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신재생 244화>
244. 일타(一打)강사 천무백
척마대의 창설은 빠르게 이뤄졌다. 정의맹에 투신한 후기지수 중 가장 강한 축에 속하는 이들로만 구성됐다.
정원은 서른둘.
천무백과 제갈설아를 제외하면 처음 생각했던 인원과 일치했다.
시간이 다소 걸릴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구성은 빠르게 끝났다.
이유는 간단했다.
천무백은 자신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세 얼간이를 바라봤다.
교문척, 황보숭, 당수군.
이 셋이 적극적으로 협조해 왔으니까.
어쩐 일인지 자신들 파벌에서 가장 강한 이들을 설득해 입단을 종용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손바닥 뒤집듯 변한 태도였지만, 천무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심 고소를 머금었다.
‘조직을 내부에서 장악해서, 내가 눈치를 보게 만들겠다는 거지?’
산전수전 다 겪은 천무백의 눈에 속이 훤히 다 보였다.
세상을 손바닥 위에 놓는 노회한 너구리, 뱀 같은 작자들을 수도 없이 상대해 본 천무백이다.
그런 천무백에게 저들이 음흉한 속내가 감춰지겠는가.
투명한 유리병을 보듯 훤히 보여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저들은 알까.
‘내가 원하는 대로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고 말이야.’
응? 아주 이뻐 죽겠어.
자기네 딴에는 말을 잘 들을 이들을 척마대에 끌어들였다고 생각하리라.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다.
정의맹의 젊은 무인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눌 수 있다.
천무백을 깊이 흠모하다 못해 숭앙하는 일단의 무리.
이들 무리는 대체적으로 배경이 없다. 한미한 가문이나 보잘것없는 사문 출신이고, 당연히 실력이 떨어진다.
삼분의 이를 차지하는 다수다.
나머지 삼분지 일의 무인들은 다소 성향이 다르다.
천무백의 명성을 크게 부러워하고 높이 평가하는 건 맞다.
다만 이들은 뒷배가 있다.
가문이나 출신 사문이 제법 괜찮고 자신감이 뚜렷하다. 영약과 좋은 무공으로 실력을 키워 왔으니까.
다만 우물 안 개구리고, 경험이 적다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다.
이들은 단순히 천무백을 무작정 신봉하기만 하진 않는다.
실제 강호에 출두해서 혈귀곡과 싸워 본 적이 없으니, 마도의 진정한 무서움을 모른다.
천무백의 엄청난 명성에 오히려 마도를 경시하는 마음까지 품은 것이다.
‘나도 싸운다면, 천룡검협과 같은 명성을 날릴 수 있겠지.’
‘천룡검협의 실력이 대단한 건 인정하지. 하지만 나 역시도 그간 검을 갈고 닦았다!’
‘나라고 까짓것, 그만한 인물이 되지 못할 게 무엇이냐.’
‘가문도, 사문도, 스승이 누군지도 모르는 천룡검협이 저런 명성을 가지게 된 건, 생각해 보면 마도 놈들이 일부를 제외하곤 보잘것없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은연중에 퍼져 있었다.
이들이 각 파벌에서 가장 발언권이 강했고, 세 얼간이와 짝짜꿍이 잘 맞는 무사들이었다.
그리고 천무백이 척마대로 들어오게끔 유도하려고 했던 이들이다.
정의맹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분란과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아들.
천무백은 그들을 받아들였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협조해 줘서 고맙군.”
여기 척마대만 확실하게 장악하면, 정의맹의 후기지수들은 천무백이 완벽하게 장악하게 되는 거니.
고작 서른 명만 확실하게…….
‘조지면 되겠군.’
천무백의 입가에 불현듯 미소가 피어오르자 세 얼간이는 흠칫했다.
교문척이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음, 대주라 부르면 되겠소?”
“아니.”
“······?”
“대주님.”
“허, 알겠소. 대주님이라 부르면······.”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주님이라고 부르지요.”
“할 말 있나?”
“앞으로 척마대가 어떻게 운영될지 궁금하오, 아니 궁금합니다.”
“······.”
천무백은 조용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연무장에 가득 찬 무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천무백에게 향해 있었다. 마치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는 듯 흥미진진한 얼굴이었다.
저들은 일반 평대원이다. 교문척, 황보숭, 당수군도 마찬가지다. 밖에선 파벌의 수장이라지만 여기 안에선 평범한 대원이다.
아무런 직급도 없다.
처음 모인 첫날, 평대원이 대주에게 다짜고짜 조직의 운영에 대해 말하라는 건 사실상 천무백을 무시하는 처사다.
곁에 있던 제갈설아의 미간이 살짝 좁혔지만, 나서진 않았다.
‘천 공자라면, 이런 유치한 도발에 휘말리지 않을 거야.’
그만큼 천무백을 믿었다.
실제로 서른 명의 무인이 내뿜는 기세는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절대다수의 시선과 기세가 한 명에게 집중되면, 수준 차이를 떠나서 당황하기 마련.
하지만 천무백의 입꼬리는 가볍게 올라가 있었다.
‘다행이야. 여유로워 보여.’
역시, 저런 유치한 도발에 흥분할 리가 없지.
“대주님의 높은 명성은 들었습니다. 홀로서 수많은 마인을 척살했으니, 그 능력을 누가 의심하겠습니까?”
“······.”
“엄청난 실력을 지녔으니 충분히 척마대의 대주가 되실 법하지요. 다만 어떤 위인이 무결점이겠습니까. 듣기론 대주님께선 평범한 표국의 자제라 들었습니다.”
“그렇지.”
천무백의 고개가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렸다.
교문척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강호에서의 행적이 대단하시지만, 이게 한 조직을 이끄는 것하고는 궤를 달리하지 않겠습니까?”
홀로 잘 싸우는 거 하고 조직을 이끄는 것은 다른 일이지.
천무백의 입꼬리가 점점 더 말아 올라갔다.
하지만 옆에 있던 제갈설아의 얼굴은 점점 찡그려졌다.
누가 봐도 천무백을 칭찬하는 척 하면서 은근슬쩍 깎아내리는 뜻이 아닌가.
너 잘 싸우는 거 알아. 실력 좋은 거 알아.
근데 조직을 잘 이끌 수 있냐? 가문도 변변찮은, 그냥 표국 출신이잖아?
교문척의 말에 담긴 속뜻은 그랬다.
제갈설아가 단번에 이해하는 내용이니, 천무백이 그 속뜻을 모를까.
“그래서 할 말은?”
천무백은 시종일관 여유로웠다. 입가에는 미소가 그대로였다.
하지만 제갈설아는 묘한 불길함을 느꼈다.
그 느낌이 어디에서 오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눈!’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다 못해 싸늘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아니, 약간의 살기까지도······.
하지만 그걸 느낀 건 제갈설아가 유일했는지, 교문척은 여전히 분위기를 파악 못하고 실실 웃었다.
“그래서 저희가 도와드리겠다 이겁니다. 대주님은 표국 출신이다 보니 강호의 무인들을 이끈 경험이 없겠지요. 기껏해야 표사들이나 몇 번 이끌지 않았겠습니까. 나나 여기 황보숭이나 당수군 역시 모두 어린 시절부터 제법 무인들을 이끌어봤지요. 우리가 이런 경험이 있으니,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천무백이 피식 웃었다.
아하. 조직 관리는 경험 없는 너와는 달리 우리가 경험이 있으니, 아예 우리에게 맡겨라?
대주의 가장 큰 권한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모습에 천무백은 순간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래, 거기까진 천무백은 차라리 귀엽다고 느껴졌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이 얼간이가 하는 짓이, 솔직히 노회한 천무백에겐 엉큼해서 귀엽게 느껴질 정도다.
오히려 천무백이 이들에게 손을 쓸 명문을 쌓아 주는 꼴이 아닌가.
다만.
“어떻습니까. 우리가 협조해 드릴 테니, 같이 잘해 봅시다.”
척.
은근한 목소리로 어깨동무라도 하듯 어깨에 팔을 올렸다.
“…….”
가만히 자신의 어깨에 올라온 손을 내려다본 천무백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교문척이라 했나?”
“맞습니다.”
“경지는 절정에서도 중(中) 정도로군.”
“······예?”
“호신강기를 제법 쓸 수 있겠군.”
“갑자기 무슨?”
“야.”
“······.”
“이 악물고 호신강기 최대한 끌어올려.”
뜬금없는 말에 뭐라 대답하지도 못했다. 아니 입을 열 시간 따위는 없었다. 순간 전신으로 느껴지는 격렬한 위기감에 단전이 저절로 반응하며 내공을 미친 듯이 토해 냈다.
그 순간 천무백의 손이 크게 뒤로 빠졌다가 훅 회전했다.
커다란 손바닥이 교문척의 오른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빠아악!
단언컨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굉음과 함께 교문척의 몸이 끈 떨어진 인형처럼 빙빙 돌면서 훅 날아갔다.
빠직!
한참을 날아가 커다란 나무에 몸이 부딪치고 나서야 멈췄다.
쿠르르르.
나무가 부러지며, 그 옆으로 교문척의 몸이 가만히 무너져 내렸다.
힘없이, 아주 조용하게.
단 한 번도 시선을 떼지 않던 무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
정신을 잃은 교문척을 바라본 천무백이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기지개를 켰다.
“제갈 소저.”
“네, 네?”
“아니, 부대주.”
“넵!”
평소처럼 다정하게 부르는 호칭이 아니다. 부대주라 불렀다.
상관으로서 대하겠다는 뜻이다.
제갈설아는 바짝 긴장했다.
“문 잠그시오.”
“문······ 을 잠그라고요?”
아니, 야외 연무장에 문이 어디 있어······.
“문이 없으면 만드시오. 진법이든 뭐든.”
“······!”
“아무도 못 나가게 철저하게 만드시오.”
“······네.”
“방음 처리까지 확실하게. 시끄러우면 민폐니까.”
우두둑.
천무백이 양손을 깍지 끼며 쭉 뻗었다. 고개도 좌우로 한 번씩 툭툭.
스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협조를 해 주겠다······ 고맙지. 안 고맙지. 협조를 해 주면 일하는 데 편하지. 응. 맞는 말이야.”
천무백이 한 걸음 옮겼다.
그저 걸었다. 체중을 크게 실은 것도, 높이 뛰어올라 뚝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냥 걸었다.
하지만 반치가 넘는 족적(足跡)이 단단한 암석을 파고들며 똑똑히 남았다.
“그래. 혼자 일하긴 힘들어. 아무리 강해도, 뒤를 받쳐주는 애들이 똑똑하고 실력이 나쁘면 힘들더라고. 혼자서 이리저리 뛰어야 하니까.”
마치 하소연 같았지만, 좌중의 얼굴은 점점 딱딱하게 굳었다.
발자국.
그냥 걷고 있는데 반치씩 발자국이 남고 있다.
저게 가능하단 말인가?
모두의 눈빛이 크게 떨렸다.
“그래, 고맙다. 이렇게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하니, 나도 기쁘기 짝이 없네. 대원들이 스스로 나서 도와주겠다고 하니까.”
어조가 묘하게 바뀌자 순간 무사들이 반색했다.
일단 고맙다고 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겠다는 말 아닌가?
교문척이 저리된 거야, 조금 얄밉게 굴다가 성미를 건드린 것이겠지······.
“하지만 도움을 받으려면,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봐야겠지? 다들 명문세가에 좋은 사문 출신이니 머리는 나쁘지 않게 쓸 것이니 굳이 볼 것 없고. 그래. 실력은 내가 좀 봐야겠다. 실력이 좋은지 말이야.”
“······.”
“간단해. 내 귀싸대기를 한 번이라도 피하거나 막으면 돼.”
아······.
저걸 피하고 막기만 하면 실력을 인정받는 거구나.
그렇구나.
교문척이 피하지도 막지도 못했는데, 저 귀싸대기를 우리에게 다 한 방씩 날리겠다는 뜻이구나.
“그래. 딱 일타(一打)만 버텨라. 그 정도면 어디 나가서 맞고 다니지는 않을 거다.”
천무백이 씩 웃었다.
“못 막을 거 같다고? 못 피할 거 같다고? 걱정하지 마.”
아니, 그걸 어떻게 걱정 안 해.
무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교문척에게 향했다.
천무백이 어깨를 으쓱였다.
“죽진 않잖아.”
죽지는 않은데······ 저거 보면 차라리 죽는 게 고통이 없지 않을까.
“딱 일타만 버틸 수 있게끔 내가 만들어 주마. 너희들 모두. 음······ 일타강사라고 불리는 것도 괜찮겠군.”
천무백이 씩 웃으며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