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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생-222화 (222/318)

<검신재생 222화>

222. 너 그러다 진짜 죽어

사람들은 모두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눈을 감았다 뜨고 보니, 바닥에 주저앉아 오줌을 지리는 모습이 눈앞에 보였으니까.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당계세가임을 강조하며 난리를 피웠기에, 의도치 않게 모든 이들의 이목이 주목된 상황.

구 영감은 탄식하며 당계제염을 부축했다.

“으어으으.”

마치 정신 나간 사람처럼 천무백을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벌벌 떠는 모습에 여기저기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억지로 부축하며 일어나자, 구린내가 확 퍼졌다.

사람들이 분분히 코를 막으며 비웃었다. 당계세가의 악명 때문에 대놓곤 비웃진 않았지만, 장내에 가득한 분위기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아마 오늘의 일은 산동에 소문이 자자하게 퍼지겠군.’

보고 들은 눈과 귀가 한둘이 아니니.

단 한 번의 난동으로 당계제염의 미래가 어두워졌다.

‘후계자 자리는 둘째 치고, 지독한 정신적인 외상을 당했으니까.’

이런 경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도저히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상대를 만나 검을 부러뜨리는 경우.

드물지 않게 무림에는 간혹 있다.

과연 당계제염이 다시 검을 잡을 수 있을까? 심마로 다가온 저 공포를 이겨 내고?

‘목숨 값치곤 참으로 비싸구나.’

구 영감은 탄식하며 급히 장내를 빠져나왔다.

능허가 그걸 지켜보면서 마음에 안 찬다는 듯 퉁명스레 말했다.

“저게 교육 끝입니까?”

“그럼 뭘 더 해 줄까.”

“적어도 팔 하나는 잘라야죠.”

“어휴, 능허야. 나 피 보는 거 싫어해.”

“…….”

능허는 대놓고 자신의 허전한 왼팔을 바라보며 눈치를 줬지만, 천무백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천무백은 고개를 돌려 육석을 바라봤다.

“좋은 검입니다.”

“어…… 어?”

넋을 놓은 것처럼 쳐다보던 육석은 천무백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훌륭한 검입니다. 충분히 다룰 수 있음을 보여 드렸으니, 철신은 그저 비싼 금속덩어리가 아닙니다. 공께서 생각하신 것처럼 망친 것도 아니지요.”

“아…….”

육석은 제 손을 내려다 봤다.

평생 제 손을 거쳐 간 무수한 신병이기 중에서도 필생의 역작이라고 감히 표현한 작품이다.

하나 검에서 탄생된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념에 공포를 느꼈다. 념이 품은 지독한 살기에 좌절했다.

주인을 잡아먹을 괴물 같은 검이라고.

누구도 쓰지 못할 검을 만들었다고.

만일 검이 마인들의 손에 들어가면, 역사에 길이 남을 마검이 될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실제로 그리 되는 듯 보였다.

‘철신이 흉측한 이빨을 드러냈었다.’

묵빛이 당계제염을 덮쳐 가는 순간, 어둠과 대비되는 새하얗게 번뜩이는 맹수의 흉포한 이빨을 똑똑히 봤다.

당장이라도 목을 물어뜯어 숨통을 끊을 것처럼.

이대로 당계제염의 목이 찢겨 나가리라 여겼다.

결정적인 순간에 철신고검은 이빨을 감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양이처럼 애교를 부리며 숨을 죽였다.

그 광경이 불현듯 창천검신과 겹쳐 보였다.

여기, 이곳 철방에서 나눴던 창천검신과의 대화가 스쳐 갔다.

‘제가 검 하나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대신 마교 놈들로부터 좀 지켜 주시죠.’

육석이 그리 말하자, 창천검신은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나에게 새로운 검이 필요해 보이는가?’

‘솔직히 말씀드려도 됩니까. 어르신.’

‘말해 봐.’

‘어르신의 철신고검은 검이 아닌 하나의 도구처럼 느껴집니다.’

‘도구?’

‘오로지 죽이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 말입니다. 어떤 가치도, 어떤 의미도, 어떤 뜻도 담지 않은 오로지 살육을 위한 도구.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더 죽일 수 있는지, 더 많은 적을 벨 수 있을지 고안된 도구처럼 느껴집니다. 아니, 실제로 그렇습니다.’

창천검신과 함께 온 무인들이 일제히 경악했다.

당장 명성이 자자한, 창천검신을 아버지처럼 따르는 투신 곽용이 얼굴이 시뻘게진 채 격노했다.

무인에게 있어 검을 모욕한다는 건 곧 주인을 모욕하는 것과 같으니까.

하나 창천검신은 쓰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장인답구나. 네 말은 틀리지 않다. 맞다. 흐르는 핏물이 빠질 수 있게 검신의 각도가 이뤄졌으며, 칼날은 오로지 베기 위한 예기만을 머금었다. 죽이기 위한 도구. 살육만을 위한 도구. 맞다. 철신고검은 그런 검이다.’

‘제가 더 좋은 검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됐다. 검을 주지 않아도 네놈의 철방은 지켜 줄 테니까. 여기 곽용이 놈하고 정파 애들이 쓸 무기나 챙겨줘라.’

‘……그게 아니라, 창천검신이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검이라 봅니다. 강호를 살리기 위한 활검이, 어찌 이토록 강한 살기를 품을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창천검신은 고개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대소였다. 눈물이 날 정도로 웃더니, 별안간 웃음이 뚝 끊기고 정색했다.

검은 동공을 마주한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감히 감당하기 힘든 태산이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활검 말이냐? 사람을 살리는 검? 그딴 게 세상에 있단 말이냐?’

‘……!’

‘검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검은 검이다. 오로지 죽이기 위해 태어난 병기이자, 피와 살을 베고 또 베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네가 말한 대로 철신고검은 아무런 의미도 담기지 않았고, 오로지 살(殺) 하나만을 품은 가장 순수한 검이란 말이다.’

“죽이기 위한 검…….”

어찌 그리 표현할 수 있을까.

장인들이 혼을 불사르며 만든 검에 담긴 모든 의미를 부정하고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 내세운다.

때문에 이해할 수도 없었고, 반발심도 들었다. 어쩌면 대단한 창천검신도 그저 무도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감히 품었다.

하나 결과는 그러지 않았다.

창천검신은 마인들을 죽이고 또 죽여서 강호의 평화를 강제로 만들어 냈다.

결국, 그가 옳았다.

철신고검은 그런 검이었다. 수천 마인들의 피가 묻은 검.

피로써 목욕하고 살을 베며 숨을 쉬는 검이다.

철신에 담긴 념(念)은 그렇게 강해졌다.

흑운철로 다시 재탄생한 철신의 념은 더욱 강해져서, 엄청난 살기를 품었다.

괜히 주인을 잡아먹을 괴물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니다.

조금 전 느낀 살기.

육석은 검의 경로를 보진 못했지만, 단 하나는 알았다.

온몸으로 전해지는 건 철신이 품었던 살기였음을.

아마 검을 뽑은 순간, 철신고검은 살을 베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않고,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리라.

‘그러지 않았다. 저 애송이는 살아서 돌아갔지.’

죽었어야 마땅하다. 한번 뽑힌 이상, 그만한 살기를 품은 철신고검은 절대 만족하지 않고 검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 그랬다.

‘대체…….’

완벽하게 제어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살기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천무백은 검을 제어한 것이다.

주인을 잡아먹는 괴물 따위는 없었다.

‘한낱 괴물이 신을 어찌 잡아먹으랴.’

육석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검을 보는 눈은 있어도, 무인을 보는 눈이 부족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 자네가 내 검을 필생의 역작으로 만들어 준 거야.”

천무백이 씩 웃었다.

솔직히 말해 만족스러웠다.

아무리 흑운철이란 희대의 금속을 썼다고 한들, 이렇게 탈바꿈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좋다.’

손에서 느껴지던 묵직한 감각과 서늘함.

당장이라도 상대를 베고자하는 검의 탐욕이 전신으로 느껴졌다.

쉽진 않았다. 만일 천무백이 아니라 다른 이가 잡았다면, 쉽사리 검을 제어하지 못했을 것이다.

끝내는 당계제염의 목을 베고서야 검은 만족했겠지.

하나 애당초 철신고검은 오로지 천무백만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검이다.

검에 담긴 념은 무수한 전생 동안 막역지우(莫逆之友)처럼 함께했으니까.

‘내 뜻만 따르는 검이니까.’

육석의 걱정은 애당초 필요가 없던 것이다.

다만.

‘살기가 생각보다 더 강하군.’

어쩌면 이 검이 자신의 사후, 다른 이에게 들어가지 않도록 잘 관리해야 할 듯했다.

희대의 마검이 탄생할지도 모르니까.

당계제염은 죽지 않았다.

하나 검에 담긴 념은 끝내 탐욕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았다.

‘그놈, 살아도 산 게 아니겠어.’

육체의 죽음만이 죽음이 아니다.

정신적인 죽음도 마찬가지다.

오늘 느낀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터. 만일 벗어나지 못한다면 두 번 다시 검을 잡지 못 하리라. 무인이 검을 잡지 못한다는 건 곧 죽음과 상통하는 의미니까.

‘이번엔 천마를 벨 수 있겠군.’

천무백이 흡족하게 웃었다.

* * *

육석은 진이 빠진 표정으로 쉬러 갔다.

아마도 철신을 만드느라 전력을 기울이고, 그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두 눈으로 목격하자 모든 힘이 다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천무백은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유서령이었다.

“어……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시선을 마주하자 유서령이 황급히 포권을 취했다.

천무백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 검을 봐주겠다고 하지 않았소?”

“아…… 네.”

“어떤 것 같소? 그대라면 얼핏 봤을 것 같은데.”

“…….”

유서령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보지 못했다.

잔상만 봤을 뿐.

유서령은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히 보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보지 않아도 알겠더라고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전율이었어요. 제 안목으로 평가할 수 없는 검입니다.”

“아니야. 그대의 안목은 훌륭하오.”

“네?”

“그대가 고른 이거, 지금 방주가 만든 건 맞소.”

“아……!”

유서령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녀가 보기에 가장 좋은 검이라고 판단해서, 당계제염과 날을 세우면서라도 얻고 싶어 했던 검이다.

하나 유서령의 표정은 이내 조금 어두워졌다.

천무백 역시 이 검을 가지려하지 않는가.

‘물론 당계제염 같은 불한당이 아닌 저 사람이라면 충분히 자격이 차고 넘치겠지만…….’

왠지 아쉬웠다.

따로 맡은 일이 있어 사문을 내려왔지만, 육가철방에서 검을 구할 수 있단 소식에 해야 할 일은 잠시 미뤄두고, 먼 길인데도 여기까지 왔다.

그런 아쉬움을 느꼈을까. 천무백이 피식 웃었다.

“내가 착각한 게 있소. 철방에 규칙이 있더군. 한 사람당 하나의 병기만 구매할 수 있다는 거.”

“네? 그 말씀은…….”

“난 이미 검을 하나 구했으니, 애석하게도 이 검을 살 자격이 없소.”

“……!”

유서령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무백의 말뜻을 이해한 유서령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고맙습니다.”

“나한테 고마워할 건 없소. 규칙이 그러하니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천룡검협의 명성이라면 응당 검을 취할 수 있겠죠. 무사라면 누구나 좋은 병기에 욕심이 생기는 법인데도, 양보해 주시는 거니까요.”

결과적으로 보면 유서령을 순전히 도와준 것이 아닌가.

영락없이 당계제염에게 검을 뺏길 상황에서 오로지 유서령을 도와준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규칙을 얘기하며 명분을 쌓고 검을 포기하니, 유서령은 큰 고마움을 느꼈다.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은혜라고 할 거 까지 없고, 갚을 것까지도 없소. 다만 내 소저에게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질문에 답해 주겠소?”

“질문 말입니까? 저한테요?”

고작 질문 하나로?

유서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좋은 검을 양보해 줬는데, 고작 질문 하나에 답을 못 내놓을 리가 있겠는가.

“물론이에요.”

“자, 그러면 잠깐.”

천무백은 주위를 둘러보며 손을 휙 휘둘렀다.

“……!”

유서령의 얼굴에 놀람이 번졌다. 주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당장 천무백의 옆에만 해도 능허가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데.

‘들리지 않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지독한 정적이 천무백과 유서령 사이를 잠식한 듯했다.

‘기파만으로 소리를 차단했다고?’

생각지도 못한 경지를 목격한 유서령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마 둘 사이의 대화는 다른 이들은 듣지 못 하리라.

천무백이 물었다.

“사문이 어디요?”

“……사문이요?”

유서령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순간적으로 눈이 흔들리는 걸 천무백은 놓치지 않았다.

“사문은…… 없어요. 그저 스승께 부족하나마 검을 배웠어요.”

“아. 사문이 아닌가.”

천무백은 고개를 갸웃하며 팔짱을 꼈다.

“하긴. 사문이 아니라 종단(宗團)이라 해야겠군.”

“……!”

딱딱하게 굳어버린 유서령의 얼굴을 보며, 천무백이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마류칠종의 검종(劍宗). 내가 궁금한 게 참 많다오.”

그때였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서령의 허리춤에서 벼락처럼 검이 뽑혀 나왔다.

하지만 천무백은 가만히 있었다. 대응하지도, 반격하지도 않았다.

검끝이 목젖을 향했다.

단 한치만 찌르면 목이 관통될 거리. 하나 천무백의 표정은 담담했다.

반면 일그러진 유서령의 얼굴엔 조급함이 떠올랐다.

“대체…… 어떻게?”

유서령의 눈동자가 거세게 진동했다.

목을 향한 검끝을 살짝 내려 본 천무백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언뜻 미소가 스쳐갔다.

“야. 칼 치워.”

“······!”

질식할 것 같은 침묵이 어깨를 짓눌렀다.

귓가에 대고 얘기하는 것처럼 또렷이 들리는 나지막한 목소리.

유서령은 떨리는 눈빛으로 천무백을 응시했다.

어떤 감정도 한줄기 드러나지 않는 냉막함.

그토록 싸늘한 시선을 마주하자 유서령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혈액을 빠르게 공급하고 신체의 감각을 극한까지 몰아쳤다.

‘위험!’

전신이 위험을 경고하고 반응했다.

하나 미친 듯이 박동하던 심장이 거짓말처럼 일순 정지했다.

“너, 그러다 진짜 죽어.”

새하얀 웃음이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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