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241화 (241/318)

<검신재생 241화>

241. 저한테 보내 주시죠

척마대 창설이란 화두는 정의맹을 강타했다.

처음엔 단순한 타격대 중 하나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지천명이 되지 않는 무인으로만 꾸리고, 가장 위험한 임무를 맡을 거라는 부연이 뒤따르자 젊은 무인들의 이목이 일제히 집중됐다.

무엇보다 시기가 공교로웠다.

“천룡검협이 총군사와 부딪치자마자 척마대 창설 소식이라니.”

“아무래도 천룡검협이 만들어 낸 것이겠지?”

“그렇지 않겠소?”

“천룡검협도 지금 맹의 지지부진하고 굼뜬 움직임이 마음에 들겠소?”

“하긴. 그렇겠지. 자기는 저 드넓은 강호를 주유하며 마도놈들을 때려 부수고 있는데, 맹의 어른들이란 작자들은 신중을 기한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니.”

“역시, 천룡검협은 진정 강호의 영웅임이 틀림없소!”

맹에 퍼져나가는 분위기에 천무백은 피식 웃었다.

“총군사가 머리를 잘 쓰는군.”

왜 자신에게 뜬금없는 공격을 했는가 싶더니.

이런 식으로 분위기를 형성하려 했던 건가.

무려 총군사이며 제갈세가의 가주다.

단 한 번의 공방이었지만, 사실 공방이랄 것도 없다. 강기를 날렸으니 그냥 흘려보낸 것일 뿐.

명성 높은 사람과 부딪쳤으니, 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겐 엄청난 갈등을 빚어 서로 칼까지 겨눈 사이가 되어 버렸다.

도대체 왜 갈등을 빚는지 사람들은 의문을 품었다. 모든 이목이 쏠리는 상황에서 척마대 창설이란 화두가 흘러나왔다.

단숨에 천무백은 화제의 중심에 섰다.

대중에게 척마대와 천무백은 연관이 있다고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새삼 천무백은 제갈여강의 일 처리에 혀를 내둘렀다.

“왜 소저의 가친께서 날 공격하셨나 했더니, 이러실 작정이셨군.”

“그렇죠? 미안해요. 아버지가 뜬금없이 공격해서.”

“아니, 이미 부친께 사과를 받았으니 소저께서 그러실 필요 없소…… 왜 웃고 계시오?”

“제가 웃고 있다고요?”

“그렇소.”

“원래 웃는 상인가 보죠.”

그럴 리가.

저 멀리서 대화를 듣던 제갈여강은 복장이 뒤집혔다.

“내 앞에서 저렇게 웃어 준 적이 언제였다고…….”

기껏해야 제 어미 앞에서나 방실방실 웃지.

아비 앞에서는 새삼 호랑이가 따로 없는데.

“흠흠.”

제갈여강이 인기척을 내며 다가오자 천무백이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척마대는 어떻게 운용할 생각인가?”

본래 척마대의 세세한 조직 구도는 제갈여강을 비롯한 군사부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인사 관리는 제갈여강의 역할이니까.

하나 제갈여강은 천무백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능력 하나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

천무백을 바라보는 제갈여강의 눈빛이 묘해졌다.

사실 딸과의 관계 때문에 마음이 들지 않았을 뿐, 사람 자체는 인정했다.

단지 무력이 아니라 가진 저력을 인정했다.

정의맹의 총군사인 만큼, 개방의 정보력을 충분히 이용 가능했는데 하오문과 묘한 밀월관계가 있음을 파악했다.

‘어떤 연유인지, 도대체 어떤 연이 닿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하오문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처음엔 그저 거래 관계로만 여겼지만 여러 행적을 보니 아니다.

사실상 천무백의 수중에 하오문이 들어간 꼴임을 여러 방면으로 확신했다.

‘그 누가 있어 천하의 하오문을 수족처럼 다뤘던가?’

강호 역사에 몇이나 있었던가?

천무백의 능력에는 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선 척마대는 최정예로 꾸릴 생각입니다.”

“최정예라. 하긴 그래야겠지.”

“파벌이 나뉜 게 오히려 저에겐 좋은 일이지요.”

“파벌이 나뉜 게 더 좋은 일이다?”

제갈여강이 고개를 갸웃했다.

차라리 젊은 무인들 사이에 불만이 누적된 것에 그쳤다면, 맹에서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

다만 파벌이 갈린 건 큰 문제였다.

당장 혈귀곡의 준동이 시작되고 있는데, 내부에서의 파벌 갈등은 분명 치명적이다.

외부의 적이 나타났을 땐 내부의 단합이 필수적인 터.

“파벌에는 우두머리가 있죠.”

“그야 당연히…… 아!”

순간 제갈여강은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에 탄성을 터뜨렸다.

제어하기 힘든 무인들이 파벌을 형성했다.

젊은 혈기로 날뛰는 무인들의 구심점이 된 이들이 바로 각 파벌의 수장이다.

그만큼 파벌 수장들의 능력이 제법 대단하다는 뜻이 아닌가.

무인들의 특성상, 그것도 항마라는 기치에 모인 의협에 가득 찬 이들.

단순히 상대의 무력이 뛰어나서 파벌의 수장으로 떠받드는 게 아니다.

“파벌이 갈라진다는 건 각 수장의 무력이나, 정치력이 충분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죠.”

“하면 수장들만 확실하게 제어하면 전체를 장악할 수 있겠군.”

“맞습니다.”

“당수군, 교문척, 황보숭 이 모두를 아우르겠다고?”

그게 쉬울 리가 있겠는가.

셋 모두 항마의 기치를 간직한 건 같았지만, 야심이 하나같이 대단했다.

물론 무력으로 억누를 수야 있다.

제갈여강 홀로 나서 셋을 쓰러뜨리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여긴 마교가 아니다.

무림 어디가 강자존이 아니겠느냐지만, 그저 힘만 숭앙하는 곳은 절대로 아니다.

‘마음을 얻어야 한다.’

저 셋의 마음을 쉬이 얻을 수 있겠는가?

제갈여강의 묘한 눈빛이 천무백에게 닿았다.

‘그걸 모를 사람은 아닌데.’

무조건 무력에만 의지하는 그런 얼간이는 절대로 아니다.

괜히 속에 노회한 늙은이가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니다.

분명 자신보다 더 자세히 상황을 파악했을 터.

‘설령 세 명의 마음을 얻는다 해도, 전부는 아니지.’

비단 셋이겠는가.

천무백은 대략 서른 명 안팎의 인원을 말했다.

서른 명이라, 서른 명.

제갈여강은 혀를 내둘렀다.

‘대충 파벌 내에서 확실한 목소리를 갖춘 이들을 모두 추리면 저 정도 숫자다.’

굳이 서른명을 거론한 걸 보면, 확실히 전부 파악한 게 틀림 없다.

짧은 시간에 개개인의 신상까지 파악하고, 가진 능력까지 유추했단 말인가?

엄청난 실행력과 판단력에 제갈여강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천무백이어도, 그게 가능하단 말인가?

천무백이 가볍게 부연했다.

“따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아…….”

하긴. 천무백을 데리러 떠나기 전까진 제갈설아는 군사부에 속해서 자신의 밑에서 일하고 있었으니까.

개개인의 신상을 다 파악해놓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그래도 맹에 속한 무인들의 신상을 다 말해줬다고?’

허허…….

물론 천무백이 적은 아니라지만…….

어쩐지 묘한 기분에 제갈여강의 미간이 미미하게 좁혀졌다.

일단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됐다.

척마대의 창설과 운용은 전적으로 천무백의 의지에 따르기로 천명했으니 제갈여강이 무어라 간섭하기엔 적절하지 않다.

사실 약관이 갓 넘은 청년에게 이만한 권력을 주는 경우는 아예 없다.

그만큼 천무백의 수완을 믿는 것이다.

‘지금까지 천 공자가 벌여 온 일들을 돌이켜 보면, 혀를 내두를 만큼 정교하게 맞물린 일들이 많다.’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린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돌이켜 보면 교묘하게 이뤄진 일들이 한둘이 아니다.

“전권은 자네에게 있네. 그렇다고 홀로 모든 걸 다 할 필요 없네. 문제가 생기면 바로 말하게. 가능한 모든 지원은 해 줄 터이니.”

이왕 밀어주기로 한 일, 제갈여강은 화끈하게 밀어주기로 했다.

전권뿐 아니라 조력이 필요할 땐 본인이 직접 나설 생각까지 가졌다.

그러자 천무백이 마침 필요한 게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부탁?”

“정의맹 내부의 인사 관리는 총군사께서 담당하시지요?”

“그러네.”

천무백은 흘깃 제갈설아를 바라봤다.

순간 제갈여강의 얼굴에 묘한 불길함이 타올랐다.

“따님을 저에게 보내 주시죠.”

“……뭐?”

제갈여강의 손에 강기가 어렸다.

* * *

자칫하면 심각하게 오해할 뻔했지만, 천무백의 부탁은 간단했다.

제갈설아를 척마대에 넣어달라는 것.

천무백의 의도와는 달리 제갈여강이 죽일 듯이 노려봤지만.

마치 도둑놈 보는 시선 같다고 할까.

천무백은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더 당혹스러운 건 제갈설아였다.

“부대주 겸 군사라고요?”

“그렇소.”

“으, 완전히 대놓고 부려 먹겠다는 의미인 것 같은데요?”

틀린 말은 아니다.

부대주에 군사까지 겸임.

물론 서른 명 안팎의 작은 규모의 타격대라지만, 창설 초기다.

당장 뼈대가 잡힌 것도 없으니 모두 새하얀 백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건 전적으로 천무백과 제갈설아 둘이서 해야 하는 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그래서 믿고 일을 맡길 사람이 필요하지.”

“……흐흠. 그게 저라고요?”

“소저밖에 없소.”

단호한 말에 제갈설아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사람이라면 인정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자신이 흠모하는 이에게 인정받는다면 더욱이.

천무백은 피식 웃었다.

어쩐지 제갈설아가 더 이유를 듣고 싶어 하는 기색이었으니, 천무백은 짐짓 엄중한 어조로 말했다.

“소저의 머리라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점을 짚어 줄 수 있으니 군사에 임해야 마땅하오.”

“흐흠. 좋아요. 군사를 맡을게요.”

“그리고 어떤 일이든 믿고 곁에서 한시도 뗄 수 없는 사람이 소저뿐이니, 부대주에 임해야 마땅한 일 아니겠소.”

귀까지 빨개진 제갈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할 수 없죠. 둘 다 맡을게요.”

“고맙소.”

“좋아요. 우선 무인들부터 구성해야겠죠?”

“우선 각 파벌의 수장과 발언권이 강한 녀석들로 구성하겠소.”

“음, 그럼 혹시 입단을 원하는 무인들은요?”

“원한다면야 받아 줘야지. 다만 그 실력은 내가 한번 확인할 것이오. 다만, 교문척, 황보숭, 당수군 이 셋이 거부할지도 모르겠군.”

천무백의 미간이 미미하게 좁혀졌다.

저 셋은 무조건 자신의 아래에 놓아야 한다. 그간 알아본 셋의 수완은 만만치 않았다.

뜨거운 혈기에 가득 찬 젊은 무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분명했다.

우선 가장 강했다.

세 명 모두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후기지수라, 곽천후보단 조금 못하는 정도.

거기에 뒷배도 만만치 않다.

교문척은 오대세가는 아니지만, 그에 필적한다는 교문세가의 후광을 타고났다.

황보숭은 말할 것도 없는 오대세가인 황보세가의 대공자다.

가진 무력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물며 당수군은 어떻겠는가?

‘당문의 직계란 말이지.’

다른 두 명과 달리 당수군은 비교적 파벌의 규모가 작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다.

‘당문의 무인들.’

사천당문.

당문이 위치한 곳은 사천이다. 만일 마교와 전면전이 벌어지면 최전방이 될 확률이 높다. 하니 당문에서 정의맹에서 입지를 확보하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다 보니 당수군을 중심으로 뭉친 파벌은 전부가 당문의 무인들이었다.

오히려 세 개의 파벌 중에 가장 골치 아픈 상대다.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이며, 그 지독한 고립성은 역설적으로 끈끈하다 못해 강력한 결집력을 보여주니까.

여하튼 이렇게 힘도 있고, 권위도 있으며, 따르는 자들도 있다.

‘어쩌면 척마대처럼 자신들도 타격대를 새로 만들겠다고 나설 수도 있겠지.’

그리된다면 척마대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대거리를 놓을 수도 있을 터.

물론 천무백은 셋을 두들겨 패서라도 데리고 올 생각이긴 하다만.

“음, 척마대를 거부하진 않을 거예요.”

이야기를 들은 제갈설아가 미묘한 얼굴로 말했다.

“거부하지 않는다 말이오?”

“공자님을 데리러 맹을 나가기 전에, 그 셋하고도 대화를 많이 해 봤거든요.”

“아하, 그래서 설득할 수 있다?”

“으음. 설득이라기보단…….”

제갈설아가 말끝을 흐렸다.

“제가 부대주로 있으니까요.”

천무백의 표정이 묘해졌다. 무언가 확 다가오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음 날.

거짓말처럼 연무장에 모여든 교문척, 황보숭, 당수군의 얼굴을 본 천무백은 그제야 이해했다.

“……얼간이들도 아니고.”

제갈설아를 쳐다보는 셋의 뜨거운 눈빛에 천무백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들이…….’

마교와의 싸움을 앞두고, 어디에 정신이 팔려 먹었나.

천무백은 묘하게 저 시선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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