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생-201화 (201/318)

<검신재생 201화>

201. 이왕 하는 김에……

육가철방에 고용된 무사의 수는 상당했다.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육가철방이 가진 명성과 규모를 생각하면, 무사들의 수준도 범상치 않았다.

당장 대문을 지키는 부리부리한 눈매의 문지기도 적어도 일류급은 되어 보였으니까.

“무슨 일로 오셨소?”

문지기는 무림인으로 보이는 세 명이 나타나자,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막았다.

육가철방 내부에 들어갈 수 있는 이는 정해져있다. 일하는 장인들, 그리고 물품 운송을 담당하는 상단의 일꾼들.

오히려 무인들은 철방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통을 담당하는 상단을 통해 무기를 주문하고, 받아가니까.

직접 철방을 찾아오는 건 정말 특이한 경우였다.

문지기는 곰곰이 생각했다.

‘오늘 특별히 방문하기로 되어있는 사람이 있었나?’

기억에 따르면 없다.

한마디로 이들은 방문이 예정된 손님이 아니라는 뜻.

‘한 명 빼고 너무 어려.’

문지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두 명은 확실히 어렸다. 마치 연인인 것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꽤 살벌한 얼굴이었다. 눈을 마주치기도 쉽지 않은 애꾸의 얼굴엔 상처가 그득했으니까.

‘이거 만만치 않아 보이는데?’

문지기는 새삼 경계심을 한층 강화했다.

가끔 잘 모르는 무인들이 다짜고짜 찾아와서 무기를 주문하다가 거절당하면 행패를 부리곤 한다.

그때마다 고용된 무사들이 해결하지만, 당장 문지기는 이 세 명을 다 이길 자신이 없었다. 젊은 한 쌍은 모를까, 저 살벌한 얼굴은 왠지 꺼려졌다.

“가진 무기를 고치러 왔소.”

“수리 말입니까?”

문지기의 시선이 흘깃 아래로 향했다.

청년의 허리춤에 반 토막 난 검이 보였다.

“그렇소.”

“죄송하지만, 육가철방에서는 철방에서 제작된 무기만 수리가 가능합니다. 혹시 이전에 철방에서 구매한 무기가 맞는지요?”

그러자 청년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문지기는 직감했다.

‘아니군.’

저런 보잘 것 없는 고물이 어떻게 여기서 만들어졌겠는가?

어디 소문 듣고 온 어린 무인 같은데, 문지기는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천무백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여기서 제작된 무기는 아니다만, 이곳에서 몇 번 정비를 맡은 적이 있소.”

이미 정비를 맡은 적이 있다? 문지기는 신중했다. 무인들과 잘못 엮이면 피곤하니까. 그래서 한 번 더 되물었다.

“……예?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하남의 천무백이오.”

“천무백…….”

무언가 낯익은 이름이다. 머릿속에서 이름이 낯설지 않게 감돌았다.

여기에 왔던 적이 있나? 한 번쯤 들어본 이름인데.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던 문지기의 눈이 별안간 부릅뜨며 비명을 내지르듯 소리쳤다.

“천룡검협! 천룡검협 천, 천무백 공자십니까?”

“그렇소.”

“이, 이런. 잠,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안, 안에 전하겠습니다.”

* * *

천무백은 육가철방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예약이 안 됐다고 한들, 천룡검협의 명성을 무시하기엔 제아무리 육가철방이라고 해도 힘든 일이었으니까.

설령 그렇다고 한들 장인들의 태도가 달가운 건 아니었다.

피곤한 기색이 잔뜩인 장인이 나와 말했다.

“무기를 수리하러 왔다고 들었소. 천룡검협의 무기를 맡아 본 적이 없었는데…….”

장인은 천룡검협이란 명성에 크게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천무백은 피식 웃었다.

‘옛날이랑 다를 게 없군.’

어쩐지 익숙한 얼굴의 장년 사내다. 기억 속에 아는 인물은 아니다. 정확히는 알고 있는 얼굴과 비슷했다.

육가의 직계 혈손이거나, 적어도 핏줄을 이은 건 분명하다.

천무백은 천천히 철신고검을 꺼냈다.

“이건……!”

철신고검을 바라본 장인의 얼굴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검을 한참 내려다보던 장인은 놀란 눈빛으로 천무백을 쳐다봤다.

“이, 이건 창천검신의 철신고검 아니오. 이걸 왜 그대가? 분명 제갈가의 태상가주께서 갖고 계셨는데?”

“그분께 받았소.”

“……받았다고?”

장인은 이해하기 힘든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표정이 점점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설마…….”

떨리는 시선이 전해지자 천무백은 그저 침묵을 지켰다.

장인은 ‘허……’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더니 눈두덩이를 비비곤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이전의 심드렁한 반응과는 다른 진중한 태도다.

“하면 태상가주께서 들으셨을 겁니다. 이 철신고검은, 육가철방의 역량으로도 불가합니다. 운철로 만들어졌을 뿐더러, 저희가 운철을 소유하고 있긴 하나 금속을 녹여서 섞을 수 있는 수준을 넘었습니다.”

“불가하오?”

“그렇습니다. 철신고검은 단순한 명검이 아닙니다. 검에 담긴 의념이 수백 년을 걸쳐 뚜렷해졌지요. 이런 검은 녹여서 다시 만든다고 해도, 오히려 검을 부수고 죽이는 결과를 낳을 뿐입니다. 죄송합니다만, 본 철방에서는 불가합니다.”

“육석 공(公)을 만나 뵙고 싶소.”

순간 장인의 얼굴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육석.

육가철방의 전대 방주이자, 정마대전 당시 현역으로 활동했던 제일의 장인.

그리고 장인의 아버지기도 했다.

장인은 한숨을 폭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은퇴하셨습니다. 망치를 휘두를 힘도 없으시고요. 설령 아버지가 전성기 시절이라고 해도, 불가합니다. 단순히 날이 상한 거면 가능해도, 이렇게 반 토막이 난 건…….”

“우선 육석 공에게 이 서찰을 전해 주시지요. 그리고 이것도 보여 주시고.”

“이건……?”

“검후의 서찰입니다.”

“……!”

하나 장인의 떨리는 시선이 닿은 건 서찰이 아니었다.

무려 검후의 서찰이지만, 지금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시야에 들어오는 묵빛의 금속.

세상 모든 먹을 흡수한 것처럼 칠흑처럼 검다.

무엇인지 알아본 장인의 눈동자가 떨렸다.

“흑운철이오. 육석공에게 보여 주시오.”

“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장인은 눈이 뒤집힌 채 벌떡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네요.”

“그러게 말이오.”

제갈설아의 말에 천무백 역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우리 아빠가 와도 예약 안 했다고 하면 차나 한잔 마시고 돌아가는데.”

제갈설아가 혀를 내두르며 천무백을 바라봤다.

시선에는 감탄이 가득했다.

사실 무작정 육가철방을 찾는다길래 내심 걱정도 했던 제갈설아는 새삼 감탄했다.

“어떤 애송이냐! 어떤 애송이가 이런 귀한걸!”

금세 육가철방이 시끄러워졌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일하던 장인들이 분분히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건, 은퇴한 전설적인 명장 육석이었으니까.

잔뜩 흥분한 얼굴로 다가오는 육석을 바라보는 천무백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거참. 노인네, 오래도 정정하게 잘 사네.’

뭐? 망치 들 힘이 없어?

우스운 얘기다. 한창때는 철방에 쳐들어온 마인들을 들고 있던 망치로 머리통을 깨뜨렸던 괴력이 아니던가.

장인의 말과 다르게 육석은 아직도 정정해 보였다.

젊은 시절과 달리 확실히 체격이 줄고, 팔근육도 빈약해졌지만, 형형한 눈빛만큼은 그대로였다.

천무백 앞에서 멈춰선 육석은 거친 눈빛으로 물었다.

“너냐. 천룡검협이라는 애송이가. 검후가 흑운철을 내주며 나한테 보냈다고?”

육석은 천무백에게 다짜고짜 그리 말했다.

천무백은 여유롭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흑운철이라면 철신고검을 수리 할 수 있으리라 하더군요.”

“이럴 수가. 제갈선, 그 양반이 갖고 있던 철신고검을 내준 것도 모자라서, 검후가 흑운철도 내줬다고? 너 설마…….”

육석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천무백을 쳐다봤다.

그리고 별안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세등등하던 육석의 얼굴에 파문이 일었다. 눈초리가 거세게 떨렸다.

‘창천검신……!’

그 사람의 눈빛도 저러했다.

그때, 그 시절.

다짜고짜 찾아와 무인들이 죽어 가고 있으니, 좋은 무기라도 내달라고 소리치던 그때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장인의 자존심이라고, 아무에게나 무기를 내어 줄 수 없다며 단호하게 말했지만.

그때 창천검신의 눈빛을 봤다. 표정을 봤다. 살이 시리도록 차갑게 내지르는 일갈이 전신을 관통했다.

‘알량한 네놈의 장인 정신 따위, 나와 함께 싸우는 무인들의 목숨보다 값지지 않다!’

‘선택하라! 무기를 내놓던가, 네놈 목숨을 내놓던가!’

일갈하며 죽일 듯이 노려보던 눈빛.

육석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철신고검의 소유자, 그렇다면 창천검신의 후인……!’

육석은 바짝 메마른 입을 열었다.

“검을 보여 줘라.”

육석은 철신고검을 자세히 살폈다. 일전에 봤던 것처럼 여전히 엉망이다.

하지만 육석은 달라진 점을 확연하게 알아챘다.

‘검이 숨을 쉰다.’

이전과는 다르다.

검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

이 검은 호흡하고 있었다. 이 금속은 주위의 산소를 흡수하고, 내뱉고 있었다.

‘주인을 되찾았다는 의미다.’

의념이 담긴 검.

명장이 만들어낸 명검이, 사용자의 정신력에 동화되어 생겨나는 의념.

그렇기에 수리 할 수도, 만질 수도 없다.

하나 육석은 욕심을 냈다. 이 검을 자신이 한번 제대로 다뤄보고 싶었다고.

그건 장인의 욕심이었고, 평생의 숙원이었다.

세상 모든 일을 욕심대로 행할 수 없었다. 어떤 금속으로도 이 검에 담긴 의념을 고칠 수는 없었다. 만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흑운철이라면…….’

육석의 떨리는 시선이 흑운철에 닿았다.

저만한 분량이면, 오히려 남는다. 육석은 마른침을 삼켰다.

“해 주지. 한 달. 한 달이면, 내 모든 힘을 다해 고쳐 주마.”

육석의 눈이 화르륵 타올랐다.

이제는 죽을 날만 기다리던 육석의 장인혼이 되살아났다.

“하면, 대가는 얼마 정도겠습니까?”

육석이 어림도 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대가? 하! 필요 없다. 흑운철을 다루는데, 어찌 대가를 바라겠나. 그깟 재물 따위, 네놈이 준다 해도 받지 않아. 어차피 남은 삶 동안 펑펑 써도 줄어들지 않을 황금이 있으니까.”

그러자 좌중에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매사 비관적이고 냉철한 능허마저, 순수한 장신정신에 입을 벌릴 정도였으니까.

육석은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그런 시선에 내심 만족했다.

하나 이어지는 천무백의 말에 일순 몸이 굳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해 주시는 김에 이왕이면 남은 거로 작은 단도 하나 만들어 주시죠.”

“…….”

육석은 입을 쩍 벌렸다. 입을 벌리며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보든 말든, 천무백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언제 이런 귀한 금속으로 만들어 보겠습니까? 역시 명장은 달라. 재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순수한 열망이라니. 크으.”

“…….”

“그럼 단도까지 하나 만들어 주는 거로 알겠습니다.”

“……허.”

말문이 턱 막혔다. 그저 헛웃음만 튀어나올 뿐.

“그럼 한 달 후에 찾아오겠습니다.”

아니, 알겠다고 수락도 안했는데?

하지만 육석은 알았다. 이미 자신이 한 말이 있는데, 그걸 어찌 뒤집겠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걸 이렇게 이용해? 저 뻔뻔함은 당최…….’

어째…….

‘창천검신이 나 모르는 사이에 아이를 낳았나.’

뻔뻔함이 똑같았다.

창천검신처럼.

* * *

한 달이라면 예상한 것보다 길지 않다.

천무백 역시 장인들이 공을 들이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애당초 육가철방을 먼저 찾은 건, 철신고검을 맡겨 놓고 성물을 해결 지을 생각이었으니까.

한 달이면 충분하다.

“여기서 일은 끝났으니, 곧장 가자.”

“어딥니까? 이제 종리홍이 말한 곳이.”

“아저씨는 몰랐어요?”

제갈설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반문하자, 능허의 얼굴이 순간 묘하게 일그러졌다. 능허가 천무백을 흘겼다.

“아니. 나한텐 말 안 해 주고, 제갈소저에겐 말해 줬습니까. 이거 섭섭하네. 나랑 같이 다닌 지 몇 년인데.”

“알려 준 적 없어요.”

제갈설아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어쩐지 능허가 아쉬워하는 모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지, 표정에 생글거리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냥 예상해 본 거죠. 공자님, 가시려는 곳이 곡부(曲阜)죠?”

천무백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갈설아의 예상은 정확했다.

곡부.

제갈설아가 그리 예상한 건, 어쩌면 당연하였다.

천무백이 산동으로 같이 가자고 했을 때, 그녀에게 유학(儒學)에도 밝냐고 물어봤으니까.

산동과 유학을 연결하면 딱 하나의 장소가 나온다.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의 탄생지.

그의 후인들이 머무르는 곳.

“……공자가 태어난 곡부 말입니까?”

능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려왔다.

천무백은 곡부에 간다는 걸 예상하지 못해서 오는 떨림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자신도 생각도 못 한 일이다.

종리홍이 말한 성물이, 왜 유학의 성지나 다름없는 곡부에 있겠나.

하나 종리홍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의 편린을 읽었을 때,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그래. 곡부, 정확히는 곡부의 공부(孔府)로.”

공자의 직계후손들이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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