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곤륜검해-17화 (17/275)

백선신검 (4)

청류강이 초입부터 수심이 깊다는 걸 고려하면,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무인들이 적산을 말리지 않았다.

‘설마 등평도수가 가능하단 말인가? 아니, 그건 절대…….’

그것을 백무량이 의아하게 여기던 순간.

촤악, 촤아아!

물길을 거칠게 가르던 적산이 갑자기 오른발로 수면을 박찼다.

쩌억, 하는 소리와 함께 청류강이 갈라졌다.

내공의 양은 적었지만 특이한 심법을 가진 듯, 성질이 광폭했다. 팍 터진 물줄기가 무인들을 적셨다.

백무량이 펼친 일섬운월이 일선이라면 적산의 발걸음은 포탄이었다.

다만, 그것이 전부였다.

첨벙!

백무량의 나룻배에 닿기는커녕, 삼 장의 거리가 고작이었다. 적산이 강물에 빠지는 것을 본 무인들이 껄껄거렸다.

“지금 웃은 새끼, 모두 대가리 박고 있어!”

적산의 외침에 주변이 고요해졌다. 자기는 웃지 않았다는 것처럼 무인들이 딴청을 부렸다.

우스운 상황이 벌어졌지만, 백무량은 웃지 못했다.

‘지금은 이기지 못해.’

수면을 박찼던 힘이 대도에 담긴다면?

아무리 백무량의 근골이 완성되어 있다고 한들, 아직 아이의 몸이었다. 내공도 아직은 좁쌀만 할 뿐이었다.

저놈의 일 합과 마주했다가는 뼈가 으스러지리라.

백무량은 품 안에 있는 태청신단을 만지작거렸다.

‘이것과 사형이 남겼을 안배를 얻으면…… 이길 수 있을까?’

문득 불안함이 몰려들었지만, 백무량은 곤륜산에 숨어 있을 현씨 조손과 자신을 돕기로 한 송우현을 떠올렸다.

운산보를 몰아내겠다는 말에 기꺼이 생업 수단인 배를 내준 어부들 또한 자신을 걱정하지 않았던가.

그들을 떠올린 백무량이 내공을 끌어 올렸다.

“내가 애새끼면 너는 무엇이더냐?”

“……뭐라고 하였느냐?”

부하들과 낄낄거리던 적산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가에서 시뻘건 기운이 일렁였다. 수면을 박찼을 때처럼 특이한 심법을 운용하고 있는 듯했다.

백무량은 그를 향해 말했다.

“네 부하를 열다섯이나 베는 동안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하물며 네놈의 집구석은 내 검무의 놀이터가 되지 않았더냐?”

“놈!”

적산의 반응이 거셌으나 백무량은 뱃전에 당당히 섰다.

그러고는 천하를 오시하는 듯한 눈빛으로 적산을 노려보았다.

“물에 젖은 꼴을 보아하니,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덩치만 큰 쥐 새끼나 다를 바 없구나!”

“명을 재촉하는구나!”

고함을 내지른 적산이 다시금 수면을 박찼다.

아니나 다를까, 방금 보였던 걸음보다 두세 배는 큰 파도가 일렁였다.

여력을 남겨 뒀던 게 분명했다.

백무량은 그것을 침착하게 바라보았다.

곤륜의 무공을 부림에 있어 불안과 두려움은 불필요한 것이다.

스윽.

백무량이 품에서 젓가락을 꺼내자, 적산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깟 것으로 거만한 척 굴었던 게냐?”

“그깟 것이 아니다.”

백무량은 태청신공을 운용하며 외쳤다.

“곤륜의 무공에 경의를 표해라!”

“……!”

적산의 표정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젓가락 끄트머리에 태청신공의 내공이 일렁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휘돌고 있었다.

회풍(廻風).

곤륜의 삼보 중 하나로, 첩풍이 쌓는 바람이라면 회풍은 휘도는 바람이었다.

금방이라도 상대를 먹어 치울 듯이, 강력하게.

파앙!

백무량이 젓가락을 쏘아 내자, 적산은 황급히 대도를 뽑았다.

쇠가 긁히며 파열음이 일어났다. 내력이 약한 무인은 귀를 쥐어뜯을 듯이 붙잡았다.

하물며 태청신공과 마주한 적산은 어떠하겠는가.

“크윽!”

적산의 입가에서 선홍색 핏물이 배어 나왔다. 수면을 박찬 탓에 내력의 순환이 온전치 못했다.

그를 바라보는 백무량의 시선은 사냥감을 앞에 둔 매와 같았다.

“성급한 판단 때문에 명줄이 끊기겠군.”

“……네놈!”

“여기서 끝이다.”

말은 대범하게 했지만, 사실 백무량의 상태도 간당간당했다.

적산을 막기 위해 내공의 대부분을 쏟아 낸 까닭이었다.

‘그래도 여기서 저놈을 제거할 수 있다면 충분해.’

백무량이 객잔에서 훔친 식칼을 던지려던 그때.

나루터에 있던 한 무인이 밧줄을 내던졌다.

“대장, 이거 잡으십쇼!”

“……!”

백무량은 곧바로 식칼을 내던졌다.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내공이 부족했다.

푸욱!

식칼은 적산의 뼈를 긁는 것에서 멈췄다.

“빠, 빨리 잡으십쇼!”

“크윽……!”

신음을 흘린 적산은 밧줄을 움켜쥐고는 백무량을 노려보았다.

물론, 조금도 위협적이진 않았다.

‘아쉽다.’

백무량은 사형의 안배가 있는 곳으로 노를 저었다.

적산이 적잖은 내상을 입긴 했지만, 여전히 정면으로는 싸우고 싶지 않았다.

가능하면 안배를 수습하고 태청신단을 단전에 녹인 뒤.

그때가 제일 싸우기 적절할 테니, 이대로 상처만 남긴 게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적산이 죽으면 저놈보다 더욱 강한 놈이 나를 쫓아오든, 아니면 저 부하가 단체로 달려들든 했겠지.’

그건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아니다.

백무량은 적산의 등을 향해 외쳤다.

“몇 놈이고 오너라! 강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빠드득.

이를 간 적산이 밧줄을 던졌던 무인에게 물었다.

“운귀는 어디까지 왔는지 파악하였느냐?”

“저, 그게…… 사실은…… 열 명의 운귀 모두 소식이 끊겼습니다.”

“뭐라?”

적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운귀 열이 모두 죽었단 말이냐?”

“아, 아직 그것까진 모릅니다.”

염소수염의 말에 적산이 강하게 쏘아붙였다.

“모르긴 뭘 몰라. 무림에서 소식이 없으면 뒈진 거지!”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유령한테 도와 달라고 제사나 지낼까? 엉?”

적산은 툴툴거리며 선홍색 피를 퉤 뱉었다.

내상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곤륜의 무공이라…….’

현 곤륜파는 현씨 조손밖에 없지 않던가?

방금처럼 강맹한 일격을 쓸 여력도 없거니와, 무림인 십수 명을 도륙을 낼 강단도 없었다.

적산은 자연스럽게 백무량을 바깥에서 온 속가 제자로 판단했다.

‘하필이면 곤륜 놈이란 거지.’

혀를 가볍게 찬 적산이 혹시나 해서 챙긴 환약을 바라보았다.

‘겨우 꼬마 놈을 잡자고 이걸?’

일주일 전이던가.

이상한 눈깔의 사내가 언젠가 도움이 될 거라며 폭혈단(爆血丹)이라는 걸 건넸다.

그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효능이 어떤 건지, 왜 자신에게 주는 건지, 대가가 있는 건지.

요안의 남자는 친절하게 답했었다.

단기간에 강해지며, 여러 무인에게 주었고, 신약을 실험하고 싶은 것이므로 대가는 없다.

‘거짓말은 없었지.’

적산은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죽은 무인을 떠올렸다.

삼류에 불과했던 놈이 일식경 동안 미친 멧돼지처럼 날뛰었다. 그 시간 동안은 자신마저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

만일 그것을 자신이 복용한다면?

‘이기기야 하겠지만, 뒈져서야 쓰나.’

폭혈단을 찌그러트리려던 그때.

멀찍어서 부하 하나가 달려오고 있었다.

“청류강에 왜 아무도 없나 했더니 마을에서 잔치를 하고 있었답니다!”

“배는?”

“얼마 전에 만금상단에 팔았답니다! 전표도 있다는데…… 확인할까요?”

“만금상단을 건드려? 돌았냐?”

적산은 폭혈단을 수습하고는 촌락 쪽으로 뛰어 나갔다.

그 뒷모습을 객잔 안에서 송우현이 지켜보고 있었다.

‘어부 모두를 살렸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할 일은 끝났다.’

창문으로 다가간 송우현은 백무량이 떠나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은인의 연자인 네가 보여 다오. 그렇게 되면, 그때는…… 곤륜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마.’

***

한편, 같은 시각.

백무량은 당황한 표정으로 토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분명히, 분명…… 예전에는 동굴이 있었다.

다른 곳을 착각하거나 잘못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두 눈을 끔뻑거리던 백무량은 옆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세월을 듬뿍 머금은 노송(老松)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신의 사부, 주자령이 몸을 누이곤 하던 나무였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동굴이 있어야 했다.

“하, 이게 뭔…… 말도 안 되는…….”

백무량은 다시 토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당황해서 보지 못했던 점이 드러났다.

‘산사태가 있었나?’

토벽 위쪽을 바라보니 나무가 뿌리를 드러낸 채 기우뚱하게 서 있었다.

그걸 보니 확실해졌다. 원래 있었던 입구가 모종의 이유로 인해 막힌 게 분명했다.

툭툭.

백무량이 토벽을 두드려 보니 묘에 갇혀 있을 때보다도 둔탁했다. 전력으로 후려친다고 한들, 뚫릴 것 같지도 않았고 동굴이 무너질 가능성도 있었다.

‘안배가 분명 저기에 있을 텐데…….’

백무량은 청류강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 적산이 건너올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가장 최악은 밤이 될 때까지 동굴에 진입하지 못할 경우다.’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잠을 이루기는커녕 몸을 숨기기조차 힘들 테니까.

동굴이라고 다르진 않겠지만, 방비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토벽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백무량은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과연 사형이 이런 걸 예상하지 못했겠냐는 의문.

‘곤륜산맥에서 토사가 아래로 쏟아지는 건 흔한 일이지 않던가? 물론 동굴이 막힐 정도는 흔하지 않지만…….’

모든 학문을 마쳤을 때, 다시 처음부터 돌아갔던 학도사가 바로 주백천이다.

그라면 반드시 자기가 남긴 안배가 후인에게 전해지도록 수를 썼을 것이다.

확신을 얻은 백무량은 객잔에서 훔친 식칼 두 개를 꺼냈다.

‘일단은 높은 곳에서 보는 게 낫겠지.’

퍽, 퍽.

백무량은 두 식칼을 이용해 토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요령이 부족해서 미끄러질 뻔했으나, 여러 번 반복하니 그럭저럭 할 만했다.

“읏차.”

토벽 위에 올라선 백무량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상대로 산사태가 있었던 흔적이 완연했다.

‘나이를 오래 먹은 나무가 하나도 없군.’

대략 삼십 년에서 사십 년인가.

나무 하나를 쪼개 보면 확실해지겠지만, 적에게 위치를 노출할지도 모를 짓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다 백무량의 시선이 여섯 장 거리의 바위로 향했다.

“……저건!”

백무량은 서둘러 바위로 다가갔다.

이거라면 확실히, 곤륜파의 제자가 아니라면 알아볼 수 없는 안배였다.

“운함석(雲含石)!”

백무량이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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