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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생-248화 (248/318)

<검신재생 248화>

248. 용은 지랄, 잘해 봐야 이무기지

“이해할 수가 없군.”

“뭐가?”

“어떻게 계속 보이지 않지?”

“…….”

교문척은 황보숭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당장 그도 지금 빨갛게 부어오른 뺨에 얼음덩이를 올려놓고 있었으니까.

뭐가 보여야 막거나 피하지 않겠나.

그 절절한 한탄에 공감한 교문척은 저도 모르게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비단 둘뿐만이 아니다.

“……죽고 싶다.”

옆에서 들려오는 음울한 목소리의 당수군은 양쪽 뺨이 다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황보숭이 흠칫 놀라며 교문척을 콕콕 찔렀다.

“쟨 왜 저래?”

“못 봤어?”

“나 처맞고 기절했잖아.”

“아.”

가장 먼저 도전했다가 처맞고 기절한 게 황보숭이었지.

교문척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당수군을 보며 말했다.

“시험하기 전에 천무백에게 독공을 썼다더라.”

“독공?”

“한 방 먹여 주겠다고 썼는데……”

말끝을 흐렸지만 황보숭은 듣지 않아도 그 내막을 알 것 같았다.

“그 미친놈에게 독이 통할까.”

천하의 천무백에게 독이 통할 리가.

당수군의 시도는 당연히 무위로 돌아갔고, 처절한 보복을 당했다.

“두 대 맞았어.”

“미친!”

황보숭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귀싸대기를 두 대나 맞았다고?

“그런데 살아 있네?”

“……그걸 말이라고.”

당수군이 노려 봤지만, 황보숭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흘려보냈다.

어디 황보숭이 당수군에게 위축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황보숭이 당수군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도 잘했다. 당 가 놈아. 나도 천무백 그 자식한테 어떻게든 한 방 먹여 주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한데.”

“그러다가 근육과 뼈가 분리된다. 조심해라.”

“두고 봐. 언젠가 제대로 한 방 먹인다.”

황보숭이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무백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주위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척마대 전부가 이를 갈았다.

누군가 지켜봤다면 한편의 희극이라고 했으리라.

모두 하나같이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으니까.

근 보름 동안 이어진 수련의 결과물이었다.

서로 나뉘었던 파벌은 언제였냐는 듯이, 척마대는 전원이 똘똘 뭉쳤다.

천무백이 황보숭을 비롯한 세 명에게 세 얼간이라고 부른 이후, 공인된 세 얼간이가 된 그들이다.

왜 하필 묶어도 우리를 하나로 묶냐고 기겁하던 것도 과거의 일.

서로 소 닭 보듯 하던 이들이 이제는 둘도 없는 친우처럼 편하게 대했다.

그만큼 천무백의 수련이 악독하기 짝이 없다는 뜻이다.

다들 천무백에 대한 적개심 하나만으로 뭉쳤으니까.

“그런데 몸이 뭔가 더 가벼워지고, 균형감각이 좋아진 건 있는 것 같은데…….”

“왜 저 진법을 뚫지 못하는 거지?”

“제갈 소저의 진법이 그만큼 대단한 건가.”

그야말로 변화무쌍했다.

모르면 모를까. 진법이 있다는 걸 안 상태라면 내공이 금제 되었다고 해도 뚫는 건 해낼 수 있다.

적어도 셋은 그만한 실력자다.

한데 날이 갈수록 진법은 변화무쌍했다. 마치 맨날 변하는 것처럼.

“설마 제갈 소저가?”

“에이…… 설마.”

“……천무백이랑 친하잖아?”

“음…….”

천무백이랑 친하다는 거북한 사실에 세 얼간이는 침음을 흘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어떻게든 제갈설아의 마음을 훔쳐볼 생각을 궁리하는 셋이지만,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천무백과 제갈설아 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건 척마대 전부가 동의하는 사항이었으니까.

“뭐야. 우리 세 협객님, 아직도 부대주님에 대한 연정을 잃지 않으셨어요?”

그때 별안간 불쑥 들어오는 앳된 목소리에 세 얼간이는 흠칫했다.

척마대에 몇 안 되는 여류무사인 소항이었다.

소항도 빨간 볼을 문지르고 있었다.

“못 오를 나무는 쳐다도 안 봐야죠.”

“못 오를 나무?”

교문척이 황당하다는 듯이 반응하자 소항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미 짝이 있는 원앙을 갈라놓을 수는 없죠.”

“원앙?”

순간 세 얼간이의 시선이 일제히 꽂혔다. 소항은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부대주님 머리에 꽂혀 있는 나비잠 못 보셨어요?”

“그게 뭐.”

“몰라서 물어요? 나비잠이잖아요, 나비잠.”

“그게 뭐?”

“이쁘긴 하던데.”

“고급스러워 보이더군. 꽤 비싸겠어.”

“으휴. 이 얼간이들.”

“얼간이?”

황보숭의 눈이 뒤집혀 일어났지만, 상대 역시 쫄지는 않았다.

원래는 자신의 파벌에 속했던 소항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파벌의 의미가 옅어진 것이다.

황보숭은 그 사실을 지금 절실하게 느꼈다. 소항이 혀를 차며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봤으니까.

큰 눈동자에선 두려워하는 빛은 단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료라는 거겠지.’

황보숭은 한숨을 내쉬며 주저앉았다.

그래도 얼간이란 소리에 화가 나는 건 당연지사. 황보숭이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왜 얼간이라 하는 건데?”

“부대주께서 나비잠을 귀하게 여기시는 거 아시죠?”

“귀하게? 그야 좋고 아끼는 거니까 그런 거 아니야?”

“단순히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눈빛이 있잖아요, 눈빛!”

“눈빛?”

“나비잠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아요. 그래서 물어봤는데, 다름 아닌 대주님께서 선물하신 거래요.”

“천무백이?”

“그 개자식이?”

“……!”

그제야 소항이 말하는 바를 깨달은 세 얼간이는 분기를 드러냈다.

소항은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거기에 나비잠이란 걸 생각해 보라고요.”

“그게 뭐? 나비잠 흔한 거잖아?”

“흔하죠. 하지만 선물의 의미는 다르죠.”

“다르다?”

“아이고. 우리 세 협객께서는 평생 무공만 닦으셨나 봐요. 여인 마음을 어찌도 이리 모를까.”

“…….”

할말이 궁색해진 세 얼간이는 입을 다물었다. 소항이 양 두 손을 맞잡고 마치 꿈에 빠진 것처럼 들뜬 표정을 지었다.

“나비는 늘 꽃에 다가가잖아요.”

“…….”

“부대주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잖아요. 그런 꽃에 나비가 찾아가는 건 당연하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비는 늘 꽃을 찾아가는 법. 이거라고요. 대주님께선 부대주님한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거라고요.”

물론 천무백이 들었으면 꿈보다 해몽이라고 혀를 찼겠지만.

그럴듯했다.

세 얼간이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으니까.

“맙소사…….”

“무공만 익히는 지독한 놈인 줄 알았는데.”

“여자 마음마저…….”

왠지 모를 짙은 패배감에 셋은 크게 낙담했다.

소항이 어깨를 으쓱였다.

“경쟁심은 가질 만한 상대에게 가져야 해요.”

“…….”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빠진 황보숭이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세 얼간이가 무서워지지 않은 소항은 그저 해맑게 웃어 보이고는 자리를 피했다.

한데······.

“너 왜 얼굴이 붉어지냐.”

“내가?”

황보숭이 화들짝 놀라 헛기침했다.

“아까 귀싸대기 맞은 거 빨간 거겠지.”

“그건 오른뺨이고. 병신아. 너 왼쪽 뺨도 빨개졌어.”

“무슨······ 날이 덥다.”

“한겨울이다. 병신아.”

“······.”

교문척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놈을 제갈설아를 목표로 둔 연적이라고······.

“그냥 여자 보면 금방 사랑에 빠지는 놈이었구나.”

한심하긴.

교문척은 결연한 얼굴로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난 기필코 제갈 소저를 쟁취하겠다.”

물론 오르지 못할 나무를 계속해서 오르려는 게 더 한심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자각하지 못한 교문척이었다.

“그건 그렇고, 그 자식도 척마대에 끌어들이려나?”

“누구?”

교문척의 중얼거림에 황보숭이 물었다.

“남궁 씨의 용.”

“아!”

황보숭이 나직이 감탄을 터뜨렸다.

남궁 씨의 용.

남궁세가의 후계자이자 남궁검룡이라 불리는 희대의 후기지수.

바로 남궁진천이었다.

교문척이 갑자기 남궁진천의 얘기를 꺼낸 건 간단하다.

“내일이나 내일모레쯤 도착한다며?”

“흐음. 솔직히 말해, 너나 나나 후기지수 중에 최고라고 어깨를 펴긴 하지만…….”

“남궁진천은 다르긴 하지.”

남궁진천은 단순한 후기지수로 평가받지 않는다.

당장 화산의 매화일검 국보나 투귀 곽천후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기재다.

다른 이들이 배경과 여러 입소문으로 명성을 탔지만, 남궁진천은 다르다.

“안휘성의 흑도와 사파들을 깡그리 멸문시키고, 혈귀곡의 비다라도 다 처리했으니. 실제 실력이 명성에 걸맞다고 하잖아?”

그런 남궁진천이 정의맹에 들어온다.

천무백이 척마대를 창설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남궁진천이 직접 움직였단 소문은 파다했다.

그런 남궁진천의 행방을 두고 여러 말이 많았다.

정의맹에 천무백에게 척마대의 권한을 준 것처럼, 아무래도 남궁진천에게 그만한 타격대를 맡기지 않겠느냐는 것이 중론이었다.

실제로 맹 내에 있는 안휘 세력은 단 한 명도 척마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궁진천을 따르겠단 의미다.

“글쎄.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남궁진천은 천무백을 호적수로 여길지도 모를 텐데.”

“호적수?”

“그렇잖아. 천무백이 별안간 나타나기 전까진 다음 세대의 천하제일을 논하면 무조건 남궁진천이었잖아.”

“하긴…….”

지금은 다르다.

누구나 천무백을 꼽는다. 아니, 비단 다음 세대뿐 아니라 어쩌면 이번 세대에 가장 어린 나이에 천하제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떠는 인사들도 있지 않은가.

“뭐…… 알아서 하겠지.”

“하긴. 우리 코가 석잔데.”

“근데. 남궁진천 말이야. 만약에 그 양반이 척마대에 들어오면.”

“걔가 척마대에 들어와? 그럴 리가.”

“아니, 하여튼 만약에 말이야.”

황보숭이 잠깐 고민하다가 이어 말했다.

“천무백의 귀싸대기를 피하거나 막을 수 있을까?”

“…….”

교문척과 당수군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그 대단한 남궁진천이 귀싸대기를 맞는다고?

남궁가의 용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그건 상상이라도 되긴 하는데…… 천무백의 귀싸대기를 피하는 그림은 상상이 안 되는데?”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그들이 품은 의문을 해결할 상황이 금세 찾아왔다.

남궁진천이 정의맹에 오자마자 천무백을 찾은 것이다.

* * *

“남궁 씨의 용이라…….”

천무백은 정의맹이 들썩거리는 걸 보고 중얼거렸다.

다름 아닌 남궁진천의 방문.

젊은 사람들은 남궁진천의 위명에 정의맹이 화들짝 놀라는 거 아니겠냐고 하겠지만.

“용은 지랄, 잘해 봐야 이무기지.”

천무백은 냉소를 지었다.

정의맹의 수뇌부가 멍청이도 아니고, 고작 남궁진천 하나 왔다고 떠들썩하겠는가.

진짜 이유는 남궁세가의 정의맹 입맹이다.

후계자인 남궁진천이 직접 왔으니, 그간 고고하게 홀로 서 있던 남궁세가의 입맹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은 당연한 사실.

그 사실에 정의맹이 들썩이는 것이다.

그런데 남궁진천이 별안간 천무백을 찾아왔다.

구릿빛 피부의 짙은 눈썹, 그리고 불같이 타오르는 부리부리한 눈매는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단번에 보여 줬다.

“그대가 천룡검협인가?”

“말이 짧군.”

“같은 후기지수끼리 말은 편하게 할 수 있지 않겠나.”

“같은 후기지수라…….”

“그대에 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 그리고, 호승심도 생겼고.”

천무백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과연 남궁진천이 무슨 말을 더할지 궁금했으니까.

사실 척마대를 통해 젊은 무인들을 규합하고 있지만, 아직 규합하지 못한 일부가 있다.

‘안휘성 놈들.’

세 얼간이가 이끄는 세 파벌은 이제 거의 완벽하게 융화됐지만, 흔히 안휘세력이라 불리는 무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 남궁진천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정의맹을 제대로 세워서 마도에 대항해보겠다고 애쓰는 천무백에게는 당연히 아니꼽게 여겨졌다.

그래서 남궁진천을 기다렸다.

지금 천무백은 남궁진천이 어떤 식으로 나오는 것에 따라 어떻게 대할지 머리를 굴렸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보고 아버지와 장로님들, 수많은 사람이 날 남궁 씨의 용이라 불렀지.”

안다. 남궁검룡이란 별호.

“그러나 작금의 강호에서 용이라고 하면, 내가 아닌 당신을 떠올리더군.”

천룡검협이 작금의 강호에서 용이란 이름으로 가장 유명해졌다.

남궁진천은 그래서 결심했다.

천무백이 정의맹에서 마도와 싸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순수하게 천무백의 실력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남궁세가 홀로 마도와 대적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직접 찾아왔다.

“세상에 용이 두 명일 수는 없는……”

“뭔 말을 이리저리 길게 늘어지게 하고 있어? 답답하게.”

“……뭐?”

“그래서 한판 붙어 보자는 거 아니야? 용이란 별호 두고?”

“…….”

일순 남궁진천은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간 들어온 천룡검협의 소문을 들으면, 진중하고 마도에 처절하게 대항하는 진정한 협객…… 이었는데?

남궁진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팔짱을 낀 채 귀찮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천무백.

“…….”

웬 건달이 눈앞에 서 있었다.

“뭐 해? 그럼 칼 꺼내. 빨리 끝내자고. 화장실 급하니까.”

빠직.

남궁진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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