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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생-235화 (235/318)

<검신재생 235화>

235. 강호 전체가 오던가

천무백은 여러 습격을 자주 경험해 봤다.

이번 삶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전생까지 범위를 넓힌다면 이 세상에서 천무백보다 더 많은 습격을 받아 본 사람은 없으리라.

덕택에 천무백은 태연했다.

제갈설아가 당황을 금치 못하는 것과는 놀라울 정도로 대비됐다.

제갈설아는 태연자약한 천무백의 얼굴을 보고 이내 마음이 진정됐다.

천무백이 저리 태연한 걸 보니, 습격자들의 수준이 위협적인 건 아니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하나 그건 착각이었다.

“전문 살수로군.”

“전문 살수요?”

“이 정도의 살수들을 동원할 곳이라면, 월야방(月夜幇) 정도 되려나.”

“월야방!”

예상치 못한 이름에 제갈설아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월야방.

강호 인사 중에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돈만 쥐어 준다면야 소림방장의 목도 벨 수 있다는 곳이 바로 월야방이다.

수많은 살수문파 중에서 가장 악명이 자자한 곳이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제갈설아는 이를 악물었다.

“알고 계셨나요?”

“뒤를 따라오는 기척은 느꼈소. 말을 타고 달리는데도, 어딜 가나 시선과 기척이 느껴졌소. 수준이 범상치 않음은 알았지.”

“맙소사······.”

“소저께서 진을 쳐놓으니, 그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 같소.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던 꼴이었으니까.”

제갈설아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운 미간을 좁혔다.

자신이 만든 진 때문에 습격을 받게 된 것인지 아리송했다.

천무백이 웃으며 다독였다.

“소저 덕택에 저들이 모습을 드러냈지. 살수들의 특징 하나가 자신들이 이길 판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 나서 살행을 결심한다는 것이오. 저들이 쫓아온 것도 기회를 엿보고 있던 것인데, 오히려 준비 안 된 상황에서 소저 덕택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더 위험한 상황은 지나간 거 아니겠소.”

천무백의 말대로였다.

뛰어난 전문 살수일수록 기회를 기다리는 데 전력을 다한다.

엄청난 인내심으로 버티고 또 버텨서, 자신들의 살행이 완벽하게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살행을 시도한다.

완전히 이길 수 있는 판을 만들어 놓는 것이 살수들의 특징.

하나 제갈설아의 진 때문에 의도치 않게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미 저들의 수법이 통하지 않는 거나 다름 없다.

이미 몸을 숨기기는 늦었다고 판단했는지 살수들은 천천히 다가왔다.

천무백의 눈이 가늘어졌다.

누가 봐도 이상할 것 하등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심지어 무인 특유의 잘 벼려진 검 같은 날카로운 느낌도 전혀 없었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그저 산길로 다니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을 터다.

“지극한 평범함 속에 칼을 숨기는 것, 보통이 아닌 놈들이군.”

월야방의 악명은 비단 이번 삶에서만 유명한 게 아니다.

창천검신 시절부터 월야방은 이미 악명이 자자한 살수 단체였으니까.

하나 이런 위기 속에서도 천무백의 시야는 더 넓어졌다. 전체 판세가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살수들의 출현에 몇 가지 정황이 엿보였다.

‘표국을 나오자마자 따라붙던 살수들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면 혈귀곡이로군. 일부러 나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함이었나?’

아무래도 표국을 습격하는 건 부담이 클 것이다.

천무백도 상대해야 하고, 수가기문도 역시 상대해야 하니.

뿐이랴, 표국의 무력 수준도 이제는 웬만한 무림방파보다 더 강력한 수준이었으니까.

혈귀곡이 조용하다가 사건을 터뜨린 이유와 연관하여 생각해보면, 이들이 누구의 사주로 찾아왔는지 충분히 예측됐다.

살수들은 천천히 접근해 왔지만, 섣불리 공격을 시도하진 않았다.

태연함 속에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췄다.

‘모호하다.’

천무백을 바라보는 살수들의 평이 그랬다.

사실 살수들에게 기회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충분히 틈을 노릴 만한 기회는 이틀 동안 여러 번 존재했다.

그럼에도 살행을 시도하지 못했던 이유.

‘도대체 수준이 어느 정도란 말인가. 보이지 않는다.’

비단 수준뿐이랴.

상대의 내공 역시 짐작이 안 된다.

살행 대상의 실력이 안개 속을 더듬는 것처럼 막연한데, 어떻게 살행을 시도하겠는가.

결국, 그들은 선택해야만 했다.

살수들 사이에서 시선이 오가더니 광대뼈가 툭 불거진 사내가 튀어나왔다.

단숨에 공간을 도약하며 짧은 단도를 내지르는 솜씨가 수준급이었다.

후웅!

칼끝이 천무백의 명치 부근에 닿아올 때, 천무백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직선으로 찔러오던 사내의 손목이 순식간에 천무백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우드득!

사내의 손목을 그대로 있는 힘껏 비틀었다. 비틀렸는데도 단도를 손에서 놓치지 않았다. 모든 고통을 감수하고 내공을 쏟아부어 명치를 찔렀다. 지독했다.

‘이 정도는 되니 살수지.’

살수에겐 애석하게도 단도의 끝은 명치에 단 한 치도 박히지 못 했다.

무표정했던 사내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번졌다.

내공도 아닌 기묘하고 알 수 없는 힘이 칼끝을 지그시 밀어낸 것이다.

염동력이었다.

당황해하는 눈동자를 보며 천무백의 왼손이 목을 붙잡고, 그대로 꺾었다.

우둑!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십칠이라 불린 사내는 죽었다.

쉐에엥!

이번엔 여인이 튀어나왔다.

낭창거리는 연검이 펄럭이며 허리를 휘감아왔다.

이번엔 손으로 막기는 어렵다.

빠른 판단과 반응.

천무백의 검이 뽑히면서 동시에 연검을 싹둑 베었다.

파악!

연검을 베고도 힘을 잃지 않은 철신고검은 단숨에 여인의 목을 베었다.

깔끔한 섬격이었다.

여인의 목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민머리의 거한이 답지 않은 신속한 몸놀림으로 대도를 휘둘러 왔다.

워낙 위력적인 공격이고, 강맹한 힘이 실려 맞상대하는 건 적잖은 내공소모를 불러올 터.

천무백은 그제야 상대의 속셈을 짐작했다.

“내 무공과 수준을 파악하려고 목숨을 던져?”

과연 월야방이었다.

사실 강호에 알려진 천무백의 독문무공이란 게 딱 정의된 게 없다.

천무백의 진실된 무공을 겪은 이들은 모두 처참하게 죽었으니까.

또 목격하고도 살아남은 이들은 천무백과 연이 깊은 이들이니, 웬만해선 철저하게 함구했다.

하니 천룡검협의 독문무공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논박이 오갔다.

빙공을 쓴다는 얘기까지 있으니, 살수들로서는 헷갈리다 못해 짜증이 날 상황이리라.

지피지기는 전쟁에서만 적용되는 진리가 아니다.

상대의 무공실력을 판단하고, 그에 걸맞은 살행 방법을 연구하는 살수에겐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이들은 이 순간에 선택한 것이다.

서로의 목숨을 던져서 천무백의 무공을 간파하겠노라고.

거기에 싸움을 거듭하다 체력과 내공을 소모한 상태에서 담판을 지을 속셈이리라.

훙! 훙! 훙!

민머리는 거침없이 대도를 휘둘렀다. 언뜻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난무(亂舞)처럼 보였지만, 초식 하나하나가 강맹하고 날카로웠다.

순간 천무백의 머릿속에 재미있는 생각이 스쳤다.

‘지독한 놈들, 그래. 너희들의 지독함이 어디까지 닿는지 보자!’

덩치와 대도의 무게와 크기가 무색하게, 민머리의 거침없는 난무 속에 별안간 천무백이 뛰어들었다.

“공자님!”

지켜보던 제갈설아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흉흉한 날붙이 사이로 몸을 날리는 천무백의 모습은 그야말로 사지(死地)로 들어가는 형세였으니까.

하나 그건 착각이었다.

까가가가가가가강!

거친 금속음이 귀를 찌르고 불똥이 무자비하게 튀었다.

미친 듯이 대도를 휘두르던 민머리의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순식간이었다. 찰나 동안 대도를 수십 번 퉁겨 내며, 모든 힘을 무위로 되돌리고, 그 빈틈으로 끊어지지 않고 검격이 물 흐르듯이 이어진 것이다.

서걱!

민머리는 반격할 틈도 못 보고 그대로 가슴이 쩍 벌어지며 쓰러졌다.

살수들 중 누군가 경악하며 소리쳤다.

“연환검격(連花飛劍)!”

“호남 진가의 연환검격이라니! 진가의 무공을 배웠단 말인가!”

“내가 나서겠소이다!”

“십칠주(十七主)는 진가의 가주 살행에 성공했었지!”

천무백은 살수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직이 감탄했다.

‘과연 월야방!’

방금 쓴 무공은 연환검격이다. 호남에서 제법 유명했던 검객의 독문무공이다. 한데 살수들은 그걸 알아보더니, 이내 튀어나온다.

‘검을 잡은 모습을 보니 연환검격을 아는 자야!’

천무백의 눈이 번뜩였다.

상대는 천무백의 독문무공을 파악했다고 여겼는지, 가장 대응을 잘 할 수 있는 살수가 튀어나왔다.

실제로 살수는 연환검격을 맞대응 할 수 있는 실력자였다. 단순한 무공 실력뿐 아니라 실제로 연환검격을 사용하는 이를 암살한 전적이 있으니까.

“놈!”

십칠주라 불린 사내가 괴성을 내지르며 검을 내질렀다.

연환검격은 끊임없이 쇠사슬처럼 이어지는 연환에 뜻을 품은 무공.

약점은 명확하다. 연환의 고리를 끊어버리면 그만. 하지만 모르는 이들이라면 약점을 찾기가 어렵다. 십칠주는 단숨에 고리를 찾고,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천무백의 검이 뱀처럼 흐물거리며 변했다.

“억!”

십칠주의 낯빛이 파래졌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연환이 흐물거리며 꽃을 피웠다.

“매…… 화?”

허공에 하나 둘 생겨나는 연분홍빛의 꽃봉오리. 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는 향.

매화였다.

지켜보던 살수들의 얼굴에 일제히 경악이 번졌다.

믿기 힘든 괴이한 상황이 목전에 펼쳐졌다. 모두 딱딱하게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십칠주가 넋을 놓고 차마 반응도 못할 찰나.

꽃봉오리가 피어올랐다.

파악!

붉디 붉은 꽃이었다.

“매화검……?”

“천룡검협이…… 화산에서 배웠단 말인가?”

살수들의 경악어린 중얼거림 가운데 십칠주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두 명이 튀어나왔다.

사실 살수의 특성상 합공(合攻)은 익숙지 않다. 아니, 애당초 이렇게 비무처럼 싸우는 것 자체가 살수에겐 불리하다. 어둠 속에서 목숨을 끊어 내는 게 그들의 방식이니까.

더구나 합공은 손발이 맞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다. 일에 일을 더해서 이가 되는 게 아니라, 아예 아무것도 안 될 수도 있는 게 무공이다.

한 명씩 덤벼드는 이유에는 저런 것도 포함되리라.

하나 이번에 나온 두 명의 얼굴을 본 천무백은 고개를 끄덕였다.

“쌍둥이 살수라. 아주 형제끼리 살수짓을 해 먹다니, 참 못되 쳐먹었어. 응?”

“닥쳐라!”

“우리 둘 손에 죽은 화산 무인만 열 명이 넘는다!”

천무백은 피식 웃었다.

아무 말 없던 살수들의 말이 많아졌다는 건, 그만큼 당황했다는 뜻.

천무백은 여유롭게 웃었다.

쌍둥이는 확실히 허언을 한 게 아니었다. 취하는 기수식만 봐도 매화검이 쉬이 파고들 만한 자세가 아니었다.

새삼 만일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가 여기 있었다면 월야방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란 사실을 깨달은 천무백은, 더 굳게 마음먹었다.

“하여튼, 살려 두면 안 되겠어.”

천무백의 눈이 번뜩이는 순간, 쌍둥이가 동시에 덤벼들었다.

쉐엑!

좌우에서 들어오는 합공.

천무백의 칼이 번뜩였다. 이번에는 틀림없는 매화검의 흐름!

쌍둥이의 얼굴에 희색이 감돌았다.

하나 이내 떠오르던 미소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별안간 천무백의 검이 검집 속으로 납검되더니, 천무백의 왼손에서 가공할 장력이 쏟아졌다.

누군가 비명처럼 내질렀다.

“분뢰장(紛雷掌)?”

“벽력문의 분뢰장이라니! 대체!”

천무백의 장력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뇌전이 단숨에 쌍둥이를 집어삼켰다.

쿠웅! 쿵!

완전히 새까맣게 타버린 채 바닥에 쓰러진 두 명을 보며 살수들은 침음을 삼켰다.

그들의 눈동자에 믿기 어렵다는 듯 불신의 빛이 역력했다.

“연환검격, 매화검, 그리고 분뢰장이라니…….”

“천룡검협, 그대는 대체…….”

“혹시, 혹시, 마도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정파가 모여 만들어 낸 기재가 아닌가!”

천무백은 헛웃음을 지으며 칼을 들어올렸다.

칼끝이 살수들을 향하자, 살수들이 일제히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기세 하나만으로 월야방의 살수들이 모두 물러난 것이다.

“야, 너희들 이런 식으로 한 명씩 내 독문무공이 뭔지 알려면, 숫자가 부족해.”

“뭣?”

“월야방 전체가 다 와야 할 거다.”

“……!”

살수들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하나 이내 그들의 표정은 이어지는 말에 처참함이 아니라, 그저 귀신을 본 것처럼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아니지. 내 머릿속에 있는 거 생각하면 말이야. 강호 전체가 다 와야 될 거야.”

“……!”

강호, 모래알처럼 무수히 많은 무인들.

그들 모두에 빗댈 정도로 천무백의 머릿속엔 수많은 무공이 가득 차 있었다.

천무백.

“너흰 나 못 잡아.”

수백, 수천에 가까운 영겁의 세월.

단 한 번도 살수에게 당한 적이 없는 천무백의 기세가 좌중을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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