나.”

“사, 사형.”

“음?”

“사형도 우리랑 똑같이 가십쇼. 솔직히 얄밉습니다.”

철유의 말에 현종휘가 반색하며 손뼉을 쳐 댔다.

그 모습을 본 백무량이 입술을 비틀었다.

오늘따라 제자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한번 그래 볼까?”

깊었던 백무량의 호흡이 얕고 엷어진다. 평범한 사람처럼 필요할 때마다 쉬고, 뱉었다.

그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던 현종휘와 철유에게 실망감이 짙어졌다.

“안 힘드세요?”

“내가 왜.”

백무량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현종휘나 철유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백무량의 육체는 호흡이 부족하다고 힘들어할 단계를 한참이나 지났다.

고수와의 싸움이면 모를까.

정상까지 향하는 산행에서 지칠 체력이 아니다.

웃음을 터트린 백무량이 두 제자를 독려했다.

“자, 네 말대로 따랐잖느냐. 어서 가야지.”

“하아…….”

“억울합니다.”

현종휘와 철유가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곤륜파의 호흡이 없으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백무량은 그 경험이 분광뇌운결을 쉽게 배울 수 있게 만들어 줄 거라 생각했다.

‘분광검과 분광뇌운결은 완전히 다른 무공이니까 말이지.’

백무량은 현종휘와 철유의 뒤를 따르며 뒷짐을 졌다.

***

정상에 도착한 백무량은 현종휘와 철유에게 물통을 보였다.

“너무 빨리 마시지 마라. 속이 뒤집어질 테니까.”

“그냥 주세요.”

“…….”

현종휘가 원래 이랬던가?

백무량은 뭔가 찜찜한 마음을 안고서 물통을 건넸다.

그러자 현종휘와 철유가 조금씩 조절해 가며 물을 먹어 치웠다.

‘남은 건 반 병인가.’

탈수가 온 만큼 게걸스럽게 마실 줄 알았건만, 꽤 좋은 시작이다.

처음부터 모든 물을 마셨다면 백무량도 수련을 멈춰야 했을 테니까.

백무량은 현종휘와 철유에게 남은 물의 양을 보여 주었다.

“잘 보았지?”

“반 남았네요.”

“분광뇌운결을 익힐 때까지 이 물만으로 버텨야 한다.”

백무량의 말에 현종휘와 철유가 눈을 끔뻑였다.

정상까지 오는 길도 힘들었는데, 저 말이 더욱더 끔찍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농담이죠?”

“물통의 반이면 반나절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현종휘의 현실 부정과 철유의 간곡한 외침.

백무량은 둘의 말을 듣고는 턱을 매만졌다.

제법 고민하는 척, 그 정도에 불과했다.

정상으로 오면서 고민은 이미 끝난 지 오래고, 실행만이 남아 있었으니까.

“그래, 그래. 일단은 둘 다 목검을 들거라.”

“이제부턴 호흡을 쉬어도 되나요?”

현종휘의 말에 백무량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일단 설명부터 듣거라.”

“예.”

백무량은 목검을 들고는 현종휘와 철유에게 물었다.

“분광검이란 무엇이더냐?”

“곤륜파의 호흡이 있어야만 가능한 검법입니다.”

“하면 곤륜파의 호흡이 왜 필요하더냐?”

“그건…….”

현종휘가 현노윤에게 배운 그대로를 말했다.

분광검은 곤륜파의 호흡에 있는 폭발력을 바탕으로 검형(劍形)을 빠르게 펼치는 무공.

호흡을 잔뜩 머금은 근육과 혈류가 가속하여 일검을 흩뿌리기에 곤륜파만의 분광검형이 존재한다.

백무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장문인에게 어린 시절부터 배워서인지 이론은 완벽했다.

그러나 이번 수련과는 상관없는 이론이다.

백무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이론은 여기서 잊어라. 분광뇌운결은 분광검과는 다르니까.”

“분광검의 원류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다르게 생각하면 분광검이 분광뇌운결의 파편이지 않겠느냐?”

“아!”

현종휘가 이해한 듯하자, 백무량은 철유를 바라보았다.

“분광검의 성취는 어디까지 이뤘느냐?”

“……현 사형과는 다르게 오성 정도입니다.”

“부끄러워하지 마라. 분광검의 성취와 분광뇌운결은 크게 상관이 없으니까. 삼성 정도면 충분해.”

백무량이 목검을 강하게 붙잡았다.

“놓치지 말고 잘 보아라.”

백무량의 고른 호흡이 전신을 파고들고, 혈류를 빠르게 움직이게 했다.

여기까진 분광검의 가르침과 같다.

하지만 백무량의 우수(右手)가 움직였을 때.

……파지직!

검극에서 흐른 뇌기가 좌우로 흐르며 개화했다.

백무량은 이것을 내심 뇌화(雷花)로 이름 지었으나, 제자들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다.

말이란 심상을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크니까.

그렇게 다섯 차례.

분광뇌운결을 펼친 백무량이 현종휘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였느냐?”

“……자유롭게 보였어요. 분광검처럼 검형이 없었어요.”

“정답이다.”

백무량은 분광뇌운결의 요결을 말했다.

“분광검은 곤륜파의 호흡을 통해 정해진 형태, 법식을 따라 움직인다. 그것을 분광검결이 보완해 주기는 하나 한계를 벗어날 순 없다. 장점과 단점이 명확하지.”

현종휘와 철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광검을 익숙하게 수련한 그들은 이미 알고 있는 장단점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백무량이 하려던 말을 이었다.

“그에 반해 뇌운결은 한없이 자유롭다. 분광검이 호흡을 안으로 거두는 형태라면, 뇌운결은 바깥으로 뻗는다. 뇌기를 호흡으로 퍼뜨리는 셈이다.”

그 말을 들은 현종휘가 곧바로 백무량의 진의를 알아차렸다.

“저희가 했던 건 호흡의 흐름을 바꾸는 것이었군요!”

“이해가 빨라서 좋구나.”

대화를 가만히 듣던 철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그래. 철유야, 곤륜파의 호흡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느냐?”

“처음에는 산취(고산병)를 이겨 내기 위해서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법으로, 검법으로 변용되기 시작했고요.”

“호흡이 안으로 뻗더냐, 바깥으로 향하더냐?”

“……아!”

철유가 뒤늦게 깨달았다.

지금까지 배운 곤륜파의 무공은 호흡을 안으로 거둬들이는 게 대부분이었다.

보법 또한 마찬가지. 타 문파보다 더욱 빨리 움직이기 위해선 호흡을 낭비하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곤륜파의 도사는 호흡을 뱉는 과정을 점차 잊는다.

그것을 다시 되살리기 위해서는 극약 처방이 필요했다.

“하지만 정상까지 오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현종휘의 투덜거림에 백무량은 피식 웃었다.

“그러지 마라. 네가 지금 뇌운결을 익히기 제일 좋은 환경이 아니더냐.”

“그게 무슨 소리세요?”

“호광성에서 마주한 칠성교도가 자꾸 보인다고 했지?”

“……네.”

백무량은 믿는다는 듯 현종휘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음껏 펼쳐 봐라.”

“어, 어떻게요?”

“말했잖느냐. 분광뇌운결은 호흡을 통해 뇌기를 자기 마음대로 퍼뜨리는 것이라고.”

백무량의 목소리가 사뭇 진중해졌다.

“표적이 계속해서 달려드니, 뇌운결을 연습하기엔 가장 좋지.”

“……!”

백무량의 말에 현종휘는 애써 무시하고 있던 환영을 노려보았다.

호흡이 가빠질수록,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수록 더욱더 빠르게 움직이는 환영.

칼을 쥔 칠성교도가 현종휘에게 재빠르게 달려들고 있었다.

‘호흡을 바깥으로…….’

현종휘가 숨을 내뱉으며 목검을 쥐었다. 몸으로 향하는 호흡은 최소한으로 했다.

그러지 않고선 목검을 휘두르기조차 힘들었다.

빠드득.

손톱이 목검을 긁었다. 긴장으로 범벅이 된 손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현종휘는 그 상태로 환영이 충분히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과연.”

백무량의 얼굴에서 대견함이 떠올랐다.

삼 년 전, 현종휘에게서 보았던 오성(悟性)은 아직까지 꺼지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파직, 파지직.

현종휘의 목검에 뇌기가 점멸했다. 긴장과 흥분으로 끝이 가늘게 떨리기는 했지만, 목표를 놓치지는 않았다.

다음 순간.

현종휘가 오른손을 휘둘렀다. 백무량의 입술이 가늘게 벌어졌다.

“뇌운결을 저렇게 쓴다고?”

현종휘의 목검에 얽혀 있던 뇌기가 허공을 격하고 날아가, 나무 하나에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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