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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생-251화 (251/318)

<검신재생 251화>

251. 진정 무쌍(無雙)하다

“이젠 칼을 들어라.”

“……?”

갑작스러운 천무백의 지시에 모두 행동을 멈췄다.

오늘도 응당 산을 오르려고 준비하던 척마대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검을 들라니요?”

“이제부터 산행 수련은 안 할 거야.”

척마대원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갑작스러운 수련 변경에 불길함을 느낀 것이다. 황보숭이 미심쩍은 얼굴로 나섰다.

“저희 시험 통과 못 했습니다만.”

“그러니까 나도 참 답답하다. 한 명이라도 통과할 때까지 기다리다간 늙어 뒈지겠어. 아주.”

“…….”

황보숭은 저 밑에서부터 울화가 솟구쳤지만, 기적적인 인내력으로 꿋꿋이 참았다.

‘참자. 참아. 황보숭아. 참자. 나댔다간 뺨 더 맞는다. 어금니 날아가면 고기 못 씹는다 이제.’

산에 오르며 늘어난 건 단순히 체력과 근력만은 아니다.

오로지 정상을 향해 꾸준히 오르고, 진법의 맹점을 찾기 위해 감각을 집중하다 보니 정신적인 수양도 충분했다.

집중력, 인내력, 이해력…….

알게 모르게 그들은 성장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다만 본인들이 모를 뿐이지.

간신히 인내력을 발휘하는 척마대를 보며 천무백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검을 잡는 법을 알려 주마.”

“……허.”

검을 잡는 법.

그거야 처음 무공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는 것이 아닌가.

여기 모두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혀있다.

세상에. 열 살배기 어린아이도 아니고, 검을 잡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작 코웃음 치면서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리라. 하나 헛웃음을 흘렸던 몇몇 이들도 순간 쏘아지는 교문척의 살벌한 눈빛에 입을 꾹 다물었다.

‘다들 닥치고 있어! 그냥 들어! 그냥 납득하라고! 그냥 이해해! 괜히 나댔다가 귀싸대기 같은 거 추가하지 말고!’

절절한 심정이 전해졌는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교문척은 자신이 대들었다가, 매일 같이 귀싸대기를 맞고 기절하는 일상을 보내며 늘 후회했다.

‘귀싸대기만 해도 죽을 거 같은데, 또 뭐가 추가되면 어찌할 건데?’

천무백의 눈빛을 본 교문척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침묵하자 무언가 아쉬워하는 눈빛이었으니까.

‘역시. 일부러 저렇게 도발한 거였어.’

그렇게 교문척이 안도하는 순간. 별안간 옆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검을 잡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이 얼마나 오만한 건지 아는가?”

“……!”

힘이 담긴 꼿꼿한 목소리에 교문척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어떤 새끼가……!’

고개를 돌리던 교문척의 얼굴이 흠칫 굳었다.

반발하고 나선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남궁진천이었다.

사실 남궁진천이 나서자 교문척은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산을 타는 게 끝난 것도 남궁진천 덕분일지도 모르니까.

‘그 지긋지긋한 진법을 깨부숴 버렸단 말이지.’

나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진법을 깨고, 또 파훼했다.

다음 날이면 더 변화무쌍해진 진법이 기다렸지만, 남궁진천은 또 하루 만에 깨 버리곤 했다.

산행수련이 진행될 수가 없었다.

지긋지긋한 산행을 벗어나게 해 준 사람이기도 하니, 교문척은 뭐라 못하고 조용히 지켜봤다.

천무백이 흥미롭다는 듯 팔짱을 꼈다.

“오만하다고?”

“나에게 검을 잡는 법을 알려 준 이는 내 아버지인 검성이시다. 그런 나에게 검을 잡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건, 우리 아버지가 틀렸다는 거겠지. 맞나?”

남궁진천은 당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득 찬 자부심이 피부로 전해졌다.

척마대는 숨을 죽이며 두 명의 대치를 지켜봤다.

남궁진천의 말에 반박하면 검성이 가르쳐 준 게 틀렸다고 말하는 형국이니까.

과연 천무백이 자신의 말을 번복할까? 아무리 천룡검협이라지만, 검성이란 명성 앞에서는…….

“틀렸으니까 나한테 복날 개 맞듯이 맞았지. 얼간아.”

“……!”

주위에 정적이 가라앉았다. 설마 검성의 조언이 잘못됐다고 대놓고 말할 줄이야.

저걸 패기라고 봐야 되는 건지, 척마대는 심정이 복잡했다.

하지만 남궁진천만 할까.

대놓고 면전에서 아버지가 모욕받았단 사실에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푸르르 떨렸다.

“왜? 아닌 거 같아? 네가 검을 제대로 잡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럼 검 뽑아서 잡아 봐. 증명해 봐. 네가 틀리지 않았다고. 검 잡는 법이 틀리지 않았다고.”

명백한 도발임을 자각하고 있을 텐데도, 천무백의 목소리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더 무미건조했다. 어디 한번 해 볼 테면 해 봐라. 그런 심정이 뚝뚝 묻어났다.

그걸 듣고도 참을 남궁진천이 아니다.

스르릉.

서늘한 금속음을 내며 검이 뽑혀 나왔다.

그리고 기수식을 취했다.

“와…….”

척마대 사이에서 나지막이 감탄이 튀어나왔다. 제각기 한가락 하는 후기지수들인 만큼, 남궁진천의 기수식이 얼마나 완벽한지 단숨에 알아차렸다.

특히 세 얼간이의 눈빛은 더없이 진지해졌다.

“야. 넌 저 정도 할 수 있냐?”

황보숭은 외공을 단련해서 비교적 검을 쓰는 데 약하다. 반면 교문척은 전형적인 검객이다.

그랬기 때문에 교문척의 얼굴은 완전히 굳었다.

“아니. 저건 수준이 달라.”

검을 잡는 것부터 실력자인지, 허세인지 구별할 수 있는 법.

“정석이다. 저것은.”

그야말로 남궁진천의 자세는 교본 그대로, 정석이었다.

정석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본인의 습관이나 익힌 무공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기 마련이니까.

한데 남궁진천은 오로지 기본만 크게 갈고 닦은 듯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했다.

“과연 검성의 가르침이라 이건가.”

“아니. 가르침이 아무리 좋아도, 본인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저렇게 안 나와. 저건 저 친구가 미친 듯이 노력한 거야.”

교문척은 궁금했다. 저 기수식을 본 천무백의 반응이 어떨지.

하나 천무백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안타까워하는 듯한 시선이 언뜻 보였다.

“정석(定石)이군.”

“정석이야말로 무의 정점이라 믿으니까.”

“남궁조…… 아니, 아버님의 가르침인가?”

“그렇다.”

천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완벽함을 추구하는 정석, 그 자체.

그가 봤던 남궁조의 모습과 똑같았다.

‘자신을 태산이라고 생각하던 녀석.’

태산에 오르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과 어떤 지름길로도 빠지지 않는 오로지 정확한 길로만 향해야 한다는 믿음.

그것이 언뜻 보였다.

그랬기에 안타까웠다.

‘본인을 태산이라는 한계에 가뒀군.’

일견 이해했다.

남궁조에겐 좌절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검존 유백기의 재능을 보고. 그리고 그 위에 창천검신의 하늘을 보고.

비단 그뿐이랴.

정마대전이 짧게 끝나지 않고 길게 이어진 이유도, 마교에 만만치 않은 절대자들이 아직 존재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마교의 장로들은 괴물이었다.

그들의 정점 천마는 마도의 하늘이었다.

천마는 천무백에게 매번 패했지만, 유일하게 천무백의 맞수로 싸웠던 인물이기도 했으니까.

본인의 재능을 믿었던 남궁조에게 그때의 광경이 어떻게 보였을까?

‘합리화를 했지.’

자신은 태산이라고.

부단히 노력해서 산 위에 오르겠다고. 하지만 구름과 하늘은 노력해도 오를 수가 없다고.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재능이라고.

그런 남궁조를 타박하지 않았다. 완전히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정진해서 스스로 태산이 된 노력은 천무백도 인정했다.

하나 남궁진천은 어리다.

벌써 자신을 태산이라고 규정지을 필요는 없다.

천무백은 그랬기에 진심을 담아 말했다.

“틀렸다. 네가 검을 잡은 방법이.”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군. 납득하지 못하다면, 나는 죽더라도 검을 휘두를 것이다.”

그 무시무시한 패기와 살벌함에 척마대는 일제히 감탄했다.

남궁진천도 천무백에게 귀싸대기를 맞고, 여러 번 크게 당했지만, 기개만큼은 아직도 꼿꼿했다.

스릉.

천무백이 검을 뽑는 순간, 남궁진천의 눈빛이 흔들렸다.

처음이다.

척마대를 앞두고 천무백이 검을 뽑은 것이.

지금까지 모두 천무백의 적수공권에 나가떨어졌으니까.

남궁진천은 서서히 숨이 조여 오는 걸 느꼈다.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자세.

대충 아무렇게 잡은 듯한 손과 훤히 열린 가슴.

아무리 봐도 기수식이라고 볼 수 없다. 남궁진천이 정석이라면, 천무백은 아무것도 아니다.

당장 열 살배기 막냇동생에게 검을 들려줘도 저보단 나으리라.

‘그런데 이건 뭐란 말인가. 내공도 아닌, 그냥 검을 들고 서 있을 뿐인데…….’

남궁진천의 눈빛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천무백이 천천히 다가와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남궁진천이 화들짝 놀라 검을 세우며 막았다.

째애앵!

손목에 전해지는 반탄력에 헛숨을 들이켰다. 천무백의 나지막한 말이 꽂혔다.

“검은 부러지기 쉽다.”

째앵! 째앵!

연신 검이 충돌했다.

“종(縱)으로는 강하나, 횡(橫)으로는 약하다. 그러니 검을 막을 땐 횡에 있어 힘을 실어야 한다.”

째앵!

너무도 당연한 말이었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모르고 있던 것이다.

알고 있는 것과 천무백의 검과 부딪치면서 체감되는 건 차원이 달랐다.

필연적으로 종으로 세워서 막아야 할 때가 벌어지는데, 그때마다 남궁진천의 검은 연신 요동쳤다. 당장이라도 깨질 듯이.

남궁진천은 어떻게든 버텨 내고, 또는 힘을 흘려보내기 위해서 철저하게 집중해야 했다.

무언가 치밀하게 생각해서 하지 않았다. 치밀한 생각 따위 할 틈도 없이 검격이 몰아쳤다.

“그러하니 검을 쓰는데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장소에 균등하게 힘을 실어야 한다.”

째앵!

그 순간, 남궁진천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간질거렸다.

검은 부러지기 쉽다. 그래서 되도록 횡으로 막아야 한다.

하나 진짜 고수라면, 일부러 상대에게 종(縱)으로 막을 수밖에 없게끔 유도한다.

억지로 막다가 싸움 중에 검이 깨지는 건 흔한 일이다. 보통 사람들은 그래서 더 강한 검을, 더 좋은 명검을 원한다.

하지만 아니다.

“검 내부, 적재적소에 알맞게 힘을 실어 균형을 맞추는 걸 아는 것.”

“…….”

그랬다.

종으로서 막을 수밖에 없을 때, 검에 전해지는 수많은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선 힘을 실어야 한다. 검 곳곳, 그 미세한 부분까지도.

어느 부분에선 빼서 흘려야 하고, 어디서는 힘을 줘 맞서야 한다.

지금 남궁진천은 그걸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순간 발끝에서 머리까지 짜릿한 고양감이 솟구쳤다. 손목으로 전해지는 반탄력이 점점 약하게 느껴졌다. 천무백이 손속을 봐줘서? 아니다. 더 맹렬하고, 더 강하게 몰아친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막기가 편해진다.

그런 고양감 속으로 천무백의 웃음이 파고들었다.

“그것이 곧 검으로 나아가는 왕도(王道)이자 정석이다. 이것이 검을 잡는 법이다.”

순간 깨달았다.

연신 몰아치는 천무백의 검격을 막고, 흘려보내며 진정으로 느꼈다.

‘진정으로 그는 무쌍(無雙)하다.’

검으로서 겨눌 자가 없다.

곧 천무백이었다.

* * *

남궁진천은 끝내 검을 떨어뜨렸다.

천무백이 말하는 검을 잡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아버지도 말씀하셨다. 검에 힘을 실으라고.

당연한 말이 아닌가?

늘 그래왔다. 검에 힘을 실어야 초식을 전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왜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을까.

‘내공……!’

순간 몸이 벼락 치듯 꿈틀거렸다. 내공이 금제된 상태다. 오로지 힘의 분배에 모든 집중력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평소엔 어마어마한 내공으로, 튕겨 내고, 막아 냈었으니까.

그제야 천무백의 가르침을 이해한 남궁진천은 검을 바닥에 두고 포권을 취했다.

그의 목소리가 잘게 떨려왔다.

“……검을 잡는 방법부터 다시 익히겠다.”

천무백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안 끝났는데 검을 왜 떨어뜨려?”

“……뭐?”

“내가 그만할 때까지 휘두르는 거야.”

“……!”

순간 천무백의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보며 남궁진천은 고양감에 솟구치던 감격이 옅어지는 기분이었다.

“팔다리가 부러지든, 어깨가 박살나든, 손목이 잘리든, 가슴이 베이든. 한번 도전했으면 내가 그만할 때까지 휘둘러야지. 어서 들어. 인마.”

“…….”

며칠 전 귀싸대기의 악몽을 떠올린 남궁진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그의 뒤에 척마대의 분노에 찬 시선들이 꽂혔다.

“그러게 가만히 있으라니까…….”

“또 한 명 나댔다가 다 골로 가게 생겼다.”

“이래서 튀는 놈이 있으면 안 돼.”

“쯧쯧.”

남궁진천은 처절한 마음으로 검을 다시 잡았다.

그리고 진정으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무쌍(無雙)이다. 진짜로.’

칼등으로 수없이 두들겨 맞아 피멍이 잔뜩 든 채 느낀 감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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