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294화 (294/318)

<검신재생 294화>

294. 어디 한번 미쳐 보자.

“주군, 저 토할 거 같은데요.”

“그거 토 아니야. 너 단전에서 내기가 들끓고 있는거야.”

“…….”

능허가 울상을 지었다.

“어떡합니까. 저 이러다 뒈질 거 같은데요.”

“난 널 그렇게 약하게 키운 적이 없다.”

“키우긴 뭘 키웁니까. 내 나이가 몇인데.”

“내 나이는 몇인데?”

“아, 헛소리하지 마시고 좀 도와주십쇼.”

능허가 이를 악물었다. 악인봉행진의 영향력은 가히 가공할 정도다.

이 안에 있는 이상 기의 폭주는 자명한 일.

단전을 다스리는데도 날뛰는 기운이니, 만일 기운을 끌어써서 무공이라도 사용했다간 즉시 폭주하리라.

폭주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답은 뻔하다.

주화입마가 온다. 그리고 뒈진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능허는 격렬한 위기감을 느꼈다.

“능허야, 답은 하나다.”

“역시, 방법이 있는 거죠?”

“주화입마 오기 전에 네 상대부터 처리해.”

“……!”

“난 천광마 하나 상대하는 데 바쁠 것 같거든.”

천무백의 상대는 당연히 천광마. 그렇다면 능허의 상대는…….

“저 살벌한 얼굴이요?”

비광이었다.

“니 얼굴보단 덜 살벌할 것 같은데.”

“염병. 딱 봐도 험악한 놈인데.”

“네가 천광마 때려잡던가. 귀마도 몰아붙인 놈이 뭐가 문제야?”

비광은 능허에게 맡긴 채, 천무백은 오롯이 천광마에게 집중했다.

천무백은 싸움에 나설 때마다 한없이 여유로워 보이지만, 그렇다고 방심하진 않았다.

어느 싸움이나, 천무백은 검을 잡은 순간 진심을 담았다.

살의가 칼끝에 깃든다.

천광마가 다짜고짜 몸을 날렸다. 그야말로 저돌적인 공격이었다.

동시에 돌풍이 한차례 불었다. 볼살이 바람에 푸들푸들 떨렸다.

‘악인봉행진을 이따위로 사용하다니.’

천광마가 내뿜는 강기는 예상보다 수배는 더 강렬하고 지독했다.

악인봉행진으로 거칠 것 없이 증폭된 결과였다.

천무백은 쏟아지는 천광마의 강기를 살짝 피해 내며 중얼거렸다.

“……참 열심히 산다. 열심히.”

열심히 무공수련하고, 나 잡으려고 악인봉행진도 이용하고.

천광마는 적어도 노력할 줄 아는 미치광이였다.

악인봉행진은 분명 잘못 사용하면 자신의 목을 찌르겠지만, 천광마는 악인봉행진 속에서도 강기를 아주 능숙하게 사용했다.

콰콰쾅!

천무백 역시 검강을 휘둘러 막았다. 강과 강이 부딪치면서 대기가 요동친다. 천무백의 미간이 좁혀졌다.

‘조정이 쉽지 않구만.’

남이 감히 범접 못 할 천무백의 능력 중 하나가 바로 내기의 세심한 운용이다.

극도로 미세하면서도 섬세한 운용은 진정한 내가고수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단면이기도 했다.

하나 지금은 영 쉽지 않았다.

악인봉행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수록, 또 사용하는 내기가 격렬할수록, 의지를 벗어나 멋대로 날뛰려는 낌새가 가득했다.

방금 공격도 적당히 막아 내고 반격할 요량이었건만.

예상보다도 더 격렬하게 맞받아치면서 충격파에 천무백이 살짝 물러나야 할 정도였다.

더구나 천광마는 그 틈을 비집고 칼을 쭉 뻗어왔다.

악인봉행진에서 내기의 운용에 속을 썩이는 천무백과 달리 비교적 아주 능숙한 공격이었다.

과연, 앞뒤 볼 것도 없이 내세운 도박수가 아니었다.

“참 철저하게도 준비했네. 아주 매사에 열심히야.”

악인봉행진 속에서 무공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연구하고 준비하다니.

이건 하루아침에 준비된 게 아니다. 그러니까 천무백을 노리고 지금 차려진 식탁이 아니었다.

그런 천무백의 의문이 담긴 눈빛을 읽은 걸까.

천광마가 광소를 터뜨렸다.

“흥. 검존, 그 늙은이를 내 손으로 분질러 죽이려고 고안한 방법이지. 고놈을 상대하기 전에 시험 삼기에는 네놈이 아주 제격이구나.”

“검존에게 많이도 당했나 봐? 이를 갈면서 이런 것까지 준비하고.”

“비단 싸움에 전력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무인의 자세가 아니겠나?”

천무백은 천광마의 검을 퉁겨 내며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속에서 들끓는 내기에 속내는 편치 않았다. 천무백은 내심 마음을 다잡으며 집중했다.

‘이거 평소에 내 무기가 오히려 내 목을 조르는 꼴인데?’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천무백의 무기가 뭐겠는가.

바로 세 개의 단전에서 줄기차게 흘러나오는 각기 다른 세 기운이다.

상단전의 항마기, 중단전의 선기, 하단전의 극음지기.

시간이 흐를수록 악인봉행진의 효능으로 내기가 들끓으며 폭주하려는데, 다스리려면 극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내기운용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문제는 천무백은 평소에도 엄청난 집중력으로 기운을 다스린다는 것.

한 사람의 육체에 세 개의 단전, 세 가지의 기운을 동시에 운용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물론 그만큼 엄청난 파괴력으로 지금껏 천무백만이 가진 강력한 칼이었던 건 부정 못할 사실이었다.

하나 애당초 천무백이 아니라면 다룰 수조차 없는 칼이고, 오히려 제 목숨을 위협하게 할 양날의 검이었으니, 지금 그 단점이 천무백을 위협했다.

까가가가가가가강!

천무백의 몸 상태가 어떤지 눈치챘을까. 천광마의 눈으로 쫓기도 어려운 연격이 연거푸 쏟아졌다.

이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버텨 내며, 오히려 천광마의 빈틈을 노리는 천무백의 모습은 말할 필요도 없이 대단한 일.

“내가 찾아올 줄 알았어?”

“아니, 어떤 미친놈이 날 잡겠다고 먼저 찾아오게는가? 뭐, 여기 있을 줄은 몰랐디만. 내가 싸워 보고 이거 안 되겠다 싶으면 여기로 유인하려고 했지.”

천광마의 검이 시뻘건 강기에 휩싸이더니 수평으로 쭉 그어졌다.

거의 일장이 넘어가는 길이만큼 쭉 늘어나는 검강.

강기의 밀도는 태산이 짓누르듯 무거웠고 절삭력은 강철도 우습게 종잇장처럼 베어 버릴 만큼 예리했다.

천무백이 몸을 흔들며 쭉 빠졌다.

귀곡광애를 사용해 막으려 했으나, 미친 듯이 폭주하며 날뛰는 세 기운을 고려하면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내기의 운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내기를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항마기든, 선기든, 극음지기든. 사용할수록 증폭도는 높아지고 폭주할 위험은 더 커진다.

천무백은 기민하게 판단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

단숨에 공간을 훌쩍 뛰어 피해 내는 천무백. 천광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폭주하는 기의 흐름 속에서 방금 피할 때 기의 흐름은 비교적 차분했다.

‘내기를 전혀 운용하지 않고…… 신체 능력만으로?’

천광마가 연거푸 쏟아낸 검강. 유효피해를 주는 범위는 수장이 넘는 거리에 가까웠으니, 천무백이 몸을 비틀어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피한 것은 탄탄한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불가한 움직임이다.

천광마가 일부러 그런 움직임을 유도했다.

‘막으면 내기 소모가 더 크니까 좋다만, 피하는 것도 나쁘지 않건만!’

예상과 달리 천무백은 아직까지 침착했다. 천광마가 미친 듯이 공격을 쏟아부어도 표정은 조금은 굳었을지언정 난처한 기색조차 없다.

‘과연 저 나이에 저토록 완벽한 내기의 수발이라니! 위험한 놈이로다!’

만일 천무백이 단전 세 개를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천광마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을 것이다.

천무백은 다소 천광마에게 공격의 주도권을 내주면서 기회를 살폈다.

‘놈이 악인봉행진에서 멀쩡한 이유가 뭐지? 무공인가? 아니면 독특한 심법인가?’

증폭이 거듭되면 아무리 엄청난 내가고수라고 해도 그 기운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이기 때문이다.

한데 지금 천광마의 기운은 증폭되면서 운용능력에는 큰 손실이 없으니,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 강해지는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심법도 아니다, 특이한 무공도 아니야.’

천무백은 슬쩍 시야를 넓게 했다.

한편에선 능허와 비광의 싸움이 벌어졌다. 능허도 본능적으로 내공을 최소화해야 함을 깨달았는지…….

“억! 반칙! 야, 그러다 죽겠다! 아씨, 항복!”

내기를 마음껏 쓰고 있는 비광에게 처참하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

‘어휴, 저 병신.’

천무백이 혀를 찼다. 능허와 달리 비광은 천광마처럼 내기를 마음껏 사용하면서 몰아붙이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 천무백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비광이 기를 다루는 운용 방식에서 특이점을 찾았다.

‘천광마 놈에 비해서 증폭도가 낮아?’

천광마는 강기를 쏟아내면 쏟아 낼수록 걷잡을 수 없는 미증유의 힘을 제어했다.

천하의 천무백도 한두 발자국 물러날 정도로.

그에 반해서 비광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공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가급적 조심스러운 운용이었다.

한마디로.

‘증폭되는 걸 천광마처럼 제어할 수는 없단 말이지.’

어느 정도는 제어할 수 있으나, 천광마처럼, 그러니까 숫제 미친놈처럼 통제할 수 없다는 것.

그러니까 능허가 자신보다 비교적 내기를 잘 운용하는 비광에게 당하면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으리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천무백은 오히려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특이한 심법도, 어디서 새로 창안한 무공도 아니다.’

그러니까…….

“너 설마…… 악인봉행진 안에서 수련했냐?”

“호. 눈치는 빠르군.”

이런 미친 새끼가.

천무백은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는 걸 참았다.

그러니까, 새로운 무공도, 심법도 아니라.

“악인봉행진 안에서 수련했다는 거지? 어? 주화입마고 나발이고?”

“실제로 몇 번 빠졌다. 나쁘진 않더라. 사경 헤매는 기분이 꽤 괜찮아.”

그제야 이해가 됐다.

놈의 말이 전부 진실이라면, 주화입마에 빠질 정도로 악인봉행진에서 수련을 해 왔고 익숙해졌단 의미다.

천무백은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미친 짓인지 기함했다.

말이 주화입마지, 그거 한번 잘못 빠지면 그냥 골로 간다.

더구나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런데 이렇게 멀쩡하다고?

천무백은 순간 머릿속에 파고드는 께름칙한 생각에 미간을 좁혔다.

자신이 패천검마로서 마인으로 살던 때.

마도의 마공은 빨리 강해지는 만큼 필연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마인들이 툭하면 주화입마에 빠지는 건. 꽤 흔한 일.

그래서 마도 내부에선, 주화입마를 극복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다.

하나 그것들이 백도에서는 절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뭐겠는가.

흡정공, 또는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극악의 사술.

천광마의 저 광기 어린 눈동자를 보는 순간, 천무백은 저 광증(狂症)이 어디서 오는지 깨달았다.

천무백은 나직이 말했다.

"이래서 난 미친놈이 싫었어."

“자, 이제 그만 목을 내미는 게 어떠냐? 이미 싸움의 형세는 뻔히 보이는데.”

천무백은 순간적으로 기운을 크게 끌어내어 천광마를 밀어냈다.

꽈앙!

“……!”

어마어마한 기운이 몰아쳤다. 천광마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천무백의 주위로 검고 하얀, 도저히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기운이 합쳐지면서 넘실거렸다.

상단전, 중단전, 하단전의 각기 다른 세 기운이 합쳐져 어우러진 일월기(一月氣).

천무백이 모든 단전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 순간, 천광마는 똑똑히 봤다. 넘실거리는 일월기 너머로 비쳐지는 새하얀 웃음.

어울리지 않는 경박한 말이 흘러나왔다.

“썅. 그래, 어디 한번 미쳐 보자. 새끼야.”

천광마의 이마에 식은땀이 한 방울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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