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검해-100화 (100/275)

교단 (1)

구파일방에 백련교도가 있을지도 모른다.

백무량이 던진 의문이 구파일방의 여덟 고수에게 파고들었다. 그러나 반발하는 이도 있었다.

“허튼소리!”

개방의 장로인 무영개가 좌중을 훑었다.

“후기지수가 꺼낸 말을 쉬이 신뢰할 수 있소? 하물며 백련교도라니! 개방의 이목을 숨기고 어찌 구파일방에 잠입할 수 있단 말이오!”

“…….”

솔직하게 말해서, 믿기가 싫다.

그 생각이 서로를 교차했다. 백무량을 좋게 생각하고 있던 척준환마저도 선뜻 편을 들기가 어려웠다.

그때 무림맹주 남궁진이 무영개에게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능하오.”

“맹주마저도 후기지수의 편을 들 생각이오?”

“개방의 이목을 이미 그들이 속였으니까.”

“……뭣이?”

무영개가 인상을 찌푸렸다. 말을 곱게 하라는 경고가 담긴 행동이었다.

그러나 남궁진은 무영개를 비웃었다.

“생각해 봅시다. 청해성에 있었던 마인과 사천당가, 사대사행에 이르기까지 여기 있는 곤륜신성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번졌을지 모르는 중대사였습니다.”

“하나, 개방이 천하를 모두 굽어볼 순 없는 일이오!”

“그걸 알면서 왜 확신합니까? 당장 나만 해도 잠시 본가로 돌아가 백련교도가 있는지 색출하고 싶어질 정도요.”

“으음.”

무영개가 침음했다.

대부분 야인(野人)에 가까운 개방이야말로 백련교도가 침투하기 좋은 환경인 탓이다.

그때 남궁진이 또렷한 목소리로 연무장을 울렸다.

“나는 백련교도가 구파일방에 숨었단 증거가 보이면 가차 없이 움직일 겁니다. 여기 있는 장로들이라면, 내 말이 단순한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겠지요.”

남궁진이 무영개에서 시선을 돌렸다.

좌중을 쏘아보는 눈동자에서 무림맹의 주인다운 풍모가 느껴졌다.

‘나한테 이상한 서신이나 눈짓을 보냈던 사람이 맞나?’

과연 무림맹주인가.

백무량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해타산적이고 권위를 중시하는 성격이 흠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는 무엇보다 큰 강점이었다.

당장 장로들을 보면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지 않나.

그것을 알아차린 남궁진이 단호하게 자기 생각을 개진했다.

“재가는 이 자리에서 끝난 것으로 알겠습니다.”

“……연무지회가 아니라, 백련교도에 대한 경고가 중심이었나?”

무의진인의 말에 남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자네가 무림맹주가 아니라 남궁세가의 가주였다면 얼마나 강성해졌을꼬.”

그 한마디가 무언가를 건드린 걸까?

남궁진의 표정이 순간 차가워졌다. 서릿발 같은 기운이 연무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단 한 줄기의 살기라.

금방 수습하긴 했지만, 남궁진이 발한 기세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백무량은 남궁진에게 무언가 사연이 있음을 깨달았다.

“실례했습니다.”

“아니네. 자네의 내력을 알고도 그리 말을 한 내가 잘못한 게지.”

남궁진과 무의진인은 서로에게 사과했다.

다만 남궁진의 얼굴에는 언짢음이 가득했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알게 된 게 싫은 건가?’

무인이라면 누구든 사연이 있기 마련이지만, 남궁진이 보인 반응은 무척 극적이다.

백무량은 이번 일을 머릿속에 새겨 뒀다.

그러는 동안 연무지회가 끝을 향한다.

검무에 가장 뚜렷한 반응을 보였던 소림의 공저대사가 백무량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자네가 보인 검무에 이름이 있는가?”

“이름이라…….”

백무량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들에게 자신의 전생을 보여 주어 계도하고 싶었을 뿐. 공명심이라곤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름을 정하여 퍼트릴 수 있다면 환영이다.

백무량이 입술을 달싹였다.

“사교의 난(邪敎之亂).”

“……!”

그 말에 남궁진이나 현노윤과 대화를 나누던 장로들이 백무량을 바라보았다.

사교의 난이 무엇이던가!

백련교를 비롯하여 과거의 마교.

성화교와 천마신교, 칠성교가 강호에 침입했을 때마다 썼던 단어가 아니던가!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린 공저대사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 참, 두려운 검무구려.”

“저도 그렇습니다.”

백무량은 현씨 조손을 바라보았다.

칠십여 년 후의 자신을 받아들인 인연이자 후학.

그들이 아니었다면 끝내 생을 포기했을지 모른다. 아니, 거의 확실했다.

‘이번에도 백련교에게 패한다면 저들을 잃게 되겠지.’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

백무량은 의지를 다지고는 자신이 아는 백련교도의 특징을 구파일방의 장로들에게 설명했다.

“허어.”

“그렇구먼.”

구파일방의 장로들이 후기지수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한다.

무림 사상 처음 있는 광경이었다.

뒤이어 다음 날.

“곤륜파가 구파일방에 복귀한다!”

그 말이 천하를 질주했다.

***

“너무 성급했다.”

송우현은 백무량을 나무랐다.

“네 감정은 이해하나 후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충동적이었지. 검무가 만족스럽지 않았거나 무림맹주가 네 편을 들어 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

백무량이 침묵했다. 송우현은 헛웃음을 머금었다. 자기가 한 행동에 후회가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백련교가 증오스러우냐?”

“곤륜파를 멸문시킨 놈들입니다. 이번에 막지 않으면 한 마교에게 두 번 당하는 셈이지요.”

백무량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면 무엇이 중요하더냐?”

“그들은 백련교를 가벼이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걸 내가 꾸짖지 않았다면 죽어서 곤륜의 선배를 볼 낯이 없습니다. 백련교도가 강호를 공격하는 꼴을 방치하는 셈이니까요.”

이번에는 송우현이 침묵했다. 하지만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백무량을 꾸짖거나 달래기 위한 말은 수십 가지가 있었다.

도사의 고집 혹은 심지.

저 나이에 보일 수 없는 모습이 백무량에게 있었다.

백무량은 송우현에게 자기 뜻을 분명히 밝혔다.

“나는 사문의 명예를 위해서 행동했습니다. 그것에 잘못이 있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됐다. 네가 그렇지.”

송우현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내심 백무량에게 감동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언짢게 생각했겠지.’

구파일방의 고수들에게 공경하는 마음은커녕 계도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이해받거나 이해시키려는 마음조차 없다.

남에게는 괴팍하고 종잡을 수 없는 도사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백무량의 친우나 동문이라면 그보다 든든할 수 있을까?

송우현은 피식 웃고 말았다.

백무량을 나무라려고 했던 자리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 웃음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는군요, 송 노야.”

“어른을 놀리려고 드느냐?”

백무량과 송우현이 껄껄 웃었다. 무거운 분위기가 단숨에 날아갔다.

사실 분위기를 잡을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송우현은 백무량의 어깨를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이제 곤륜파에 많은 사람이 찾아올 것이다. 네가 싫어하는 부류가 대다수겠지.”

구파일방의 휘광을 빌리려는 상인.

곤륜파의 속가제자가 적다는 것을 노리고 입문하는 명문가.

그 외에도 수많은 눈총이 곤륜파를 향할 것이다.

백무량의 성정을 아는 송우현이 손에 힘을 주었다. 백무량의 어깨가 꽉 짓눌리며 근육에 압박이 가해졌다.

“대부분은 장문인께서 처리하시겠지만, 너 또한 장문의 제자이며 곤륜의 대사형이다. 찰나에 흔들리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했다가는 안 될 일이야.”

“알고 있습니다.”

백무량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마음대로 되진 않아서 문제지요.”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머리를 쥐어박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인지라, 대사형 노릇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에 송우현이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그냥 들이박아.”

“……예?”

“이미 강호에 소문이 파다해. 네가 구파일방의 장로들한테도 거친 언사를 해 댔다는 게 말이야. 호사가들은 귀가 쓸데없이 밝거든.”

송우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었다. 아무래도 그가 퍼트린 소문인 것 같았다.

“며칠은 쑥덕거리겠지만, 그것이 해가 지나면 잊힐 것이다. 곤륜파 도사가 괴팍하다는 선입견도 있지 않더냐?”

“선입견이라…….”

백무량은 쓰게 웃었다. 옛날 옛적에, 사부가 구시렁거리던 불만이었다.

하지만 칠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백무량이 손쉽게 써먹을 선입견이었다.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하느냐, 곤륜도라서 그렇다.

그게 좋지 않기는 하나 일이 쉽게 풀린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백무량이 송우현에게 말했다.

“힘을 더 키워야겠습니다.”

“왜?”

“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백무량은 순수한 마음을 토로했다.

“구파일방의 장로를 보니 제가 오를 곳이 아직 한참 남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과거에 비해 높은 성취를 이뤘다. 검해의 가르침으로 상승의 무학을 익혔다.

그 사실은 백무량을 크게 고무시켰으나, 어디까지나 십 대의 나이에 불과했다. 단순한 강함으로 따지자면 낙매신검이나 척준환보다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약관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가 성장할 때까지 백련교가 가만히 있겠는가?

그러진 않을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암살자를 보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송우현이 질렸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열여섯 살이 무공을 사십 년은 넘게 수련한 장로들보다 약하다고 칭얼대는 거냐?”

“……어.”

백무량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나이는 구천검 백무량 때를 포함하여 서른일곱 살인 것이다.

하기야, 송우현이 보기에는 오만하거나 철없는 말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백무량이 무언가 변명하기도 전에 송우현이 가볍게 웃었다.

“뭐, 너 정도면 그런 생각을 품을지도 모르지. 무공이라곤 쥐뿔도 모르는 내가 네 검무를 보고 반할 뻔하지 않았더냐.”

“하하.”

“그 대신 남들 앞에서는 그런 말은 하지 마라. 돌 맞아 죽기 딱 좋은 말이다.”

“명심하지요.”

“그래, 그래.”

장성한 손자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

백무량은 송우현의 눈동자에 담긴 감정을 알아차렸다.

처음에는 자신을 ‘은인을 아는 놈’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지금은 제자로서 진심으로 아끼고 있었다.

그 마음이 감사해서 송우현에게 두 손을 모아 올렸다.

그걸 본 송우현이 현노윤과 현종휘를 가리켰다.

“여기까지만 하자.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으니 말이다.”

“그러지요.”

백무량은 송우현에게 등을 돌리고 현씨 조손에게 향했다.

연무지회는 끝났고, 곤륜파가 과거의 명예를 되찾았다.

그 기쁨을 함께 즐길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현…… 아니, 사형!”

“이야기는 끝났느냐?”

자신을 반겨 주는 목소리에 백무량은 환하게 웃었다.

“일단 맛있는 것부터 먹으면서 이야기하지요!”

“좋아요!”

현종휘가 방긋 웃었다.

***

어두운 공동.

“모두 모였나?”

청노의 말에 괴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여기!”

“너는 매일 보잖느냐.”

청노의 시선이 보다 안쪽, 어둠으로 가득한 곳으로 향했다.

“염화(炎火).”

“…….”

거적때기를 머리에 푹 눌러쓴 괴한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예의라고는 전혀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가 가진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

청노는 괴성과 성화의 면면을 한차례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드디어 다 모였군. 삼 년 만인가?”

“그지.”

“……그렇다.”

모두의 대답을 들은 청노가 선언했다.

“만마교단(萬魔敎團)의 회의를 시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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