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파 (2)
서녕은 고요했다.
평소 물길을 타고 온 상인으로 시끌벅적했던 거리에 개미 새끼 하나 없었고, 갖가지 색깔로 채워져 있던 좌판 위에 먼지만 쌓여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헥, 헥.
피골이 상접한 개가 그 거리에 발을 들였다.
목에 걸린 명판이 개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거렸다. 눈곱이 잔뜩 낀 시선이 무채색으로 가득한 시장을 누볐다.
이상한 일이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이러진 않았을 텐데, 주인은 또 어디로 간 걸까.
그렇게 개가 시장 골목으로 한 걸음을 내디딘 그때였다.
“쉿, 쉬잇.”
가느다란 팔뚝이 개의 목을 조였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상인들이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탈출에 실패한 이래로 처음으로 먹는 육식이었다. 당연히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한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중얼거렸다.
“염병할, 관리란 놈들만 쏙 도망치고.”
“그래도 다행이지 않나. 이거라도 있으니…… 탕이라도 끓여 보세. 기름국이 먹고 싶구먼.”
패거리가 개를 솥에 삶기가 무섭게, 진한 냄새가 골목에 자욱하게 퍼졌다.
뒤이어 주린 배를 붙잡고 있던 불청객들이 몰려들었다.
“나중에 꼭 사례하겠소. 그러니 부디…….”
“미안하네.”
“알잖소, 우리끼리 이럴 때가 아니라는 걸. 힘을 합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러기요?”
“…….”
“같이 버팁시다, 제발.”
개를 잡은 패거리나 새로 나타난 불청객 모두 송우현에 의해 옷까지 발가벗겨진 상인들이었다.
유일한 희망이라고는 은닉한 재산을 챙겨서 떠날 때까지 버티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몸을 보존해야만 했다.
“나눠 주기엔 개가 실하지가 않아서 말이야.”
서로 싸우기까지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서녕은 그렇게 죽어 가고 있었다.
***
“서녕을 언제까지 저리 둘 테냐?”
“…….”
“지엄한 국법이 무림 위에 있음을 모르는 것이냐!”
송우현은 심유한 눈으로 서녕의 관리를 쳐다보았다.
참으로 뻔뻔한 자였다.
‘운산보 아래에선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놈이, 정파한텐 고개가 이렇게나 뻣뻣하다니.’
오른손에 쥔 막대로 관리의 옆구리를 찔러 주고 싶었다.
그 생각이 든 순간, 송우현은 고개를 내저었다.
손해였다. 손아귀에서 가지고 놀 수 있는 자는 두고두고 써먹는 게 수지에 맞았다.
그러니 지금은 자기 주제를 깨우치게 할 때다.
스윽.
송우현이 품에서 서책 하나를 꺼내, 책상 위에 두었다.
“이게 무슨……!”
관리의 눈썹이 뒤틀렸다. 그의 눈동자 아래에 서늘한 공포가 내려앉았다.
장부(帳簿).
송우현은 그 두 글자에 못 박힌 시선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는 물건이오?”
“이걸 양도해 준다면 내 기필코 사례하겠네!”
“나리께선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 게요? 그저 아는 물건이냐고 물었거늘?”
송우현의 말에 관리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면 관인을 겁박하겠다는 게냐!”
여기서 물러나선 안 된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송우현은 그를 보며 빙긋 웃었다.
속이 뻔히 보였다.
과거에 운산보주에게 굴복한 기억이 무인에 대한 반발을 낳았을 것이다. 만일 다음이 있다면, 절대 굴복하지 않으리란 다짐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매종도, 이 사람아.”
송우현은 낮은 목소리로 관리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목줄을 봤으면 알아서 꼬리를 내려야지. 더 크게 짖어야겠나?”
“크윽, 이놈…….”
관리, 매종도의 얼굴에는 기름기가 번들거렸고 옷감은 선녀가 춤을 춰도 될 만큼 매끄러웠다.
그를 바라보던 송우현이 주판을 두드렸다.
그러면서 매종도에게 물었다.
“억울하나?”
“나라고, 좋아서…….”
“청해인 앞에서 그리 말할 수 있겠는가?”
“……아니.”
세차게 흔들리던 매종도의 목소리가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그도 이제는 깨달았으리라. 한번 구렁에 갇힌 이상, 자기 힘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유일한 방법은 곤륜파의 도움이라는 것 또한.
송우현은 그제야 매종도가 대화할 주제를 깨달았음을 알아챘다.
“관리라는 자가 사파의 수탈을 막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들과 결탁하였으니…….”
“대체 무얼 원하는 거요?”
그렇게 대답하는 매종도의 목소리에 수심이 가득했다.
그 말에 송우현은 주판을 두드리던 손길을 멈췄다.
“곤륜천하.”
그날 이후.
송우현의 진두지휘로 매종도를 위시한 관인 모두가 노예처럼 부려졌다.
“목표는 두 가지다.”
첫째는 운산보와 결탁한 상인들이 은닉한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요, 둘째는 그들에게 피해를 본 가구에 몰수한 재산을 나눠 주는 일이었다.
순수한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은 아니었다.
상인의 적은 곧 상인이기 마련이고, 재산을 나눠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의 편이 되리란 계산이 깔려 있었다.
그러면서 서녕이 조금씩 본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송 대인이시다!”
“곤륜파가 정말로 돌아온 거구나.”
서녕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람이 송우현임을 모두가 알았지만, 누구도 그를 책망하지 않았다.
“꼴좋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다.
운산보 곁에서 모든 것을 누려 왔던 쓰레기를 기꺼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송우현은 청해 전역을 곤륜파의 색으로 물들여 갔다.
그때, 한 도사가 서녕에 당도했다.
***
“길 좀 물읍시다.”
“예?”
매종도가 자신의 어깨를 붙잡은 도사를 귀찮다는 듯 흘겨보았다.
도복에 먼지가 지저분하게 묻은 데다, 수염에는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그의 모습이 마치 먼 곳에서 걸어온 표사를 방불케 했다.
“말하시오.”
매종도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하자, 도사는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운산보주와 싸우다 다친 도사가 있다고 하던데,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도사……? 아. 공동의 도사를 말하시오?”
“정확하게는 성이 고씨인 도사입니다.”
“아아, 그자.”
매종도가 한쪽을 성의 없이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면 약 냄새가 나는 곳이 있을 거요.”
“감사합니다.”
도사는 매종도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그 뒷모습을 본 매종도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볼일도 바쁜데 저런 개방도 같은 게…….”
“허.”
도사가 헛웃음을 머금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거기서 뭐 하나! 얼른 비키지 않고?”
“참 나. 누구는 성질이 없나?”
상인끼리 성마른 대화가 오갔지만, 그 안에는 활력이 있었다.
좌판을 깔고, 수레를 끌어서 팔 만한 것들을 운반하고…….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있었다. 가게 안쪽에 있는 단칸방에선 복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모녀가 쌀밥을 짓는 듯했다.
“맛있겠다…….”
해 질 무렵 퍼져 나가는 노을에서 밥 짓는 따스한 냄새가 느껴진다.
‘들었던 소문과 무척 다르구나.’
도사는 거리를 걸으며 주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운산보와 결탁한 상인들이라기엔 너무도 순수했고, 여윈 사람이 많았다. 청해 수로(水路)의 중심인 서녕이 아니라 외지나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지켜본 바를 곱씹다 보니 어느새 약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청해의원(靑海醫院).
매종도가 말한 곳이었다.
끼이익…….
도사가 문을 열어젖히자, 거한 셋이 고개를 홱 돌렸다.
범인이라면 오금이 저릴 만한 광경이었지만, 도사는 그렇지 않았다.
‘위층에 노인 한 명, 안쪽에 젊은이가 하나인가.’
도리어 그들을 아예 무시하고는 기감으로 건물을 훑었다.
그렇게 거한들과 도사가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허억!”
주겸이 숨이 넘어가는 소릴 내며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이고-! 미리 연통을 주시지 그랬습니까?”
“……본 도를 아는가?”
“그, 그야 강서 무림에 몸을 담았으면 당연히 알아야지요!”
도사에게 고개를 슬쩍 돌린 주겸이 거한들에게 빨리 꺼지라고 눈짓했다.
그러자 거한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를 피했다.
끼익, 탁.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주겸이 정중한 예를 표했다.
“개방의 이 결 제자, 주겸이 공동파의 장문인께 인사 올리겠습니다!”
그 말에 위층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송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 모라고 하오.”
“……?”
주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런 미친 늙은이가!’
공동파의 장문인을 상대로 시궁창에 갖다 박은 예의라니?
주겸이 혀를 강하게 차던 그때, 침묵하고 있던 도사가 입을 열었다.
“맹주님께 이야기는 들었소. 현천신검 척준환이라고 하오.”
주겸은 저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눈앞에 있는 자가 공동파의 장문인이자, 강호 십 대 고수 중 일인이라는 사실을.
그러다 문득 척준환의 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맹주님이라니? 설마 무림맹주는 아니겠지?’
에이, 설마.
주겸이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는 찰나에 척준환이 송우현에게 물었다.
“본 파의 제자가 여기 있다고 들었소만, 용태를 확인해도 되겠소?”
“저치가 치료한 사람이니 직접 듣는 편이 좋을 거요.”
송우현의 말에 척준환이 주겸을 곁눈질했다.
그 시선에 주겸은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었다.
“저, 저요?”
“자네가 아니면 누가 있겠는가. 쯧. 황급히 오신 분이니 잘 모시게.”
주겸은 그제야 척준환과 눈을 마주쳤다.
“이, 이쪽입니다.”
주겸은 병실을 향해 앞서 걸어갔다.
겨우 복도를 걷는 것뿐인데 온몸에 닭살이 돋는 듯했다.
그 와중에 척준환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보게.”
“예?”
“그 아이, 많이 다쳤는가?”
“정양이 필요하긴 하지만…… 크게 다치진 않았습니다. 얼마간 쉬고 나면 평소처럼 무공도 펼칠 수 있을 겁니다요, 예.”
주겸은 간신배 같은 웃음을 흘리며 문을 열었다.
그러자 문 사이로 고성진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으음.”
척준환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가 살아 있다니 안심이 들긴 했지만, 그만큼의 분노가 고개를 쳐들었다.
하나 운산보주는 이미 곤륜파의 어린 제자에게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감정을 짓누른 척준환은 고성진에게 다가갔다.
“정신이 드느냐?”
“……오셨습니까?”
고성진이 희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런 모습을 보였으니 다음부턴 나가지도 못하게 하겠군요.”
“적전제자란 놈이 근본도 없는 사파한테 이렇게 당해서야 되겠느냐?”
“걱정은 못 할망정 다그치기부터 하시다니, 참.”
실없게 웃음을 흘린 고성진이 척준환에게 조심스러운 말을 꺼냈다.
“저, 그런데…… 곤륜의 후배랑 내기를 하나 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척준환의 음색에 왠지 모를 불안함이 배었다.
고성진이 워낙 대책 없는 성격인지라, 대체 무슨 내기를 했을지 감당이 되질 않았다.
“현천신장의 전반부 두 초식을 가르쳐 줬…….”
“이런 미친놈이!”
척준환의 노호가 고성진에게 내질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